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비의 삶을 떨쳐
반찬의 운명 부수고~
- 전굴조 테마 「참반찬의 함성으로」
(그림 출처 : far20님 블로그. 무단 도용 ㅈㅅ)




#0. 잇힝 (이라고 쓰고 <이하 내용은 전혀 과학적이지 않으며 논리적이지 않고 다분히 자기모순적이며 오류가 많고 이분법적일 것을 미리 밝힙니다>라고 읽습니다.)


#±1. 연애 감정, 또는 사랑의 동인에 대한 고찰을 시도하기 전에 앞서 연애 감정, 또는 사랑에 대한 정의가 먼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본문에서 연애 감정, 또는 사랑이란 동성, 이성, 나이를 가리지 않고 <동등한 두 인격체끼리의 므흣함>으로 상정한다. 즉 이하에서 다루어지는 사랑이란 할머니와 손녀 사이의 애정이라거나 동영상-_-에서 보여지는 동업자끼리의 직업의식, 애완동물에 대한 사랑, 동방신기에 대한 철저한 경배의식 등과는 전혀 관계없다.


#±2. 사랑의 동인을 자의로 두 가지로 나누건대 그 첫째는 <순수한 므흣함>이다. 일단 단어의 결합 자체에서부터 심각한 자기모순이 발생됨을 필자 또한 뼈저리게 느끼고 있으나 일단 넘어가자. 본문에서 정의하는 <순수한 므흣함>이란 그야말로 순수한 연애 감정을 의미한다. 『너는 내 운명』을 비롯, 수많은 신파영화와 끝없는 미니시리즈들이 펼쳐내는 연애 양상을 가리키는 용어 되겠다. 뭐랄까, <나는 너 아니면 안 돼>라거나 <사랑에 무슨 이유가 필요해?>, <잊으려고 하는데 그게 안 되요> 같은 대사가 나온다면 십중팔구 <순수한 므흣함>임을 확신해도 좋은 것들이다. 둘째는 <불온한 므흣함>이다. 이 경우 연애는 돈, 외모, 사회적 지위, 종교 등을 토대로 이루어진다. 글쎄, 이경우의 예를 들기는 쉽지 않지만 대부분 아시리라 본다. 일단 <순수한 므흣함> 아니면 거의 <불온한 므흣함>이라고 보면 된달까.


#±3. 재정의를 내리자면 <순수한 므흣함>이란 조건 없는 사랑이다. “당신들 참 조건 없이 사랑하시는 군요. 아름답네요. 복 받으실 거예요” 뭐 이런 말을 싫어하는 커플은 없으리라 사료된다. 이에 반해 <불온한 므흣함>은 조건이 있는 사랑이다. “당신들 참 조건 있게 사랑하시는군요. 남자분은 가난하지만 사법고시 패스했고, 여자분은 나이는 좀 많아도 돈이 되니까 두 분 만나시는 거죠? 아름답네요. 복 받으실 거예요” 뭐 이런 멘트를 날렸다가는 저승세계로 무료이주하는 기쁨을 맛보게 되리라 필자 확신한다. 성부성자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4. 그러나 <조건 없는 사랑의 동인>이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가 든다.(어디까지나 본문은 연애 감정의 동인에 대한 글이지 연애 감정 자체에 대한 고찰을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조건이라 함은 돈, 외모, 사회적 지위, 종교 등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이 그 사람이라고 정의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다른 사람과의 차이점이 어떤 사람을 그 사람으로 구분짓고 정의하는 요소가 되는 것이다. 이름, 성격, 말투, 사소한 습관, 특정 인물에 대한 호감의 정도 등의 아주 자잘하고 의미 없어 보이는 것들 또한 다른 사람과의 차이점이 되며 어떤
사람을 그 사람으로 결정짓는 요소가 된다. 달리 말하면, 이러한 <조건>들이 없으면 굳이 그 사람을 좋아하거나 사랑할 이유가 없게 되는 것이다. <조건>들이 없다고 가정한다면, 다시 말해 모든 점에서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 똑같다면,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꼭 그만이 당신에게 사랑받아야 할 이유가 존재하겠는가 말이다.


#±5. 고로, <조건 없는 사랑의 동인>은 존재할 수 없다. <조건 없는 사랑의 동인>으로 인해 사랑을 하게 되는 사람, 또는 그렇게 하려는 사람은 굳이 그 사람만 사랑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결국 모든 사람을 같은 정도로 사랑하거나 어떤 누구도 사랑하지 않거나 두 경우 중 하나를 택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이는 우리가 위에서 정의한 연애감정, <동등한 두 인격체끼리의 므흣함>에 어긋난다. 사랑의 감정은 결코 조건 없이, 순수하게 생겨나지 않는다.


#±6. 연애란 어쨌거나 이상주의적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는, 그것이 인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다른 <한 명의 사람만이라도> 완벽하게 이해하고자 하는 것, 그것이 연애
이기 때문에 연애는 이상주의적일 수밖에 없다. 연애는 불가능에 대한 도전이다. 비록 실패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  차지하긴 하지만.


#±7. <조건 없는 사랑의 동인>은 존재치 않더라도 <조건 없는 사랑>은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랑해야 할 사람 한 명을 정하는 것은 조건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겠지만,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 그것은 한계에 대한 치열한 도전이다. 적어도 그 동인이 아닌 과정에 있어서는 조건 없는 순수한 사랑이 존재하리라. 그렇지 아니하면 또 어떠한가. 어쨌거나 한계에 도전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기에, 오늘도 필자를 비롯한 많은 솔로부대들은 그 아름다운 광경에 염장이 질러지는 고통을 맛보는 것 아니겠는가 말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모습은, 그 도전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보는 사람으로서도 두근거리고 즐겁게 만드는 힘이, 분명히 있다.


#±8. Special Thanks to, 이현주 이택영.


(익명)

Posted by 오승희

오승희 50부가 집으로 도착한지 이제 일주일이 다 되어간다. 집에는 약 20부 가량이 남아있다. 글쎄다. 나는 꼭 내가 직접 쓴 기사가 올라와서가 아니라 ‘변혁적 반권위주의’ 신문이라는 점에서 신문이 도착하면 당장 학교로 달려가 뿌리기를 희망했다. 적어도 신문이 도착하고 내가 쓴 기사 밑에 박힌 ‘K 고등학교 Justhin’이라는 활자를 보기 전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그 활자를 보는 순간 내 머릿속에는 온갖 생각들이 뒤섞여 머리가 지끈거렸다. 글쎄, 창간사 글에서 본 “<배후가 누구냐> 따위의 고문”이라는 대목 때문일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 자신이 이 신문을 당당하게 뿌릴 만큼 용감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오승희를 받고 나서, 수업시간마다 조례, 종례시간 때마다, 담임선생님이나 각 교과 선생님들이 내 이름이나 번호를 부를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던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솔직히 오승희라는 신문에 틀린 말은 하나도 없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는. 더욱이 뭐 학교를 비판한다던가, 두발자유화나 기타
학생 인권을 존중하라는 심각한 반항성 글이 실린 것도 아니고, 더욱이 내가 쓴 기사는 별거 아닌 정도였는데. 무엇이 나를 당당하지 못하게 만들었고, 나를 두렵게 했을까.

나는 책장 속에 뒹굴고 있던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을 꺼내들었다. 글쎄, 학교나, 오승희를 ‘반항아들이 만든 신문’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을 나치즘세력이라 가정하고, 그에 대항하는 백장미단을 우리 ‘오답 승리의 희망’에 갖다 붙여 비교한다는 것이 좀 이상하긴 했지만… 아무튼 나는 우리 학생들의 최소한의 인권을 보장받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보장받을 가망성이 매우 희박한 것에 대해 외쳐보고라도 싶어서 오답 승리의 희망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하고 있다.

사실 오답 승리의 희망이 사회적으로 큰 이슈나 파장을 일으킬 거라고는 처음부터 상상하지 않았다. 뭐 간혹 매스컴에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불건전한 학생들의 불법인쇄물 파문’ 따위 기삿거리가 되어 나뒹굴 것이란 걱정은 해봤지만. 그래, 나는 이 신문에 대한 자랑스러움 뿌듯함 등의 감정 보다는 이 신문이 배부됐을 경우 제작자․투고자들이 겪게 될 알 수 없는 어떤 것들이 두려웠다. 단지 그뿐이었다.

난 정말 이 신문을 뿌릴 때 자랑스럽게 이 신문은 이러이러한 신문이다라고 외치면서 당당하게 뿌릴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 나치시대에 비밀스럽게 찍어 유포하던 지하신문 같이 조마조마 하면서 뿌리리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학교 입학한지 한 달도 채 안 되었는데, ‘문제아’로 낙인찍힌다거나 ‘학교의 명의를 부당하게 훼손한 학생’등으로 찍혀 일찌감치 선생님들의 타겟1호가 되기는 싫었던 모양이다. 글쎄 남은 오승희는 정말 내 뜻, 아니 오답 승리의 희망의 참 뜻을 알아 줄 사람들, 내가 항상 ‘진정한 친구’라고 부르는 이들을 위해 남겨두었다. 하지만 글쎄….

신문이 도착하던 그 날, 나는 바로 오승희 홈페이지에 다음 호부터는 기사를 익명으로 실어 달라는 부탁의 글을 남겼었다. 그래, 절대적으로 나는 두려움과 앞으로 겪어야 할 혹독한 가시밭길 따위에 대해서는 약한 인간이었던 모양이다.

Toujours Pur Justhin


Posted by 오승희


▲ 파란만장청소년인권캠프에서 청소년인권활동가들의 꿈을 담은 꽃을 그리는 프로그램에서…


동아리의 소개로 7월 26일부터 실시되는 파란만장 청소년 인권캠프를 알게 되었다. 이 캠프는 청소년인권활동가 네
트워크에서 주최한 인권교육을 받는 캠프였다. 솔직히 말해서 인권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런 캠프에 참가하는 것이 무의미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도 해보았다. 하지만 교육받고 새로운 것을 알게 될 생각에 부풀어서 신청을 하였다.

처음에는 아는 사람도 없고 초면이라 서먹서먹했다. 끝날 때까지도 서먹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처음에는 최악이었다. 성공회대학교에서 열린 이번 캠프에서는 인권에 대해 공부를 한다기에 나는 프린트를 나누어주고 한 분이 오셔서 강의 형태로 진행하시는 줄 알았다. 물론 일정에는 교수님 한 분이 오셔서 강의하는 것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강의 형식이 아니었다.

솔직히 처음에는 조금 유치하지 않나 싶었다. 종이를 오리고 붙이고 그림을 그리고 등등. 유치원 분위기였다. 그런데 그런 일정이 나에게 가장 어렵게 다가왔다. 정말 생각을 많이 하게 한다. 그저 자신에 대해서 알아가는 과정, 인권이 무엇인지, 인권을 침해 당했을 때 대처법을 단정 짓지 않고 개개인에게 그 답을 유도해내는 방법이 인상적이고 참신했다. 마치 소크라테스의 산파법 같았다고나 할까?

또한 우리나라의 청소년 인권운동의 역사를 퀴즈와 강의를 통해서 알아갔는데 오히려 지금보다 학생들이 인권에 대해서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현재 소수의 학생만이 불합리함과 모순에 저항한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이러한 일정을 마쳐가면서 나는 내 자신이 살면서 아니 꼭 내가 아니더라도 청소년들이 살면서 인권을 알게 모르게 많이 침해당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동안 내가 그것을 자각하지 못했다는 것이 안쓰러울 뿐이었다. 캠프에 와서 정말 많은 것을 얻은 것 같고 다음에도 이런 캠프가 있으면 꼭 참가하고 싶다.

(익명)
Posted by 오승희

여기는 동성고. 이제 100주년을 맞이하는 명문고라는데 100주년이란 명분 아래 하는 짓거리들 한번 고약하다. 툭하면 때리기 머리자르기(혹은 갖은 수단의 협박), 강제로 보충시키고 야자시키기, 오전7시까지 등교시키기, 강제로 교복입히기, 미사 강제동원하기, 윤리랍시고 국가주의 세뇌시키기, 지네 입맛에 맞는 녀석 학생회 앉혀두고 조종하기, 급식회사에서 돈 받아먹고 학생 위하는 척하기, 야자실 돈 안나온다고 야자하는 애들 내쫓기, 책 읽는 것 제한하기 등등. 얼쑤 많구나.

이런 고약한 행실을 보다 못한 한 수구꼴통 학생 하나가 서기 2006년5월8일 교문 앞에서 저항하기에 이르렀으니 그 죄를 만천하에 알렸노라. 허나 한 꼴통학생의 일인 시위에도 불구, 똥오줌 못 가리는 학교는 여전히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터라, 수구꼴통 학생 더 적극적인 방법을 쓴다고 일인시위 피켓을 집어던지고 학교에 삐라를 뿌리기 시작했다지 아마. 하지만 교문 앞에서 일인시위를 해도, 새벽에 삐라를 뿌려도, 2%가 아니라 20%는 모자란 느낌이 든 것이라. 그 20%가 무엇인고 하면 학생들과의 소통이라 이거야.

나름 학생들과 소통하겠답시고, 어디선가 주워들은 방법을 쓰는데 ‘서명’이라고 들어봤는지 몰라? 갖은 구박 받으며 서명을 하면서도 열심히 설득하니까 학생들이 하나 둘 바뀌기 시작하는 거야. 그게 참 기가 막힌데, 남김말에 두발완화라고 쓰면 두발완화라고 주장해서 학교가 어떻게 변했나 설명하고, 서명을 하지 않으면 때를 봤다가 몇 번이고 다시 부탁해서 받으며 설득하니 어느덧 500명이 넘는 서명을 받아낸 거지.

학생이 이 날고생을 했으면 거 도와줄만한 사람도 있지 않겠어? 그 학생이 전교조와 이야기했지 아마? 그랬더니 뭐라고 하는지 알아? 세상에나, 학교명예가 학생인권보다 더 중요하다고 하는 거야. 세상에 믿을 놈 하나도 없더구나 하는 말이 이럴 때 쓰는 것이구나 하더군.

이 학생. 이렇게 상처받고서도, 싸움을 그치지 않아. 아 글쎄 그랬더니 학교에서 어떻게 하는 줄 알아? 위로는 못해줄망정 징계를 먹인다는 거야. 이 학생 분노해서, 징계위원회에 가지 않겠노라 말했더니 학생부로서도 당황스러웠는지 학생을 강제로 끌어가다가 손에 상처만 냈어. 결국 학생은 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학생부에서 특별교육이수를 선고하더구만. 이 학생 당돌하게 받지 않겠다고 하며 이의신청을 하니 교장도 꼼짝달싹 못해. 2학기 중으로 다시 징계위원회를 열겠다고 한 이후로 소식이 없네. 어쨌든 학생은 계속 싸울 모양이더군.

학생이 이 이야기를 듣고 있는 여러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데, 내 그대로 전해주리라. “저는 이 것을 하며 내가 인간으로 살아있구나 하는 것을 실감했지요. 지금 이러한 저항은 전국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인간답게 살 기회가 온 지금 여러분은 어떻게 할 건가요?“

서울 동성고등학교 오병헌

Posted by 오승희


 
▲ 2005년에 전주에서 있던 두발자유, 청소년인권집회

▲ 체벌이 이슈가 되자 대구시교육청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의 청소년들


☻ 안녕하셈. 나는 승희라고 하셈. 사실 승희는 다중인격이라는 설정이라서, 1호에 있던 승희랑은 성격이 좀 다르셈.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읽으셈.

☻ 이번엔 창간호에 실을 뻔했는데 첨부터 빡센거 하기 좀 글타고 해서 못 들어간 책 소개하겠3.
청소년Report2 『인권은 교문 앞에서 멈춘다』, 배경내 in 인권운동사랑방. 7천원이셈.

☻ 학교를 인권의 프리즘으로 들여다보면 정말 X같다는 걸 고발한 책.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인권침해의 원인(입시문화, 권위주의, 통제기관으로서의 학교 등)도 분석하고 있고, 아이들의 “순응과 위반의 줄타기” 등도 써내고 있3. 학교규율이 학생들에게 어떻게 폭력을 행사하고 어떻게 학생들을 검열하는지, 그리고 학생들의 자치를 가로막는독재적 체제 등도 잘 보여주고 있3.

☻ 학생들 교사들 인터뷰해서 생생한 목소리, 현실을 잘 담으려 한 점은 훌륭하셈. 그리고 읽다보면 관련 인권조약이나 판례, 자료 등을 많이 알수 있3. 예를 들어 유엔아동권리위원회가 “대한민국의 현 학교교육이 복종과 순응주의를 요구하고 개성의 질식을 초래하고 있다 (중략) 학교규율이 아동과 청소년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합치되도록 운영되어야 한다.”라고 했다거나, 미국 두발자유 인정 판례라거나 한국 학생인권 관련 사건들이라거나 등등 말이셈.

☻ 단, 어떻게 운동을 펼칠 것인지는 잘 써있지 않다는 점 알아두셈. “4장 교문을 넘어서”나 “부록 아이들의 인권, 잊혀진 권리를 찾아서” 등에서 학교 안 인권 침해 개선을 위한 저항 모습들이 조금 나오긴 하지만…. 그런 거는 따로 공부하3.

☻ 마지막으로 시류를 좇아 2006년 특히 화제가 된 책 던지기 체벌, 지각 5분 체벌 200대 사건 등에 대해 존경스러운 경내 언니 의견 들어보겠3.
“체벌완전금지는 인권상 당연해. 그러나 체벌문제가 ‘보호’ 느낌으로 다뤄지는 게 아쉽긴 해. 그리고 다른 억압들은 그대로 둔 채 체벌만 금지시키면 벌점제나 치사한 징계 등으로 더 살기 팍팍해질 수도 있지. 여하간 학교, 가정, 모든 곳에서의 체벌금지는 청소년인권의 한 진보라 할 수 있어.”

Posted by 오승희

“그따위로 공부해서 어디갈래?” 다들 한 번쯤은 들어봤음직한 잔소리다. 대개 게임하다 걸렸을 때, 성적표 왔을 때 듣게 된다. 어허이, 이것 보게, 등급이 무슨 내공 갑자라도 되나, 언어는 무려 9갑자 무공일세 그려, 수련하면 할수록 점수는 떨어지고 등급숫자는 커지니 이게 어찌 된 일이오, 이런 건 안 봐도 DVD다. 필자도 자주 당하니까.

이거, 떠올리기도 싫은 잔소리지만, 짚고 넘어갈 게 있다. 잘 생각해보자. “대체 어디 갈래?”란 말은, “너 어느 대학에 가고 싶니? 골라봐.”가 아니다. 서울대 / 연고대(고려대 출신은 고연대라 할 것이다.) / 인서울(서울 내 4년제 대학) / 지방 국립대 / 지방 사립대 / 전문대, 이렇게 분화된 계층 구조에서 어느 계층에 들 수 있겠느냐, 너 이 따위
로 하면 낮은 계층에 속할 수밖에 없어, 그러니까 닥치고 공부해, 이것이다. 인권? 그딴 건 대학 가서 찾아라. 놀고 싶다고? 대학 가서 놀아. 평택 대추리 집회 참여하고 싶어? 아 글쎄 대학 가서 하라니까? 일단 높은 계층으로 들어가는 것이 우선이니 다른 건 다 보류되는 거다. 좀 더 높은 계층으로 진입하기 위한 몸부림 - 실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그 자체이다.

그리하여, 60만 수험생의 1%도 안 되는, 실로 적은 수의 학생들만 서울대 뱃지를 달게 된다. 이들은 그야말로 한국  최상위 엘리트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어? 근데 이상하다, 서울대가 왜 세계100위권을 들락날락하는 수준밖에 안 되지? 경제력이 딸려서 지원을 못해주나? 그런 것도 아니다. 교수들 수준이 떨어지나? 그럴 리가. 아니, 그럼
왜 PISA시험에서 세계 최상위를 기록하는 한국 학생들, 그 중에서도 최정예 엘리트를 데리고도 그따위?

뭔가 느끼는 바가 있어야 한다. 답은 대학서열체제에 있다. 이미 명문대 졸업장이 보장된 SKY생들이 전공공부를 기 쓰고 할 리가 없다. 대부분은 취업을 위해 고시공부를 하거나, 토익/토플 공부를 하거나, 자격증 취득에 매달린다. 서울대 졸업장에 자격증 십여 장, 990점짜리 토익성적표 들고 가면 삼X(X성이라고도 한다.)에서 아이구 어서옵쇼
하고 받아준다. 고시? 더 말할 것도 없다. 명문대가 아닌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은 그들대로 취업준비와 편입시험에 매달린다. 반수를 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천문학적인 사교육비가 투입된다. 돈 있으면 과외 받고 아우토반 달리는 거고, 돈 없으면 지역인재가 되어 평생 중하류층으로 사는 거고. 안타까워도 어쩔 수 없다. 이게 현실이다.

따라서 대학서열체제를 파괴하기 위해, 열라 많은 노력이 있었다. 그러나 하나같이 실패했다. 하나같이 본질을 건드리지 못하고 삽질만 징허게 한 거다. 대표적으로 내신등급제. 이거, 대학서열체제로 인한 고등학교 공교육붕괴를 막기 위한 대책으로 나왔다. 결과는? Into the hell~. 본질적으로 대학서열체제를 파괴하려면, 본질적으로 현 제도를
뜯어고치는 수밖에 없다. 대학평준화론은 그래서 나왔다. 혹자는 “평준화가 획일화를 낳는 것 아니냐?”라고 물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동등’과 ‘동일’은 동의어가 아니다. 대학들이 동등한 입장이 되면 학생은 원하는 대학을 골라가기 쉽게 될 것이고, 대학 간에 자유로운 선의의 경쟁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 과정에서 대학은 특성화를 시도할 것이므
로, 인기학과 중심으로 거기서 거기인 대학들이 난립한 상황을 해결할 수 있으며, 경쟁이 완화되어 입시에 치우쳤던 고등학교교육이 획일화에서 벗어나고 내실화될 것이다.

정진상 씨의 「국립대 통합네트워크 - 입시 지옥과 학벌 사회를 넘어」를 참고하여 구체적인 이야기를 해보자. 일단, 전국 대학교를 묶어 하나의 통합된 네트워크를 구성한다. 이 네트워크는 학교간 전․편입과 학점교환, 공동연구 등 학교간 교류를 활발히 하며, 평준화가 제대로 작동되도록 하는 장치이다. 지역 별로 학구를 나누고, 해당 지역별로
학생을 모집하게 된다. 대학 입학자격을 가진 학생은 자신이 원하는 지역에서 원하는 학교를 1지망, 2지망, 3지망까지 지원하고, 가능한 한 이를 최대한 반영하는 방향으로(물론 지원자가 너무 몰리는 경우 무작위추첨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는 평준화가 정착된 후에는 자주 일어날 일이 아니라고 본다.) 배정한다. 대입자격은 내신과 자격고사
로 부여한다. 내신에서 일정 기준을 넘거나 자격고사에서 어느 수준을 넘은 학생은 대입자격을 획득하게 된다. 각 학교는 졸업정원의 150% 내외에서 유동적으로 학생을 모집하는데, 이는 유급 등의 엄격한 학사 관리로 대학교육을 내실화하기 위함이다. 이렇게 되면 커트라인에 걸려있는 학생들 빼고는 모두 살인적인 경쟁에서 해방될 수 있다.

서울대는 특별 관리해야 한다. 한국 학벌의 정점에서 막강한 기득권을 행사하는 서울대는, 학부생을 모집하지 않게 한다. 학벌사회를 깨뜨리기 위함이다. 대신, 서울대는 엘리트교육의 소임을 다하게 한다. 학부생을 따로 선발하지는 않지만 학부를 개방하여 네트워크 내의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강의를 들을 수 있게 한다. 아울러, 대학원 중심으로 개편하여 최고수준의 교육을 책임지게 한다. 이때 대학원생 선발은 학점을 중심으로 별도의 논문이나 레포트를 활용할 수 있다. 프랑스의 그랑-제꼴과 비슷한 체계다.

서울대 대학원을 비롯한 전국 대학원은 기초학문 중심의 일반대학원으로 하고, 법학, 경영학, 외교학, 의학 등의 실용학문은 학구마다 인구에 비례해 배치하는 전문대학원에서 다루게 한다. 현재 학생들의 선호가 법대, 의대, 경영학과 등에 치우쳐 기초학문이 굉장히 뒤떨어지기 때문이다. 기초학문연구를 증진시키고, 전국에 기초학문연구소를 설립하여 기초학문 전공자에게 좋은 대접을 해주어야 한다. 전문대학원은 지금도 추진되고 있는데, 이는 기본소양을 충분히 갖추게 한다는 것 외에도 입시경쟁 완화와 대학교육 내실화와 같은 효과를 노릴 수 있다. 다만, 현재 졸속 추진되는 전문대학원(예 : 로스쿨)은 경비부담을 학생들에게 전가하기 때문에 교육양극화를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

기업에서 인재를 채용할 때는 학적이나 학교를 조회할 수 없게 한다. 대학 학점 정도만 참고할 수 있도록 하는데, 이는 평준화 후에도 혹시 남아있을지 모르는 학벌주의를 뿌리뽑기 위함이다. 또, 학점을 인력채용자료로 활용한다면, 토익이나 취업 준비에만 매달려있는 대학생들이 전공서적을 쥐게 될 것이다. 그리고 행정공무원, 산업현장에서의
기술노동자 등 전문적 직업교육이 필요한 인력은 전문대 졸업생을 써서, 지금 대학서열체제의 최하위를 이루는 전문대를, 4년제 대학들과 동등한 위치로 만들어야 한다.

여기에, 무상 교육, 아니 거기까지는 아니더라도 등록금의 대폭 인하가 이루어진다면 금상첨화다. 현재 사립대의 등록금은 엄청난 수준이며, 웬만한 중산층 가정에서도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에 와 있다. 통합된 네트워크에서는 등록금 또한 현 국립대 수준으로, 또는 무상교육 수준으로 평준화하여, 가계 부담을 덜어주어야 한다. 물론 재원이 문제
가 될 수 있으나, 정진상 씨에 따르면 현재 사교육시장의 규모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라 이를 잘 환수할 수만 있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고 하며, 학생들의 등록금과 정부보조금으로 겨우 수지를 맞추는 일부 부실 사립대를 퇴출하고 나면 크게 부담스러운 일도 아니다.

대학 평준화론은 무조건적인 평등논리나 획일논리가 아니다. 공부에 뜻이 있는 사람은 대학원을 가면 될 것이고, 엘리트 학생이라면 서울대 학부 강의를 듣고 서울대 대학원에 진학하면 된다. 공부는 싫지만 일단 대학은 가고 싶다, 그래도 된다. 대학 입학자격은 누구나 획득할 수 있다. 현장에 가서 일찌감치 취업하고 싶다, 그러면 전문대에 가면 된다. 무엇보다도, 학벌이 폐지되고 입시경쟁이 해소되며 중․고등학교와 대학교의 교육이 제자리를 찾아 내실화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대학이 평준화된 프랑스의 그랑-제꼴이 세계 20위권 안에 지속적으로 이름을 올리는 것을 생각해보자. 한국이라고 못할 것 없다.


Posted by 오승희



? 살 우 돈 혹 서 있 우
? 아 린 출 은 열 는 릴
? 있 지 세 취 체 대 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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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다 온 대학…. 우선 좋은 거부터 말할게. 수업 골라들을 수 있고, 꿘(운동권)이건 비꿘이건 반꿘이건 다양하고 신기한 친구들 볼 수 있다는 거. 사실 이건 대학이 좋은 게 아니라 중고등학교가 괴악한 거긴 한데, 상대적으로 자유롭긴 해. 다음, 황당한 거, 상대평가. 2005년에 내신등급제 반대 열심히 했었는데 대학 오니까 상대평가래! 무조건 30%는 C이하. 이건 아니잖아~. 그래서인지 새내기들이 갈수록 공불 많이 한다나 뭐라나. 쩝, “오늘밤에도 별이 도서관 불빛에 스치운다.”

* 애들 줄 세우려다 보니까 별 시험 문제가 판을 쳐. 그나마 서술형은 괜찮지. 기말고사 예시 : “대중예술작품 하나를 골라 그 대중성을 설명하시오.” 『유리가면』에서 눈망울 속에 왜 별이 반짝이는지와 마야와 마스미와 시오리와 코지가 왜 꽃이 만발한 장면들을 연출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범신론과 농심 채식주의라면의 관계를 논하는 듯 알흠다운 고찰을 써내려갔지. 그러나 다음날. “화성 평균기온은? ①-10℃ ②-20℃ ③-30℃ ④-50℃ ⑤-60℃” “우유 1L를 정화하는 데 드는 물의 양은?” 강아지신발! 고딩내신영어시험보다 치졸할 수가!

* 최근 대학 도서관에서 책 빌리는 사람보다 열람실에 처박혀서 중간기말공부, 토익/토플공부, 고시공부하는 사람이 더 많다고 해. 책 둘 공간 부족한데 열람실은 이용자가 워낙 많아서 줄일 수가 없다나. 책 보러 도서관 안 가고, ‘공부’하러 가는 거지. 공부? 화성평균기온 알기? 민법 한 조항 알기? 뭘까, 대학에서 공부란???

* 대학에선 정말로 자유를 호흡할 수 있는 건지 모르겠어. 단적인 예로, 오르는 등록금, 선택 아닌 필수 - 학자금 대출. 뼈 빠지게 일해 갚아야지. 자유의 이미지를 소비하면서 자발적 복종을 유도해. “내 발을 핥으라고는 안 했어. 돈을 빌려줬을 뿐. 우하하. 그거 갚으려면, 취업 준비 열심히 하라고.” (나도 학자금대출 했어. ㅠ)

* 물론 대학에선 술도 마실 수 있고 적당히 놀 시간도 있으며 방학도 길어. 하지만 그게 얼마나 의미 있는 걸까. 중고딩 때 유보시켰던 행복은 밤새 술을 마시는 것? 차라리 러브러브라도 할까 해도 나는 20여 년째 솔로, 크흑. 현실의 벽이 언제는 높고 언제는 낮은 게 아니거든. 여하간 대학와서 드는 생각. 고딩 때 입시 땜시 ‘유보한 행복’들이 있다면, 후회할 수도 있달까나. 언제건 중요한 건 현재잖아. 카르페디엠~ 스구라라라라~


Posted by 오승희

학교 다닐 때 나와 가장 친했던 친구 중 한 아이는 전교 몇 등 안에 드는 소위 모범생이었다. 그 앤 워낙에 표정이 없었지만 “넌 꿈이 뭐야?”하고 물어보면 섬뜩할 정도로 무표정하게 “응 고등학교 졸업하는 거”라고 말해서 나를 오싹하게 하곤 했다. 자퇴 뒤 전화가 왔기에 넌 요즘 꿈이 뭐냐? 하고 물어봤더니 그때와 똑같은 목소리로 “응, 여전히 고등학교 졸업하는 거.” 하고 말해서 나를 다시 섬뜩하게 만들었다. 세상에 열일곱 살의 나이에 고등학교 졸업이 생의 목표가 되어 있다니. 물론 나도 나을 게 없어서 누가 물어보면 역시 무표정하게 ‘고등학교 그만 다니는 거’라고 말했다. _ 김현진『네 멋대로 해라』「§ 2 지식 대량 생산 공장, 학교」 中

김구 선생은 백범일지에 “네 소원이 뭐냐고 하느님이 물으시면, 난 서슴지 않고 ‘대한독립이오.’라고 대답할 것이
다. ‘그다음 소원은?’하시면 난 또 ‘우리나라의 독립이오.’라고 할 것이며 또 다음 소원이 무어냐는 세 번째 물음에
도 나는 더욱 소리 높여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 독립이오.’라고 대답할 것이다. “라고 썼다.

만약 우리나라 학생들에게 소원을 묻는다면 이 대답은 반드시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학교졸업하고 빨리 대학이나
가면 좋겠어.” 혹 ‘그다음 소원은? ‘이라 묻는다면 “웬만하면 명문대면 좋고, 그 다음에 괜찮은 직장 잡아서….”라
고 말하지 않을까. 김현진이 쓴 것처럼, 많은 학생들의 장래희망은 공통점을 하나 갖고 있다. “빨리 졸업해서 이
지긋지긋한 학교 말고 대학 다니고 싶다!”라는 말이 전제된다는 것.

우리 학생들이 학원 뺑뺑이 돌고 미친 척 문제집 풀고 시험전날 온갖 영양제 먹어가며 밤새는 것 또한 대학가기 위해서다. 이왕 가는 거 좋은 대학으로. 대학가는 이유는? 미쳤어, 대학 안 가면 취업 어떻게 하니? 안 그래도 가뜩이나 취업 안 된다고 난리인데. 학생들의 일차적 존재목적은 그러니까, 대학이다. 일단 대학가고 봐야지. 아, 너무 뻔한 소릴 해서 미안하다. 누구나 겪는 이야기 또 한다고 무엇이 달라지랴? 하지만 진부한 것이 때론 진실일 때도 있는 법이니 말이다.

나는 때때로 우리 학생들이란 유럽의 중세인들과 마찬가지 신세가 아닌가 생각한다. 사제들이 제시하는 천국에 대한 열망 하나만으로 온갖 가난과 수탈과 모욕들을 견뎌냈던 그들. 사실 천국이란 실제 죽어서 가보기 전엔 모르는 것이라, 그들도 듣는 대로 믿고 따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학생들도, 어른들이 제시하는 대학에 대한 열망 하나만으로 온갖 고생을 다한다. 사실 대학이란 실제 입학해서 가보기 전엔 모르는 것이라, 우리도 듣는 그대로 믿고 따를 수밖에 없다. 사제들이 천국을 빌미로 중세농노들에게 선한 삶(이라지만 뜯어보면 수탈당하고 부당한 대접을 당해도 조용히 순종하는 삶)을 강요했듯, 어른들도 대학을 빌미로 중고생들에게 열심히 공부하는 삶을 강요한다. “대학이 너희
를 자유케 하리라. 믿습니까? 대학천국, 불신지옥!“

우린 죽은 후 천국에 가기 위해 지옥 같은 삶을 견뎌야 한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판단했다. 적어도 천국에 대해 더 자세히 안다면 어떤 식으로든 우리는 더 나은 학창시절을 지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천국이 가짜라고 판단, 공부를 하지 않는 길이든, 천국이 실존하는 것임을 알고 더욱 열심히 공부하는 길이든 말이다.

Posted by 오승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