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bo

 

솔직히 까놓고 말해 나는 모범생이다. 공부도 그럭저럭 해서 선생님이 호의의 눈길로 봐주시는 편이고, 집에서도 나름대로 인정받고 살고 있었다. 친구들이 영화 <쌍화점>을 보고 열광할 때에도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는 절대 보지 않았고, 욕설이 들어간 노래는 아무리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라고 해도 절대 듣지 않았다. 아무도 간섭하지는 않았지마는 내 나름대로 뭔가 죄의식을 느꼈던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어정쩡’한 아이가 되고 있었다. 뉴스에서 싸움판을 벌이고 있는 정치가들을 볼 때, 4·19혁명이나 6월 민주항쟁을 맹렬히 비판하는 어른들을 볼 때, 점수를 빌미로 학생을 협박하는 선생님을 볼 때, 항상 속에서 울컥울컥 무언가가 올라왔었다. 하지만 그렇다해도 나는 결국 고리타분한 아이일 뿐이었다. 치마를 짧게 입거나, 화장을 진하게 하거나, 파마를 한 학생들을 보면 반감부터 드는 게 사실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 오승희를 보게 됐는데, 이 잡지(?)는 텅텅 빈 자습실 책상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뭐지? 학교 앞에서 나눠주는 학원홍보용 공책인가?” 별 생각 없이 잡지를 펼쳐 보았고, 솔직히 말해 처음 봤을 때 조금 반감이 들기도 했다. 정말로 솔직담백한 표현과 거침없는 욕설(?)에 놀라기도 했는데, 글을 하나하나 찬찬히 읽어보니 정말로 화가 났다. 나는 이렇게 인권 침해를 당하면서도 그것도 모르고, 내 권리를 주장하지도 못하면서 혼자 똑똑한줄 알고 살고 있었고, 정말 junk적인 사고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앞서 말했듯, 나는 학교에서 말하는 소위 ‘복장불량’인 학생을 보면 반감을 느끼곤 했고, 선생님 말씀에 반항하는 아이들에게 거리감을 느꼈다. 도대체 왜 그랬던가? 나는 학생인데 왜 어른들의 편에 서서 저들을 함께 비난했는가? 나는 내가 이렇게 바보였는지 상상도 못했지만 사실 나는 어른들의 주입식 교육에 아주 푸욱 젖어서, 그 말만이 옳은 줄 알고서 자유를 억압하는 그들의 횡포를 반대하기는커녕 함께 찬성하며 우월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 창피했다. 오승희를 보는 내내, 목이 터져라 길거리에서 청소년인권 보호를 외치는 청소년 운동가들에게 너무 미안했고, 학교에서 별다른 이유 없이 자퇴당한 학생들에게 내가 정말 부끄러웠다. 왜 우리나라가 이렇게 되었는지, 우리나라만 이따위가 되었는지 정말 분했다. 학교에서 오후 11시에 심야자율학습을 끝내고 집에 들어와서 씻고, 폭식하고, 자고, 다음날에 일어나서 다시 학교를 가려고 준비하는 내 자신을 발견하며, 이렇게 왜 사나는 생각까지 들었다.

청소년의 인권이 이다지도 침해되다 못해 갈기갈기 찢어지고 헤어져 이 지경까지 된 이유는 어른들의 횡포뿐만이 아니라, 청소년들의 무지함에도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오승희를 정신없이 보고 있자, 나름대로 친한 전교1등 친구가 다가와서 뭘 보냐고 묻더니, 표지를 보고 한 마디했다. “헐!”이라고. 그 한 마디에서 나는 많은 것을 들었다. “이런 걸 왜 봐?’부터 시작해서 “공부 잘 하고 선생님께 이쁨 받는 아이들은 이런 것쯤 보지 않아도 되잖아.” “우리에게 큰 피해는 없잖아. 나름대로 잘 돌아가는 사회를 왜 비판하려고 나서니?” “적당히 해. 너 괜히 이런 거 보다가 선생님한테 미움 받고 싶니?” 까지…. 이건 꼭 읽어봐야 한다고, 한번 보라고 그 친구에게 권하자, 그 친구는 멋쩍게 웃으며 다시 내 손에 그 잡지를 쥐어주었다. 나는 잡지에서 나오던 무시무시한 청소년인권 억압 현실을 봤을 때보다 친구의 그 반응을 보았을 때 정말로, 정말로 좌절했다. 계속 이대로라면, 이 사회는 영원히 약자들의 인권을 억압하고 짓밟을 것이고 영원히 나아지지 않을 것 같다.

이 글을 보고 반감을 가지는 이들도 많을 것 같다. 내가 쓰면서도 좀 재수가 없긴 하다. 그래봤자 나는 청소년인권을 돌려달라고 선생님 앞에서 자신 있게 말할 용기도 없는 소심한 학생일 뿐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여기 독자투고란에 글을 올리는 것도 이 글을 보는 모든 독자에게 매우 죄송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다 글을 쓰는 이유는, 용기가 없는 나를 대신해 다른 청소년들에게 좀 알려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다. 나처럼 청소년인권에 대해 몰랐던 아이들이 새로이 알게 되고, 의식을 깨운다면, 우리 다음 세대, 아니 다음다음 세대라도 더 이상 이런 쳇바퀴 같고, 창의성이라고는 짓이겨버리는 교육을 받지 않게 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추신. 필자가 워낙 주입식 교육의 산물이라 창의력 따위 키우지 않아 글을 창의적으로 재미있게, 통통 튀게 쓰지 못했다. 용서를 빌고 싶다. ㅠㅠ 지루해도 읽어주십사….

Posted by 오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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