01
  학교에서 어느 여선생님 시간에 잔소리를 한 마디 얻어 들었다.
“차라리 싹 벗어 버리지 그러니? 옷 좀 입어.”
  그런데 왜? 죄목은 민소매티를 입고 있었단 것. 이 학교에선 교실에서 더울 때 티셔츠 한 장만 입는 것 정도는 허용된다. 그런데 성별이 달라선지 민소매티만 입은 학생 모습을 보고 있기가 민망했던 모양이다.
  처음에는 옷을 순순히 입어 주었다. 그러다가 더위를 참기가 힘들어서 한번 다시 벗어 보기로 했다. 내가 그 정도 억압에 굴할 수는 없지. 그것이 다시 선생님의 눈에 띄어 “옷 좀 입어야...”소리를 다시 듣고 말았다.
  결국 다시 옷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02
  쉬는 시간에 나는 다시 교복을 벗고 민소매 티만 입고 있었다. 그런데 친구들의 반응이 걸작이었다.
“너 왜 그렇게 혼나놓고도 다시 옷 벗고 다니냐? 쟤 진짜 병신 같애...”
  저 소시민 자식들. 나는 화가 나서 이렇게 쏘아 붙였다.
“오, 그래. 나 병신 같은 새끼니까 상종하지 마라.”
  그러자 친구들이 이렇게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쟤 저렇게 멋대로 하고 다녀서 군대 어떻게 갈까?”
“쟤는 말라서 군대 못 갈걸.”
“아냐, 저 정도면 군대 가.”
“쟤는 키가 크니까 그렇지. 저렇게 말라서는 힘들 거 같은데.”


03
  예로부터 지금까지, 탈주류의 길을 고민하는 사람들은 병신 취급을 당하기 일쑤이다. 하지만 사회의 발전을 이끈 사람들이 바로 이 탈주류의 사람들이기도 하다. 따라서 나는 병신 취급을 당하더라도 별 상관은 하지 않는다. 내가 묻고 싶은 것은 옷을 입어야 하는가가 아니라 “대관절 우리가 군대를 가기 위해 태어났단 말인가?”이다.
  군대를 가고 싶어서 가는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신성한 의무? 2년간 썩어서 나오는 것이 신성한 의무인가? 그럴 리는 없다.
  장 부르디외는 학교를 사회적 폭력을 행사하는 곳으로 규정한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경우 더욱 노골적으로 적용된다. 획일성과 규율과 억압이 지배하는 일반계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거나 나와 본 사람들은 모두 동감하리라. 동감하고 통감할 일이다. 군대 운운하는 나의 친구들이 거기에 너무나 많이 길들여져 있다는 것이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군대는 거기에 더해지는 보너스 스테이지이다. 학교보다 더한 획일성과 규율과 억압과 폭력이 지배하는 공간. 이를 통해 기성세대들이 신세대들에게 무엇을 바라는 것일까?


04
  박노자 교수의 <당신들의 대한민국>에서 약간의 단서를 찾을 수 있었다. 자신이 어느 대학교의 노어과 강사로 일하던 시절, 군대를 다녀온 뒤 더욱 강압적이고 권위적으로 변하거나 혹은 그곳에서 당한 폭력으로 인해 정신적으로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그에게 찾아와 흐느끼기까지 하는 학생들을 만났다나 뭐라나.
  물론 나는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박노자 교수와는 달리 아나키즘을 지향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차이가 여기서 무슨 대수랴? 둘의 진정한 정신은 권위주의에 대한 반발에 있다는 데에 둘의 공통점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독자 여러분은 조금 전 사용된 단어에서 정답을 찾았을지 모른다. 그렇다. 답은 권위주의이다.(물론 정답이라는 건 아니지만) 신세대를 기존 질서에 길들이고, 자신들에게 복종하는 충견들로 만들려는 것이다. 가령 촛불시위를 진압하는 전경들 중 진심에서 우러나와 진압에 나서는 전경들이 몇 명이나 될 것인가?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전역을 신청했다가 영창에 갇힌 전경들까지 있는 걸로 보아 대다수의 전경들은 억지로 진압에 나서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억지로’라도 그렇게 열성적으로 진압에 나서게 할 수 있는 걸로 보아 제도적 폭력과 권위주의의 힘은 정말로 위대하다.


05
The false empires will crumble and all illusions shall be destroyed
The enslavers tremble with fear, soon our stars align
  Dissection의 <Starless Aeon>의 가사 일부를 인용한 것이다. 제도적 폭력과 권위주의의 힘보다 위대한 것은 그들을 벌벌 떨게 만드는 반항아, ‘병신’의 힘에 있다. 부르주아와 그들의 대변인인 프랑스 의회에 항의하며 프랑스 국회 의사당에 폭탄을 던진 오귀스트 바이양(Auguste Vailla
nt)의 목숨을 거두어 간 저승사자는 프랑스 대통령 사디 카르노(Sadi Car not)가 불러낸 것이었다. 카르노는 후에 이탈리아인 저널리스트 산테 제로니모 카제리모(Sante Geronimo Caserio)에 의해 암살된다. 바이양의 원수를 갚은 것이다.
  기득권층에게 반항하며 자유를 외치는 ‘병신’. 나는 대놓고 반항하지 못하는 반쪽짜리 ‘병신’이다. 하지만 나는 나 자신으로서 태어난 것이지 국가를 위해, 군대에 가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음을 알고 있는 ‘병신’, 제도적 폭력과 권위주의보다 민중의 힘이, 약자의 힘이 더 위대함을 알고 있는 ‘병신’이라면 일단은 충분하리라. 어쨌든 enslaver들이 공포에 떠는 날이 오고 말 것이다. 현재의 정국으로 보았을 때는. 그 때가 되면 ‘병신’들이 이제 자유의 영웅으로 등극할지 누가 알겠는가?


Outro
  1시간 만에 뚝딱 완성한 졸속 수필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내 메세지는 대부분 전달됐으리라 믿는다. 적어도 이건 졸속 쇠고기협상보단 낫지 않은가? 어쨌든 이제 모두들 각성해야 한다. 변혁의 기회가 온 지금이 바로 우리의 기회이다. 다시 만나기 힘든 기회인 것이다. 탈주류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군대 운운하는 우리 안의 군사주의는 벗어던지자. 거기에 ‘자유'라는 새 옷을 입을 때, 진정한 행복이 있고, 진정한 자아를 찾을 수 있으리라고 나는 믿는다.


[Aleksis]
Posted by 오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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