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맞은새싹

 

이 글은 다음 책을 읽고 수필 형식으로 쓴 글입니다. 이 글을 쓰고 친구들과 함께 선비 정신, 우리 시대의 진정한 선비와 같이 ‘선비’에 대해서 열띠게 토론했던 기억이 납니다. 사실 글의 초점은 그게 아니었는데 말이죠. ㅎㅎ

아름다운 우리 고전 수필 | 강희맹 外 지음 | 손광성 外 편역 | 을유출판사 | 2003년 5월 | 9,000원

 

나는 떡볶이를 참 좋아합니다. 나와 내 친구가 떡볶이를 좋아하는 것만큼이나 좋아하는 떡볶이집이 있습니다. 입이 까다로운 선배가 맛있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든 그곳에 갔던 처음 두 번은 허탕을 치고 돌아와야 했습니다. 세 번째 발걸음 만에 드디어 먹게 된 떡볶이는 상상했던 것처럼 맛있었습니다. 우리가 이곳을 좋아하는 까닭은 비단 ‘맛’있는 떡볶이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곳에는 우리를 자꾸만 찾게 만드는 사장님의 후한 인심과 마음이 있습니다. 남은 음식을 포장해달라는 우리의 부탁에 사장님은 떡볶이를 몽땅 얹어주시고는 “그릇이 차지 않으면 제 마음이 차질 않아서요.”라고 멋쩍게 웃으십니다. 우리는 따끈따끈 떡볶이가 든 봉지를 쥐고 더 따스한 마음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나는 그분이야말로 정말 행복한 사람, 마음의 부자가 아닐까하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이 어질고 청명하다 자처하며 남의 마음을 돌아서게 한 그릇된 우월감과 과시욕이 아닌, 진정으로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며 깨닫게 하니 이분이 진정한 선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회오리바람은 하루아침을 가지 못하는 것이요, 소나기는 하루 동안을 채우지 못한다.’는 구절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인간의 권세도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 나온 이야기이지만 나에게는 이 말들이 여러 가지 의미로 다가옵니다. 사람 위에 서고자하는 명예와 권력은 결국에는 스러지고 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을 안고 함께 나가는 가랑비는 작은 손짓으로 결국 누리를 적시게 될 것입니다. 자신만을 아는 강하고 곧은 마음은 부러지지만 자신을 낮추고 사람을 바라보는 유연함은 휠지언정 부수어지지 않습니다. 관상쟁이의 말이 단순한 반어가 아니라 본질을 꿰뚫는 옳은 말인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됩니다.

산천과 미물을 바라보는 선인들의 태도에서 이러한 마음을 다시 한 번 깨닫습니다. 여러 철 동안이나 들끓으며 성가시게 하는 파리를 보며 굶어죽는 서글픈 백성들을 생각하는 정약용의 마음은 이와 다르지 않겠지요. 흉악한 외모에 그저 부질없다고 여겼던 박쥐를 바라보며 ‘형과 질에 따라 차별을 둘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하던 선인의 지혜가 놀랍습니다. 이것은 은혜로운 동물이었던 고양이가 마음에 따라 해로운 동물이 되기도 하였던 것과도 비슷한 이야기라고 생각됩니다. 마음을 달리함에 따라 마음속에 어떤 것의 가치가 달라지는 것을 잦게 봅니다. 사람의 편의에 따라, 우리에게 주는 이로움과 해로움에 따라서 말이죠. 그러나 어떠한 기준에 따라 가치가 매겨진 미물이라 하더라도 결국 자연 속에서 바라보면 각각의 존재 이유로 살아가는 우리와 같은 생명체들입니다.

하물며 이러한 미물들뿐 아니라 우리 인간들 또한 어떤 가치기준에 따라 서열화될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질서지울 수 있는 것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사람됨’이라는 추상의 기준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그 구조는 수직적인 것이 아니라 수평적인 구조가 되기를 바랍니다. 떡볶이 사장님의 푸진 인정을 가슴에 담고 떡볶이와 함께 무르익어가는 저의 생각들이 해가 갈수록 또한 깊어지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오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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