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8/09'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1.08.09 [6면] [사노라면] 맙소사 (1) by 오승희

맙소사

 그냥, 그렇다. 나는 다만, 그러니까 그저, 창밖의 한 간판을 보고 있었을 뿐이다. 거기에는, 맙소사, <전면코팅전문>이라고, 쓰여 있었다. 아니, 사실 <전면코팅전문>이라고 써있기는 했지만, 그건 사실 중요한 건 아니지만, 그러니까 이를테면 어린이 학습지 광고에 창의력을 키워준다고 써놓고는 사실 단순계산문제만 엄청 많은 그런 케이스와도 비슷한 것이어서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니었지만, 맙소사. 맙소사. 나는 충분히 놀라야만 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 밑에는, <단열코팅전문>과 <SM5코팅전문>이라는 두 명제가, 우리 학습지는 당연히 창의력뿐 아니라 사고력, 계산력, 지도력, 체력, 지력, 정신력, 암기력, 숙독력, …… 헉헉헉 ……… 근력, 지구력, 평형력, 만유인력, 양력, 전자기력 등등 또한 중점을 뒀다는 듯이, 떡하니 자연스럽게 붙어있었기 때문이다. <전면코팅전문>과 <단열코팅전문>, 그리고 <SM5코팅전문>이라고 하는 것이 동거하고 있는 상황은 너무나도 부조리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종류의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니, 도대체 한 가게가 모조리 다 <전문>이라면, 나머지 가게는 뭘 먹고 살라는 것인지, 이건 마치, 옷가게 정육점 구멍가게 제물포 모두 <한 가지만 전문>인 가게들이 모여 있던 촌동네에 <모든 물건들이 전문>인 이마트나 롯데마트, 까르푸 혹은 홈플러스 같은 종합할인점이 들어서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닌가. 맙소사라고, 맙소사를 외치지 않을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가게는 진실로, 모든 종목이 다 <전문>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맙소사.
 그러니까 그걸 멍하니 쳐다보고 있던 내 손에는, 마치 바이블과도 같이 한 학원의 전단지가 꽉 쥐어져 있었는데, 말하자면 그것이야말로 맙소사의 결정체였다. 그 학원 전단지에는, 맙소사, <초등영어>와 <중등영어>와 <수능영어>와 <영어회화>와 <토익>과 <토플>과 <텝스>를 모두 <전문>으로 한다는 학원 원장의 글이, 맙소사, 아무렇지도 않게, 마치 <전면코팅>이 <전문>이라면 <단열코팅>이나 <SM5코팅>도 당연히 <전문>이여야 한다는 듯이, 무덤덤하고도 지친, 어떻게 보면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으로, 쓰여 있었던 것이다. 오, 맙소사. 그 밑에는, <내신 국어>, <독서 논술>과 <대입 논술>도 역시 <전문>이라는 한 전직 시인의 글이 쓰여 있었고, 맙소사, 맙소사. 뒷장에는 네 명의 <전문강사>들이 초중고등학교 내신 수능 논술 선행학습 국영수과사 모두 합쳐 대략 스무 가지의 과목들을 모두 <전문적으로> 가르치고 있었다. 도무지 맙소사, 를 외치지 않고는 그냥 지나치지 못할 것만 같은 전단지가, 맙소사, 길 곳곳에 흘러넘치고 있어서, 맙소사,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야말로, <모든 것에 전문적>이지 않으면 먹고 살 수가 없는 세상에서, 나는 <어떤 한 가지에만 전문적>으로 살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맙소사.

(익명)

Posted by 오승희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