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살아가노라면



개강 맞이 술자리에서, 얼큰하게 취해 들어와 가만히 생각해본다. 학교에 적응하느라 어색하고 불편해하다가 금새 가버린 지난 1학기의 첫 대학생활. 그리고 나름 ‘경험’과 함께 아르바이트도 할 겸, 또 뿌듯함을 느끼겠다는 욕심으로 시작했던 멘토링. 물론 쉽게 얻지 못할 소중한 경험..이었지만 그보다도 먼저 다가오는 건 과연, 내가, ‘교사’가 될 수 있을까하는 불편한 고민이다.

고등학교 때, 아니 초등학교 때부터 12년(혹은 더?)의 빡빡한 교육과정을 견뎌오면서 항상 불만 투성이었다. 학교 자체에 대해서도, 못한다고 구박하던 담임에, 질투가 많았던 친구들에게, 좀 더 머리가 컸을 때는 교육제도에까지. 근데... 이번 방학 때. 학교에 가서, 멘토링하면서 ‘선생질’ 좀 한 거다.

다문화가정 멘토링의 경우에는 필리핀에서 한국 남성과 결혼하신 어머님과도 꽤 친해지고 애들과는 깊이 정들어서 교통편도 불편하고 한참을 걸어가야 했는데도 시간 날 때마다 가서 ‘공부 조금 놀기 많이’를 목표로.. 음식도 만들어먹고, 재밌는 놀이들도 하고, 나름의 문화생활을 위해 노트북에 영화를 담아가서 보기도 했었다. 그런데 문제는 부진아 멘토링이었다. 처음에 5학년 남학생 두 명을 가르칠 때는 그저, 가르치려는 맘만 앞서고 경험도 없고 여렸다고나 할까.

그리고 마지막 멘토링은, 힘들면서 또 지금까지 내가 꿈꿔왔던 이상과 아쉬움이 많이 충돌했다. 총 4학년 여학생 다섯 명을 가르쳤는데 한 명은 결석이 잦았고, 한 명은 초등학교 한글을 몰라서 사람들과도 말 한마디를 하지 않았고, 또 다른 한 명은 편부모 가정에서 자랐는데 주로 할머니에게서 자라다보니 오냐오냐 컸달까, 무슨 말만 하면 트집 잡고 고집이 세서 대하기 어려웠다. 나머지 둘은 극단적으로 달라서 한 명은 손버릇이 나쁘고 친구들을 괴롭혔었고... 다른 한 명은 너무 순해서 괴롭힘을 당하는, 늘 눈빛이 슬프고 자신감 없어하던.. 그런 다섯 명이었다. 처음에는 그 반 담임선생님께서 ‘(감당하기엔)체력이 안 되서 선생님께 맡겨요’라고 하시던 그 말이 뭔가 싶었지만, 정말 체력 이상의 많은 것을 필요로 했다.

학교라는 체제, 특히나 그 학교에서 마련한 공부방은 부진아 학생들에게 다가오는 10월 일제고사를 대비시키려고 만들어진 프로그램이어서 공부에 관해 요구사항이 꽤 많았다. 게다가 학생들은 모두 개성이 지나치게 달라서 각자의 진도와 각자의 성격에 맞춰 가르친다는 일은 진정 어려웠다. 심지어는 내가 ‘선생’이라는 이름으로 앞에 있는데도 싸우고, 던지고, 욕하고... 화가 머리끝까지 난 학부모님이 쫓아오셔서 수업도 못하고 진정시켰었다. 그렇게 일주일을 지내고 나니, 과연 ‘좋은 선생님’이 되겠다는 것. 또 ‘학생들이 가고 싶어 하는 학교’에 대한 욕심이, ‘무섭고 잘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야하는지... 싶었다. 그래서, 남은 시간동안 꽤 무서운 선생님이 되었다. 말로 크게 꾸짖고(물론 수업 끝내고 다시 한 번 잘못을 짚어가면서 달래고 보내긴 했지만) 울리고, 때론 내 성질에 나도 큰소리로 화도 내고 책가방 싸서 집에 가라고 혼내기도 했다. 그리고 매번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맘이 불편했다. 근데도 마지막 날이 되니, 선생님이 있어 참 좋았다면서 편지랑, 직접 그린 그림이랑, 종이접기를 주는데 참... 나는 좋은 선생님 되기엔 멀었다는 생각에 미안한 거다. 사실 지금도, 많이.

그냥, 개강의 즐거움, 약간 지루하고 뿌듯하기엔 정신없이 바빴던 방학이 끝났다는 해방감 같은 것에, 술 먹고 집에 오니 생각나는 거다. 대체 어떤 방법이 좋은 걸까. 인격적으로 대해야지 생각에 생각을 또 하면서도 말끝마다 토 달며 떼쓰는 학생에게 설명도 하기 전에 화냈던 내가, 밉고 자격 없는 것 같다. 결국은 나도 이렇게, 과거에 내가 그렇게 미워하던 사람들을, 닮아가는 걸까. 조금, 두려운 밤이다. 그냥 뭐, 그렇다고.

 

[ 췌씨 ]

Posted by 오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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