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특하다 내지는 안쓰럽다, 집회에 교복을 입고 가면 십중 팔구 이런 시선이 쏟아진다. 부담스럽다 못 해 짜증난다. 확실히 말해둔다. 어른들, 난 당신들이 기특해하라고 집회에 나오는 게 아니다. 쥐박이 하고 싶은 대로 되는 꼬라지는 절대 볼 수 없어서 나오는 거지, 사람들한테 칭찬이나 받자고 나오는 게 아니란 소리다. 청소년이 성인한테 “회사 안 가고 집회에 나오다니, 아이 기특해!” 해봐라. 그 말 듣는 성인이 얼마나 웃기고 어이없어 하겠냐. 그거랑 똑같은 거다. 당신들의 미안한 맘을 자극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도 아니다. 추측하건대, 촛불소녀 마스코트를 만든 인간들이 유도한 것이 바로 이 ‘죄책감 자극’이었을 거다. “애들도 하는데 어른인 난 쪽팔리게 집에서 뭐하는 거냐.” “(공부해야 할) 아이들이 정치문제에까지 나서게 만들다니! 미안하다, 우리 죄다.” “이 불쌍한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우리들이 나서자! 어른들이 지켜주자!” 처음 촛불소녀 얘길 들었을 때, 왜 하필 소녀인가 의아했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서야 이게 소년이 아닌 '소녀'에서 느껴지는 연약한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서였음을 알고, 앞에선 10대가 촛불집회의 주역 어쩌고 추켜세우고 뒤에선 집회에 사람들 끌어 모으는 ‘홍보수단’으로 어떻게 하면 청소년을 효과적으로 이용해먹을까 골몰한 이중성에 구역질이 났더랜다.


  단순히 이번 집회에서 일어난 일종의 10대 신드롬을 반영하고자 했을 수도 있다. 그 과정에서 팬클럽 등으로 집회 초반 이슈가 됐던 10대 소녀들을 ‘촛불을 든 10대’의 대표격으로 삼기로 별뜻없이 결정했던 걸 수도 있다. 그러나 청소년의 존재를 특별시 한 것부터 어느 한 쪽의 성을 강조한 것까지, 유도했든 유도하지 않았든 촛불소녀라는 이미지는 청소년을 ‘어린데다 약하기까지 한’ 보호의 대상으로 전락시켜 동등한 시위 참가자로 여기지 않게 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특히나 청소녀들의 경우엔 ‘귀여움. 순수함. 연약함' 에 편중된 거북한 이미지를 부여받고, 그 이미지를 집약한 집회의 마스코트로 이용당하고 있기도 하다.


  ‘기특함. 미안함’의 시선은 성인들로 하여금 이번 촛불집회에서 청소년들이 보여준 ‘청소년의 정치참여 가능성’을 깨닫지 못하도록 막는 장벽으로 작용한다. 개인적으로 난, 이 확고한 오만과 편견의 장벽에서 아집으로 똘똘 뭉친 현 정부의 명박산성을 연상한다. 대다수의 성인들이 10대의 정치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을 ‘촛불집회에 국한된 한 때의 특별한 현상’으로 치부하고 있다. 또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치는 성인들의 전유물이라는 생각에 갇혀있기 때문에, 청소년과 정치의 연결 자체를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이다. 이는 비단 촛불집회에서만의 문제가 아니라 기존사회가 갖고 있는 고질적인 청소년 배제의 문제이기도 하다. 촛불소녀가 문제가 되는 것은 그런 청소년·아동에 대한 기존의 보호주의 시각을 전면에 내세우고 널리 퍼뜨려 기존의 인식을 더 공고히 했다는 점에 있다. 10대의 집회참여를 보며 성인들이 느껴야 했던 것은 ‘청소년 역시 정치.사회에 참여할 수 있다.'라는 그간 무참히 씹어먹히고 있던 사실이어야 했지, ‘아이고 애들까지 나서게 하다니. 미안해 죽겠네.’ 따위의 죄책감이 아니었다. 안 그래도 후자이기 쉬웠던 것을 더 후자가 되기 쉽도록 몰아갔다는 것이 ‘촛불소녀’의 죄다.


  촛불소녀는 ‘여자애'다. 시위현장에서 차별받고 있는 대표적인 두 존재의 결합이다. 진정한 촛불소녀를 한 분 본 적이 있다. 촛불소녀의 정신을 내면화 하신 듯 남성들의 보호주의를 당연한 듯 받아들이고 알아서 빠져 계신 여성분이었다. 그 분은 심지어 ‘여자애들은 빠지자’라며 전경버스를 끌어내는 밧줄 옆에 선 ‘여자애’들에게 끈질긴 태클을 걸었다. 차별하지 말라고 항변하자 누군가는 “차별이 아니라, 차이 때문인거죠.”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래, 차이가 있다. 여성 청소년인 나는 남성과 다르고 비청소년과 다르다. 하지만 다르다는 것이 무조건적인 보호와 배제의 근거가 될 순 없다. 결과적인 얘기긴 하지만, 난 세네 번 줄을 당기면서 한 번도 넘어지지 않았고 조금도 다치지 않았다. 여성으로서, 청소년으로서 가지고 있는 ‘차이’ 때문에 그 일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설사 다쳤다 해도, 그건 내가 ‘여자애’이기 때문이 아니다. 상황에 따라 개인에 따라 다칠 수도 있고 다치지 않을 수도 있는 거지, 여자라서 다치고 애라서 다치는 건 없다. 동참하고 싶어 하는 의지가 있다면 마땅히 존중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의지를 가지고 있는 이상 모두가 동등하며, 성과 나이 등의 차이는 무의미하다.

  모든 보호는 어쨌거나 걱정에서 나온다. 걱정하는 것까진 안 말린다. 단, 걱정은 걱정으로 끝내라. 걱정을 차별로 끝맺지 말라. 여성과 아이의 ‘약함’에 대한 걱정은 시위현장에서 종종 여성과 청소년의 역할을 구경꾼으로 제한시키는 역할을 했다. 의도는 걱정이었을지 몰라도, 결과는 분명 시위에서의 배제였고 동등한 시위 참가자로 여기지 않는 차별이었다.


  촛불소녀에 대한 거부는 ‘청소년의 집회-정치참여는 전혀 특별한 일이 아니다’라는 주장이다. (기특하다, 거부한다!) 청소년들을 보호-통제함으로써 성인들의 우위를 유지하려는 기존사회에 대한 저항이다. (지켜줄게, 때려치워라!) 청소년 그 중에서도 여성이기 때문에 특히 더 자주 노출되는, 보호를 명목으로 한 차별에 대한 문제제기이기도 하다. (진정한 촛불소녀 따위 되지 않겠다!) 마지막으로, 신문에 실렸다는 이유로 ‘공식 촛불소녀’가 되어버린 내 위치에 대한 거부이기도 하다! (촛불소녀, 그만 불러! 캭!)




/ 보너스
  촛불소녀가 싫은 이유 첫 번째, 그 소녀는 단정한 교복차림에 귀밑 5센티의 단발머리를 하고 있다. (학생부의 사랑이 그리도 받고 싶더냐!) 두 번째, 방글방글한 눈동자를 빛내며 ‘어른들아, 저희를 지켜주세효' 깜찍한 척 연약한 척 내숭을 떨고있다. 세 번째, 청소녀들을 다 자기 같은 인간으로 오해받게 만들고 있다.(대표적인 피해자, 나!) ... 쓸데없이 유명해져서-_-. 스티커 모델은 왜 하니, 대체.



[엠건]
Posted by 오승희



◀ 왜 어른들은 ‘아이들’의 죄없음(순수함)과 ‘어른들이 지켜줘야 하는 아이들’을 좋아할까.
   왜 그들은 ‘(아이들이 배제된) 우리들’을 아무 문제의식 없이 써서 들고 있을까.
Posted by 오승희

모처럼 일찍 끝나던 날 친구들은 모두 다 표지판 위를 걸으러 떠나버린 교실에서 컴퓨터를 하며 흐느끼던 나.
나를 울게 하던 안부게시판의 글.
안부게시판.
공부 때문에 많이 힘든 거니? 잘 하면서 뭘 그래.
모르면서, 모르면서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면서
안부를 걱정해주고 안부게시판에 글을 남겨줘서
또 애잔한 눈물을 뿌리게 하고 있네요.
난 표지판 없는 길을 걸어도 괜찮을 것 같아, 나를 알까.
그 길은 더 울퉁불퉁하겠지. 시기상조라구?
나도 편한 게 좋아, 한 박자 쉬는 걸 지독히도 좋아하는 내가.
편한 걸 결국에는
결국에는 잡지 않는다는 걸 너는 나의 선택을 믿겠니.
블로그를 열어놓고 컴퓨터를 부여잡고 눈물이 왼쪽으로 흐르던 날
나는 이 소소한 로망과 안부게시판의 사랑을 깨달았기에.
매끄러운 표지판이 아닌 울퉁불퉁한 길이더라도...


이 많은 것들은 내가 사춘기이기 때문에 온 것이 아니다.
원래 있었던 것이다.
다만 사춘기라는 시점에 좀 더 선명히 실감하게 되었고
그래서 더 예민하고
그래서 더 대범한 척하는 것이다.



[미니멜라]
Posted by 오승희

어른들은 우리들에게 항상 이런말을 하지.

“어린 것들이 뭘 안다고 그러냐”

어리다. 어리다. 어리다.... 

정말 어린 게 과연 누구일까?

우리가 우리의 인권을 보장받기위해서,

힘도없고, 빽도없는 우리가 이 사회의 잘못된 점을 고치자고 울부짖는 게 그게 어린 것일까?

아니, 나는 이런 우리를 이 사회에서 있어선 안되는 것으로, 마치 공부하기 싫어서, 어린애 투정부리는 것으로만 받
아들이는 어른들이 더 어리다고 생각해.

솔직히, 이 사회가 잘못 돌아간다는 것을 알면서도 대항하지도 못하고 그저 불평만하는 어른들이 어린 거 아냐? 아니, 이것조차 느끼지 못하는 어른들도 많아.

그냥 이 현실이 당연한 줄 아는, 그런 어른들도 많으니까. 그 어른들이 어린 거 아냐?

왜 우리를 나이가 적다는 이유만으로 평가하는 건데.

나이가 어리면 아무것도 모르는 거야?

우리도 세상을 보는 눈이 있어,

때로는 이 세상에 찌들어버린 어른들보다 우리가 더 정확하게 세상을 보기도 해.

정말 화가 나...

어리다 어리다 어리다 어리다 어리다 어리다...

도대체 왜 우리가 어리다고만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어.

자신의 이익만 바라보는 어른들이 한심하고 어려 보여.

우리보다 훨씬 -, 더 많이...

그리고 어리다의 원래 어원은 어리석다라지..?

정말 어린 건 이 사회의 부당함을 알고 바로잡고자 노력하는 우리가 아니라,

자신들의 이익만을 생각하고, 우리의 이런 생각을 어리다는 이유로 무시하는 어른들이라고 생각해.


[미친고양이]
Posted by 오승희

  우리는 이 땅의 수백만 대학생들을 대표하거나 대변할 생각은 코딱지만큼도 없으나, 그래도 적어도 몇 명의 대학생들의 심경을 표현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으로 이 글을 쓴다. 결론은 간단하다. 재수강은 이명박이 하게 하자! ㅠㅠ


  5월 초부터 시작된 촛불집회는, 광우병 위험 쇠고기에 대한 우려와 대운하나 교육문제를 비롯한 각종 정책에 대한 반대, 국민주권과 민주주의의 문제, 정부의 '소통'의 문제, 경찰폭력의 문제 등으로 계속 확대되면서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장마 기간이 시작되었고 촛불집회 참가자 수가 줄었네 어쩌네 하는 이야기가 돌고 있으나, 이 촛불은 그리 쉽게 꺼질 것 같지 않다.

  초기에는 참가자들 중에 청소년들 비중이 컸으나, 5월 중순을 지나면서 대학생들과 20대 이상의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는 촛불집회에, 우리 또한 시간과 체력이 허락하는 한 참여해왔다. 그러나 비극은 이명박 정부가 사람들의 외침에 닭장차도 모자라 명박산성까지 동원하며 귀를 막고 버티고 있었다는 데 있으며, 6월은 대학생들의 기말고사 기간이었다는 데 있다.

  이번 학기 학점을 살려야 하는지, 아니면 눈앞에 생생히 펼쳐지는 민주주의의 발전에 함께해야 할지 갈등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경찰의 폭력에 노출되고, 정부가 여전히 귀를 틀어막고 있는 상황에서 나만 살겠다고 학점에 매달릴 수는 없었다. 우리는 학점을 추구하는 대학생이기 이전에 인간이고 유권자이며 이 땅의 시민이었다.

  1987년 6월항쟁 때는 총학생회들이 결의하여 시험 거부, 또는 시험 연기를 결정했다고 하던데, 20대의 정치적 무관심이 어쩌구저쩌구 하는 이 2000년대에는 그럴 만한 배짱과 실력과 의지를 지닌 총학생회도 없었다. 결국 우리는 일종의 기말고사 보이콧을 선택했다. 우리는 기말고사 시험에 아예 들어가지 않거나, 혹은 기말고사 공부를 하기보다는 집회에 나가면서 최소한의 공부만 하고 시험을 보는 길을 택했다. 우리가 전혀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우리는 필기한 노트와 교재를 들고 가서 집회장에서 밤을 새며 나름 밤샘공부를 했다. 그러나 그런 걸로 때워질 만큼 요새 대학교 시험이 만만하지 않았다. ㅂㅞㄺ!!!

  이 땅의 민주주의와 우리의 건강한 삶을 위한 소극적 기말고사 거부의 결과는 장렬했다. 이제 우리 중 몇몇은 이번 학기에 때아닌 F 몇 개를 각오해야 할 지경이며,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학점 평균은 학자금 대출이나 장학금신청 등에서 최소 기준으로 제시되는 점수도 넘기기 어려운 지경이다. 가뜩이나 등록금도 더럽게 비싼데.

  우리는 이 책임이 1차적으로 우리들이 거리로 나가고 밤샘시위를 할 수밖에 없도록 막장 무개념 정치를 한 이명박 정부에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명박 정부는 한달  동안 계속된 촛불집회에도 불구하고 귀를 틀어막고 있으며 종래에는 우리가 소극적 기말고사거부를 택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올해 대학생 학력 저하의 주원인은 이명박 정부다!


  그렇기에 우리는 주장한다.

  우리의  성적은 이명박이 책임져라. 재수강은 이명박이 직접 해라.(물론 이명박이 재수강을 하면 학점이 C를 넘길지 의심스럽지만...) 그게 싫으면 이명박 정부는 즉각 우리의 목소리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라.  이명박 정부의 무개념에 희생당한 우리의 2008년 1학기 성적에 조의를 표하며, 더 이상의 무개념은 용납할 수 없다.



대학생 윤종 외 몇 명
2008년 6월 18일 수요일



마찬가지로 기말고사 성적을 각오하고(or 포기하고) 촛불집회에 참가해온 일부 청소년들에게, 연대의 의미를 담아서 이 글을 드립니다.(초중고는 재수강도 없지요 ㅠ)

* 재수강 : 대학에서 성적이 잘 안 나온 과목을 다시 수강하여 좀 더 좋은 성적을 받아보려는 슬픈 몸부림.
Posted by 오승희



  “비트 위에 쓰여진 비폭력의 서시”라는, 왠지 “두둥~!”하는 효과음과 함께 등장해야 할 거 같은 거창한 소갯말을 달고 있는 비폭력 랩음악 팀, 실버라이닝Silver Lining.(애칭 쉴라?)

  Silver Lining이 뭐냐 싶어서, 학교에서 모르는 단어 나오면 사전 펼쳐보라고 하며 다음 시간에 배울 부분에 모르는 단어 안 찾아온 애들을 한대씩 패던 폭력적인 영어 선생의 가르침이 이미 몸에 각인되어버린 폭력의 소산물인 나는 영한사전을 펼쳐보았다. “구름의 흰 가장자리; 밝은 희망[전망] : Every cloud has a ~. -> cloud”라는 설명이 써있었다. 아, 그래 희망…. 뭔가 아련하고 그리우면서도 납득이 가는 작명이랄까.

  랩음악은 그 태생부터 분노, 불만, 비판을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음악이었고 그 속에는 많은 욕설이나 폭력적인 표현들이 있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실버라이닝은 비폭력을 지향하기 때문인지 그런 관례를 벗어나려고 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고 범생이틱한 랩이란 건 아니지만 ㅎㅎ. 많은 욕설들이 소수자들(특히 여성이나 장애인 등)을 비하하는 내용이거나 폭력성을 담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 않은가? 실버라이닝의 음악들을 주욱 듣다 보면, 랩음악이 사회적인 비판의 메시지를 표현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는 동시에 연대나 희망의 메시지를 랩에 담으려는 노력이 느껴진달까. 美味~


  실버라이닝 중에서 그나마 잘 알려진 멤버는 '박하(buzz)'일 것이다. 한겨레21 인터뷰라거나 뭐 등등. 현재 정식멤버는 buzz, 웅술, core, 팽이, 한낱 5명. 슬프지만 난 이 5명이 한꺼번에 한 무대에 서는 걸 본 적이 없다 -_- 바쁜 건지 결속력이 떨어지는 건지, 내가 본 것 중 가장 많은 수가 무대에 선 게 3명이 출연한 거고, 1명만 나오는 경우도 많다. (5명 다 출연하면 롤링발칸과 로보트 출동을... <- 폭력적인 만화를 어린 시절부터 시청해온 폐해다.)

  실버라이닝은 구체적으로 뭘 노래하는 팀이냐구? 그것에 대해 내가 주절주절 떠드는 것보다는 직접 몇 곡의 가사를 적어두는 게 좋을 거 같다.

  가장 유명해진 곡 중 하나인 「평화가 무엇이냐」와, 실버라이닝 멤버들의 솔로 프로젝트로 나온 곡 중에 교육과 청소년인권에 관해 다룬 「The Wall」 이 두 곡의 가사를 아래에 달아둔다.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엄마 찾아 반만리」도 넣고 싶었으나 분량 관계상 생략. 직접 듣고 싶으면 http://cafe.daum.net/ahimsa로 들어가시길.(입장료는 무료다.)


평화가 무엇이냐
원곡 '조약골     편곡 'core
작사 '문정현·조약골 + buzz

<vocal - core>
공장에서 쫓겨난 노동자가 원직복직하는 것이 평화
두꺼비 맹꽁이 도롱뇽이 서식처 잃지 않는 것이 평화
가고 싶은 곳을 장애인도 갈 수 있게 하는 것이 평화
이 땅을 일궈온 농민들이 더 이상 빼앗기지 않는 것이 평화
성매매 성폭력 성차별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세상
군대와 전쟁이 없는 세상 신나게 노래 부르는 것이 평화
배고픔이 없는 세상 서러움이 없는 세상 / 쫓겨나지 않는 세상 군림하지 않는 세상

<rap1 - buzz>
나를 둘러싼 세상의 것을 보라
상대적인 가치와 기준에서 나의 판단이
옳다고만 할 수는 없겠지만
낮은 곳을 못 본 척 외면하진 말아
그 곳에 진정한 너와 나의 모습이 있으니까
세상은 모두의 것이니까
아기 까마귀, 아기 다람쥐, 한 마리의 메뚜기
모두가 주인이니까

<rap2 - buzz>
신나게 노래하자 / 일어나 춤을 추자
화사한 너의 얼굴 / 이제는 낯익구나
말뿐인 나의 행동이야 / 메마른 얕은 강물이야
너만을 기다리고 있어 / 그래서 살아갈 수 있어



The Wall
프로듀싱 '팽이(sampling from 「Another brick in the wall」)
작사 '팽이

<intro>
난 의도를 가진 음악가 낭팽 / 불만이 너무 많아 룸펜마냥 그냥 있진 않아
함께, 무엇을 할 것인가 대답해 / 대답해, 무엇을 할 것인가 대답해
내 앞에 나타나지 않는 벽을 깨닫게
하지만 선생은 입닥치게, 발목이나 잡지 말고 혼자 깝치게

<verse>
까시네, 맨날 앞에 서서 연설 / 까시네, 결국 매를 들 거면서
"사랑해, 모두 너를 위한거야" / 그것이 배신의 낚시네
까시네, 글로벌 인재의 육성? / 까시네, 당신의 개로 기르면서
"기대해, 보다 밝은 너의 미래" / 그것이 배신의 낚시네

<hook>
We don't need no education
교육인 척 자원부가 제공하는 기만의 우라질레이션
We don't need no thought control
선생들이 구사하는 임요환 뺨치는 환상의 control
No dark sarcasm in the classroom
폭력을 가르친 건 어른, 결국 상처받는 우리들의 마음
Teachers, leave them kids alone
청소년이 미성숙하다니 이런, 이거 완전히 사기 치는 결론

<verse>
"됐어, 됐어,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 됐어" "족해, 족해, 내 사투로 내가 늘어놓을래, 족해"
94년 그때지, 서태지가 "이젠 그런 가르침은 됐어"라고 말하면서
배때기를 불렸지, 여전히 학교는 학생들을 굴렸지

<chorus>
그러니까 학교! 이제는 바꿔! 더 이상 맞고! 살아갈 순 없잖아 이제는 바꿔!
어른에게 맡겼다간 낚여! 내가 직접 바꿔!

<verse>
"따지지 말고, 비판은 논술 할 때만 하고, 아무리 불만이 많아도, 잠깐일 뿐이니 참아둬"
십대들은 그래 ,흔들리기 쉽대
"6년만 참으면 되는데 뭐 하러 겁대가리 없이 개떼 마냥 모여 있데?"
떠들어봐야 바뀌는 건 없대
"공부해서 법대 가고 나서 말해"
원래 그 때는 불만이 많대
부모님한테, 이런 얘기 들을 때면 손을 들고 소리쳐!

<hook> 반복

<verse>
외쳐, 학생인권!
외쳐, 두발자유!
외쳐, 체벌금지!
외쳐, 입시폐지!

<chorus> 반복

<outro>
대답해......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대답해.



[E]
Posted by 오승희



  청소년들은 아프다. 명박이 정부는 청소년의 삶을 학대하고 있다. 아니다. 명박 이전부터 청소년 학대는 벌어져왔다. 다들 모른 체하고 있었을 뿐.

  많은 사람들이 ‘4.15학교자율화’ 조치가 어쩌구 떠들지만 이미 ‘수준별 이동수업’이라는 과목별 ‘우열반’, 0교시, 보충수업, 강제종교수업 등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언어영역 쉽게 내서 1교시 끝나고 자살하는 일 없게 한 거 말고는 한 게 없었다.

  입시경쟁으로 많은 청소년들이 자살할 동안에, 많은 학교에서 버젓이 강제야자와 강제보충수업이 시행되는 동안에, 정답과 경쟁을 강요하는 교육이 계속되는 동안에, ‘노간지’(놈현)는 어디서 뭘 하고 있었나? 그래, 어쩌면 교육/청소년인권문제에서는 노무현도 X놈이었을 뿐이었다. 쥐박이보다야 낫겠지만, 그래도 쥐보다는 좋았다고 칭찬 듣는 게 기뻐할 일은 아닐 듯싶다.

  한 교사는 4.15학교자율화 조치를 비판하며 없애버린 규제들 대부분이 ‘전봇대’(명박이가 쓸데없는 규제에 붙인 은유)가 아닌 ‘신호등’이라고 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4.15학교자율화 등등 때문에 학교들이 더 학생들을 막 다룰 수 있게 된 것도, 전반적으로 경쟁이 더 심해진 것도 사실이다. ‘학교자율화’는 ‘학생타율화’요 ‘학생노예화’였다. 그러나 어쨌건 그 ‘신호등’이 고장 난 신호등이었다는 건 짚고 넘어가야겠다. 적어도 그 규제들은, 청소년들의 인권을 보장해주는 데 그리 효과적이지 못했다. 더구나 이 도로 시스템의 치명적인 문제는 신호등 몇 개로 될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제는 지난 정권을 욕하고 있을 시간조차 별로 없다. 우리는 돌팔이 명박이 시대에 대처해야 한다. 지금까진 삽으로 조금씩 사람들을 입시경쟁 속에 파묻어가더니, 이젠 불도저로 그대로 밀어버리려고 하는 꼴이다. 4.15학교자율화를 하고, 본고사를 허용하고, 중고등학교도 서열화시키고, 기타 등.등.등.


  그리하여, 기어코, 가설라무네, 불도저에 밟히는 게 조낸 아팠던 청소년들이 꿈틀하기에 이르렀다. 광우병 위험 쇠고기가 급식에 올라올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안 그래도 불만이 높았던 청소년들을 거리로 나오게 했다. 

  그런데 글쎄 이 무식한 것들이 더 밟으려고만 들고 있다. 집회신고했다고 경찰이 학교로 찾아왔고 교육청들이 장학사 대군을 동원했다. 경기상고 교사는 학생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의견을 말했더니 절대폭력권을 발동하여 그 학생을 쥐어 패버렸다.

  게다가 정부는 학생노예화에 대한 비판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학교자율화’를 밀어붙이고 있다. 사람들의 촛불을, 행동을 그저 ‘광우병&미국산쇠고기’에 관한 얘기로만 한정지으면서 말이다.(재협상도 안 하고 있지만.)

  청소년들은 무시당해서, 경쟁당해서, 학대당해서 아프고, 맞아서 아프다. 그러나 아프면 아플수록, 죽기 전까지는 더 꿈틀대고 더 비명을 지르는 게 인지상정이다. 청소년들의 비명소리는 이렇게 분명한 형태를 띠고 있다.

“학교자율화는 학생노예화! 집어쳐!”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 보장하라!”
“광우병급식&식품 명박이나 처먹어!”

  지금의 상황을 딱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꿈높현시다. 꿈높현시는 “꿈은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이라는, 영화 『8마일』의 유명한 대사다. 저번 호의 ‘지못미’에 이어 2탄은 ‘꿈높현시’다.

  왜 꿈높현시냐 하면, 예를 들어, 작년까지만 해도 입시폐지와 대학평준화를 적극적으로 말해보려 했던 사람들도 명박이 때문에 ‘4.15학교자율화’ 막기도 급급해졌다는 것이다. 또한 급식운영에 민주적 참여, 생태적인 식량 생산과 직거래 시스템 등등을 꿈꾸고 있지만, 현실은 광우병 위험 쇠고기 수입되는 거 막기도 막막하다는 것이다. 또 또한 정당가입, 선거운동, 표현의 자유, 학생회, 대의제와 선거연령 등등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를 제한하는 온갖 것들을 없앨 것을 꿈꾸고 있지만, 집회장에서 장학사들 쫓아내기도 바쁘다는 것이다. 

  게다가 예를 들면, 나는 ‘4.15학교자율화’는 욕하고 명박이를 싫어하지만 “입시폐지”를 쓴 피켓이나 낙서에 대해서는 반대하고 눈살을 찌푸리는 상당수의 사람들을 촛불집회 현장에서 만나보았다. 따라서 지금의 촛불은, 그다지 꿈높현시를 극복시켜줄 것 같진 않다.


  정녕 꿈은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이다. 하긴 현실이 시궁창인 건, 쥐가 대통령으로 뽑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일 아닌가? 시궁창인 현실에서 좀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쥐박이부터 퇴치할 수밖에. 끈질기게, 우리의 꿈을 말하는 것을 잊지 않으면서 말이다.
Posted by 오승희





㈜ 11월24일 입시폐지대학평준화 행동 때 등장한 “우리는 공부만 하는 로보트가 아니야!” 전시물




  나는 몇 달 전 입시폐지 대학평준화에 대한 동영상을 만들어 올린 적이 있다. 싸이월드 광장에 ‘Where Am I’라는 제목으로 올렸던 그 동영상은 11월 24일에 있었던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문화제를 홍보하고 입시폐지 대학평준화를 알리기 위하여 만들었던 것으로 홍성지역에 학생들이 직접 손으로 입시폐지 대학평준화를 바라는 마음으로 만들었던 피켓을 사진으로 찍어서 만든 동영상이다. 그렇게 큰 기대는 하지 않았었지만, 의외로 여론마당 부분에서 베스트 3위를 해서 나조차 놀랐었다. 물론 댓글에 달린 내용에는 지지해주고 응원해주시는 분들도 많았지만, 고작 공부하기 싫은 학생이 객기부리는 것으로만 보는 분들도 있었고, 어른이 되면 세상 살기 더 힘드니까 그냥 이 현실에 순응하라는 분들도 있었고, 자신도 어릴 땐 그렇게 생각했지만 살다보면 그게 아니라고 포기하라는 분들도 있었고, 입시폐지 대학평준화에 대해서 날카로운 질문들 던지시는 분들도 계셨다. 보면 알겠지만 댓글을 달아주신 분들 중 몇몇 분들과는 거의 토론을 하다시피 했다.


  우리 학생들은 아침 일찍 등교해서 밤 11시까지 야자를 하고, 그거로도 모자라서 학원이나 과외를 찾는다. 학원이나 과외를 갔다가 집에 오면 밤 12시가 넘는 게 태반이다. 그러고 나서 바로 잘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숙제를 해야 하고, 수행평가가 있는 날이면 거의 밤을 새다 시피 하는 것도 부지기수다. 도대체 우리는 왜 이렇게 스카이 대학에 집착하고 입시를 위해서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개개인의 능력이 다르고, 꿈이 다른데, 왜 우리는 같은 곳에서, 같은 것을 배우고, 같은 기준으로, 같은 곳을 향해서, 같은 시험을 봐야 하는 것일까? 각자 잘하고 좋아하는 분야를 배우게 해주고, 자신의 꿈을 이루게 해주는 것이 진정한 교육이 아닐까? 우리나라는 자원이 없어서 사람이 자원이라고는 하지만, 그 자원의 활용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진정한 인재를 키우려면 개개인이 잘하는 것을, 그리고 좋아하는 것을 배우게 해줘야 한다. 모두 똑같이 국영수 위주의 공부가 아닌 개개인의 특성을 살린 다양한 분야로의 인재양성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우리나라는 학벌 위주의 사회이다. 학생 때 받은 성적과 학력이 평생을 좌우한다. 더 좋은 학벌을 획득하기 위해 연간 20여조 원의 사교육비를 투자하는 사회, 입시지옥에 시달려 한 해에도 수십 명의 학생들이, 우리의 친구들이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야만적인 사회이다. 부모님께서는 자신처럼 힘들게 살지 말고, 우리만이라도 편히 살라며 등골이 다 휘도록 돈을 벌어서 학원과 과외를 시켜주시고, 선생님은 우리에게 입시만을 위한 공부를 가르치고, 잘못된 이 현실을 알면서도 나서는 선생님이 있는가하면 묵인하시는 선생님 또한 많다. 우리는 꿈도 희망도 없이 공부에만 매달리다가 결국 입시라는 압박과 부모님에 대한 죄송한 마음에 자살을 택하기도 한다. 이것만 봐도 현재 우리나라의 교육제도가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잘못된 입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학평준화가 이루어져야한다. 입시문제는 대학서열체제가 존재하는 한, 그래서 모든 학생들이 스카이 대학에 입학하려는 경쟁에 돌입하는 한, 그 어떤 입시제도도 가혹한 입시지옥을 해결할 수는 없다.

  그리고 대학평준화가 실시되면 우리들의 학력이 저하된다고 우려하는 어른들도 많은데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오히려 대학평준화가 되어야 우리는 프랑스처럼 입시위주의 단편적인 지식과 획일적인 교육 속에서 벗어나 다양한 독서와 토론활동, 체험활동을 통해 폭넓은 교양과 진정한 창의력이나 문제해결능력을 기를 수 있다. 그렇게 됨으로써, 우리나라 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인 교육의 획일화도 사라질 수 있다. 또한 ‘어떤 대학은 ◯◯학과가 좋고, 어떤 대학은 △△학과가 좋다.’는 식으로 대학별 특성화를 유도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예는 프랑스로 파리 1대학, 파리 2대학 이런 식으로 나뉘지만, 각 대학은 전문 분야별로 특성화가 되어있다. 대학평준화가 되면 대학의 학문경쟁력이 낮아질 거라고 하지만, IMD에서 측정하는 학문경쟁력 1위인 핀란드는 완벽한 평준화체제이고, 세계적인 석학을 배출하는 나라인 프랑스 역시 대학평준화 체제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입시경쟁이 그 어느 나라보다도 치열하기에 더 높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건 아니다. 대학서열화에서는 대학 간의 진정한 경쟁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학서열화체제에서는 서울대는 영원한 일등이고, 지방대는 영원한 하위권이다. 잘하는 아이들은 모두 서울대를 가려고 하기 때문에 우리는 대학 간의 실력차이도 매우 큰 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대학평준화를 실시해서 대학 간의 진정한 학문적 경쟁이 일어나 대학이 더 발전할 수가 있다. 또 대학평준화는 전국의 모든 대학을 서울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상향평준화로서, 어느 지역, 어느 대학에 입학하든지 별다른 교육의 수준 격차를 느끼지 못하게 되는 상태를 말한다.

  대학의 졸업장 역시, 어느 대학이든 동일한 졸업장을 수여하는 통합학위 제도를 실시하기 때문에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에 따라서 사회적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학벌위주의 사회가 아닌 것이다. 또 대학평준화 정책은 학력, 학벌 차별 금지법,공무원 지역 할당제 등의 다양한 사회적 조치와 함께 시행되기 때문에 우리가 굳이 우리 지역에 있는 대학을 두고 서울 지역의 대학으로 갈 필요가 없게 된다.

  하지만 높은 사회적 위치를 가지기 쉬운 의대, 법대 등으로 선호하는 학과가 여전히 존재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적절한 제도적 조치와 운동이 전개되면 자신의 적성과 소질에 따른 학과지원이 일반화 될 것이다. 의대, 법대, 사대는 대학원에만 학부를 개설한다던가, 일부 학과에 집중되는 것을 벗어날 수 있는 방안으로 의사나 변호사를 대폭 늘려 다른 나라처럼 임금을 낮추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국민운동본부(edu4all.kr)’에서는 지난해 11월24일을 전국 공동행사의 날로 지정하여, 전국 각지에서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범국민대회+문화제를 열었다. 또, 경상대학교 정진상 교수님은 ‘학벌철폐’라는 깃발을 자전거에 달고 전국 자전거 투어를 하셨다. 그리고 수능 날, 도심 한 복판에서는 ‘입시폐지 대학평준화’를 요구하는 기자회견 및 퍼포먼스, 1인시위가 진행되기도 하였고, 많은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관련 UCC를 만들어 올리기도 한다. 아직은 시작단계에 불과하지만 점점 더 발전해나가고 있다.



[미친고양이]
Posted by 오승희




  정부가 낸 차별조장 차별금지법이 결국 이번 국회를 통과하진 못할 것 같아. 17대 국회래봤자 얼마 안 남았는데 국회의원들은 선거 땜에 정신없으시니 ㅋㅋ 어차피 좀 개념 있는 차별금지법 만들기는 안드로메다로 날아간 지 오래였으니 뭐….

  덧붙여서, 아무래도 새 정부가 차별금지법을 만들 거 같지도 않아. 이번 정부에게 ‘진보’란 소수자나 약자의 입장에서 사회를 바꾼다거나 정의, 인권을 고민하는 게 아니라 “토X카, 진보를 향한 열정”처럼 기술 좀 발달시키고 돈 좀 버는 거 같으니 말야. 훗.

  차별금지법 만들기를 비롯해서 전반적으로 차별을 없애는 활동들을 하기 위해 ‘반차별공동행동’이라는 걸 이번에 만든다고 해. 청소년들에게도 학력학벌 차별이나 나이 차별은 신경 안 쓸래야 안 쓸 수 없는 문제이고, 청소년들 중에도 성소수자, 장애인, 여성, 이주민, 에이즈 감염인, 비정규직 당사자 등등이 있지? 지금 이 글을 읽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몰라도, 한 번 관심 가져보는 게 어때?

(오른쪽 그림은 반차별공동행동에서 열었던 반차별영화 상영회 홍보물 일부)
Posted by 오승희

  내신문제에서 우리가 정말로 생각해봐야 할 대목은 "누가 내신비중 축소를 주장하는가"라는 것이다. 이쯤 되면 엄연히 계급적 문제가 얽힌 질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신비중 축소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강남의 학교들, 그리고 특목고들이다.

  시대분위기가 너무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섬뜩하게 느낄 수 있는 게 상류층 젊은이들의 의식이다. 이원복 교수가 어느 순간 한국은 "부자를 미워해서 자본주의정신이 정착이 안 된다"며 부자를 미워하지 말 것을 끊임없이 부르짖었는데, 지금도 그러고 있다면 이 아저씨 만화가 그만해야하지 않나 싶다. 부자를 동경하는 것은 경제가 어려우니까 그렇다고 쳐도, 빈자를 대놓고 무시하는 것이 쿨한 것쯤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지금 이 사회의 분위기다.


  학생들의 입시커뮤니티인 ‘오르비스 옵티무스' 등의 사이트에 들어가보면 서울대의 ‘지역균형선발제'가 뭇매 맞는 모습을 끊임없이 볼 수 있다. 강남권 학생들은 ‘지균'을 없애야 한다고 끊임없이 주장한다. 물론 이들의 주된 논거는 지균이 지역의 인재를 서울대가 독점하여 실질적으로 지역사회를 더 황폐하게 만든다던가, 실제론 지방중소도시가 아닌 지방대도시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내용이 아니다. 실질적으로 우리가 수능은 왜 더 높은데, 실력이 더 좋은데, 우리보다 공부못하는애들을 왜 뽑느냐는 불만이다. "지방 살면 다냐?"라는 한심한 발언도 이따금씩 보인다.

  무지는 죄라고. 지방 살면 다냐. 이 발언을 한 학생은 서울과 지방 사이의 교육환경 격차를 전혀 모르는 녀석이다. 사교육 시장의 격차는 물론, 한 학년에 500명이 경쟁하는 환경과, 한 학년에 100명 정도 경쟁하는 환경이 빚어내는 차이도 무시할 수 없다. 각종 유명학원이 앞다투어 개최하는 입시설명회 등 정보에 대한 접근권에 있어서도 격차가 벌어진다. 대졸자 및 전문직 학부모 분포도를 보아도 확 차이가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똑같은 잣대로 경쟁한다는 것은 수도권 학생들의 유리한 입지 거저 먹고 들어가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실질적으로 기회의 평등 따위는 없다.

  유리한 교육환경에서 다소 우수한 학생들이 모인다면 내신에 불리한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는 ‘집적이익'이란 것도 존재한다. 명문고가 제공하는 일종의 ‘집적이익'은 ‘스트레스' 못지않게 커다란 것임을 깨닫고 깜짝 놀란 바 있다. 우선 자기 점수에 대한 상대적 만족 기준이 올라간다. 남들이 다 잘하니까 계속 공부를 하게 되서 아예 만족하는 점수가 달라지고 웬만하면 목표점수에 맞춰 실질적 자기점수도 상승하게 되어있다. 상위권 학생들이 모여서 스터디라도 하면 그 효과도 배가 된다. 혼자서 공부하는 사람은 어지간하지 않고는 따라가기 힘들다. 결국 내신이 불리하다고 하더라도 결과적으론 명문고 학생들이 명문대 더 많이 간다. 내신 불이익을 상회하는 인센티브가 있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내신불이익 없애달라고? 욕심이 너무 지나치다. 그것이야말로 불공정 경쟁 아닐까.


  내신비중을 비약적으로 높인 8차 교육과정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입시에 내신제도를 강화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일선 고등학교 학교교육의 충실화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소모적인 경쟁과 스트레스만 야기한다는 문제도 잘 안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라면 다양한 대학입시전형도 있어야 하는 쪽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지금의 "대학의 자율성/자치권"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논쟁의 맥락에는 중고등학교 교육의 내실화도, 학생들의 실질적 부담 문제도, 그리고 수도권과 지방간의 격차 문제도 모조리 누락되어있다. 어차피 "그들"만의 자유가 될 대학자유란 이름아래 이 모든 맥락들이 아예 조명조차 못 받고 있는 것이 문제다. 조명은 못 받지만, 대학들의 입시전형에 따라 많은 중고등학생들이 영향을 받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한데 말이다. 아무도 조명해주지 않는 곳에서 벌어지는 생존경쟁의 결과는? 당연히 무조건 강자의 승리다. 그것도 부모, 출신지 등으로 인해 강해질 수밖에 없는 강자의 승리.

  적어도 국립대만큼은 전국곳곳의 학생들에게 실질적인 기회의 평등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 중간에 과정적 불평등은 수도권 사람들이 누리는 인센티브를 생각한다면, 그리고 동시대인에 대한 연대의식만 있다면 충분히 감수할 수 있다고 본다.

  서울대학교 학생들 거의가 중산층인데 국고보조금 뭐하러 주느냐는 목소리가 많지만, ‘거의 다 중산층이 서울대학교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구조'가 본질적인 문제인 것이다. 문제는 이장무 총장 이후 이런 국립대학교의 사명은 "세계적 명문대학"이라는 명분과 바꾸어 어디다 갖다 버린 거 같다. 영어에 능통하고 와인 마시는 법도 잘 알고 테이블 매너도 좋은 글로벌한 CEO, 그러나 정작 자기 옆동네에서 무슨 일이 벌어나는지도 모르고, ‘학교교육이 마음에 안 들면 과외선생을 붙이면 될 거 아냐'라는 말을 천연덕스럽게 할 듯한 그런 인재를 키우려고 하나보다.


  대학의 자유?

  누가 들어갈 수 있는 대학인가가 더 큰 문제 아닐까.



[맑]
Posted by 오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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