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는 지난 2010년 10월 말부터 서울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운동이 진행되고 있었다. 지금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바로 그 이야기다.



폭력성 실험



  서울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서명 수가 한참 한참 모자라서, 제정운동본부의 거의 모두가 반 미친 상태로 서명을 받느라 거리를 쏘다니고, 저녁에 온 힘이 다 빠진 채로 사무실에 돌아와 서명지를 정리하던 시기가 있었다. 2월부터 5월 초까지, 3개월 동안 다들 필사적이었다. 학생인권에 대한 절박함도 있었고, 보수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떠들어대는 망발에 대한 분노도 있었지만, 모두들 ‘이렇게 개고생하고 실패할 수는 없다.’는 절박함과 오기가 점점 커졌다. 악으로 매일 아침 9시에 모여 회의를 하고, 11시부터 저녁 5시까지 거리에서 서명을 받고, 주말에도 하루도 쉬지 않고 거리서명을 받는 일정을 소화해 냈다. 도중에 차례차례로 한, 두 명씩 몸살에 쓰러졌다 돌아오고, 알바를 하고 있던 사람들은 알바를 때려 치우고 서명을 모았다. 거리에서 우리에게 고함치는 사람들, 훈계하거나 시비 거는 사람들을 상대하다 억울해서 울고, 우리가 왜 이렇게 까지 해야 되나 하고 너무 힘들어 울고… 그렇게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지면서도 누구 하나 힘들어서 그만두겠다고 말하지 않았다.

  서명기간 도중에 별의별 말이 다 나왔다. 주민발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악마한테 영혼이라도 팔겠다, 실패하면 죽어버릴 거다, 실패할 거 같으면 전교조 사무실 째로 서명지를 불태우겠다(학생인권조례 제정운동서울본부 사무실은 전교조 서울지부 사무실 일부를 빌려 쓰고 있었다.), 유리창부터 몇 장 야구배트로 박살내고 시작하자 등등… 서명지와 전단지, 가판대와 소형 앰프를 들고 낑낑대며 서명을 받으러 걸어가던 도중, 같이 가던 활동가와 “지금 차도에 뛰어들면 학생인권조례 서명 부족으로 청소년 자살… 신문에 나서 서명 많이 모이겠지?” 하는 이야기를 하던 게 생각난다.


▲ 올해 2월부터 3개월 동안, 활동가들은 서울시민들에게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서명에 참여하라고 거리에서 매일 같이 말을 걸었다.



  여기까지 우중충하고 어두운 이야기들에서 독자들에게 위화감은 없었는지? 혹자는 왜 같이 운동하던 전교조 사무실을 때려 부수지? 팀킬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을 줄 안다. 하지만 이 운동을 계속 가까지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 참여했던 사람들은 아, 그런 얘기도 나왔었지… 하며 고개를 끄덕이겠지.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운동의 역사는 전교조와 일부 교육단체들에 대한 분노의 역사이기도 했다. 학생인권조례 제정운동 서울본부를 시작할 때, 전교조 서울지부가 가장 주도적으로 주민발의를 통해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하자며, 목표 서명 숫자의 3분의 1이나 되는 서명을(최대 3만장을) 전교조 서울지부에서 모아오겠다고 했었다. 모두들 성공의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고, 주민발의를 시작했다.

  그런데 일단 주민발의가 시작되자 전교조 서울지부(앞으론 귀찮아서 그냥 전교조)는 전혀 열의를 보이지 않았다. 거리서명에 나오는 날도 손에 꼽을 만큼 적고, 그마저도 마지못해 나오거나 왕창 늦었다. 나와서는 피켓을 든 채, 피켓 고정용 청테이프 혹은 병풍 정도의 역할밖에 하지 않고 돌아가거나, 심지어는 줄담배를 피며 한두 시간 서 있다가 수고 하라는 말만 하고 돌아가서 가기 전까지 담배 피러 나온 회사원으로 오인 받은 적도 있을 정도이니 원망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는 언제나 양 손 가득 짐을 들고 낑낑거리며 전철, 버스를 타는데 언젠가 한 번 선전전에 같이 나온 전교조 조합원에게 짐을 옮겨줄 것을 부탁하자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우리가 오늘 차가 없어서요.”라는 반응을 보였다. 하루쯤 그거 들고 걸어가면 팔이 부러지기라도 하나?

  그렇다고 전교조에서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그렇게 열심히 서명을 받은 것도 아니다. 전교조에서는 큰 행사가 있을 때, 자신들이 서명을 모으는 게 아니라 학생인권 조례 제정운동본부에 통보해서 ‘와서 서명을 받아라.’ 라는 식으로 굴었다. 조합원들이 잘 동의를 하지 않는다. 그런데 강제로 서명을 하게 할 수는 없다. 아직 합의가 되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이미 옛날에 합의했어야 할 내용을 가지고, 자신들이 계속 주장해 왔던 것조차 조합원들에게 동의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들이 학생인권에 대해 정말로 열의가 있는지, 동의하기나 하는 건지, 계속 의구심을 가지게 했다. 심지어는 계속 학생인권을 까대는 ‘조중동’보다 더 미웠다. 인내심테스트, 폭력성 실험을 당하는 기분이었다.

  같이 주민발의 운동을 하는(해야 하는) 전교조 조합원의 대부분이 학생인권조례에 무관심했고, 자신이 무관심하다는 걸 정당화하기 위해 망발을 해댔다. 청소년 활동가들에게는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초면에 반말을 해대는 건 기본이고, 목표 서명을 다 모으는 건 불가능하다는 말을 너무도 쉽게 하면서 서울학생인권조례의 의원발의 일정이 언제냐고 물어보는 모욕까지. 전교조에 좀 더 적극적인 태도를 요구하자 “전교조에게 그렇게 의존하면 안 된다.” 거나, “다른 단체들에서는 서명이 얼마나 들어왔냐.” 며 자신들에게 너무 과중한 책임을 묻고 있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언뜻 학생인권과 연관성을 찾기 힘든 민주노총에서 매일 거리선전전을 뛰고 있고, 조례제정본부의 20명 남짓 하는 사람들이 매일매일 거리에 나가 서명을 받는데도 하루에 200장 모으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서울에만 조합원이 8-9000명 있는 ‘진보적(?)’교직원 노동조합에 조합원 서명을 적극적으로 받아달라는 것이 그렇게 ‘과중한 책임’인건지, 아니면 전교조가 자기 조직의 조합원도 챙기지 못하는 망해가는 단체인 건지…

  주민발의가 실패할 것 같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던 4월 중순, 회의자리에서 전교조가 “우리가 실패해도 좋은 경험이고, 하는 과정이 중요한 거니까…” 따위의 말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마치 ‘훈화말씀’이라도 하듯이. ‘전교조는 더 이상 이 운동을 할 맘이 없다.’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말이었다. 그 태도는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이하였다. 우리가 거리에서 경험하는 것들은 그저 좋은 경험과 추억으로, 과정으로 남기기에는 너무 잔인하고 혹독한 것들이었다. 결국 회의가 끝나자 전교조가 나가버린 사무실은 한바탕 울음바다가 되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평등교육을 위한 학부모회’ 회원 중 한 명이 일정이 많아서 거리 서명을 못나가겠다는 말을 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저번에도 나갔는데 또 나가요? 제가 무슨 몸이 무쇠도 아니고....”
  아연해지는 순간이었다. 매일매일 거리에서 6-7시간씩 서서 소리치는 우리들은? 무슨 몸이 다이아몬드라도 돼서 그렇게 서 있나? 우리는 몸 구조가 그들과 다른 건가? 일, 이주일에 두, 세 번씩 나와 달라는데 그렇게 뻔뻔할 수가 없었다. 조례제정운동본부의 모두가 여기저기서 너무 많은 상처를 받으며 지치고 있었다. 이런 도중에도 시간은 가고 있었고, 서명 수는 모자랐다.



너덜너덜한 성공


  대망의 5월 11일, 바로 전날 서명기간을 끝내고 우리가 모은 서명이 목표치 8만 2000명을 훨씬 넘은 8만 5000장이 된다는 걸 확실시 했을 때, 너무나 열심히 거리 서명을 받았던 모두가 울며 웃으며를 반복하며 기뻐했다. 해냈다는 기쁨과, 이제까지 했던 고생, 받았던 모욕에 대한 서러움이 교차했다. 우리가 거리에서 모은 서명 약 3만5천장. 시민 분들이 자발적으로 하나하나 보내주신 우편서명 약 7천장. 여러 단체와 종교계의 일명 ‘조직서명’ 약 3만9천장. 그 중에서, 전체의 10분의 1도 안 되는 전교조의 7천장. 그들의 목표가 처음에 '최소' 1만 5천이라는 건, 그냥 덧붙여 둔다.

  서명지를 지역별로 분류하는 작업이 한창일 때, 다들 하루 이틀씩 밤을 새며 일했다. 사무실 바깥에 나가는 건, 밥을 먹을 때 뿐. 그것도 그나마 후반에는 돈이 모자라서 도시락을 먹으며 진행했었다. 전교조에서 보인 반응은 “학생인권 조례 사무실 서명지 분류인가 뭔가 때문에 참 난리 났던데..”가 전부였다. 하루 이틀, 한 두명 정도가 도와준 적은 있지만 그래놓고 “우리는 도와줬다. 할 일 끝.” 이라는 것 같아서 짜증이 밀려왔다.

  그렇게 마지막까지 고생고생해서 겨우 서명지를 교육청에 전달하는 기자회견날, 다들 다시 한 번 울고, 거의 세상이 끝난 기분으로 집에 돌아가서 뻗었는데, 무효인 서명지가 많이 나와서 서명이 1만 1천 장이나 모자라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그리고 시작된 추가 서명기간. 다들 신경이 끝까지 예민해진 상태였고, 서명 말고는 거의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는 상태로, 전교조 외 기타 등등 에게는 그야말로 ‘서슬이 퍼런’ 얼굴을 했다. 오죽하면 ‘청소년활동가들 화 많이 났다’, ‘무섭다’ 등의 소문이 퍼졌을까. 결국 우리는 보정서명기간 5일 만에 거리에서만 5천장의 서명을 받아내는 기염을 토했고, 시민들과 여러 작은 단체들의 “조금만 더.” 라는 성원, 끝까지 너무 많이 도와준 민주노총, 종교계 등에 힘입어 목표치를 훌쩍 넘는 3만9백장의 서명을 모아 냈다. 그리고 다시 몰아친 정리기간. 이 모든 지옥을 넘어 교육청에 모든 서명지를 전달하고, 서울시 의회의 회기를 기다리는 지금도 서명기간을 다시 떠올리면 다들 울 것 같은 얼굴을 한다. 반드시 원안 그대로 의회를 통과하게 하겠다고 벼르고 있는 것은 서명기간의 하루하루를 잊을 수 없기 때문인 것 같다. 덧붙이자면, 지면상의 이유로 여기 옮기지 못한 이야기는 아직도 많다.





▲ 서울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로 거리에서 살다시피 하며 겨울볕에 탄 사람들의 팔

(※실제 13호에는 흑백 사진의 한계상, 그리고 편집 실수상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여기서 감상하시라 ^^;)



  결국 우리는 주민발의를 성공시켰고, 수많은 시민들에게 말을 걸었고, 학생인권의 봄을 열었다. 하지만 그 찬란한 봄의 뒤에는 진흙탕에 구르다시피 한 많은 활동가들의 너덜너덜해진 몸과 마음이 있었고, 서명 숫자를 위해 간도 쓸개도 다 빼준 것 같다는 자괴감이 있었다. 인간의 한계 그 너머를 엿본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주민발의’는 성공했지만 주민발의 ‘운동’은 실패한 것 같다는 씁쓸함이 남았다.

  서울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운동은 앞으로 학생인권조례가 갈 길, 학생인권이 갈 길에서 누가 함께 하고, 누가 함께 하지 않는지를 명확히 보여줬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을 던져 운동하는 사람들이 끝까지 바닥으로 추락하는, 의욕의 크기가 상처의 크기가 되는 운동을 다시는 하지 않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Posted by 오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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