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현

 

어느 날 점심을 먹으러 가던 중 횡단보도에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는데, 신호등 앞에 서있는 봉고차를 봤다. 학원차인 듯한 그 노란색 차에는 이런 문구가 쓰여 있었다. ‘예비 5세 과정 신설’, 한순간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가서 멍하니 그 글자들을 보고 있었다. 저건 뭐지? 예비 5세? 결혼 직전의 여자 사람을 예비 신부라고 하고 고등학교 가기 직전의 중학생을 예비 고등학생이라고 하고 진화하기 직전의 피카츄를 예비 라이츄라고 하는 것과(그럴 리가 있냐) 같은 건가? 그럼 4살을 말하는 건가? 근데 왜 4세라고 안 쓰고 ‘예비 5세’라고 쓰는 거지? 나이 먹는 것도 예비해야 한단 말인가? 뭐지, 저건?

작은 혼란 속에 봉고차 옆에 있는 짤막짤막한 광고 문구들을 모아서 추론한 결과 그건 이런 말이었다. 보통 5살이면 유치원엘 간다. 그런데 요샌 유치원에서도 공부를 시킨다. 한글이나 산수는 물론이요, 영어까지 가르친다. 그런데 아무 대비 없이 그냥 보내면 애가 적응도 못하고 뒤떨어진다. 그러니까 우리 학원에 4살 때부터 보내서 ‘예비 5세’ 준비를 시켜라. 오오 이것은 혁신적인 학원 오오. 대충 이런 뜻이었던 것 같다.

대학입시를 고3 때 준비하는데 그 고3 생활을 고2 때부터 준비해야 한다고 하고 고2들을 ‘예비 고3’이라고 부르는 일이 종종 있다. 그런 표현이 점점 적은 나이로 가면서 예비 고등학생, 예비 중학생, 예비 중3 같은 말들도 간혹 듣곤 한다. 바로 며칠 전에는 TV를 보다가 광고에서 초등학교 4학년 때 성적이 중학교 때 성적을 좌우한다며 초등학교 4학년 때 공부시켜야 한다고 하는 학습지 광고를 보았다. 말이 좋아서 예비이지, 실제로 하는 건 대체로 이른바 ‘선행학습’을 한다거나 미리 빡세게 공부를 시키는 일이다. 그래 그, 말이 좋아서 선행학습이지 그냥 먼저 머릿속에다가 우겨넣는 일말이다. 이젠 드디어 ‘예비 5세’까지 등장했다.

본질적으로는 청소년이 아닌 사람들도 다를 바는 없다. 이 사회가 사람들에게 주문하는 게 온통 ‘예비’하고 ‘대비’하고 ‘준비’하는 일인 것이다. 모두가 ‘미래’를 대비하고 준비하는 데 ‘현재’를 갖다 바치라고 한다. 유예하고, 유예하고, 또 유예하라는 말이다. 노인일 때는 죽을 때를, 병들었을 때를, 자식이 결혼할 때를 위해 예비하고, 중년일 때는 노인이 될 때를 예비하고, 청년일 때는 중년일 때를 예비하고, 20대 초반에는 취업을 예비하고, 10대 때는 대학입시를 예비하고, 초등학교 4학년 때는 중학생 때를 예비해야 하며, 4살 때는 5살 때를 예비해야 한다. 온통 예비 인생이다.

김창완밴드의 노랫말대로, ‘열두 살은 열두 살을 살고 열여섯은 열여섯을 산다.’ 열두 살은 예비 열셋이 아니고 열여섯은 예비 열일곱이 아니다. 준비하고 예비하라고? 그럼, 우리는 대체 언제 사는 건가? 그렇게 미루고 준비한 삶, 결국 언제 사나? 다음 생에? 천국 가서? 삶을 예비하는 법은 없다. 삶은 그냥, 지금 여기이다. 네 살은, 네 살을 산다. ‘예비 5세’가 아니라.

Posted by 오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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