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모 세대는 탯줄을 끊지 못했지.”

“뭐라고?”

주혁은 침묵했다. 긴 말을 준비하는 모양이다. 한참 후 주혁은 침묵한 적도 없다는 듯이 말을 시작했다.

“자식을 자궁 밖으로 내보낸 후에도, 자식이 학교를 가고 취직을 해도 탯줄이 주렁주렁 이어져 있어. 끊임없이 영양분을 공급해서 자식이 살아있도록 하는 것이 부모의 일이라고 믿지. 물론 엄청난 자기 희생이지만 또한 엄청난 책임 회피야. 자식에게 영양분을 직접 모으는 방법을 가르치지 않거든. 그건 학교가 해줄 거라고 믿지. 그런데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은 상급 학교에 가는 방법뿐이야. 결국 졸업장은 따지만 그 때도 탯줄은 이어져 있어. 아는 방법은 상급 학교로 가는 방법뿐이고. 더 이상 갈 학교도 없으니 방법은 두 가지지. 탯줄을 부여잡고 빈둥거리거나 세상을 온통 학교로 만들거나.”

한숨이 나왔다.

“시험 치고 등수 매기고 높은 점수가 목적이라고 믿고.”

“일하고 은행잔고 확인하고 많은 돈이 목적이라고 믿고. 그래. 우리가 이렇게 된 것은 부모들이 탯줄을 끊지 못하셨기 때문이지. 하지만 그 분들은 그런 방법 밖에 몰라. 언제나 하시는 말씀이 ‘밥은 먹었냐? 안 먹었으면 차리마.’ 같은 것밖에 없다고 해서 그 분들을 탓하면 안돼.”

 

- 이영도, 『봄이 왔다』 中에서



2011년 11월 10일, 수능날이었다. 묘하게도 수능 한파 이런 것도 없이 날씨도 포근했다. 그날 청계광장에 모여서 19살, 또는 고3인 청소년들이 모여 ‘대학입시거부선언’을 발표했다. 그보다 며칠 전인 11월 1일에는 20대 이상인 사람들의 ‘대학거부선언’이 있었다. 이들은 입시경쟁교육의 문제, 대학교육의 문제, 학력․학벌차별 사회의 문제 등을 지적하면서 지금의 대학입시를, 대학을 거부한다고 선언했다. 거부선언자들은 자신들을 ‘투명가방끈 모임’이라고 부르면서, 가방끈이 길다 짧다 따지며 사람을 차별하는 세상, 길고 휘황찬란한 가방끈을 얻기 위해 발버둥 치라고 겁을 주고 강요하는 세상에 도전한다고 밝혔다. 그리고는 “대학을 평준화하라!” “줄 세우기 교육을 없애라!” “대학 안 가도 먹고 살 수 있어야 한다!”, “교육(대학)은 의무가 아닌 권리다!”라고 외쳤다. 나 역시 그 현장에, 거부 선언에 참여하기 위해서 서있었다. 나는 스물네 살의 나이로 대학을 자퇴하고 대학거부선언에 참여한 한 명이었다. 참여한 각양각색 사람들의 발언들. 모여든 언론사 기자들과 카메라들. 신기해하는 듯 무심한 듯 지나치는 사람들. 그때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 이영도가 쓴 『봄이 왔다』의 저 구절이었다.

▲ 학교에서 요구하는 꿈은 성적, 입시, 그래, 결국 대학. 


나의 꿈, 학교의 꿈

사실 그랬다. 중고등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은, 상급 학교에 가는 법뿐이었다. (전문계고의 경우는 그나마 취업하는 법 등도 가르친다고 하지만, 요즘은 전문계고도 대학을 많이들 보낸다지?) 나름 모범생(?)으로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 외엔 애니 보고 게임하고 책 읽는 게 삶의 전부였던 나도 상급학교, 대학가는 법, 그리고 대학에 가기 위해 시험 보는 법밖에는 배운 게 없었다. 그래서 그냥 그렇게 공부하고, 시험보고, 적당히 대학을 가면 되는 줄 알았다. 뭘 하고 싶냐, 어떻게 살고 싶냐, 그런 질문에도 무슨 학과를 가서 무슨 학문을 공부하고 싶다는 것 정도밖에는 그려지는 게 없었다.

그러다 청소년운동을 시작하게 됐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기보다는, 그저 흐르듯이 자연스레 시작한 운동이었다. 어느 순간 돌아보니 ‘청소년인권활동가’ 같은 것이 되어 있었다. 그때부터 좀 다른 꿈을 가지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어떤 걸 이루고 싶다는 꿈과, 사회적으로 무엇을 바꾸고 싶다는 꿈, 양쪽 모두 훨씬 더 풍부해졌다. 높은 점수, 상위권 대학은 목표가 아니었고 아웃오브안중이 되었다.

하지만 그런 게 학교로서는 좀 곤혹스러운 일이었던 것 같다. 그러자 나에게 우호적이지 않았던 교사들은 모의고사 성적이 떨어진 것으로 나를 불러 ‘상담’하려 했고 학생의 본분은 공부라거나 일단 좋은 대학을 가라거나 하는 이야기로 나를 압박하려 했다. 나에게 우호적이었던 교사들은, 그래도 일단 상위권의 대학을 가는 것이 내가 사회운동을 하는 것이나 사회를 바꾸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고 이야기했다. 물론 그 안에는 여러 가지 호의와 진심들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안에는, 나의 꿈을 학교가 감당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형태, 즉 ‘상급 학교에 가는 것’으로 ‘치환’해서 관리하려고 하는 것 역시 분명히 있었으리라.

그렇게 해서 결과적으로, 우여곡절 끝에 한국에서 상위권의 대학에 입학하게 됐다. 그 과정에서 많은 갈등과 운, 나의 우유부단함 등등이 작용했다. 복잡한 심경으로 입학했지만, 일단 대학에 대해 기대가 요만큼도 없던 건 아니었다. 그래도 이런 대학에 오면 부모 눈치는 덜 봐도 되겠지? 그래도 대학에 오면 뭔가 다른, 내 사회운동에 발전의 계기가 될 만한 것들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그래도 이런 대학에 오면 유익한 것들을 많이 배울 수 있으려나? 그래도 이런 대학에 온 게 내 ‘꿈’에 도움이 되겠지?

하지만 글쎄. 애매했다. 매 학기마다 300만원을 넘어서는 등록금 고지서가 날아왔다. 그때마다 개인회생 중인 부모에게 얘기하기가 부담스러웠다. 몇 차례 학자금 대출도 받아봤지만, 쌓이는 빚 역시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대학에서 흥미로운 강의들은 있었지만, 그런 강의들을 열심히 듣다가는 졸업도 제대로 못할 게 뻔히 보였다. 학벌은 운동에 별로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학벌이 있다고 뭐 힘이 생기는 것도 아니었고, 무력한 경우가 더 많았다. 학벌은 외려 운동의 건강성을 해치는 걸림돌이 되거나, 사람들과 만나는 데 마음의 짐만 되었다. 대학 강의나 대학 생활이 안 좋았냐고 하면 꼭 그런 건 아니었다. 하지만 뭔가 내 꿈이나 목표에 도움이 된다거나, 꼭 다니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등록금이니 대학서열화니 여하튼 대학과 관련된 온갖 것들이 무슨 자석에 철가루 붙듯이 따라다니면서 등에 매달려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나를 괴롭히는 것은 대학을 둘러싼 잘못된 현실사회, 그 자체인 것 같았다.

 

다른 꿈에 대한 꿈

선언을 준비하고, 거리행동을 준비하고, 글을 쓰고, 이후에 활동을 위해 계속 같이 대학입시거부․대학거부선언에 참여한 선언자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거부의 이유는 다양했다. 배움을 바라지만 지금의 대학에서 제대로 된 배움을 기대할 수 없다고 토로하는 사람들도 있다. 가난해서 등록금을 내가며 대학에 다니는 것이 부담스럽기 때문에 가지 않는 사람도 있고, 대학에 가서 수천만 원 돈을 바치면서 공부할 이유를 찾지 못한 사람도 있다. 입시경쟁과 대학서열화로 줄 세워지는 시스템에서, 자기는 어차피 승리할 수 없고 승리하고 싶지도 않기 때문에 거부하는 사람도 있다. 기업화되는 대학 교육에 대한 비판적 의식 때문에 거부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대학에 간 사람들이 더 용기 있는 것 아냐?”라고 반문하곤 한다.


◀ 투명가방끈에서는 "입시좀피 스펙좀비 할로윈 행진"을 하며 대학이라는 꿈이 파산한 현실을 고발했다.


사람들은 대학을, 대학입시를 거부했다고 하면 뭔가 엄청 투철하고 대단한 신념과 용기를 가진 사람들일 거라고 생각한다. 또는 그런 사람이기를 기대하기도 한다. 하지만 꼭 그런 것도, 그래야 하는 것도 아니다. 나 역시도 “왜 대학을 자퇴했나?”라는 질문에 대해 먼저 이렇게 답한다. “대학을 다닐 이유가 필요한 것이지, 대학을 그만둘 이유는 특별한 게 필요 없는 것 아닐까요? 다닐 이유는 없고 그만둘 이유만 좀 있어서 관뒀어요.”

대학거부선언, 대학입시거부선언을 하면서 상처도 많이 받았다. 다소 부담스러운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려는 이들도 있었고, 냉소하고 비웃는 이들도 많았다. 거부선언을 하는 과정에서도 우리는 거부 자체를 학벌주의 속에서 받아들이는 모습과 부딪쳐야만 했다. 대학거부선언자들 중에는 국민대, 단국대, 동국대, 서강대, 서울대, 서울산업기술대 등 여러 대학을 다니다가 자퇴한 사람도 있고, 아예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 것을 선택했던 사람도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이슈화가 되고 알려진 건 단연 ‘서울대 자퇴생’이었다. 뿐만 아니었다. 언론들에서 인터뷰를 할 때 가장 먼저 묻는 게 이런 거였다. “어느 어느 대학에 다니다가 자퇴를 하셨나요?” “서울대나 고려대에서 자퇴한 분은 없나요?” 대학을 아예 진학하지 않은 사람들은 기자들로부터 가장 찬밥 신세를 받아야만 했다. 거부조차도 학력, 학벌 순으로 정렬시키는 현실이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바는 아니었다. 기자들의 관심이든 사람들의 관심이든, 학력에 따라 학벌에 따른 차별이 섞여 있지 않을 리 없었다. 여기가 어딘데, 감히 그런 기대를 하진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예상보다 심했다. 어느 대학을 다니다가 거부했냐는 게, 왜 대학거부선언을 하느냐보다 더 문제가 되었다. 대학입시거부, 대학거부선언 관련 기사가 아니라 ‘서울대생 자퇴’ 기사가 네이트 <올해의 감동 뉴스> 후보에 꼽혔다. 대학입시거부선언을 한 청소년들이 외치는 지금의 대학이, 교육이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애초부터 좋은 대학 갈 성적이 안 되니까 쇼 하는 거 아니냐?”는 식으로, 성적을 인증해보라는 게시물들이 인터넷을 채웠다.

어쨌건 우리는 그런 상처들에 정면으로 부딪치면서 선언을 했다. 그 운동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그리고 어쨌건 나도 그 와중에 대학을 자퇴했다. 때려쳤다. 그냥 때려친 게 아니라, 수십 명의 사람들과 함께 거부선언을 했다. 그런 와중에 내 작은 소원이 있다면 이런 것들이었다. 입시거부, 대학거부가 한 개인의 특별한 용기나 결단, 치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좀 더 집단적이고 일반적인 목소리가 될 수 있게 하고 싶었다. 대학을 안 가는 건지 못 가는 건지 묻는 그 지겨운 편견을 조금이라도 떨쳐 버리고 싶었다. 너 개인이 열심히 노력하면 되지 않느냐는 말에 대해서, 그래서 그렇게 해서 우리 모두가 사람답게 살 수 있냐고 묻고 싶었다. 전체를 봤을 때, 사람답게 살 수 있을 확률이 이토록 적다면, 수많은 사람들을 짓밟고 올라서야 겨우 살 수 있다면 그건 개개인이 아니라 시스템 자체에 잘못이 있는 게 아니냐고 하고 싶었다. 그러니까 우리들 하나하나에게 어느 대학 다니느냐, 공부 잘했냐, 집이 부자냐, 그런 걸 묻기 전에 우리 모두의 문제를 좀 보자고 외치고 싶었다. 대학을 다닐 때 내 등에 달라붙어 있던 그 끈적끈적한 무언가가 대체 뭔지 알고 싶었다.

“대학 안 가고도 성공할 수 있어요.” 따위의 말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애초에 그럴 수 있다면 굳이 거부 선언을 할 리도 없지 않느냔 말이다. 그럴 수 없으니까 그럴 수 있게 바꾸려고 거부선언을 하고 운동을 한다고 하는 거지.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아직 마땅한 다른 꿈이 없다. 우리에게는 다른 꿈이, 다른 꿈을 만들 수 있는 조건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다른 꿈은 갑자기 나타나거나 새롭게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지금의 입시와 대학과 취직으로 이어지는 꿈, 그 꿈을 부수고 재조립함으로써 만들어질 것이다. 대학입시거부선언, 대학거부선언, 대학이라는 정답만을 강요하는 우리 사회와 맞서는, 일종의 ‘오답 선언’이었다.

Posted by 오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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