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소수자들은, 여성/청소년들은, 오지랖이 넓은가


난다


‘그래도...’의 반복


학교를 그만두기 전, 학교 친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때, 늘 어느 순간 벽 같은 것에 부딪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신나게 학교 욕, 선생 욕을 하다가도 누군가는 꼭 “너무 우리들 생각만 하지 말고, 선생님 생각도 좀 하자.”라고 이야기하곤 했다. 이를테면 체벌에 대해 수다를 떨 때, “어떻게 사람이 사람을 그렇게 때리냐? 진짜 그 선생 너무 심하게 때리는 것 같아.”라고 얘기하면, “에이, 그 선생님이 좀 심하게 때리긴 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체벌은 허용되고 그래야, 우리도 스스로를 통제하고 학교도 잘 굴러갈 수 있는 거 아니겠어?” 그리고 친구들의 끄덕거림이 따라온다. 늘 답답했었다. 왜 이 친구들은 자신들을 억압하고 통제하는 것들에 대해 그냥 그대로 수긍하는 거지?

비슷한 경험은 학교를 그만 두고서 인권활동이라는 걸 하면서도 자주 접했던 것 같다. 인권교육을 가서 학생들의 권리나 인권에 대해 얘기하면 청소년들은 ‘아무리 그래도’ 하면서 ‘선생님들’ 걱정을 했다. 고된 하루를 마치고 돌아온 아빠는 회사 뒷담화를 까다가 내가 발끈하자, ‘그래도’하면서 ‘사장님’을 옹호한다. ‘사장님’도 나름의 고충과 어려움이 있어서 그러는 거라고. 내가 보기엔 아빠가 훨씬 힘들어 보이는데.



구조적 무감각과 ‘착하게’ 길들여지기


사람들은 쉽게 이 사회의 기준을 받아들인다. 그래서 주류적인 기준을 흔드는 것들에 대해 불편함을 느낀다. 곧잘 ‘인권’을 이야기하고, ‘차별’을 이야기하고, ‘변화’를 이야기하지만 어떤 ‘선’을 넘어가지 않으려 한다. 그 ‘선’을 넘어가는 것은 기존 사회의 질서를 흔들고 침범하는 것이라 여긴다.

처음부터 그랬을 것 같진 않다. 청소년들이 “아직 어린 것들이”라는 말에 맞춰 “그래, 우린 아직 어리니까 좀 더 통제 받아야 해.”라고 생각하거나, 여성들이 이 사회 ‘미’의 기준에 맞춰 자신을 더욱 꾸며내고 혹독한 다이어트를 감행한다거나, 혹은 자신에게 상처를 준 남성들을 먼저 이해하고 배려하는 방식으로 상처를 치유하려고 한다.

같은 사회적 약자로 닮은꼴인 청소년과 여성, 그리고 약자들은 웃기게도 강자를 먼저 걱정한다. 그러한 여성성과 약자성(먼저 배려하고 먼저 이해하고)은 약자가 강자에게 훨씬 더 많이 잘 발휘되고 있다. 이는 성인/교사/남성-강자 중심 사회에서 그들 중심의 질서가 학생/여성 속에도 깊이 뿌리를 내려, 자신들을 둘러싼 억압마저 그들의 시선으로 보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어렸을 때부터, 아주 예전부터 ‘남성/비청소년의 이야기’가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정받는 사회를 살며 쌓아온 경험들이 우리들 마음 곳곳에 눌러 붙어 ‘내면화’되었기 때문이다.



생존하기 위해 강자 입장 내면화하기

소수자/약자들이, 권력 있는 자/강자들을 위하도록. 그래서 이 사회가 뒤틀리지 않고, 뒤집어지지 않게 고정시킬 수 있도록. 그렇게 사회는 우리들을 오랫동안 ‘착하게’ 길들여왔다.

그렇게 길들여진 ‘착한’ 사람들은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걸 받아들이고 산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착하고 착실했다. ‘야간자율학습’은 한 번도 빼먹지 않았고, 성적도 그럭저럭 유지했다. 학교의 온갖 규제가 고통스러워도, 선생님들이 우리를 때려도, 나는 그 순간순간을 흘려보냈다. 그런 것들을 그만두라고 말하고도 싶었지만, 그 순간에는 착실하게 참아냈다. 그 순간만 넘기면 되니까. 또는 그 순간에 내 목소리를 내기라도 하면, 눈앞에 징계나 탄압이 떨어질 테니까.

하지만 그런 시간을 보낼수록 선생님들이 우리를 때릴 때마다 그걸 계속 지켜보고만 있어야 한다는 게,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게 괴로웠다. 나는 왜 아무 말도 못하는 거지? 나는 왜 이렇게 힘이 없지? 이런 고민을 하다가, 그냥 거기에 그럴 만한 의미를 부여해버렸던 것 같다. 어쩔 수 없어, 라고. 선생님도 그만한 이유-학생들을 대학에 많이 보내야 할-가 있어서일 테고, 그건 선생님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니까, 라고.

먹고 사는 것, 여성들의 경우에는 사회적 인식도 그렇고, 학생들은 학교에서의 눈앞에 보이는 탄압이나 징계에 대한 문제 때문에 쉽게 바꿔내야겠다는 생각을 더 못하게 되는 것 같다. 나는 나의 생존을 위해서 이 체제에 편입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편입되는 자기를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강자의 입장을 이해해야 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을 정당화 시켜야 했다. 나한테 고통을 준 사람도 어느 정도 합당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인 것이고, 이 사람들을 이해하게 되면 나는 덜 불편할 수 있으니. 그리고 그럴 때에야 나는 이 사회의 질서를 어지럽히거나 혼란스럽게 하는 나쁜 사람이 되지 않을 수 있으니. 그래서 나도 그러한 나 자신과 학교와 체벌하는 교사에 어떤 의미를 부여했던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학창시절을 추억할 때처럼. 대학에 가고 나서, 자유시간이 많아지니, “아 그래도 고딩 땐 할 게 있었는데~”하는 생각이 드는 것처럼. 수능 보기 전에는 수능공부=쓸모 있는 짓/나머지 전부=휴식이라는 ‘공식’이 있었는데, 수능이 끝나고 이게 허물어지고 나니, 참 허무하더라는 것처럼.

너무 힘든 시절이었지만, 그렇게 힘든 시간만 있었다고 생각하기엔 내가 너무 비참하니까. 그래서 소소하고 시시콜콜한 일들을 더 크게 기억하고 추억하면서 그 때는 그래도 좋았지, 그래서 좋았지, 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 반복되고 반복되어 이 체제를 구성한다.



그래서, 그러니까

이 단단한 구조를 직시하는 것은 여성으로, 청소년으로, 약자로 살아가고 있는 나를 온전히 바라보는 것만큼 어렵고 힘든 일이다. 하지만 우리를 더욱 ‘착한 아이’로 길들이는 국가의 통제가 점점 더 검은 그림자를 펼쳐오는 이 때, ‘착한 아이’가 아니면 무차별적인 폭력으로 쫓아내버려도 된다고 생각하는 이 때, ‘국가’를 위해서는 권리를 주장하는 것도 멈춰야 한다고, ‘모두가 똑같은 손을 들어야 한다고’ 말하는 이 때. 우리 이제 더 이상 착해지지 않아도 되었으면 좋겠다. 이 커다랗고 단단한 기준을 뒤집을 만한 발칙함과 깐깐함이 우리에겐 더 많이 필요하다.
Posted by 오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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