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사가 별 거 있나, 절 하나 지어 놓고 "창간"이라는 이름을 붙이면 창간사지 뭐. 오승희를 발간하는 과정이, 꼭, 절을 짓는 과정과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주춧돌을 세우고, 기둥을 세우고, 기둥은 배흘림기둥이 어떨까, 그리고 공포를 얹고, 보를 얹고, 어? 그런데 뭔가 허전하다. 맞아, 신자들의 시주가 없구나. 그렇다, 오승희가 완성되려면, 독자 여러분의 글 시주가 절실히 필요하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언제까지 하고 싶었던 말들을 묻어두고만 살 텐가!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뭔가 하고 싶었던 말들이 있다면 주저말고 투고하시라! 훗, 이쯤이면 내 창간사의 첫 문장이 사실은 재미없는 찌질개그였다는 사실을 눈치 못 채겠지? 낄낄낄.


하나의 유령이 현대 사회에 떠돌고 있다. 귀차니즘이라는 유령이. 니체는 뭐든 다 거추장스러워하고 귀찮아하는 "최후의 인간"에 대해 말한 바 있는데, 그의 경고는 아무래도 괜한 우려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우리는 그 무시무시한 귀차니즘을 극복하고 신문(신문인지 잡지인지)간행이라는 무진장 귀찮은 짓(신문 내는 과정에서든, 뒷수습이든)을 저질러버렸다. 여하간 나는 이를 희망의 증거 중 하나라 믿고 싶다. 언제나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귀차니즘의 극복. 우리는 언론 자유를 욕망하는 어린 마음에 엔트로피를 좀 더 증가시켜 우주의 열사(熱死, Thermal Death)를 재촉하는 일에 일조하고자 한다. 요컨대 요새 유행하는 형식을 빌리자면, "아젠장/신문내게/만드네 (제목 : 귀차니즘의 극복)" 자, 우리 모두 귀차니즘 치유에 동참해볼까?

지극히 혼란한(이것도 우리 자신이 규정한 개념이지만) 세계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인간들은 그 위에 수많은 선들을 그어 두었다. 정답과 오답도 이러한 ‘선’에 의해 나누어진 개념이다. 정답 없인 오답이 존재할 수 없고, 오답 없인 정답이 존재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오답을 ‘없애야 할 것’으로 규정함과 동시에 정답에게 상대적으로 많은 권력을 부여했다. 오답이라고 승리하지 못할 법 있는가? 우리의 움직임은 정답에게 많은 권력을 부여하려는 ‘정'에 대한 ‘반'이다. 일차적인 목표는 ‘오답의 승리'이겠으나, 궁극적인 목표는 ‘합'이다. 우리는 정답과 오답이 각자의 가치를 인정받는 사회를 꿈꾼다.


중학교 축제 때, 한 학교 밴드에서 자우림의 "오렌지 마멀레이드"를 불렀다. 왠지 와 닿는 가사들…. "별다른 욕심도 없고, 남다른 포부도 없는" 우리들을 묘사한 듯했다. 세상은 지루했다. 난 정말 모든 사람들이 날 내버려두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런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ㅡ모든 사람들이 나와 같이 언제까지 지루하지 않는 것. 이 신문을 통해 우리들의 "어딘가 조금 삐뚤어져버린, 머리엔 생각만 가득히" 찬 모습을 마음껏 보여주었으면 한다. 우리의 생각을 담아서 조금 더 머리를 가볍게 만들어주는 신문…. 이제 더 이상 지루한 세상은 없겠지? 오승희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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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쎄, 뭐 이런저런 골치 아픈 소리들은 늘어놓고 싶지 않다. 다만, 우리 시대 인정받는 소설가 중 한 사람인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하는 바, 우리는 <상실의 시대>에 살아가고 있을 따름이다, 라고 나는 생각하는 따름이다. 이를테면, "우리는 지금 <개념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라고, 나는 감히 말할 수 있다는 거다. 뭐랄까, <황우석의 논문은 조작된 것이었다>를 발음하는 기분으로, 나는 그것을 발음할 수 있다. 하지만 왠지 이런 중대한 사안을 함부로 발설해서는 안 될 듯한 기분이라 기자회견을 통해 밝히고 싶지만, 어럽쇼, 기자들이 모두 개념상실증후군에 걸렸는지 아무도 기자회견장엔 안 오는 거다. 그래서 나는 <살균세탁 하셨나요>를 찍는 한가인의 기분으로, 이 글을 쓴다. 뭐 그런 느낌이다.

 그러니까 요는, 아무도 기자회견장에 안 와서 아무 말도 못하는 그런 답답한 기분이라는 거다. 백일장을 쓰라고 해서 썼는데, 그래서 무지 열심히 해서 썼는데, 읽어보긴 읽어봤는지 당최 모르겠고 입상자명단에는 당최 오르지를 않는 그런 호랑말코 같은 기분 말이다. 사실 백일장 입상자에 내가 올랐으면 하는 이유는, 상품도 상품이지만 실은, 다른 애들에게 내 글이 보였으면─ 싶은 마음 때문이 아니냐 이거다. 솔직히 못쓴 것도 아니다. 근데 쓴 걸 가지고 검열을 해서 좀 뭔가 있어 보인다 싶은 것들만 살짜쿵 입상자명단에 올리고 나머진 쓰레기장으로 ㄱㄱ? 아니 이런 웃기는 사람들이 있나 싶은 그런 마음인 거다. 그걸 주인한테 돌려주면 몰라, 또 지들이 알아서 처분하고 돌려주지도 않는다. 그래서, 그래서 말이다. 우리는 글 써주는 그대로 실어주기로 했다. 아니 실은, 실을 거리가 그닥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뭐 그렇게 말하기는 좀 쪽팔리잖아. 어쨌든 우리도, 체면이라는 게 있기는 있어서. 하여간에 그래서 요지는, 글 좀 써서 보내 주십사─ 인거다. 허 참, 뭐 사는 게, 그렇고 그런 거겠지.

 뭐 그렇게 하다 보니까, 당연히 기삿거리는 없다. 우리도 사실, 돈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뭣보다도, 한 시간에 천원인 피씨방과, 한 게임에 천오백원인 볼링장과, 한 시간에 오천 원인 시내 노래방과, 한 시간에 만 원은 가뿐히 뛰어넘는 동네 노래방과, 한 권에 이백 원인 별로 인기 없는 만화책과, 한 권에 오백 원인 신간 만화책과, 한 권에 칠백 원인 판타지소설과, 컷트에 오천 원인 동네 미용실과, 이만 원은 가뿐히 소화하는 시내 미용실과, 만 원은 투자해야 될 듯한 친구 녀석 생일선물 등등을 모두 커버해야 하니까 말씀이다. 그래서 돈이 없으니 발간할 수 있는 지면은 한정되어 있고, 게다가, 투고는 받아야겠고, 그래서, 기사는 없다고는 하지만, 실은, 기사 써봤자 봐줄 사람도 없을 테고, 실은, 기사 쓸 사람도 없고, 실은, 기사 같은 거 쓰기도 골치 아프고, 그러니까 요지는, 기사니 뭐니 때려치우고 투고만 받기로 했다는 거다.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다음 뉴스, 네이버 뉴스, 한미르 뉴스, 라이코스 뉴스, 네이트 뉴스, 야후 뉴스, …… 헉헉헉 ……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 세계일보, 문화일보, 한국일보, 경향신문, 한겨레신문, 매일경제신문, 한국경제신문, …… 헉헉헉 ……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딴지일보 등등의 셀 수 없이 많은 신문들이 서로 알려주려고 경쟁하고 있으니, 굳이 우리가 책임지지 않아도 될 듯해서 말이다. 뭐, 그러고 보니, 기사가 있으면 어떻고 없으면 어때, 우리가 이렇게 낸다는데, 배 째라지 하는 생각도 들고, 아니 뭐 그냥 귀찮아서, 하여간에 뭐 그렇다는 거다. 그래서 우리는 머리 아프게 객관적인 기사니 어쩌니 그런 거 안 쓴다.

 이과 분들껜 죄송한 말씀이지만, 논술이라고 써봤으면 알거다. 그 개념 없는 새퀴들이 뭐라고 찌질대는지 말이다. 씨바. <구어체 즐, 문어체만 쓰삼>이라든지 <제목 붙이면 죽여버림>, 또는 <물어보는 거에나 대답하세염> 뭐 이런 건 어느 정도 봐 줄 수 있다. 뭐 나름대로 시험치는 거니까 말이다. 아니 그런데, <자신을 드러내는 표현을 하지 말 것>이란다. 자기 생각을 쓰라고 해놓고는 자신을 드러내지 말라니, 한 마디로 주관적인 글을 쓰면서 객관적인 척하라는 소린데, 아니 뭐 이런 후천성개념결핍증에 걸린 작자들이 있는지. 이래서야 뭐, 제대로 쓸 수 있는 게 있겠나 싶은 생각이 머리 속을 급습해 <아버지는 말하셨지 인생을 즐겨라>를 외치고 있는 판국에, 정말 죄송한 말씀이지만, 우리가 딱 그 꼴 나게 생겼다. 아니 무슨 일제강점기 때 조선광복을 위해 결사단체를 만들어 지하신문을 찍어내는 것도 아니고 말씀이다. 우리 이 신문 찍어내다 걸리면 정학, 퇴학 이런 거 맞지나 않을까 걱정하고 있단 말씀이다. 뭐, 대략 좋지 않은 쪽으로 전교급 입신양명 하는 정도야 대략 겪어야 할 혹독한 가시밭길 따위로 참고 견딜 수 있지만, 우리는 그렇다 치고 신문에 글을 내실 분들 말씀이다. 쥐도 새도 모르게 교무실 한 쪽 구석으로 끌려가서 <배후가 누구냐> 따위의 고문을 받는다거나 말이다. 그래서 웬만하면 누가 글을 써서 내는지 밝히지 않으려고 한다. 뭐, 밝히고 싶으신 분이야 밝히셔도 상관없지만 말씀이다. 아무튼 그런 익명투고자의 글은, 철저히 신분을 밝히지 않을 테니 안심하시길 바란다. 설령 우리가 교무실로 끌려가서 <이 글 쓴 새퀴가 누구야> 하는 고문을 받더라도 말씀이다. 우리도, 박카스 사먹을 돈은 없지만, 지킬 건 지킨다.

 오답 승리의 희망. 이 이름 꽤나 뽀대나지 않나? 뭔가 심오한 뜻이 있어 보이고 말이다. 줄여서, 오승희다. 어럽쇼, 이게 웬걸 사람 이름이잖아, 랄까 하여간 전국의 성명 오승희 되시는 분들께 깊이 사죄의 말씀 올린다. 이름에 무슨 뜻이 담겨 있냐고? 글쎄 알 게 뭔가. 개념을 살균세탁해버린 세상, 대충 살다 뒈지는 거겠지 뭐. 이거야 원, 한바탕 후련하게 기자회견을 해버린 기분이랄까, 싶지만 어쨌든 빡센 세상이다. 씨바. 지금까지 어쨌거나 살아온 당신이 정말 놀랍고, 뭐 어쨌든, 세상은 그렇게 굴러가는 거고, 에구 나도 뭐라고 왱알앵알인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고, 하여간 그래서, 이 장문을 여기까지 전부 읽으셨다면 어이쿠, 감사드리고 뭐 어쨌든 이래 뵈도 신문 창간사인데 이따구로 써도 될지 모르겠고, 우라질 될 대로 되라지, 하는 기분으로, 글을 맺는다.

※ 덧붙임
사외(社外) 기고는 본보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Posted by 오승희
♤ 힘들고 괴로웠었지만, 그래도 학교에 오니 웃음만 나더라. ^_^;

♠ 모두 하고 싶은 일을 향해 노력하자.

♡ 애증 가득가득-3-

♥ 서로 사랑할 시간이 모자랐다. 앞으로 더 사랑하자.

♧ 벌써 졸업이네 ㅎ

♣ 끝까지 애들 발목잡아주는 쌤들 원츄. 할 말이 뭐 있겄냐 단 거나 많이 드셔.

◉ 너네, 기숙학원 미리 알아둬.

◈ 이 학교에 온 걸 후회하게 될 거다!

▣ 3년 전이 까마득-. 벌써 졸업? 감개무량하다.

◐ 더 다니고 싶다.

◑ 다시 오고 싶다.

♨ 학교의 변함없는 발전을 부탁드립니다.

☞ 그립다 친구여~!

→ 정말 시원하다.

∇ 오늘이 마지막이구나…. 아무쪼록 다들 행복하길….

※ 삼 년 동안 열심히 공부해온 친구들, 이제 서로의 꿈을 향해 한 발짝 내딛는 시기에 좀 더 노력해서 그 꿈 이루길 바라.

◁ 화이팅! 친구들아 우리 우정 변치말자!

◀ 급식소 설문조사는 갤럽으로 비싼 돈 주고 배달하면서 그보다 더 필요한 교원평가제를 왜 하지 않는가. 재수생 양산 학교의 책임을 왜 숨기려 하는가. 학교는 과연 우리를 생각했는가.

▷ 수고했습니다.

▶ 재수생 양산 학교 각성하라! 교원평가제 도입하라!

㉿ 끝을 정한다는 것은 새로운 시작이 있을 거란 이야기겠죠. 그것들은 다 연결되어 있는 유기체를 인위적으로 나누어 생각해보는 것이지만... Divide&Conquer(=분할정복)

☎ 현역에서 물러나려니 채 이루지 못한 일이 아쉽지만, 후임들이 잘 해주리라 믿습니다. 변화란 게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는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학교를 변화시킬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믿는 자에게 구원이…(퍽!)
Posted by 오승희
☆ 솔로부대를 제대하고 나니까 생활이 윤택해졌지 말입니다.

★ 선생님들! 변별력 높인다고 시험범위 밖에서 좀 내지 마세요. 그건 학생한테 하는 "거짓말"이에요. 선생님들은 거짓말쟁이? 그리고 시험 좀 성의 있게 내주시면 감사하겠음!

○ 학교는! 겨울에 히터에서 찬 바람이 안 나오게 해달라!

● 아작아작-.

◎ 제군. 나는 로리가 좋다. 그 가는 발목이 좋다. 그 동그랗고 한없이 귀여운 눈동자가 좋다. 그 해맑은 웃음이 좋다. 그 아담한 사이즈가 좋다. 아무튼 좋다. 너무나도 좋다. 따라서 나는 소망한다. 무한의 로리를!

◇ 로리보단 누님연방 ㅈㅅㅈㅅ

◆ 고3이 되니 잠시 그녀를 잊고 솔로부대에 입대하려 합니다…. 그녀는 날 이해해 주겠죠?

□ 치마는 추워요 ㅠ

■ 꼭 필요한 경우에는 일치를/애매한 경우에는 자유를/어떠한 경우에도 사랑을. (성 프란체스코)

△ 고3은 병이라고 합디다. 그딴 병, 아무도 안 걸렸으면 좋겠습니다.

▲ 한 교육계 분이 "학생들이 학교에 불 지르지 않고 잘 다니는 건, 정말 기적 같은 일이다."라고 하셨다더군요.

♱ 선생님들, 사람 때리는 건 자랑이 아니예요 ㅠㅠ
Posted by 오승희
 아마 대한민국의 학생들, 혹은 학생이었던 사람들이라면 아마 한 번쯤이야 들어보지 않았을까 싶은 말이 있다. 이 말은 주로 교과서나 각종 수업 준비물을 미처 확보하지 못했을 시 주로 듣게 되는 것으로, 아마 이 말을 들으며 분노의 불길을 태워보지 않은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 필자의 의견이다. 이 역사 깊고 유세 있는 문제의 말은 바로 이것, "군인이 전쟁터에 총 안 가져가는 거 봤냐?"이다. 동의하지 않는다면 할 수 없지만, 동의하는 사람들이 적어도 반은 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측해본다.

 이 말을 기초로 해 약간의 첨삭, 수정을 거쳐 듣게 되는 말들은, 굳이 따지자면 상당한 어폐가 있다고 생각된다. 물론 분명 수긍 가는 점도 있으며 저런 말을 듣는 상황 자체가 청자의 실수로 인한 것이 대부분이니 딱히 상황에 맞지 않는 말의 인용도 아니다. 하지만 듣고 있으면 상당히 짜증이 나는 것도 사실이다.

 일단, 목숨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총과 평범한 일상생활의 소품인 수업 용품에는 상당한 격차가 있다. 물론 학교와 교실도 나름대로 목숨을 걸어야하는 장소임에도 틀림은 없지만 극한 상황인 전쟁터의 필수품인 총과 교과서, 필기구를 비교하는 것은 상당히 힘들지 않을까. 정말이지 극단적이고 너무도 비약적인 비유가 아닌가. 물론 이 이유보다는 그저 본능적이라 해도 좋을 반감과 반항심에 짜증을 내는 것이 더 큰 이유일 것도 같지만. 이것은 쓸데없는 억압이다.

 무슨 의미인가는 일단 제쳐두고, 이 이야기도 그렇게 재미없는 주제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필자가 진짜 하고 싶은 얘기는 다른 쪽이다. 이걸 격언이라고 해야 하는지, 명언이라고 해야 하는지, 아니면 단순히 흘러 다니는 말이라 해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순간의 굴욕을 참지 못하고 목숨을 내던지는 것은 멍청한 짓이다."라는 말. 소설이나 만화를 즐겨보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보지 않았을까 싶은 말이다.

 어떻게 인용한 것이라 설명해야 하는 지는 애매하지만, 이 말이 구속적이고 압박감을 선사하는 학창생활이나 괴로운 세상살이에 대한 충고에 몇 번이고 인용되는 것을 들어봤다. 그다지 나쁜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학생이 학교생활을 참지 못하고 도망친다면? 억압된 현실보다 자신이 꿈꾸던 일을 하겠다며 박차고 일어선다면? 적어도 이 사회에서는 ‘상당히 힘겨운 생활’을 넘어서 실패를 향한 지름길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행동이 될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조금 이상한 비유가 될지 모르나, 그 순간의 폭발을 억누르지 못하는 것은, 일반론으로 보아 확실히 멍청한 짓이기는 할 것이다.

 그런데 그와는 반대로, 필자가 흥미롭게 본 만화책에서 나온 인상 깊은 말이 있다. "도망쳐 도착한 곳에 낙원은 없다."라는 말이다. 위의 말과 이 말은 꽤 많이 흘러 다니는 말이지만 어떻게 보면 서로 상반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굴욕을 참고 목숨을 건지라는 말. 그리고 안위를 위해 도망친 곳에 행복은 없다는 말.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굴종해 흐름대로 살아가는 것. 이것을 도망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낙원이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곳이라고 해석한다면, 위에 언급한 경우들은 행복을 포기하고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훗날에는 행복할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현 사회상을 보며 꼭 그것도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언급한 두 말들의 주관적인 해석과 빗댐은 그렇다 치더라도, 생각해보면 그 말이 인용되는 부분을 거꾸로 뒤집어도 말이 들어맞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실에서 도망치려는 사람들에게 도망으로 행복은 구할 수 없다는 말이 잘 들어맞을 것이다. 목숨이라는 단어를 좀 순화한다면, 당장의 굴욕은 있더라도 실질적인 이득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는 다른 길을 찾으라는 식의 비유도 가능하다. 결국, 알아서 써먹기 나름이다.

 이건 말의 양면성이며, 동시에 현실의 양면성이다. 동시에 어느 쪽으로 향하든지 그것은 스스로의 판단이자 의지라는 것도 깨달을 수 있다. 이것은 하나의 스프링, 용수철과 같다.

 이백 원짜리 볼펜을 분해해 안의 작은 용수철을 꺼내 가지고 논 기억이 있다. 그 끝은 대부분 억누르는 힘에서 해방되어 허공으로 솟아오른 용수철의 실종으로 끝을 맺었는데, 여기에서 양방향으로 흐르는 힘에 따라 날아갈 방향을 정하는 용수철의 성질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위에서 언급한 현상들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써먹기에 따라서 어느 방향으로든 날아갈 수 있다.

 일단 용수철이 힘을 가지려면, 자신을 억누르는 힘이 필요할 것이다. 이것은 사회의, 제도 등등의 현실의 억압이다. 그리고 스스로의 의지나 미래의 희망, 삶의 즐거움도 억압과 상극을 이루는 힘이다. 이 압력들이 좋은 균형을 이룬다면, 용수철은 힘을 모은 채로 세상에 머물 수 있다. 그러나 이 압력이 너무 강하거나, 균형을 이루지 못한다면? 용수철은 머금은 힘을 한 방향으로 거칠게 표출할 것이다. 혹은 완전히 능력을 상실할 것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현 사회의 압력들은 전혀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균형을 이루고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도 긍정적 압력과 부정적 압력이 균형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양쪽 모두에서 부정적 압력이 가해져 억지로 균형을 이루고 있다.
어쨌든 용수철은 모은 힘을 폭발시켜 힘을 얻기 위한 용도를 가지고 있다. 용수철을 꾹 눌러 어디론가 그 힘을 분출해 날아가게 하려면 무엇들이 필요할까? 바로 강한 지지대다. 위에서 말한 긍정적 압력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용수철은 자신을 받쳐줘 방향을 잡게 해줄 지지대가 필요하다. 지지대가 약하거나 존재하지 않는다면, 용수철은 힘을 발휘하지 못하거나 엉뚱한 방향으로 사라질 것이다.

 사람들은 용수철의 방향을 잡아나간다. 압박적인 현실을 지지대로 삼아 이탈, 일탈할 수도 있고, 자신의 의지나 미래의 희망 등을 지지대 삼아 오히려 현실 속으로 거칠게 날아들 수도 있다. 그 어느 쪽, 양면의 어느 쪽을 고르더라도 용수철은 날아오른다. 바로 양방향성. 의지와 각오로 만들어낸 지지대에 따라 어느 쪽으로든 날아갈 수 있다.
어느 쪽이 옳다고 할 수 있을까? 증오스런 현실, 현실에서 얻을 수 있는 미래와 안정. 이 둘 중에 어느 지지대를 선택하더라도 각각 나름대로의 길이 존재할 것이다. 그것을 판단하는 것은 용수철의 소유주 스스로이다. 누구나 명심했으면 한다. 힘을 지닌 용수철은 누구나 가지고 있으며, 우리들은 그것을 원하는 방향으로 쓸 수 있다. 그 누구라도. 모든 사람들이 자신만의 올바른 방향을 잡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어떤 종류의 국민들과, 주로 학생들을 둘러싼 존재들에게 말하고 싶다. 용수철은 강하게 억누르면 억누를수록 거세게 반발한다. 그 여러 존재들로서는 용수철이 힘을 현실로 뿜어내 자신에게 힘을 더해주기를 기대할 것이다. 그렇다면 너무 억압하지 말라. 너무 거센 압력은 용수철을 아예 망가뜨릴 것이다. 혹은 완전히 잘못된 방향으로 날아가게 할 수도 있다. 그것에 주의했으면 한다. 용수철이 자신이 원하는 방향을 찾을 수 있도록, 그리고 적절한 힘을 모을 수 있는 사회의 힘을 기대한다.


평택한광고등학교 김정욱
Posted by 오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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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Posted by 오승희
 (이 글은 사건 당사자의 허락을 받고 썼음을 밝혀둡니다.)

 2005년 12월 14일 오전 119 소방차 한 대가 고등학교에 들어온다. 그리고는 "쟤 수능 못 봤어요?" 같은 이야기를 신관 아래쪽에서 교감 선생님을 비롯한 선생님들, 몇 명의 아이들과 주고받더니 소방관 아저씨 한 분이 멋진 자태로 신관 옥상에서부터 로프를 타고 내려온다. 잘 보니 신관에 투신하면 여기 걸려서 멈추라고 해놓은 듯한, 아니, 창문에 비 들이치지 말라는 의도로 만든 듯한 3층 창문 위쪽 파란 돌출부에 한 학생이 앉아있다. 애초에 그 위에 어떻게 왜 올라간 건지도 수수께끼다. 소방관 아저씨는 그 학생에게 로프 묶는 옷을 입히고 로프를 묶어서 아래로 내려 보낸다. 이런 상황에 대한 가장 상식적인 해석은 역시 자살 소동. 하지만 세간의 상식을 벗어난 일은 너무나도 자주 있는 법이다.

 내가 그 사건을 목격하게 된 것은 할 일도 없는 고등학교 3학년생의 본분을 다 하기 위해 친구들과 모닝PC방을 뛰고 오던 길에서였다. 교감 선생님을 비롯하여 몇몇 선생님들이 신관 4층 언저리만 쳐다보고 계셨다. 웬 일인가 했더니 평소에도 미친 짓을 많이 하기로 이름 높은 3학년 ㅇ군이 그 파란 돌출부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있는 게 아닌가! 사실 그 순간 위험하다는 생각은 안 들고 "이젠 별 짓을 다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은 그 녀석이 얼마나 악명 높은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다.

 그러나 4층에 올라가서 창문으로 아래를 내려다보니 그런 생각도 싹 가셨다. ㅇ군이 앉아 있는 파란 돌출부는 예상 외로 좁고 게다가 경사져 있었으며, 높이도 목숨에 위협을 느낄 정도였다. 옆에서는 국어과 사무실에서 오신 국어 선생님들 몇 분이 계셨고 애들도 몇 명 있었다. 3층에서는 ㅍ 선생님과 그 반 아이들이 회화 수업은 안 하고 열심히 구경을 하고 있었다. 나중에 들으니 ㅍ 선생님은 디카로 그걸 찍기까지 하셨다고 한다.

 어떻게 내려간 것이냐고 묻자 402호 창문으로 해서 내려갔다고 하는데, 그 좁은 창문으로 몸이 통과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신기한 일이다. 창문으로 다시 못 끌어올리느냐고 했더니 아까 시도해봤지만 높이가 높고 벽면이 미끄러워서 무리라고. 지금 상황은 119에 신고는 해놓고 기다리는 중.

 구조 받을 때 거추장스러울 거라면서 ㅇ군이 창문 쪽으로 올린 웃옷은 국어 선생님 중 한 분이 받으셨다. ㅇ군은 휴대폰으로 어디다가 문자를 보내면서도 "그냥 떨어져 뒈져라, ○○○!"를 외치는 ㅅ군에게 "죽을래~!?" 등의 답을 하며 말싸움을 하다가 ㄱ 선생님의 "너 조용히 좀 못 있어!" 호통 한 마디에 잠잠해졌다. 그러다가 심심한지 "이 몸이 새라면, 이 몸이 새라면, 날아가리― 저 멀리 보이는, 저 멀리 보이는, 흰 구름까지―" 같은 노래를 부르는 것도 사실 꽤 가관이었다. 

 결국 119가 도착, ㅇ군은 무사히 구조되었다. 소방관 아저씨가 "공부 안 하려고 별 짓을 다 하는구만."과 같은 꾸중을 하며 로프를 묶어 주셨다 한다. 내려간 뒤에 담임선생님, 당시 수업 담당이셨던 논술 선생님 등에게 꾸지람을 들을 때는 그리 마음 편하지는 않은 듯 보였지만 역시 ㅇ군은 상황을 즐기고 있었던 듯하다.

 나중에 거기 있던 이유를 물었더니 대답은, "논술 수업을 받다가 하도 답답하고 짜증이 나서 말야. 거기서 보면 경치가 좋을 것 같아서 내려갔는데 벽면도 미끄럽고, 팔 힘이 부족해서인지 돌아올 수가 없더라. 그래도 거기 앉아서 본 하늘은 참 좋았어. 119나 선생님들한테는 죄송하지만 이런 이벤트라도 있어야 사는 게 재밌지. 아니, 죄송한 건 죄송한 거구." ……. 세상에는 이 사회의 상식에 적응하지 못하는 놈들이 너무 많다. 그리고 그런 놈들이 답답해서 창 밖에 나가려 하는 상황이 너무 많다.

 그래도 자업자득이라고 나중에 자살 소동이었다느니 그 위에서 시위한 거라느니 하는 여러 허황된 소문들 때문에 ㅇ군이 투덜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담임선생님조차 그냥 경치 보러 내려갔다는 이야기를 안 믿었다나 뭐라나. ㅇ군이 목숨 걸고 말하고자 한 교훈은 턱걸이 연습을 부지런히 해둬야 한다는 점, 색다른 경치를 보려다 죽을 수도 있다는 점, 그리고 소문은 어쨌건 상식적인 수준에 머문다는 점, 살기 폭폭하다고 창틀 넘지 말라는 점 등이다.

(익명)
Posted by 오승희
산책하다 마주친 조용한 호수. 거울인 양 반짝이던 투명하고 푸른. 눈부시다. 주위에 널려있는 조약돌. 못나고 그다지 매끈하지 못한. 하나 집어 거울에 던져 볼까.

한참 헤매다 집어든 가장 매끈한 예쁜. 제발, 동그라미를 그려내길!

허공으로 날리려는데, 거울은 차갑게 언 듯 하다. 그리고 지극히 사소한 손 안의 것. 초라하고 흔하다.

그래도 던져보고 싶다

(익명)
Posted by 오승희
 농민 시위 현장에서 두 명의 사망자가 나오고 경찰총장이 사퇴한 뒤 폭력 시위/폭력 진압을 두고 참 많은 말들이 오가고 있다. 이는 누가 먼저 폭력을 썼느냐의 문제, 즉 무석무탄(無石無彈 : 돌 안 던지면 최루탄도 안 쏜다.)과 무탄무석(無彈無石 : 최루탄 안 쏘면 돌도 안 던진다.) 사이의 문제인가. 일부 언론의 말대로 "시위 문화"의 문제인가. "시위대의 절박한 상황을 이해해달라."라는 변명만으로 정말 면죄부가 주어질 수 있는지도 논쟁거리다.

 학교 다닐 때 기억으로는, 애들 사이에 싸움이 나면 누가 먼저 주먹을 휘둘렀는지에 관계없이 싸운 애들은 다 꾸중을 듣곤 했다. 휴머니즘의 견지에서 보자면 설령 상대가 폭력을 휘두르더라도 폭력으로 응대하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정당방위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정당방위와 과잉방위의 경계선이란 모호하기 그지없다. 경찰과 시위대 중 어느 쪽이 먼저 직접적 폭력을 휘둘렀는지를 놓고 논쟁을 벌이는 것은 별 의미가 없는 일이란 소리다. 물론 다 큰 어른들이 싸움을 벌여 부상자/사망자 분들이 실려나가는 판에 초등학생 화해시키듯 할 수도 없는 노릇. 책임은 그렇다 치더라도, 시위 현장에서 자꾸 폭력이 일어나는 원인은 있을 터이다. 왜 시위대는 죽창과 짱돌을 들어야 하는지, 왜 경찰은 방패로 사람을 찍어야 하는지.

 결론은 "시위 문화"다. 단, 일부 언론에서 떠들어대는 그 "시위 문화"는 아니다. 문제가 되는 시위 문화는 시위대의 시위 문화나 시민의식이 아니라 바로 시위대를 가로막는 쪽의 "시위 문화"다. 예를 들면 저번에 삼성 본관 앞에서 삼성의 불법 정치자금 문제를 규탄하러 사람들이 시위를 열었더니만 아 글쎄 경찰이 질서유지랍시고 커다란 차로 현장을 둘러싸 시위대를 격리시킨 적이 있었다. 집회 신고를 했는데도 경찰이 차량 통제를 안 해줘서 애먹는 일 또한 없는 건 아니다. 시위대 입장에서는 분통터지지만, 그런 게 ‘진압자'들의 시위 문화다. 집회나 시위를 보호 대상으로 보지 않고 무슨 폭탄이나 애물단지 보듯 하는 것이다.

 몇몇 경우만을 두고 시위 ‘관리'하는 분들이 항상 그런다는 듯이 과장한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을 테니 좀 더 일반적인 이야기를 해보겠다.(모두가 항상 그런 식으로 집회나 시위를 대하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호의적인 분들도 있으며, 그저 업무로서 법에 정해진 대로 묵묵히 이를 대하는 경찰 분들도 있다.) 집시법 11조를 보면 국회의사당이나 대통령관저 주위 100m 안에서는 집회 및 시위를 못하게 되어 있다. 헌데 법이란 국회에서 통과되는 것이니 법을 놓고 항의할 때 시위대가 갈 곳은 응당 국회 앞이다. 경찰들은 법을 지켜야 하니 사람들이 못 오게 막고 사람들은 가려고 하니 싸움이 날 수밖에 없다. 농민 분들이 돌아가신 것 또한, 시위대는 국회 쪽으로 가려 하고 경찰들은 그걸 막으며 여의도 광장에 시위대를 가둬두려다 하니 벌어진 불상사였다. 부산 APEC 당시 반세계화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도 비슷한 도식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예를 들면, 최근 전라북도 도지사는 도청 앞 광장에서 집회·시위할 때 허가를 받게 한다는 괴악한 법을 만들려 하기도 했으니…. 아직도 사회 일각에서는 "데모"는 사회를 해하는 몹쓸 것이라 생각하는 듯하여 씁쓸하다.

 시위대 분들이건 경찰 분들이건 다치지 않았으면 한다. 그러니까 "시위 문화"부터 바꿔보자. 감정에 호소하는 방식으로 폭력을 정당화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그런 논리에 따르자면 폭력시위/폭력진압 논의가 각 사안별 중요도나 정도 이야기로 바뀌어버리기 때문이다. 집회 및 시위 그 자체를 우리 사회(또는 일부 권력자나 경찰)가 어떻게 대하는지부터 고민해보자.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자면, 집시법에서 집회 및 시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부분을 개정하는 것, 전경이니 하는 편법 제도도 없애는 것, 그리고 "자신들의 권익을 향상시키기 위해 시민생활에 불편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마지막 수단으로" 시위하라는 도덕 교과서적 헛소리를 수정하는 것 등이 시위 현장에서 폭력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을 줄일 방안일 것이다.

(익명)
Posted by 오승희
 얼마 전 시위 도중 전경들과 시위대 사이의 충돌로 시민 한 명이 사망하면서 전임 경찰청장이 사퇴하는 일이 벌어졌다. 물론 평화시위를 하던 도중에 무고한 시민들이 전경들 곤봉에 맞아 사망했다면 그건 경찰청장이 사퇴할 만한 이유가 된다. 하지만 사건의 전후가 언론을 통해 전해지면서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역시 "목소리만 크면 무조건 이기는 나라"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한 언론 매체를 통해 서울시 모 병원 병동에 전·의경들이 이십여 명 입원해 있다는 기사를 접했다. 글로 표현했지만, 다 읽고 난 후에는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끔찍했다. 쇠 파이프에 맞아 손등이 으스러져서 철심을 6개나 박은 사람, 죽창에 찔려서 다리를 못 쓰게 된 사람, 3~4층 높이의 건물에서 시위대가 던진 돌들에 맞고 떨어져 다친 사람, 죽창에 눈이 찔려 안구가 파열되어 시력 회복이 불가능한 사람들이 그 끔찍한 기사의 주인공이었다. 사실 뉴스에서 시위대가 쇠파이프를 휘두르고 전경들은 방패를 들어 그것을 막고, 혹은 방패로 시위대와 맞서는 장면은 보았지만, 그 속에 벌어지는 일들이 이런 끔찍한 결과를 낳을 줄은 상상조차 못했던 것이다. 죽창에 눈이 찔려 안구가 파열된 전경의 기사를 접하고 이건 좀 너무하다 싶었다.

 충돌이 있으면 부상자들도 속출하기 마련. 그 정도는 예상하고 있던 바이지만, 이건 아닌 것 같았다. 마치 평소 세상에 받은 스트레스들을 전경들에게 모두 풀려는 듯 독기를 품고 아주 죽어라고 때린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도 이렇게 전, 의경들을 사람구실 제대로 못 하는 반병신을 만들고서 경찰청 앞으로 찾아가 "경찰청장 사퇴하라!"를 외치는 시위대들을 도저히 이해 할 수가 없었다. 오죽했으면 얼마 전 한 경찰이 경찰의 상징인 경찰모를 대통령 앞으로 보내왔을까. 전경들과 충돌하는 시위대들의 인권 역시 소중하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을 진압하는 경찰들의 인권 역시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맞은 경찰들은 어디가서 항변하란 말인가. 맞고 반병신이 되어서도 자신을 그렇게 만든 사람조차 찾지 못하고, 단지 상부에서 떨어진 명령 때문에 안구 파열되고 뼈가 으스러진다면 누가 경찰하려 하겠는가.

 더욱 가관인 것은 이 시위문화를 반성하기는커녕 이제는 홍콩까지 날아가 원정시위를 했더라는 것이다. 홍콩 경찰만 64명이 부상을 당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요구하는 바가 이루어 지지 않으면 300명이 더 날아가서 원정시위를 한다고 하니 참 한심하기 짝이 없다. 얼마 전 여의도 시위에서만 우리나라 전, 의경 220여명이 다치고 중상을 입었다고 하는데, 민중의 지팡이가 민중에게 짓밟혀 으스러지는 꼴이 참 말이 아니다. 이제 이런 식의 시위 문화는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위대가 먼저 죽창과 쇠파이프를 휘두르고 병에 불 붙여서 안 던지면 경찰은 절대로 곤봉 안 휘두르고 최루탄 안 던진다는 것이다. 시위대는 마치 "그 동안 스트레스 많이 받았는데, 그래 너희들 잘 걸렸다." 하는 식으로 전, 의경들 마구 짓밟는 것밖에 안 된다. 그러니 경찰들한테 기름 뿌리고 거기다 불붙인 병을 던지는 살인 행위를 저지르는 것이다.

 이제 이런 시위 문화는 바뀌어야 한다. 더 이상 경찰은 때리면 죽일 놈이 되고 시위대가 경찰을 때리면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 없는 행위로 판명되는 우리들의 인식이 바뀌어야 할 것이다. 전 의경들의 인권 역시 소중하고 그들도 시위대들과 같은 인격체임을 명심해야 하지 않을까.

대구경북고등학교 이지원
Posted by 오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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