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가 포돌이가 방긋 웃으며 “청소년선도”를 외치고 있는 알림판을 본 적 있는가? 거기에서 ‘학교폭력’ 운운하며 폭력이나 강도질 같은 것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경찰이 이야기하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대체 그 알림판에 써있는 청소년들의 “불건전한 이성교제”를 근절하자는 글귀는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성폭력이나 성매매가 아닌 이상은 형법상 처벌 조항이 있을지조차 의문인(만13세이상의 경우 성폭력, 성매매가 아닌 한 처벌하기는 어렵다. 하긴 한국 경찰이 언젠 법을 그리 잘 알고 지켰겠냐만) 청소년들의 연애에 대해서까지 그렇게 관심이 많으시다니, 대한민국 경찰들은 좀 지나치게 오지랖이 넓으신 것 같다.

오지라퍼라고 하면 단연 빼놓을 수 없는 게 학교다. 많은 학교들에서 학생들의 연애에 대한 관심이 넘쳐서 때로는 학교 규정에 학생들의 연애에 대한 규칙들을 마련해놓고 있다. ‘불건전한 이성교제’를 금한다거나 ‘불건전한 이성교제’를 하면 징계한다는 식의 규정은 차라리 형식적인 애교로 보인다. 동아리 안에서 이성교제를 하다가 소문이 나거나 뭔가 가십거리가 생길 경우 해당 동아리를 폐쇄한다는 학교, 어깨에 손만 올려도 처벌하는 학교, ‘남녀칠세부동석’의 현대판이라도 되는 양 여학생 남학생 단 둘이 한 방에 있기만 해도 처벌한다는 학교… 아주 각양각색으로 오지랖을 과시한다.

경찰과 학교 말고도 널린 게 오지라퍼들이다. 부모, 가족, 교과서, 미디어…. 모두가 청소년들의 성과 연애에 대해서 ‘선도’하지 못해 안달이다. 집에서는 좀만 늦게 들어오면 추궁하고, 청소년들의 첫 성경험 나이를 조사하고, ‘건전한 이성교제’ 방법을 교과서가 제시하는 세상인 것이다. 서울시교육감인 공정택 씨는 후보 때 청소년의 자유연애는 금지해야 하고 성관계를 가진 학생은 퇴학시켜야 한다고까지 한 바 있다. 쯧쯧.

 

‘불건전’의 조건

 

대체 저들이 말하는 ‘불건전’한 연애란 무엇일까? 알기 쉽게 몇 가지로 정리해보자.

 

불건전① 입시공부에 방해가 되는 것

 

대한민국의 청소년들 중 다수(학생. 특히 대다수 인문계 고등학교 학생, 상당수 전문계고 학생, 중상위권 중학생이나 초등학생들.)는 ‘입시공부하는 기계’가 될 것을 요구받고 있다. 사랑과 연애가 성적에 긍정적 효과를 낼 수 있네 어쩌네 아무리 떠들어도, 사랑놀음에 푹 빠져서 시간을 보내게 되면 아무래도 추락하는 성적에는 날개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게 될 공산이 크다. 어쩌다가 싸우거나 헤어지기라도 하면 즉각적으로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될 거다.

그래서 ‘불건전’한 연애의 조건 중 하나는 바로 입시공부에 방해가 되는 것이다. 다만 연애에 있어 어느 정도가 입시공부에 방해가 되는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가정마다, 학교마다, 지역마다 그 기준이 다양하다. 연애 그 자체가 입시공부에 방해가 된다는 쪽에서부터 연애를 하되 공부시간을 줄이지 않으면서 적당히 시간을 할애한다면 괜찮다는 사람들까지 각양각색인 것이다.

사랑하는데 연애를 할 수 없어서 느끼게 되는 상실감이 성적에 미치는 부정적 효과가 있다는 지적에도 그들은 별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그건 절대로 연애를 규제하거나 방해하는 사람들 탓이 아니라 감히 사랑(짝사랑 포함)이란 감정을 품은 년놈들 자신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심할 경우, 장기적으로 보면 그렇게 잠깐 앓고 넘어가는 게 낫다는 식으로 말하기까지 한다.

이 ‘불건전’을 규제하기 위한 학교/가정의 행태 중 한 변종은 학생들 사이에 일종의 신분제를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면, 공부 잘하는 학생이 공부 못하는 학생과 사귀는 건 공부 잘하는 학생의 성적이 떨어질 수도 있으니까 안 된다. 모범생/우등생들끼리 사귀는 건 뭐 다소 제한은 있지만 일단 허용된다. 공부 못하는 애들끼리 사귀는 것도 금지한다. 무슨 사고를 칠지 모르고, 연애할 시간에 공부나 하게 한다. 등등… 실제로 학생부장 교사가 이런 식으로 학생들의 연애에 직접 간섭하고 어떤 연애는 되고 어떤 연애는 안 된다고 ‘허가/불허’를 해대는 학교도 있다. 일종의 성적에 따른 카스트 제도인 셈이다. 저러면서 어떻게 ‘민주공화국’의 교사로 있는 건지 이해가 안 가지만, 그런 교사들이 한둘이 아니다보니 이제는 저런 교사가 이상하지 않게 보일 정도다.

 

불건전② 임신의 위험이 있는 것

 

두 번째로, ‘불건전’을 판별하는 기준은 바로 성적인 신체 접촉이다. 좀 더 노골적으로 표현하면 임신 위험이 있는 이성간 섹스, 또는 섹스로 자연스레 연결될 위험성이 있는 애무와 패팅, 딥키스 등의 스킨쉽이다.

청소년들은 가정과 학교에 종속된 존재이고, 이런 청소년들이 덜컥 임신이라도 해서 가정을 꾸린다거나 하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는 용납받기 힘든 일이다.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따라서 이런 규범을 넘어 탈주하는 ‘난감한’ 상황을 막고 청소년들을 통제하기 위해서 ‘불건전’의 딱지를 붙여가며 청소년들의 연애를 통제하는 것이다.

이 역시 사람마다, 가정마다, 학교마다, 지역마다 기준이 다양하다. 여하간 임신만 안 하면 문제삼지 않는다는 상대적으로 관대한 경우(드물다)에서부터 가벼운 키스까진 괜찮다는 입장, 아예 단 둘이 있는 모든 야릇한 상황과 팔짱끼는 것까지 안된다는 ‘남녀칠세부동석’식 입장까지…. 광주의 모 고등학교는 여남 사이에 ▲손을 잡는다 ▲장난으로 때리고 잡고 꼬집는다 ▲머리를 쓰다 듬는다 ▲어깨동무 한다 ▲머리를 맞대고 있다 ▲몸에 손을 댄다 ▲어깨에 손을 댄다 ▲상대의 입에 과자나 음식물을 넣어 준다 ▲교실, 레슨방에서 단 둘이 있을 때 문을 잠그고 있다 ▲의자에 앉을 때 가까이 앉는다 등 10가지 행위를 금지하고, 걸리면 벌점을 준다고 해서 한때 신문에 소개되기도 했다.

이런 기준이 강력하게 적용되면 “우리 사랑은 정신적이고 깨끗한 거예요.”라는 식의 ‘플라토닉 러브’만이 인정받게 될 것이다. 대체 왜 신체접촉이 있는, 육체로 표현되는 사랑은 ‘불순’하다는 건진 모르겠지만. 그리고 이는 여성 청소년들에 대한 차별적이고 억압적인 ‘순결’ 이데올로기로도 연결된다.

불건전③ 사회적 ‘상식’을 위협하는 것

 

이상의 두 가지 이유가 가장 주된 이유이긴 한데, 동시에 우리는 이 둘만 놓고 보면 하나의 논리적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로 초등학생이나 유치원 나이의 청소년들 중 상당수는 이 두 가지 ‘불건전’ 기준에 걸리지 않고 연애와 성행위를 할 수도 있다는 것! 그렇지 않은가? 초등학생들은 상대적으로 입시공부의 압박을 덜 받는다.(요즘은 점점 그렇지도 않게 되어가는 추세지만) 그리고 아직 초경을 시작하지 않은 0~11세 정도의 여성 청소년들은 임신 위험도 거의 없다. 신체적 성장의 정도 등을 고려하더라도 9~13세의 청소년들은 연애와 성행위가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논리적이지는 않다. 오히려 이 사회는 초등학생들이 성행위를 한다고 하면 발칵 뒤집히고 만다. 지난번에 대구의 초등학교에서 있었던 집단 성폭력/성행위 사건에 대해서 이 사회가 과연 “이런 집단적, 상습적 성폭력이 저질러지다니!”하고 반응했던가? 물론 이런 반응도 있었지만 나는 “어떻게 초등학생들이 성행위를! 말세야 말세…”하는 반응도 꽤 많이 봤던 것 같다.

이 사회는 아동/청소년들을 통제하는 한 방식으로 아동/청소년들은 순수하고 성에 대해 무지하다는 편견을 ‘상식’으로 만들어왔다. 요즘에 나온 『이팔청춘 꽃띠는 어떻게 청소년이 되었나』라는 책을 보면, 청소년들의 성욕과 성적 에너지를 통제하여 조국 근대화와 국력 신장에 쏟아넣게 하려는 역사적 시도들을 찾아볼 수 있다.

결국, 아동/청소년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지키기 위해서 이 편견을 위협할 소지가 있는 모든 아동/청소년들의 성에 대한 행위는 금지되는 것이다. 초등학생들의 연애를 보면서 “귀엽네 초딩 짜식들”하는 반응을 보일진 몰라도, 초등학생들이 서로 애무나 섹스를 한다고 하면 주변 사람들이 발칵 뒤집힐 것이다. 그것이, 이 사회 오지라퍼들의 수준인 것이다.

 

‘이성’ 교제?

 

‘불건전’의 문제 말고도 ‘이성’교제의 문제도 있다. 왜 연애, 사랑, 성애(性愛)적인 관계를 굳이 “이성교제”라고 부르는 걸까? 그건 아마도 그 관계가 성적인 게 아니라 여성과 남성이 친구로 사귀는 것이라는 식의 뉘앙스를 주고 싶어서인 것 같긴 하다. 하지만 그 표현 자체에서부터 이미 왕따당하는 사랑이 있다. 바로, ‘동성애’다.

동성애에 대한 왕따는 앞서 언급한 ‘불건전’성과는 또 다른 맥락이 있다. 사람들이 동성애를 대하는 태도는 크게 두 가지다. 혐오하고 배척하거나, 무시하고 입에 올리지 않거나. 평소에는 무시하는 태도가 압도적이다. 동성애는 ‘연애’나 ‘사랑’을 얘기할 때 아웃오브안중으로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 취급을 받기 쉽다. “이성교제”, “남녀관계”, (여자에게) “남자친구”, (남자에게) “여자친구” 등 온갖 말들 속에서 우리는 동성애를 아예 전혀 고려하지 않는 태도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학교건 가정이건 사회건, 동성애를 항상 무시할 수는 없다. 동성애는 현실에 존재하니까 말이다. 다수의 사람들에게 동성애적 경향이 존재한다는 식의 연구결과들도 있다는데, 꼭 그렇지 않더라도 한국 인구의 최소한 5%쯤은 동성애자일 것이다. 5%가 가볍게 들릴지 몰라도 그 말은 학생수 1000명인 한 학교에서 50명은 동성애자라는 뜻이다. 정희진 씨는 “거의 모든 사회에서 장애인과 동성애자는 각각 인구의 10% 이상을 차지한다.”라고 하기도 했다.

존재하는 동성애를 때려잡기 위해 동원되는 것이 종교, 폭력, 학교의 통제, 법적 제재, 그리고 때로는 정신의학이다. 일부 학교들은 ‘이반검열’이라고 하여 머리를 짧게 깎은 여학생, 또는 여학생과 연애를 하는 기미가 보이는 여학생 등에게 벌점을 주고 처벌을 하는 차별과 폭력을 저질렀고, 학교 안에서 교사나 다른 학생들에 의한 차별, 폭력도 존재하고 있다. 자식이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체벌을 하다가 자식을 죽음에 이르게 한 부모 이야기도 있다. 청소년보호법은 2004년까지 동성애 컨텐츠를 청소년유해매체물로 분류했다. 차별을 없애나갈 수 있도록 인권교육을 해야 할 교과서는 오히려 동성애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기 일쑤다. 동성애는 저 오지라퍼들에게는 너무나도 ‘불건전’해서 아예 입밖에 내지조차 말아야 하며, 어쩌다가 그 존재가 확인될 때는 가차없이 때려잡아야 하는 존재라도 되는 걸까.

따져보면 동성애라고 해서 이성애에 비해 특별히 문제가 될 이유는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임신할 걱정이 없으니까 더 좋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동성애를 무시하고, 때려잡으려고 난리를 치는 것일까? 여성 1명 남성 1명이 결혼해서 애 낳고 사는 가족제도를 절대적이고 당연한 것으로 유지하기 위해서? 유교적인 관념으로, ‘대를 잇는’ 가문을 위해? 기독교의 영향 때문에? 저출산에 대한 공포?

글쎄 동성애에 대한 오지라퍼들의 차별이 워낙 비합리적인 구석이 많아 보여서, 나로서는 그 속내를 다 알기 어렵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알고 있다. 이런 그들의 폭력적인 오지랖 덕분에, 동성애자 청소년들은 동성애에 대한 차별과 ‘청소년’의 연애와 성적 행위에 대한 차별을 한꺼번에 감내해야만 한다는 것. 그런 당신들 덕분에, 상처받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

 

정작 불건전한 건

 

청소년들의 연애가 불건전하다고? 글쎄… 내가 보기엔 그건 청소년들이 공부하는 기계 ― 우등모범생을 벗어나는 걸 용납 못하기 때문이거나, 청소년들에게 사회경제적인 능력을 빼앗고 학교와 가정에만 갇혀 살아야 하고, 청소년들에게 성교육도 제대로 하지 않는 현재 사회의 문제인 것 같다. 즉, ‘불건전’한 건 현재의 사회랄까. 심플하게 말해서 연애하다가 성적 떨어지면 아 살면서 충분히 그럴 수도 있는 거고, 덜컥 임신이라도 하면 아 낳아서 잘 기를 수 있게 해주거나 입양하면 되는 거 아닌가. 그런 걸 허용하고 뒷받침하지 못하는 사회가 '불건전'한 거다. 제대로 된 오지랖은 돕고 지원하고 같이하고 이런 데 필요한 거지, 사회적 약자들을 괴롭히고 차별하는 데 필요한 게 아니다.

아니면 청소년들이 성에 대해 알고 성적인 즐거움을 누리고 좀 더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되면 안 되는 다른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예를 들자면 자본과 국가의 음모라거나…?

 

추신 : 솔직히 대체 저 오지랖 넓은 족속들이 무슨 자격으로 ‘불건전’ 운운하는지를 모르겠다. 내 눈에는, 경제적 조건이나 사회적 지위 같은 거가 주된 이유가 되어서 결혼하고 성관계를 가지는 것, 성매매하는 것, 외모지상주의, 그런 게 훨~씬 더 ‘불건전’해 보이거든?

Posted by 오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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