쥬니

 

안녕하세요. 저는 대한민국의 일반 중학교 중에서는 거의 유일하다고 할 법한, 학생들이 기획부터 최종 편집까지 모든 과정을 책임지는 모 중학교의 신문편집부 멤버입니다. 구체적인 학교 이름과 직위(?)는 밝혔다가 여러 가지 위협이 생길 수 있을 것 같아 추후 관심 있으시면 밝히겠고요. 그냥, 이런 문제 제기를 해보는 것도 재밌지 않을까 싶어 이렇게 투고를 해봅니다.

저는 사실 두 번 정도 학교에서 운영하는 매체에 참가한 적이 있습니다. 교장 선생님 퇴임 기념으로 발간된 교지를 제작하는 교지편집부에 원서를 내면서, “새로운 느낌의 신문을 만들어 보겠다.”는 각오로 들어왔었지요. 하지만 딱 한 번의 편집부 회의 이후, 저희는 다시 모여서 구체적으로 어떤 방향으로 교지가 제작되는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그냥 3학년 선배들이랑 담당 선생님들이 정해놓은 것을 일방적으로 따라가기만 하는 수준이었으니까요. 그게 못내 아쉬웠었습니다.

그리고 2학년이 되서, 학교 소식지를 만들 때 기사를 하나 냈던 적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정말 재미없었던 체육대회 관련 기사에 대한 내용이었는데요. 저는 비판적인 평가를 담아 그 기사를 작성했었습니다. 하지만 그 기사를 담당 선생님께 갔다 드리니 깔깔 웃으시면서 “그래도 칭찬도 좀 해야지.”라는 말씀을 하시더군요. 뭐, 기사라는 게 중립적인 입장에서 써야 하는 경우도 있으니 그 경우에는 제가 기사를 잘못 쓴 셈이긴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일을 겪고 나니 두 개의 큰 의문이 들더군요.

첫 번째, 보통 각 학교에는 그 학교를 대표하는 교내 신문이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 신문들이 다루는 그 학교 학생들의 이야기는 상당히 적은 편입니다. 기껏해야 수련회, 수학여행 다녀오고, 좀 더 지면이 남으면 참관 수업 다녀온 거나 외부 상을 타온 것을 보도하는 기사 정도나 남지요. 대체 예산의 일부분을 사용하고, 학교를 대표하는 신문이라고 스스로를 칭하면서, 왜 정작 학교의 주인인 학생들의 살아있는 이야기를 담는 것은 그리도 어려울까요?

두 번째, 학교 신문의 주도권이 왜 학생들한테 없는 걸까요? 결국 학생들의 이야기는 학생들 스스로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것이고, 학생들이 학교의 주인인데 말이지요. 대체 왜 우리는 항상 우리의 돈으로 만들어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형편없고 재미없는 학교 신문을 받아봐야 했던 걸까요?

그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3학년이 된 뒤 새로 구성된 신문편집부에 경력직(?)으로 입사하면서 제일 먼저 1, 2학년 후배들과 선생님께 신문 예시를 통해 드린 말씀이 있습니다. 아래의 내용이 바로 그 내용입니다.

우리의 학교 신문은 뭐가 되어야 할까요?

그동안 우리에게 학교 신문은 그저 학교 신문이었습니다. 교장선생님이 좋은 말씀 한번 하시고, 가정통신문에서나 한번쯤 본 듯한 이야기를 보았지요. 차라리 가정통신문을 엮어서 보는 게 더 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한 학생은 이렇게까지 이야기를 하더군요.

“신문이라고 덩그러니 놓여있는걸 나눠주면, 거기에는 빽빽한 글씨와 딱히 관심 없는 이야기들만 가득했습니다. 누군가는 분명히 그걸 열심히 편집했겠지만, 알게 뭡니까. 나한테 재미가 없는데요. 근데 학교에서는 왜 가져가라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가방에 싸서 가져갈까 하다가 그냥 버리고 갑니다. 저 신문을 만드는데 쓰인 종이가 아깝습니다. 정말로요.”

학교신문은 학교 안의 이야기를 하는 신문입니다. 그리고 누가 뭐라고 해도 학교의 주인은 학생입니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학생한테 학교신문은 학교의 주인인 학생의 이야기를 하는 신문이라기 보단, 학교에서 일방적으로 발행하는 종이뭉치(쓰레기)였을 겁니다.

이제, 지금부터 ‘일방적으로 만들어진 종이뭉치’가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는 신문’을 만들고자 합니다. 처음 발을 딛는 친구에게도, 1년이 지나 익숙해진 친구에게도, 1년 있으면 졸업할 친구들이 모두 “아, 이거 내 이야기다!” 하는 신문을 만들고자 합니다.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글씨, 한번쯤 고민해봤을 이야기를 싣고자 합니다.

많은 관심과 기대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이게 바로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다!’ 싶은 내용이 있었는데 학교 신문에 실리지 않았다거나, 정말로 학교에 있는 모두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주저 말고 신문부실의 문을 두드려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학교에 있는 동안만큼은 신문부실의 문은 여러분을 위해 열려있습니다.

이만 글을 줄입니다. 재밌게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이야기>를 만든 또 다른 ‘우리들’이 드림


각기 품은 이상이 달랐을 수는 있지만, 적어도 제가 품고 있던 이상은 저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이야기가 담겨진 신문. 학교 선생님들이 배구치고 농구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배구하고 농구한 이야기가 담겨있는 신문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학교신문이라는 이름을 달고 수많은 예산을 소요하는 신문의 정체성이고, 그것이 참된 학교 신문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지도교사였던 A 선생님도 저랑 비슷한 생각을 갖고 계셨고, 애들도 어느 정도 그런 방향성에 동의를 했었기에 생각보다 순조로운 작업이 가능했습니다.

초기에는 굉장히 열악했습니다. 편집할 공간이 없어서, 학교 영어전용실(말하기 연습용으로 깔아놓은 컴퓨터가 있었습니다)에서 작업을 해야 했었으니까요. 게다가 제가 그 때 하필 가족여행이 겹치는 바람에, 첫 편집회의에 나가지 못하게 되서 후배들과의 거리가 약간 벌어졌었습니다. 그렇게 돌아와서 이런 저런 일을 하다 보니, 저와 제 친구가 애들을 점심시간에 무리하게 불러 애들과 갈등이 심해지고, 게다가 제 친구가 선생님과 갈등을 빚는 바람에 15명 정도 됐던 신문부가 딱 10명 정도로 줄어들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그 떠난 사람들은 3학년, 2학년 등의 신문이나 글이라는 걸 좀 써봤던 경험자들이었습니다. 참 슬펐죠. 어떻게 해야 하나 답답하기도 했고. 제 친구는 이 신문이 제대로 굴러갈 리가 없다며 나오라고 하기도 했었고요. 하지만 이왕 시작했고, 아직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한 꿈을 접을 수는 없었습니다. 선생님과 함께 애들을 추스르고, 남은 사람들을 모아 마저 신문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 사이 학교에서는 고맙게도 신문편집실을 배정해 주었지요.

배정된 신문편집실의 시설이 솔직히 그리 좋지는 않았습니다. 프린터는 예산을 들여 아주 좋은 걸 사줬었지만, 컴퓨터는 컴퓨터실에서 쓰던 구형 컴퓨터를 폐기하는 대신 들고 와서 연결했었고(뭐, 기사 작성하는데 큰 무리는 없었습니다.), 동아리방은 학교 맨 끄트머리에 둬서 그 근처에 반이 있던 저를 빼고는 상당히 접근하기 불리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여름방학이 되기 전엔 냉난방시설도 없어서, 여름에는 쪄죽고 겨울에는 얼어 죽는, 그리 좋지 않은 입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좋았습니다. 어쨌거나 저희 맘대로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긴 셈이니까요.

처음 신문을 제작하다 보니, 애들한테 미처 가르쳐주지 못한 것들이 꽤 있었습니다. 나름대로 기자라는 애들인데 타수가 빠르지도 않고, 좋은 기사를 골라내는 능력이 좋은 것도 아니고, 기사에 자신의 의견을 다는 것도 아직 미숙했고, 어떤 학교의 대소사를 잡아서 끈질기게 취재하는 것도 그다지 좋지는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싸우기도 했었지만, 차츰 시간이 흘러가면서 애들도 어느 정도는 일을 할 줄 알게 되고, 정말 신문에 열정이 있는 애들이 한 둘 들어오니 그나마 사정이 좀 나아졌습니다. 의견 차이가 있어 신문 발간이 늦추어 진다거나 하는 해프닝은 몇 번 있긴 했었습니다.

근데 사실 가장 아쉬웠던 건, 애들과의 갈등도 수습하고, 무언가 애들이 스스로 신문을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과 제한된 시간에 쫓기다 보니 기존 학교 신문이 밟았던 길을 반절쯤은 답습했다는 점이었습니다. 편집부에서 웬만하면 교장 선생님 말씀이나 교직원 배구대회 같이, 애들이 전혀 관심 없어 할 법한 것들은 가능한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어쨌거나 최종 발행을 결정하는 건 교장 선생님과 학교 당국이었기 때문에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나마 저희 학교는 조금 유연하게 신문이 발행됐었지만, 만약 학교 당국이 재미없는 신문을 계속 답습할 생각이 있다면, 신문편집부로서 그것을 막을 방법은 없던 셈이지요.

지면상의 문제도 있었습니다. 애들이 아직 능숙하지를 못해서, 한 달 안에 (격주 발행이지만, 총 두 팀이 번갈아서 신문을 발행했거든요.) 교정 및 최종 편집까지 완료해야 하는 신문이 제작되는데 애로사랑이 적지 않게 있었습니다. 그래서 신문 면수가 2면으로 제한됐었고, 그나마도 1면은 NIE 신문 성격으로 발행이 되었습니다. 그나마 주제를 학생들이 관심 있어 할 만한 주제로(사교육, 셧다운제, 입시 같은 것을 다뤘습니다.) 다뤘기에 망정이지, 정말 재미없는 주제로 NIE가 발행됐었다면 정말 꿈도 희망도 없었을 겁니다.

이런 이야기를 2011년 최종호를 마치고 신문편집부 회식에서 넌지시 이야기를 꺼냈었습니다. 그 때 나온 말은, 첫 술에 배부르라는 법 없다는 것이었고 아직 토대를 잡는 과정이었기에 저희가 겪었던 시행착오가 내년이 되면 줄어들 것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근데 내년에 신문부가 그대로 지도교사가 유지될지, 아니 유지가 되기는 할지 확신을 못 하거든요. 학교당국의 결정에 따라 얼마든지 존폐여부가 갈릴 수 있으니까요. 이런저런 걱정을 하다가, 회식이 끝났습니다.

그냥 이렇게 저희 학교 신문부 이야기를 길게 다뤘던 건, 과연 지금 학생들의 이야기를 전해야 할 학교 신문의 실태가 어떤지 <오승희>에서 한번 알아봐 주시면 어떨까 싶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학교라는 곳은 배움의 장소이기도 하지만, 비슷한 나이대의 또래들이 이루어나가는 하나의 사회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 사회의 여러 의견을 조화롭게 담아내는 것이 학교 신문이라는 것이 저의 생각이기에, 과연 지금, 한국의 학교 신문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궁금해 졌습니다. 특목고나 자사고같이 예산도 많고 이런 저런 경험이 많은 학생들이 만드는 신문과, 일반 고등학교의 신문, 또는 일반 초중등학교의 신문이나 국제중의 신문을 비교해 보는 작업 같은걸 해주시는 건 어떨까 싶어 이렇게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이야기를 실어봅니다. 그리고 혹시 저희 학교의 신문부가 특이케이스라고 생각해 한 번 알아보고 싶으신 생각이 있다면, 2011년에 발행된 1호부터 8호까지의 신문을 제공해드릴 용의가 있습니다. 관심 있으시면 appel2994@naver.com으로 연락 주셨으면 합니다. 비록 특목고에 지원해 1차를 붙었다가 2차에서 떨어졌던 학생이고, 현재는 대학 서열화에 따라 정해진 명문대학으로의 진학을 생각하고 있는 속물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적어도 그 속물적 의도가 아닌 다른 의도를 가지고 그 학교들을 꿈꾸고 있고, 학교라는 곳이 학생들을 위해 존재할 수 있는 사회로 바뀌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두서없이 써내려가 죄송하기도 합니다만, 한 번 이런 주제를 가지고 생각해 보시는 것은 어떨까 싶어 이렇게 글을 남겨봅니다.


쥬니 님의 글 잘 읽으셨죠? ‘학교신문’에 대한 사례를 오승희 투고게시판에 보내주세요!

보내주신 글들은 언젠간 나올 (ㅠㅠ) 제15호에 실리게 됩니다!

 

Posted by 오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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