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사가 별 거 있나, 절 하나 지어 놓고 "창간"이라는 이름을 붙이면 창간사지 뭐. 오승희를 발간하는 과정이, 꼭, 절을 짓는 과정과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주춧돌을 세우고, 기둥을 세우고, 기둥은 배흘림기둥이 어떨까, 그리고 공포를 얹고, 보를 얹고, 어? 그런데 뭔가 허전하다. 맞아, 신자들의 시주가 없구나. 그렇다, 오승희가 완성되려면, 독자 여러분의 글 시주가 절실히 필요하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언제까지 하고 싶었던 말들을 묻어두고만 살 텐가!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뭔가 하고 싶었던 말들이 있다면 주저말고 투고하시라! 훗, 이쯤이면 내 창간사의 첫 문장이 사실은 재미없는 찌질개그였다는 사실을 눈치 못 채겠지? 낄낄낄.


하나의 유령이 현대 사회에 떠돌고 있다. 귀차니즘이라는 유령이. 니체는 뭐든 다 거추장스러워하고 귀찮아하는 "최후의 인간"에 대해 말한 바 있는데, 그의 경고는 아무래도 괜한 우려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우리는 그 무시무시한 귀차니즘을 극복하고 신문(신문인지 잡지인지)간행이라는 무진장 귀찮은 짓(신문 내는 과정에서든, 뒷수습이든)을 저질러버렸다. 여하간 나는 이를 희망의 증거 중 하나라 믿고 싶다. 언제나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귀차니즘의 극복. 우리는 언론 자유를 욕망하는 어린 마음에 엔트로피를 좀 더 증가시켜 우주의 열사(熱死, Thermal Death)를 재촉하는 일에 일조하고자 한다. 요컨대 요새 유행하는 형식을 빌리자면, "아젠장/신문내게/만드네 (제목 : 귀차니즘의 극복)" 자, 우리 모두 귀차니즘 치유에 동참해볼까?

지극히 혼란한(이것도 우리 자신이 규정한 개념이지만) 세계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인간들은 그 위에 수많은 선들을 그어 두었다. 정답과 오답도 이러한 ‘선’에 의해 나누어진 개념이다. 정답 없인 오답이 존재할 수 없고, 오답 없인 정답이 존재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오답을 ‘없애야 할 것’으로 규정함과 동시에 정답에게 상대적으로 많은 권력을 부여했다. 오답이라고 승리하지 못할 법 있는가? 우리의 움직임은 정답에게 많은 권력을 부여하려는 ‘정'에 대한 ‘반'이다. 일차적인 목표는 ‘오답의 승리'이겠으나, 궁극적인 목표는 ‘합'이다. 우리는 정답과 오답이 각자의 가치를 인정받는 사회를 꿈꾼다.


중학교 축제 때, 한 학교 밴드에서 자우림의 "오렌지 마멀레이드"를 불렀다. 왠지 와 닿는 가사들…. "별다른 욕심도 없고, 남다른 포부도 없는" 우리들을 묘사한 듯했다. 세상은 지루했다. 난 정말 모든 사람들이 날 내버려두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런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ㅡ모든 사람들이 나와 같이 언제까지 지루하지 않는 것. 이 신문을 통해 우리들의 "어딘가 조금 삐뚤어져버린, 머리엔 생각만 가득히" 찬 모습을 마음껏 보여주었으면 한다. 우리의 생각을 담아서 조금 더 머리를 가볍게 만들어주는 신문…. 이제 더 이상 지루한 세상은 없겠지? 오승희 파이팅~^^

Posted by 오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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