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행'이라는 말이 있다. 진행방향이 한 쪽으로 정해져 있는 길에서, 정해져 있지 않은 방향으로 진행하는 것을 말한다. 웬만한 국도, 고속도로에는 중앙분리대가 설치되어 있어 역주행이 발생할 가능성은 극히 낮지만, 모든 차량이 한 방향으로 진행하다보니 어쩌다 한 번 역주행 차량이 나타나면 거의 재앙급의 사고가 날 수 있다. 몇 년 전에 설기현 선수가 수비 진영으로 몇 발짝 드리블한 이후로, 어쩐지 ‘역주행'이라는 단어는 ‘시대에 뒤쳐지거나, 남들과 동떨어진 행동을 하는 사람이나 단체'를 조롱하는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했지만, 본래는 그런 뜻은 아니었다.

지금 우리 사회의 의사소통 구조를 보면 마치 경부고속도로 하행선 신탄진~회덕 구간을 보는 느낌이다. 위에서 아래로, 서울 방향에서 부산 방향으로, 그렇게 한 쪽으로만 흐르고 있다. 고속도로 하행선이므로 역주행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중앙분리대가 가로막고 있으니 중간에 되돌아가거나 할 수도 없다. 우회로도 없다. 위에서 아래로 ‘상명'하고 ‘하달’하는 것은 있어도,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만일 그랬다간, 재앙급의 사고가 날 수도 있고, ‘역주행’한다며 조롱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항상, “말로 합시다”라고 한다. 어떤 일이건 간에 대화가 선행되어야 하며, 직접행동은 항상 섣부르고 어리석은 행동으로 묘사된다. 민주주의 공화국의 기본 원리를 따져보면 백번 옳은 말이다. 대화와 타협, 양보와 이해가 있어야 민주주의 사회가 유지된다고, 초등학교 바른생활 시간부터 그리 배웠다. 이렇게 보면, 싸우고, 던지고, 걷어차고, 때려 부수는 행동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짓이다. 아니, 세계적으로 인정받는다는 아주 좋은 언어를 놔두고 왜 바디랭귀지로 이야기하려 하는 거야? 뭐지, 이 못 배워먹은 듯한 행동들은?

그러나 이 원칙은 제대로 대화가 통할 때에 성립한다. 초등학교 운동장처럼, 놀이에 뛰어든 모든 이가 자유롭게 뛰어다니며 각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때에 가능하다. 윗사람 아랫사람의 구분이 없으면 좋겠지만, 그렇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위아래가 스스럼없이 소통할 수 있어야 가능하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그렇지가 못하다. 위에서 말하면 아래에서 따른다는 ‘상명하복’이, 이 사회의 작동 원리다. 마치 경부고속도로 하행선처럼, 어느 1인의 역주행도 용납되지 않는다.

 

필자는 군 복무를 대신해 소방서에서 의무소방원으로 병역 의무를 이행중이다. 이곳 소방서에서, 불길을 향해 뛰어드는 용감한 소방관도 보았고, 이미 숨이 끊어진 환자의 맥을 계속 살피며 안타까워하는 구급대원도 보았고, 물에 빠진 요구조자를 향해 망설임 없이 물로 뛰어드는 구조대원도 보았다. 그리고, 이 사회의 의사소통 구조를 보았다. 일인의 역주행도 용납 않는 완벽한 일방통행. ‘칸칸칸’을 강조하는 어느 김치냉장고와도 같이 칸칸칸 나뉘어진 계급구조, 위에서 아래로만 향하는 언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아랫사람’들.

 

언어가 통하지 않는 곳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둘 중 하나다. 아예 소통을 포기하고 침묵해버리거나, 바디랭귀지로 의사를 표현하거나. 우리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에게, 더 이상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침묵, 혹은 격한 ‘바디랭귀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 엠덴 ]

Posted by 오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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