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인권조례 없는 세상을 원한다.




  경기학생인권조례가 막 시행됐을 무렵 학교에서 좀 ‘논다’는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떨었던 적이 있다. 이 친구와 내가 정말 싫어했던 영어교사가 있었는데 단어시험에서 틀린 개수만큼 학생들을 때리는 걸 삶의 낙으로 삼은 교사였다. 때리는 부위도 짜증나게 변태마냥 ‘발바닥’만을 고집했다. 단어시험 망한 날은 걸어 다니기가 어려워 대걸레에 서로를 태우고 교실이며, 화장실까지 끌어서 태워다주고 택시비 내놓으라던 생각이 난다. 웃기엔… 너무… 슬퍼! 그 친구에게 ‘인권조례 통과 되서 체벌금지니까 다시 대걸레 탈일은 없겠다?‘라고 물었다. 그러자 친구가 던진 한마디 ‘철수는 교육감이 영어단어 틀려도 때릴껄? 철수 존나 쎄잖아’ 그래 맞아. 내가 좀 잊고 있었다. 그 영어교사는 수업시간에 대놓고 인권조례 때문에 영어단어 틀리는 대역죄인을 처벌할 수 없게 되었다며 무척 아쉬워(?)했단다. 장난하냐!

  근데 솔직히 좀 억울하다. 영어교사가 아쉬워하지 않아도 학교현장에서는 인권조례가 잘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니까 말이다. 교칙개정 과정에서 학생들의 목소리를 사뿐하게 무시해준 부천의 소사고도, 개교 석달 만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20명의 학생을 강제적으로 학교 밖으로 내몰았던 남양주의 가운고등학교도 잘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이제는 인권조례 자체에 대한 찬반논의를 넘어서 인권조례의 정착화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 왔음에도 우리 미성숙하고 적응력 약한 꼰대들은 아직도 인권조례가 ‘되네’ ‘안되네’나 따지고 있으니 성숙한 내가 보기엔 좀 울화통이 터진다.

  저 영어 교사처럼 일부 보수 언론과 교사, 학부모들은 학생인권조례를 두팔 벌려 환영하지는 못할망정 인권조례에 대한 비난과 우려를 쏟아내며 ‘인권조례 무력화’를 외친다. 어떤 사람들은 ‘아직 미성숙한 학생들을 ‘선동’하고 ‘빨갱이’로 키우려는 조례‘라고 비난한다. (앗. 근데 이글을 읽은 그 '어떤 사람'들이 가스통 들고 날 쫓아올것 만 같은 건 기분 탓인가?)

  또 어떤 이들은 ‘교실붕괴’와 ‘교권추락’같은 문제에 우려를 표하며 인권조례 이후의 학교를 걱정한다. 사실 내가 학교를 ‘다녀봐서 아는데’ 교실은 늘~개판이었다. 인권조례 제정 이후든 이전이든 교실은 이미 오래전부터 붕괴하고 있었다. 교사들 교권 추락하는 것도 어디 어제오늘 일이었나? 새삼스럽게 왜들 이러시나? 학교 안다녀본 사람처럼. 교실붕괴와 교권추락 문제에 대해 학생인권조례가 유일한 원인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뭐랄까 좀 게을러 보인다. 생각과 고민을 좀 더 해보셔야 할 텐데 말이다.

  이유야 어쨌든 많은 사람들이 ‘학생인권조례 없는 세상’을 원한다. 경기학생인권조례가 지난해 9월 도의회를 통과해 공식적으로 제정된 지 어느 덧 1주년이 다 되어간다. 그사이 서울에서는 주민발의 형식을 통해 시민들이 직접 ‘학생인권조례안’을 발의했고 곧 제정을 앞두고 있으며, 충북과 강원도, 광주와 전북 등 지역 곳곳에서 인권조례 제정을 위한 움직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소식들이 들려온다. ‘인권조례’가 시대의 요구사항이 되어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 많은 곳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는 것이다. 참 기쁜 소식이다.

  사실, ‘학생인권조례’ 만큼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열악한 인권현실을 잘 보여주는 것도 없는 듯하다. 인권조례는 학교 안에서는 ‘인간’이 될 수 없는 ‘학생’들의 처지를 적나라하게 나타내는, 있는 그대로의 반증이 된다는 얘기다. 그래서 나는 인권조례가 수치스럽다. 아니 그러니까 내말은 이거다. 내 머리는 내 마음대로 기르는 것, 아프면 쉬는 것, 질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과 같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생각되는 것들이 왜 이 빌어먹을 나라에선 ‘법’으로써 강제하지 않으면 지켜지지 않는 ‘논외’혹은 ‘금기’의 것들이 되냐는 말이다.

  머리길이의 자유와 같은 정말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사회에서 허용할 수 있는 수준에서의 ‘최대한’의 도구가 되어버린 듯한 학생인권조례를 보며 답답함을 느낀다. 이제 학생인권조례는 최대한의 권리를 보장하는 최소한의 도구가 되어야만 하지 않을까? 청소년들의 인권을 얘기하는데 있어, 대안을 만드는데 있어, 방법을 고민하는데 있어 학생인권조례는 첫 걸음이자 최소한의 가이드라인. 딱 그 정도이길 원한다. 학생인권조례가 학생의 인권도 보장되는 사회를 위한 ‘마지막 보루’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학생인권조례는 미성숙하다는 유보되어 왔던 학생인권, 사회적으로 논의되는 것 조차 ‘금기’ 였던 학생인권, 오랜 시간동안 ‘없는 것, 보이지 않는 것, 가질 수 없는 것’으로 숨겨져 왔던 학생인권의 봉인을 푸는 주문이다. ‘학생’과 ‘인간’이라는 단어 사이의 멀고 먼 거리를 조금씩 줄여나가는 주문이다.

  그러다 마침내 ‘법’으로써 강제하지 않아도 학생들의 인권이 보장되는 학교를 간절히 원한다. 학생인권조례 없이도 ‘학생’ 역시 존엄한 삶을 살아갈 권리가 있는 인간이라는, 너무나도 당연하고 보편적인 인식이 널리 퍼지는 성숙한 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원한다. 그렇기에 나는 이제 학생인권조례 없는 세상을 원한다. 너무나도 간절히 원한다.

Posted by 오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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