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성고등학교 UCC를 기억하시나요? 학교에서의 다양한 인권침해와 급식비 비리 의혹 등을 제시한, 진성고 학생들이 직접 만들어서 배포했던 동영상이었습니다. 당시 학생들이 제기한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정작 충분히 이야기하지 않으면서 ‘비리’ 의혹에 대해서만 주로 민감하게 반응했던 학교 측의 반응이 생각나네요.

그런데 학교 측에서는 끝끝내 해당 학생을 색출해내서 석연치 않은 ‘사과문’을 받아내서, 그 반성문을 공개하고는 동영상을 삭제 조치해버렸더군요. 진성고의 진실은 뭘까요? 여러분 생각에는 ‘사과문’이 어떤 상황에서 쓰여진 것 같나요? ‘사과문’의 내용은 진실인 것 같나요? 읽는 여러분의 판단을 돕기 위해, 그 사과문과 함께 진성고 졸업생 두 분의 글을 싣습니다.


안녕 진성? - 진성고 졸업생의 이야기1

 

잊을 수 없는 고등학교 입시 설명회

같은 학교 단짝 친구들과 함께 뺑뺑이 입시로 동네 고등학교로 진학할 줄만 알고 공부는 내신 시험기간에만 짬짬이 하면서 평소엔 탱자탱자 놀기만 하던 중학교 3학년 여름. 학원 땡땡이에 친구들과 몰려다니면서 작은 다툼이 불거지는 등의 일련의 사건이 있은 후 어느날 어머니께서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하셨다. 나 때문에 화병으로 죽거나, 진짜 날 (애정을 담아) 죽여버릴지도 모르겠으니 눈에 띄지 않는 기숙사 학교에 가라는 것이었다.

뜬금없이 기숙사 학교라니. 게다가 진성고라니! 얼마 전에 전교 1등하는 여자애가 외고도 과고도 아닌 진성고에 진학한다는 소리에 학교 선생님들이 시설이 열악하다는 둥 하면서 애 마음 돌린다고 전교가 들썩거렸었는데! 아니 그보다 내가 거기 갈 수나 있는 거야?

순식간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지만 침착하게 어머니에게 저항해보았다.

‘아니, 가끔 학원 땡땡이 치고 좀 놀러갔다지만(걸렸다), 학교는 선생님들 눈이 무서워서 학원에서 친구들이랑 좀 싸우고(걸렸다) 했다지만 기숙사학교는 너무 심한 것 아닙니까! 기회를 주십시오!’

하지만 그 나이 대에 부모님께 항변하거나 따지는 행위는 언제나 먹히지 않는 법이다. 결국 어머니께 강제 연행 당하듯 끌려간 진성고 입시 설명회를 나는 잊지 못 한다. 지하 강당에 자리를 잡고 앉아 당시 교감선생님(추정)이 진행하는 설명 가운데 절대 용납하지 못 할 발언이 있었기 때문이다. 진성 7무에 관한 발언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우리 진성고에서 불건전한 이성 교제는 금지입니다! 건전한 이성 교제도 금지합니다!”였다. 당시 내가 이성 친구를 사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몹시 불안해하시던 어머니는 환호하며 박수를 치셨고, 강당에 있던 다른 부모님들도 마찬가지였다. 난 더 이상 참지 못 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큰 소리로 “뭐 이딴 개떡 같은 규칙이 다 있어! 일어나요! 갑시다!”라고 외치면서 어머니 팔을 끌어당겼다. 뭐라고₸그래도 별 소용없이 강제적으로 다시 의자에 앉혀졌고 입학 전까지 내내 볼멘소리를 냈지만 결국… ‘교복이 멋져!’라는 자기위로와 함께 입학했다.

 

진성의 실체

입학 후에도 여전히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들어가서 가장 먼저 들었던 이야기가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였고, ‘학교가 싫으면 전학 가! 너 없어도 진성을 빛낼 인재는 많다.’는 이야기를 모 선생님이 했다는 소문^^도 들었다.

50명 넘는 인원이 함께 사용하는 기숙사, 기숙사에 딸린 샤워부스가 10개가 채 안 되서 길게 줄서서 샤워했던 나날, 날이 어두워지면 나타나 내가 내 돈 주고 매점에서 산 까까도 먹지 못하게 하는 야간담임선생님, ‘여자 머리가 귀밑 5cm가 뭔가요, 우린 레고가 아니에요!’라면서 약간의 융통성을 요청하면 ‘학생이 머리 길면 뭐가 좋냐?’에서 시작해서 건의하러 간 학생회장에게 화분을 내던지는 학교 설립자님…. 학생의 요구에 대한 학교 측의 대개의 답변은 ‘공부만 하면 되는 이 환경이 얼마나 쾌적하냐?’였다. 어머 ㅅㅂ^^ 입학 전까지 네이버에서 ‘진성고등학교’를 검색해서 봤을 때 칭찬 99%에 본격 까는 글 1%를 봤을 때 그냥 넘기면 안 됐었는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하나 둘 알게 되는 학교의 비리와, 하나 둘 터져 나오는 학생들의 불만이 전혀 수용되지 않는 학교의 분위기에 점차 질려갔다. 그래도 외면하면서 모르는 척 눈 딱 감고 3년만 버티면 ‘명문 고등학교’를 나왔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 수 있다는 생각에 눈 감고 귀 막고 3년을 버텼다. 하지만 솔직히 진성 고등학교에 다닌다고 자부심? 위에 날고뛰는 외고/과고 애들이 있는데 어떻게 명문고 출신 자부심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었을까 싶다. 학교에서 시키는 대로만 하면서 3년을 죽은 듯 보내면 명문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다고 주장하던 선생님의 모습과, 죽은 듯 보냈지만 수도권 4년제에 이름 한 번 들어본 대학에 목매던 친구들, 선후배들의 얼굴을 매치시켜보면 그냥 헛웃음만 난다.

그런데 이 모든 세뇌와 강요가 가능한 학교가 진성고등학교다. 전교생 기숙사생활이라는 닫힌 장소에 학생들을 감시하고(몇 년 전엔 카메라도 설치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조금이라도 자신들의 기준에서 어긋난다 싶으면 압력을 가하고 ‘그럴 거면 학교를 떠나라’고 협박하고, 모든 것은 교육의 일환으로 너를 명문대에 보내기 위한 학교의 시스템이라고 말한다.

 

답이 안 나와 ^^

1318바이러스라는 매체를 통해서 들었던, 몇 년 전의 소식이 다시 생각난다. 두발규제, 소지품검사, 체벌반대 등 학생인권침해에 반대하는 종이비행기 시위를 했을 뿐이었는데 주동자를 물색해서 징계하려 하고, 애국조회 때 교장선생님의 훈화 내용이 “공부 잘 하고, 짧은 머리와 인사 잘 하는 것이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며, 학교의 설립 목적은 이것이다. 생각을 바꿔 학교에 맞추라”는 것이었음을 알았을 때는 그냥 마음에서 진성에 대한 미련을 아예 털어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뒤 이어 학생부장 선생님의 “사랑합니다. 이게 다 모두 여러분을 위해 하는 일입니다. 인생에 도움이 안 되는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방식은 필요 없습니다. 공부만 하러 왔습니다. 대학생이 아닙니다. 분명히 방법이 잘못 되었습니다.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서 합시다. 자꾸 이러면 강한 교육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슬픈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 합니다.”라고 말했음을 알았을 때는 웃음이 나왔고 한 가지 결심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아, 모르겠다^^ 포기하자^^ 난 모르겠어. 나 따위가 손 댈 영역이 아냐^^’

p.s. 쓰고 나니까 마치 “진성은 답이 없어”같이 느껴지는데, 절대로 그렇지 않음을 누차 강조합니다. 집단 자체가 근본적으로 엘리트인데다가 입시 결과도 좀 따져보자고요. ‘결과가 좋으면 뭐든 좋다’가 바로 동서고금 만고의 진리 아닙니까? 입결만 좋으면 됐죠? ^^


진성수용소가 좀 더 살만한 곳이 되길...

- 진성고 졸업생의 이야기2

 

사실 이 글은 한참 전에 썼어야하는 건데 부탁을 받고도 꽤나 잊고 있었지 말입니다. 심지어 부탁을 받은 뒤에 저는 문제의(?) 사랑하는 모교에 방문했는데도 말이지요. 쉴 새 없이 깜빡이는 기억력을 탓하며… 죄송한 마음을 담아 썰을 풀어보지요.

저는 7월 28일 화요일, 이른바 ‘100일제’를 기념하여 진성고등학교에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무슨 100일이냐고요? ‘201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D-100일'을 맞아 우리의 목표인 ‘좋은(?) 대학’에 잘 갈수 있게 해주십사… 수능을 잘 보게 해주십사… 돼지머리를 모셔두고 절을 하는 행사이지요. 그런데 주변에 ‘죽었다고 생각하고 공부만 해야 하는 고3 학생’이 있는 분이라면 왜 107일에 100일제를 하느냐고 궁금하실 꺼여요.(아무도 눈치 못 채셨을려나…) 그것은 바로 진짜 100일인 8월 4일에는 학교가 공사를 하기위해 ‘방ㅋ학ㅋ’을 하기 때문이지요. 물론 이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진성고 학생들에게는 올해와 같이 긴(?) 10일 가량의 방학(이라고 쓰고 휴가라고 읽습니다)이 늘 주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어쨌든 실제 100일에 학교에 학생들이 없음에도 불구하고(원래 그게 당연한 거지만) 굳이 1주일을 당겨서까지 100일제를 한다는 것은 고등학교에서 수능이 얼마나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각설하고, 100일제의 취지가 어떤 것이고 입시전쟁이 옳건 그르건 간에… 사랑하는 후배님들이 수능공부에 허덕이고 있을 것을 알기에 저를 비롯한 몇몇 졸업생이 양손에 바리바리 먹을 것을 싸들고 학교로 향했습니다. 진성고에서는 뭐니뭐니해도 먹을 게 최고거든요~ 그리고 우리는 후배들을 만났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교복과 체육복, 스포츠머리와 단발머리가 향수를 불러일으키더군요. 옹기종기 모인 후배님들께 먹을 것을 건네주자 어찌나 좋아하던지… 제발 애들이 먹고 싶은 것 좀 먹게 해줘요… 아 눈물이 앞을 가리네요ㅠㅠ 눈물 좀 닦고…

그렇게 모두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가운데, 갑자기 선생님이 들이닥칩니다. 학생들은 벌점 및 체벌 등등을 피해 도망갑니다. 대신해서 남은 졸업생은 욕을 듣습니다. 졸업생이 뭐하는 ‘짓’이냐고 하시네요… 더더욱 자세한 정황을 밝히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또 우리 후배들이 추궁당할지도 모르니까 더 이상은 말하지 않겠어요. 어쨌든 갑작스럽게 모임은 와해되고, 사왔던 음식들은 쓰레기가 되어 버려졌습니다. 돌아온 초대교장님은 그 명성에 걸맞게 아주 ‘엄하신’ 분인 듯, 각종 규제가 더더욱 강화되었다고 하더군요. 초대교장님은 문제의 ‘그 사건’(학생들이 시위를 하고 학교 현실을 알리는 UCC를 배포한) 때문에 돌아오신 듯했습니다. 한마디로 ‘그런 사건’이 벌어진 것이 군기(?)가 빠졌기 때문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랄까요. 우리가 농담 반 진담 반 섞어 ‘진성수용소’라고 부르던 그곳은 그 별명에 더더욱 걸맞게 변해가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사실 뭐 전 고등학교 시절이 좋았어요. 그때 알게 된 친구들도 정말 소중하구요. 모이면 다들 말하죠. “그때가 좋았어…”. 그렇지만 모두 그때의 답답한 생활까지 좋아하는 건 절대 아니지요. 그때가 좋았다는 말도 결국엔 그 아픈 기억은 다 망각 저 편으로 사라져가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거니까요. 하지만 다시 간 학교에서 느낀 것은 결국엔 또 자유의 박탈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시금 다짐했죠. ‘내가 그놈의 학교 다신 가나봐라.’ 물론 저 혼자 한 다짐은 아니고, 같이 갔던 모두가 같이 말이죠.

그렇지만 내년에 전 그 모든 걸 까맣게 잊고, 또다시 손에 ‘외부음식’을 바리바리 싸들고 가지 않을까 싶어요… 어쨌든 그곳은 내 사랑하는 모교이고, 사랑하는 후배들이 여전히 공부에 허덕이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또 일말의 희망을 걸어봅니다. ‘내년엔 좀 더 살만한 곳일 거야.’라고…



Posted by 오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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