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글을 읽고자 하는 분께 묻고자 한다. 한국에서 상상력을 발휘하는 작품이많이 나오지 못하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환경이 자라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학습지 회사가 항상 광고에서 말하는 것처럼 어렸을 때 '창의력 학습'을 받지 못해서 인 것일까. 여러 가지 이유를 댈 수 있겠지만, 나는 ‘청소년 보호법’이 가장 문제가 많은 요소라고 대고 싶다.

솔직히 아무런 생각 없이 보면 ‘청소년 보호법’은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스스로 행동을 결정할 능력이 없는’ 아이들을 위하여 어른들이 ‘친히’ 법을 만들어서 ‘나쁜 길’로 가지 못하도록 지켜주는 법이 뭐가 문제가 있을까. (이미 많은 독자 분들은 깨달으셨겠지만) 앞 문장의 작은 따옴표 속에 있는 말이 다 맞는다면 말이다. 과연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또는 그 정도의 나이가 되는) 청소년들은 스스로 옳고 그름을 결정하지 못할 정도의 정신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물론 사회적 경험이 어른들에 비하면 많지 않은 편이기는 하다. 하지만 경험은 체험하고 느낌으로서 쌓아나가는 것, 적어도 옳고 그름과 자신에게 유리한 것을 고를 능력은 지니고 있다. 과학 시간에 배우지 않았는가. 사람의 뇌는 14~15살 정도가 되면 대부분 완성된다고. 결국, ‘청소년 보호법’은 청소년의 지적 능력을 무시하는 차별적 의도가 충만한 법이다.

그런데 ‘청소년 보호법’이 청소년의 능력을 무시한 것에서 끝나는가. ‘청소년 보호법’은 한 단계 더 나아가서 90년대 중후반의 자생적으로 번성해나가던 문화를 죽이는데 아주 큰 일조를 하였다. 우리가 가끔씩 책이나 음반에서 볼 수있는 크고 시뻘건색의 ‘19세 미만 구입 금지’ 딱지는 ‘청소년 보호법’의 산물이다. 이렇게 크고 아름다운 딱지를 붙인 이유는 매우 단순했다. 너무도 폭력적이서, 선정적이어서 ‘너무도 순수하고 때가 묻지 않은’ 청소년들이 보고 듣기에 문제가 많다는 이유였다. 이쯤에서 푸른 기와집에 사는 ‘어떤 분’이 좋아하는 선진국의 얘기를 하고자 한다. 선진국에서는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청소년들을 보호하지 않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마약이나 범죄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 청소년들의 권리가 한국 아저씨들에게는 무척이나 유해해 보이는 매체에도 적용된다.

물론 그냥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일본에서는 성인용 도서나 음반을 팔 때 작게 나마라도 성인용 도서라는 표시를 해야하며, 미국에서는 음반에 ‘부모 권고 하에 청취 가능’ (Parental Advisory) 표시를 하고 청소년 시간대에는 방송이 불가능하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한국처럼 정부에서 칼을 들고서 이 모든 것을 행하지 않으며 설령 성인용 매체에 대해서 ‘유해 매체물’ 판정을 내려도 판매를 막거나, 구속시키지는 않는다. 즉, 민간단체의 권고 판정 수준이며 성인용 상품을 구입함으로서 생기는 책임은 전적으로 판매점과 청소년들에게 맡겨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 어떠한가. 한국은 정부 산하의 기관에서 모든 매체의 심의가 이루어진다. 문제는, 심의위원들의 생각이 참 독특하시다는 것이 문제이다. 원래 심의가 개인적인 판단이 좌우한다지만 비슷한 분위기의 가사라도 심의위원들이 ‘꼴리는대로’ 판단이 이루어진다. 게다가 일반 문학보다는 로맨스, 라이트 소설(일반 소설보다 문체가 약간 가볍거나 일러스트 같은 문학 외의 표현을 강조한 소설)이나 만화 쪽에 더 많은 핸디캡이 부여된다. 같은 수위의 묘사라도 문학이라면 슬렁슬렁 넘어가지만, 로맨스, 라이트 소설이나 만화라면 가차 없이 ‘19세 미만 금지’ 딱지가 붙게 된다. 예를 하나 들어볼까. 영화로 개봉해서 약간의 인기를 끌었던 독일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열린책들)에서는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을 죽이고 나서 옷을 모조리 벗기는 장면, 그리고 마지막에는 주인공이 처참하게 거리의 부랑자들에게 토막난 뒤 먹히는 장면이 세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 작품은 초판 출간이 91년으로 오래 전에 나왔지만, 한 번도 국가 심의 기관에서는 이 소설의 수위를 문제삼은 적이 없다. 반면에, 일본의 유명 라이트 소설 작가 오츠이치의 ‘GOTH’(학산문화사)는 작중에 등장하는 ‘리스트컷 살인마’(사람을 죽인 뒤에 손목을 잘라 가져간다.)가 포악하다는 이유로 출간 3개월 만에 ‘유해 매체물’로 지정되었다. - 도대체 두 작품의 차이는 무엇인가? 단지 문학과 라이트 소설이라는 차이?

이런 심의가 일상화 되어있는 곳에서 상상력을 발휘하는 작품이나, 상상력이 자극받는 환경을 만드는 것은 무척이나 힘들다. 거기에다가 문화의 주 소비층이자 제작층이 될 청소년들은 정작 자신들의 생각을 가로막는 ‘청소년 보호법’에다가 각종 학생 인권 차별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문화 발전을 논한다는 것이 과연 쉬울까. 10년 동안 건재한 청소년 보호법에, 이제 출범한 지 1년하고 몇 개월이 지난 정부가 각종 삽질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상상력 넘치는 미래는 점점 빛이 바래간다.

 

[ Skyjet ]

 

Posted by 오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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