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자. 보시기에 대한민국 교육이 어떻습니까? 장담컨대, 그렇게 1000명의 아무나에게 물어봤을 때 우리나라 교육이 ‘잘 되고 있다’라고 말할 사람은 손가락 열 개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정말로 그런지 궁금해져서, 어제 아침, 직접 밖에 나가 거리를 걸어가면서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부터 나이 지긋한 어르신까지 약 200명에게 즉석 조사를 했다. 망했다. “문제 있다”는 즉각적으로 튀어나왔지만 좋다, 괜찮다, 잘 한다는 뉘앙스가 담긴 말조차 결국엔 단 한 명에게서도 들어보질 못했다.

별보며 학교 가고 달 보며 귀가하는 학생들이 있었다. 그들은 어느덧 자라서 어른이 되었지만, 그들의 아들딸은 아직도 별 보며 등교해서 달 보며 하교한다. 달라진 게 없다. 게다가 이젠 뜨거운 사교육 열풍까지 덤으로 몰아친다. 그 와중 살고자, 이기고자, 옆 짝꿍의 머리를 밟고 더 높게 올라가고자 쏟아 붓는 기백만 원의 학원비로 만들어진 타율적 경쟁과 양극화속에서 수천 명이 죽어가는 대한민국의 60년 교육사를 그 누가 성공했다고 하겠는가.

그러나 문제가 있다는 답은 만민 공통이지만, 여러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문제의 해결책은 가지가지다. 여하간 교육문제의 해결책이랍시고 정부가 내민 카드 중 하나가 ‘교원평가제’다. 노무현, 이명박 정부 공통의 카드다.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국회의 입법에 상관없이 현재 시범운영되고 있는 교원평가제를 내년 3월부터 전국적으로 확대 실시하겠다고 선언했고, 국회에서는 교원평가제 법안이 논의 중이다. 교사들을 평가해서 공교육의 질을 높이고 사교육을 줄이겠단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교육의 문제를 일정정도 해소시킬 단비로 이 교원평가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교원평가가 교육을 변화시킬 단비가 아닌 산성비라면?

 

 

교사에게 점수 매기고 경쟁시키면 교육이 얼마만큼 나아질까?

 

지금까지 대한민국 교육은, 경쟁을 시키지 않으면 학생들이 공부를 하지 않고 교육이 발전하지 않기에 건전한 경쟁을 하도록 만들겠다며 입시경쟁의 압박을 지속시켜오고, 높여왔다. 이명박 정부 또한 경쟁과 자율을 내세우며 대학교, 초중고교 할 것 없이 서열화시키는 정책을 취하고 있다. 그러다가 이제는 교사들이 노력이 부족해서 교육이 발전하지 않는다며 교사들을 평가하고 비교하며 압박을 하겠다며 교원평가를 내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학생들을 종이 몇 장으로 평가해서 얼마나 잘 맞는가를 평가하는 것과 교사들을 종이 몇 장으로 평가해서 비교하는 교원평가가 비슷해 보이는 것은 오해인가?


 교육활동은 다양한 요인들 속에 이루어지며 이런 요소들에 따라 교육의 과정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이런 다양한 요인들을 모두 고려해야 ‘평가’란 것이 그나마 제대로 될 텐데 열 개가 있으면 그 중 한두 개(교사들에 관한 것들)만 들춰본 다음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교육문제의 책임이 교사들한테 전혀 없다고 할 수야 없겠지만, 교사들만 쪼면 학교교육이 더 학생들이 행복한 교육이 만들어질까? 좀 더 나아질 수 있는 부분들이 있을지 몰라도 크게 나아지는 모습은 잘 그려지질 않는다. 더군다나 이 교원평가제는 학생들의 의견을 중심에 둔 제도도 아니다. 교장, 교감 등 학교 관리자들이나 동료 교사들의 평가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들이 좋게 평가하는 교사의 덕목이란 대체로 무엇일까? 아무리 봐도 점수매기고 평가하고 비교하는 지금까지의 평가/비교/경쟁위주와 다르지 않은 교육정책 같고, 교육이 좋아질 거라는 기대가 생기지를 않는다.

또한 평가로 사람을 관리하는 제도에는 필연적으로 강압이, 협박이 동반될 수밖에 없다. 평가의 목적이 교원의 ‘능력개발’이기 때문에 평가결과에 따라 강제적으로 연수를 보낸다던지 잘라버린다던지 하는 징벌의 요소가 있어야 시스템 유지가 가능하다. 학교가 학생들의 성적을 올리기 위해 학생들을 폭력과 강압, 차별로 갈구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는(뭐 교사들도 한때는 학생이었고 임용고시를 통과했으니 알겠지만) 평가, 경쟁, 서열화, 점수매기기, 그리고 그에 따른 강압과 차별이 난무하는 학교가 별로 다니고 싶은 학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교사와 학생 모두가 불행해지는 게 교원평가의 목표인가?

교원평가의 미래는 대한민국 교육 60년사만으로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문제는 학생과 교사들의 노력 부족이나 학부모의 관심 부족이 아닌 평가/비교/경쟁만을 강요하는 대한민국의 교육정책이다. 주어만 다른 평가/비교/경쟁위주의 교육정책인 교원평가가 교육에 변화를 만든다? 말도 안 되는 사기다.

 

 

교원평가제로 학생의 참여는

보장되지 않는다

 

정부는 교원평가를 통해 학생/학부모의 만족도를 참고하여 교육능력을 발전시키고, 학생과 학부모가 교육내용/과정에 의견을 개진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한다. 학생의 학교운영, 교육내용/과정 참여는 지난 몇 년간 청소년단체와 진보적 교육단체 등에서 꾸준히 요구해온 부분이다. 교육을 진행하면서 그 교육에 참여하는 모든 주체들의 의견들이 중요한 목소리로 인정되고, 논의를 거쳐 반영되는 것은 교육의 발전에 있어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지금의 교원평가가 이 부분을 온전히 채워줄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지금까지 학생들의 참여가 불가능했던 이유는 몇 가지 있다. 첫째, 학생들은 학교운영이나 교육과정에 대해 고민하고, 의견을 낼 현실적인 시간이 부족하다. 영어 한 단어라도 더 외워야만 하는 상황에서 참여는 사치이다. 둘째, 학생들이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학교에서 담임교사에게, 학교장에게, 교육감에게 비판을 한다는 것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물론, 청소년은 미숙하고 ‘뭘 잘 모르기 때문에’ 건설적인 의견들조차 무시되는 게 현실이다. 셋째, 어떠한 참여구조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 학교운영은 물론 교육과정 전반에서 학생들의 의견을 내고 이를 반영시킬 어떤 통로도 권한도 없다. 학생회는 제 기능을 못하고 있고 학생회에서 이야기를 한다 하더라도 모든 최종결정은 교장이 하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소통구조는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의 교원평가제는 이런 것들을 해결해줄 수 없다. 입시경쟁교육이 더욱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학생들에겐 여전히 교육의 과정/내용과 학교운영에 대해 논의할 만한 시간적 여유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현 상황에서는 평가조차 입시결과 위주로 평가될까 두려울 지경이다. ‘미성숙한 학생들’이라는 권위적인 인식도 여전하다. 이번 교원평가 6자 합의체에도 정당들의 참여는 있지만 정작 교육정책들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학생, 청소년들의 참여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학생들과 같이 교육을 만들어가기보다는 단지 ‘교육을 받는 대상’들의 만족도를 물어 참고자료로만 쓰겠다는 이 제도는 학생들을 무시하는 것에 가깝다.

교원평가제를 추진하면서, 정부는 마치 학생들이 교사들을 평가함으로써 수업에 참여할 수 있다는 듯이 이야기한다. 학생들도 평소 불만이 있던 교사들을 평가하고 제재할 수 있다는 말에 자신들에게 힘이 생길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형식적으로는 그런 것 같지만, 교원평가제로는 결과적으로는 학생들에게는 별 다른 권력이 주어지지 않는다. 학생들 한 명 한 명이 만족도를 점수화해서 주는 것이 과연 ‘참여’라고 할 수 있을까? 교사들을 서열화시킬 자료로 활용될 숫자들을 내놓는 ‘소비자’의 역할일 뿐이다. 학생은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교육을 같이 만들어가는 더 적극적인 주체이자 주인이어야 한다.

그리고 강제연수의 최종결정권자는 교장이나 교육감 같은 ‘윗사람’들이다. 교육감이 지금 학교의 촌지, 성추행, 체벌 교사 같은 부적격교사들의 존재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대책을 만들지 못한 것일까? 인터넷에 간단하게 검색만 해 봐도 문제교사들을 성토하는 글이 가득하고, 교육청 홈페이지에 지금까지 수백 건의 글이 올라왔지만 교육청은 그 글을 삭제하거나, 무시할 뿐이었다. 이 평가를 통해 교육감이 부적격교사를 파악하더라도, 학생들을 괴롭히는 문제 있는 부적격교사는 처벌받지 않고, 교육감이나 교장 등을 귀찮게 하는 부적격교사에 대한 보복성 징계의 근거로도 충분히 활용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교원평가는 오히려 권위적이고 형식적인 평가만으로 학생들의 참여를 보장했다는 헛된 명분에 그쳐 실질적인 학교자치를 가로막고, 지금의 교육을 더욱 썩도록 만들뿐이다.

 

 

경쟁 아닌 소통을, 학생에게 권력을, 제대로 된 교육환경을!

 

우리는 평가와 경쟁이 아닌 소통을 원한다. 학생이 교사를 신뢰할 수 있고 교사가 학생을 신뢰할 수 있어야 일방적 교육이 아니라 진심으로 교육을 같이 만들어가고 서로 대화하는 교육이 가능하다. 그런데 학생이 평가당하고, 교사가 평가당하며 생존을 위해 앞서가려고 아둥바둥할 수밖에 없는 무한경쟁이 팽배한 이상은 불신이 만연할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소통을 제안한다. 점수를 매기지 말고, 서로 무엇이 문제이고 그런 문제가 있으면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 얘기를 하자는 것이다. 학부모, 교사, 학생 등 교육현장에 발을 담그고 있는 다양한 주체들끼리 협력하고 논의하여 상황을 개선해나가자는 것이다. 얼핏 이상주의적으로 들리지만 교원평가제를 도입하고 설문지를 돌리고 채점하고 윗선으로 올려 보내고 점수 매기고 하는 것보다 절차적으로도, 내용적으로도 훨씬 우수한 방안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는 교육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 과밀학급 해소, 학교 시설 개선, 교사 수 증원 등이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한국은 OECD니 뭐니 하며 다른 나라들 상황과 비교해봤을 때 교육예산도 낮은 편이다. 학생들은 냉난방 시설이 불안하고, 급식 질이 안 좋고, 탈의실도 동아리실도 학생회실도 없고, 교사당/반당 학생수가 너무 많고, 운동장도 좁거나 없는 학교에 심각한 불편을 느끼고 있다. 교재비 등이 부담스러운 학생들도 많다. 교육예산은 잔뜩 깎으면서 교육의 질을 올리기 위해 교사들만 평가하겠다는 것은 고약한 농담에 가깝다.

우리는, 위로부터 내려오는 개혁과 아래로부터 올라오는 권력을 추구한다. 개혁은 교원들이, 교육부가, 크게는 현재보다 힘이 센 사람들을 갈아치우고 청소년의 목소리를 그들의 논의와 결정에 포함시키는 것이다. 현재 청소년들은 ‘덜’ 살았다는 이유로, 미숙하다는 이유로 각종 결정권을 박탈당한 상태다. 청소년들에게 결정할 권한도, 참여할 기회도 주지 않고 ‘미성숙’하다고 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미성숙’의 기준도 자의적일뿐더러, ‘미성숙’을 이유로 참여할 기회를 완전히 박탈당할 수는 없다.

이제 두 번째, 아래로부터의 권력. 우리는 자치를 원하며 정당한 권력을 원한다. 스스로 생각할 수 있고, 결정할 수 있다. 그 결정들이 초기에는 비록 미진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인간은 배우며 성장할 수 있는 존재이다. 학생인권을 보장하게 만들고 학교를 변화시킬 수 있는 주체는 학생들이다. 학교 운영이나 교육 방식에서의 개선할 점을 제대로 짚을 수 있는 주체, 어떤 교사보다도 더 생생하게 느끼고 불편해하는 학생들이다. 학생들에게 권력을 달라. 정말로 인권을 침해하는 교사가 있다면 그 교사를 징계하고 배제할 수 있는 권력을 달라. 학생들이 스스로 논의하고 자정할 수 있는 권력을 달라. 교육과정과 학교운영에 당당하게 참여하여 논의하고 힘을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을 보장하라. 권력을 분립하고 나누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인데, 지금의 교육 현장은 독재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자치의 권리를 주는 것은 비단 우리의 발언권 획득에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결정함으로써 우리는 내면적으로 더욱 성장할 수 있고, 사회적 능력의 발달을 꾀할 수 있다. 기존의 결정권자들은 더 이상 구름 위에서 이것저것 결정한 다음에 결정한 사안이 현실에 맞지 않아 반발을 불러일으켰을 때 머리를 싸매고 무엇이 문제인지 자기들끼리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모두가 잘 되는 교육현장을 만들고 싶다. 그리고 그것은 교원평가제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 아즈 ]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서울지부)

Posted by 오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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