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창 시끄러운 북한 인권 문제. 그 문제로 양쪽의 논객들이 갑론을박하는 것을 보고 있자면 쓴웃음이 절로 지어진다. 그 이중 잣대 때문이다. 군사정권 시절에는 현실론을 내세우며 민주주의와 인권의 원칙을 유보시켰던 세력이 지금 북한에 대해서는 ‘인권’의 이상론을 내세우고 있고, 마찬가지로 그 당시에는 이상론을 들고 군사정권에 반대했던 세력이 이제는 현실론을 말하며 인권의 원칙을 유보시키고 있는 모습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로 꼽을 수 있을 현실―이상의 줄다리기조차도 자신의 이익에 맞춰 선택적으로 적용한다고 생각하니 씁쓸할 따름이다.

 이중 잣대는 저 경우에서만 보이는 것은 아니다. 비교적 멀게 느껴지는 정치판을 떠나 가까운 학교를 봐도 그런 모습은 쉽게 발견된다. 예를 들어 내가 본교에서 높은 자리에 앉아 계신 선생님께 일전에 두발규제나 용의복장규제에 대해 건의를 드렸을 때 들은 답변은, 요약하자면 "해야 하는 것은 하게 해야 한다."였다. 인권적 원칙에 때로 배치되는 것이란 점을 눈감아주면, 이는 나름대로의 원칙주의요 이상론인 셈이다. 그러나 학교의 머리라 할 수 있는 분들께서 그런 정신으로 학교를 운영하신다면 왜 입시위주수업을 시행하는지는 도무지 모를 노릇이다. 교육이 학벌주의·대학입시에 종속되어버린 게, 수업시간에 수능문제집이나 붙들고 있어야 하는 게 제대로 된 것이라 여기는 분들이 진실이 아닌 물은 마시지 않으며 선하지 않은 과일은 따먹지 않는다는 건학이념이 걸려 있는 학교의 중책을 맡으실 리는 없으니 말이다. 입시위주교육에 대해 따지면 "현실이 그렇고 또 너희들이 원하기 때문이다."라 하는 학교가 어떤 것은 "해야 하니까"를 고집하는 이 모습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좋을지.

 일부 교사들도, 학생들도, 이런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이중 잣대 혐의로부터 자유롭진 못하다. 일부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규칙은 지켜져야 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그들은 등교시간이나 자율학습 등에 관한 교육부 지침이나 교칙에 관한 국가인권위원회 권고안 등은 당당하게 어기고 있다. 그러면서 이를 입시공부를 강제로라도 시키고 많은 수의 학생들을 통제해야 하는 현실의 책임으로 돌린다. 학생들도 혹 어떤 선생님께서 입시와 동떨어진 수업을 계속 한다 싶으면 현실론을 들먹이며 불만을 토로하지만 한편으로는 헌법의 원칙을 논하며 자신들의 자유를 보장해달라고 한다. 인격을 도야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하며, 민주국가 발전과 인류 공영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 이바지하게 하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라고 밝히고 있는 교육기본법 제2조는 흙발로 짓밟고 있으면서도 유리한 것은 끌어다 쓰고 있는 것이다. 하긴, 이는 학교나 교사나 학생이나 학부모나 별 차이 없는 부분일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언급한 사례가 아니더라도, 정도 차는 있을지언정 누구도 그런 이중 잣대를 쓴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고 말하기는 힘들 듯하다.

 지금 여기서 이중 잣대라고 말하고 있지만, 이는 사실 이중 잣대가 아니라고도 할 수 있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내 입맛, 내 편견에 맞는 대로, 내가 편한 대로 한다."라는 일관된 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즉, 자기 이익에 따라 적당히 끌어다 붙이고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어떤 결정을 내릴 때 현실을 무시하고 원칙과 이상주의만을 고집하는 것은 현실성이 결여된 헛소리가 될 것이며, 아무런 원칙도 이상도 없이 현실만을 바라본다면 그것은 비젼 없는 죽은 소리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익이나 자기 편의에 맞춰 현실론과 이상론을 오가는 것은 어떻든 바람직한 모습이라고는 할 수 없지 않겠는가.

 인간은 현실과 이상 어느 한 극단에 있는 게 아니다. 인간은 현실과 이상 사이 어디쯤에 있다. 그래서 나는 인간을 표현하는 많은 말들 중에서도 "서있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를 좋아한다. 대지에 발을 딛고 있지만 머리는 하늘을 향하고 눈은 멀리를 바라보는 그 중간자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만큼 우리는 자신에게 엄격해야 한다. 서있다가 다리 좀 아프면 땅에 누우면 된다고 하고, 누워있다가 질리면 서있으면 된다고 하는 변덕스러운 태도는 좀 아니지 싶다. 어느새 이중 잣대를 꺼내들려고 하는 우리의 모습을 경계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은 어렵기에, 나는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이중 잣대는 균형을 잡으려 하던 와중에 까딱 실수한 것이라고 믿고 싶다. 그런 실수를 피하는 방법, 그 정답은 상황에 따라 다르다. 그렇기에 중용이라는 애매한 말 정도로밖엔 답할 수 없다. 그렇지만 미흡하게나마 그에 대한 대답을 겸하여 마지막으로 이제는 너무 도용되어 다소 빛을 잃은 인물 중 하나인 체 게바라의 평전에 나오는 말을 인용하고자 한다.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 속에는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전주상산고등학교 유윤종
Posted by 오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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