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답승리의희망 블로그에는 실제 오승희에는 실리지 않지만
 블로그에서만 보실 수 있는 편집후기 같은 걸 실으려고 합니다.


[편집후기 : 오답의 뒷면]
표지에 들어가는 이상한 문구의 정체


오승희 애독자시라면, 9호부터 표지 뒷면에 들어가기 시작한 이상한 문구들의 존재를 눈치채셨을 겁니다. 사실 뭐 대단한 의미가 있는 건 아니구요. 실은 9호 디자인 때부터, 앞면은 어찌 다른 분에게 의뢰해서 디자인을 했는데, 뒷면을 어떻게 채울지가 감이 하나도 안 오는 겁니다. 내일 모레는 갖다 맡겨야 되는데요!! 그래서 궁리궁리 끝에 여러 가지 관련된 사진들을 넣어봤는데, 그래도 제일 밑에 공간이 허전~하게 남더라구요. 그래서 결국 쥐어짜듯이 넣어본 게 그 문구였습니다.

박학하신 분들은 이미 알고 계셨을 텐데, 그건 나름 과거의 유명한 문구들을 "오답"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패러디해본 겁니다. 뭐, 9호 때는 워낙 절박하게 시간에 쫓겨 대충 아무거나 넣어서 별로 그런 느낌이 안 나지만 말이죠.

9호부터 13호까지 들어갔던 문구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뒷표지에 남길 후기? 저리 꺼져! 그런 건 본문에 충분히 말하지 못한 바보들이나 남기는 거야!
 - 오승희 9세  (9호)

오답들에게 권력을!
 - 오답주의가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되는 XX68년 혁명 당시 유행한 구호   (10호)

나는 오답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 오답주의의 기초를 놓은 철학자 답카르트의 제1원리  (11호)

정답적인 사람은 자신을 세상에 맞춘다. 오답적인 사람을 세상을 자신에게 맞추려고 노력한다. 따라서 모든 진보는 오답적인 사람에 의해 일어난다.
   - 오지 버답드 쇼  (12호)

  정답은 억압한다. 절대 정답은 절대적으로 억압한다.
   - 오답튼 경  (13호)


각각 마르크스, 68혁명 당시의 유명한 낙서, 데카르트, 조지 버나드 쇼, 액튼 경 등을 패러디한 겁니다. 9, 10, 11호까지는 꽤 억지로 끼워 맞춘 것 같았지만, 12호, 13호에 이르러서는 그럭저럭 그럴 듯해 보이는 말이 되고 있는 것 같아서 뿌듯합니다. 작명 센스는 여전히 꽝이지만요. "오지 버답드 쇼"라니 이 얼마나 무리한 작명입니까.

이 문구는 어떻게 정하냐구요? 무책임하게도, 지금까지 주로 표지 디자인과 편집의 마무리를 맡아온 공현이 알아서 지 맘대로 정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뒷표지에 들어갈 문구는 큰 문제가 없는 한은 표지 디자인 등의 작업을 맡은 사람의 재량으로 해둬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혹시 다음 14호에 들어갈 문구로 추천하고 싶으신 게 있다면 댓글 달아주세요. 예를 들면, <"내 사전에 정답이란 없다!"- 오답레옹>, <"하루라도 틀리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 - 안오답> 이런 식으로 말이지요. 소중한 아이디어를 반영하겠습니다.
 


보너스로 이번 13호가 개편 디자인 적용을 받기 전에 마구잡이로 디자인했다가 버려진 13호 표지 디자인을 공개합니다.



참 전통적(???)이죠?

Posted by 오승희



오승희 독자 분들에게


  저번 12호의 <사과문>에 이어 이런 사과문스러운 글을 또 드리게 되어 참 그렇습니다. 12호가 2010년 9~10월 경에 나왔으니, 한 10개월 정도 지난 셈이네요.

  늦어진 가장 큰 이유는 단연 돈 문제입니다. 저희가 정기 후원이 월 5~6만원 정도입니다. 계간지라면 3개월에 한 번 나와야 하는데, 3개월이어도 20만원이 안 되지요. 더구나 이번에 저희가 사무실을 구하면서 사무실 운영비도 공동으로 부담을 하고 있습니다.

  작업상의 문제도 있었습니다. 이번호에 편집이 확 달라진 걸 눈치 채셨나요? 새로운 능력자 편집진을 영입하면서 편집의 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해보았습니다. 홈페이지도 새단장을 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서울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에 오승희 편집진 중 반 이상이 참여하면서 도저히 편집을 할 시간적 여유가 나지 않은 문제도 있었습니다. 만약 출간할 돈이 있었다면 어떻게든 편집을 해서 냈을 텐데, 돈도 없어서 어차피 못 낼 것 같으니까 미루고 미루다보니 이렇게 된 거지요. 그 덕분에 문제도 많습니다. 예컨대 페미니즘인(in)걸 같은 경우, 이미 인권오름에서는 연재가 끝났습니다. 오승희는 그 연재속도를 한참 뒤처져서 쫓아가고 있는 거죠. 그밖에 국회도서관에 관해 투고해주신 글 등도 좀 시의성을 잃은 느낌이 있습니다. 이런저런 모든 문제들, 편집이 깔쌈(깔끔쌈빡)해진 걸로 용서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다른 편집 속도 문제 등은 의지를 가지고 극복할 수 있는데, 돈 문제는 참 어떻게 할지 모르겠습니다. 오승희를 사회적 기업 신청을 하자거나 출판사로 만들어서 출판업을 해서 돈을 벌자거나… 여러 가지 허황된 이야기도 하고 있고, 다시 신문으로 돌아가자거나, 표지를 흑백으로 하자거나, 잡지 형태를 유지하되 20~30 페이지 정도로 분량을 줄이자는 이야기 등도 있습니다. 조만간 결론이 나겠죠?

  여하간 13호가 어찌어찌 나온 것에 안도하며… 구독자 여러분께 감사와 죄송한 마음을 동시에 전합니다. 오승희 편집진들은 어렵긴 하고 나오는 것도 비정기적이긴 하지만 내는 걸 중단할 생각은 아직 없습니다. 변함없이 사랑과 관심과 글을 보태 주세요! ^^



편집  곧여신혜원 공현 둠코 빈센트 세치
디자인 Skyjet
주소 서울시 영등포구 문래동2가 57-4번지 2층
http://vivaerror.net
http://vivaerror.tistory.com

2011년 8월 발간


Posted by 오승희

들어온 돈

내 역

나간 돈

내 역

41000

11호 이월금

650000

12호 인쇄

62000

8월 CMS(2009)

10000

12호 운반

52000

9월 CMS(2009)

10000

10월 사무실 운영 분담금

72000

10월 CMS(2009)

97410

12호 우편요금

62000

11월 CMS(2009)

150000

사무실 이사 비용 분담

62000

12월 CMS(2009)



40020

1월 CMS



40000

2월 CMS



30500

3월 CMS



52000

4월 CMS



31000

5월 CMS



59800

6월 CMS



40075

7월 CMS



35295

8월 CMS



35240

9월 CMS



35295

10월 CMS



185000

개인 후원



490000

편집진



98

이자 등



1425323

합계

917420

합계



잔 액

116893원



◎ CMS(정기계좌이체)로 후원해주시는 고마운 분들
    강문*  임재*  최인*  정양*  김민*  이세*  권혁*  김동*  한선* 최은*
 
  CMS로 매달 후원해주시려면 이메일 vivaerror@gmail.com 로
  ▲이름 ▲주민등록번호 ▲계좌번호 ▲금액 ▲주소 ▲연락처를 적어서 보내주세요.
  혹시 소득세를 내시는 분들은 CMS 후원한 걸로 소득공제를 받는 것도 가능합니다.
  (‘전북평화와인권연대’의 지원으로 운영하는 CMS입니다. “인권재단 사람” 이름으로 출금됩니다.)
Posted by 오승희


당신의 페이지에 오류가 있습니까?



◎ 청소년자유언론 <오답 승리의 희망>(오승희)입니다. 사회가 강요하는 ‘정답’과 어긋나는 이야기들이, ‘오답’들이 속에서 꿈틀대는 분들과 함께합니다. 자유롭게 글을 써서 게시판(http://vivaerror.net/zine/)에 투고해주세요. 되도록 모두 싣도록 하겠습니다. <오승희>는 검열 없는 신문(잡지?)을 지향합니다. (투고받은 글들은 편집진의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 좀 띄엄띄엄 나오고 있는데요. 13호는 12호에 이어 10개월 정도 기다리셨죠? 죄송… 거의 무크지 수준으로 비정기적으로 나오네요. 돈만 있다면 격월간지나 월간지로 내고 싶습니다. ㅠㅠ 아예 분량을 확 줄여서 좀 더 자주 내는 건 어떨까요?

◎ <오승희>는 무료가 원칙입니다. 다만 많이 받아가는 단체 등에게는 좀이라도 후원금을 내달라고 부탁드리고 있습니다. 그냥 받아보시는 분들도 받아보실 때마다 돈을 조금이라도 주시면 <오승희>가 먹고사는 데 큰 보탬이 됩니다. 사무실 마련하고 나서 재정난이 한층 더 심해졌습니다. (후원계좌 농협중앙회 079-12-940026 유윤종)

◎ <오승희> 블로그도 있습니다. http://vivaerror.tistory.com 입니다. 지난호에 올라왔던 글들, 미처 못 실은 이야기들 등이 올라갈 겁니다. 그리고 편집후기 같은 것도 한 번씩 올릴 계획입니다. 오승희 트위터도 만들었습니다. @vivaerror 입니다.

◎ <오승희>에서 사무실을 얻었습니다.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가 구한 사무실에 덤으로 얹어서 쓰는 거지만;;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문래동2가 57-4번지 2층입니다. <오승희>를 더 안정적으로 보관하고 만들 수 있게 됐습니다.

◎ 한겨레결체, 윤고딕240, 윤고딕330, 윤고딕340, 성동고딕, Bell Gothic Std, Century Gothic 글꼴을 사용하였습니다.

Posted by 오승희


학생인권 종결자
『인권, 교문을 넘다 - 학생인권 쟁점탐구』


공현



"두발자유는 머리카락의 자유인가?"

  두발규제에 맞서서 두발자유를 외치는 학생들이 아마 한 번씩은 들어봤을 법한 말. "머리카락 같은 사소한 거에 신경 쓸 시간에 공부나 해!" 그런 개념 없는 소리에 맞서기 위해 두발자유 시위 때 이런 표어도 나왔더랬다. "잘리는 건 단순히 머리카락이 아니라 인권입니다." 하지만 좀 더 발칙하게, 이렇게 질문으로 답해보면 어떨까? "그게 그렇게 사소한 거면 왜 그렇게 열심히 규제하고 단속하세요?"

  새로 나온 학생인권 책, 『인권, 교문을 넘다 - 학생인권 쟁점탐구』(한겨레에듀. 인권교육센터 들 기획. 공현, 박민진, 배경내, 오혜원, 정주연, 조영선 함께 씀.)는 바로 그런 발칙한 질문과 그 질문에 답을 찾는 과정의 결실이다. 왜 학교에서는 그렇게 학생인권을 규제하고 침해하는 데 열을 올릴까? 학생들이 이런 인권을 보장받게 되면 대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이 권리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이런 질문들을 던져나가면서 학생인권의 여러 쟁점을 탐구하는 것이 이 책의 중심 내용을 이루고 있다.

  책의 본론 격인 2부, 그 중에서도 첫 장의 소제목, "두발자유는 머리카락의 자유인가?"는 그런 책의 성격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 두발규제는 단순히 머리카락을 규제하겠다는 것이 아니요, 두발자유는 단순히 머리카락의 자유가 아니다. 독재자 박정희 대통령은 왜 장발단속을 했는지 보수적 억압적 정부가 들어선 이슬람권에서는 왜 사람들에 대한 두발복장규제가 강화되는지, 1987년 노동자 투쟁 때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의 첫 번째 요구사항은 왜 임금 인상이 아닌 두발자유였는지, 풍부한 사회적 비유와 대조를 통해 두발자유 쟁점의 의미를 탐구한다. 이 책은 두발자유의 당위성을 주장하기보다는 두발규제와 두발자유의 의미를 비교하고 탐구하는 형식을 취한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인권, 교문을 넘다 - 학생인권쟁점탐구』 2부는 두발규제, 체벌, 강제야자, 교복․복장, 휴대전화, 양심의 자유, 집회의 자유, 연애, 총 8가지 학생인권의 뜨끈뜨끈한 주제들을 꺼내서 요리한다. 그 목차는 다음과 같다.

① 두발 자유는 머리카락의 자유인가? | 한낱 머리카락에 학교가 그토록 목매는 이유
② 맞을 짓 한 자? 맞아도 되는 자! | 체벌과 폭력 사이
③ 우아한 거짓말과 구차한 양심 | 양심의 자유, 사뿐히 지르밟고 가시더이다!
④ 접속 금지, 발신 금지 | 휴대전화와 함께 추방되는 것들
⑤ 교복은 메시지다 | 복장 단속, 무엇을 단속하는가?
⑥ 도둑맞은 시간과 비어 있는 시간 | 강제 보충과 야자는 누구를 울리나?
⑦ 중립이라는 감옥, 정치적 미성숙의 감옥 | 집회의 자유는 학생의 삶을 어떻게 바꿀까?
⑧ 사랑은 아무나 하나 | '연애질', 금지된 것을 꿈꾸다



"화장실"에서부터 질문은 시작된다


  서론 격인 1부도 가볍게 읽어 넘기기에는 좀 만만치 않다. 1부는 화장실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교직원 화장실을 몰래 쓰는 재미로 학교 다니는 학생 이야기다. 그냥 시설이 좋아서 몰래 훔쳐 쓰는 게 아니다. 쓰고 나오면서 꼭 이런 것들을 붙여놓는다. "우리 학교 교사 수는 50명인데 화장실은 3개! 학생 수는 1000명이 넘는데 화장실은 몇 개일까요?" 같은 질문에서부터, "3층 남자 화장실 변기가 고장난 지 2개월째인데 수리도 안 해주고 있다!" 같은 고발까지.

  『인권, 교문을 넘다』는 어떤 화장실을 쓰느냐, "똥 쌀 권리"를 얼마나 어떻게 보장받고 있느냐, 거기에서부터 인간의 존엄성의 한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렇다. 화장실 뿐 아니라 중앙현관 학생 출입금지 같은 사소한 곳, 교무실 청소를 왜 학생들이 하느냐 하는 작은 불합리에서부터 학생들의 자기 처지에 대한 인식은 시작된다.

  이처럼 화장실로 시작한 1부에서는 동방신기 팬클럽 이야기, 무상급식과 학생인권조례 사이의 간극에 대한 이야기, 개학반대 시위 이야기 등을 거쳐서 학생인권의 봉인을 풀어나갈 질문들을 던진다. 그 질문들을 스스로 자문하다보면 어느새 학생인권에 대해 자기가 가지고 있던 '프레임'(생각 틀)들이 변화해가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학생인권이 넘어설 것들


  마지막 3부 "학생인권 논리탐구"에서는 학생인권을 이야기할 때 흔히 맞닥뜨리게 되는 여러 이야기들에 관한 논리들을 모았다. 부모 문제(친권), 미성숙, 법치주의, 보호주의, 교권 등등. 그리고 마지막에는 학교 안의 소수자와 차별 문제까지. 학생인권을 이야기할 때 우리가 넘어서야만 하는 것들, 좀 더 근본적인 관점에서 다시 이야기해야 하는 것들을 큰 틀에서 짚어주고 있다.

  긴 말 필요 없이, 다음과 같은 구절들을 직접 읽어 보자.

"미성숙은 말 그대로 성숙하지 못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사람은 달걀 프라이가 아니니 어디까지가 반숙인지 완숙인지 구분하기란 불가능하다. 겉으로 완벽해 보이는 사람도 어딘가 미숙한 구석이 있게 마련이고, 오히려 정신이 성숙하지 못한 사람들이 겉으로는 센 척, 성숙한 척하는 일도 많다. …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에서 어떤 사람을 성숙하다고 여기고 어떤 사람을 철없는 사람으로 여기느냐, 곧 성숙을 판가름하는 기준이 무엇이냐를 살펴보는 일이다."(pp.243-244.)

"보호의 반대말은 방임이 아니라 '자유'가 아닐까? 청소년이 자기 힘을 기르고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도록 하는자유 말이다. 그런데 자유는 단순히 '간섭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지원을 요구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 보호주의를 넘어서자는 말은 청소년에게 홀로서기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청소년들을 울타리 안에 꽁꽁 가둬 두는 보호주의에 묶여 있는 한, 청소년에게 정말 필요한 사회적 지원이 뭔지를 보지 못하게 된다는 이야기다."(p.260)

"교육이 전투가 될 때 교사의 전투력을 떨어뜨리는 듯 보이는 학생인권이 환영받을 수 있을까? 학생의 인권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교사의 통제력이라는 생각이 힘을 얻는 것 아닌가?"(p.264)

"학생인권을 주장하는 것은 학부모가 가진 것을 빼앗아 오자는 것도 아니고, 학부모를 학생의 삶에서 밀어내고 간섭하지 말라고 외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학부모의 위치를 제자리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는 이야기이고, 학생과 학부모가 같이 살아가기 위해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 학부모가 주인공으로 나설 무대는 자신의 삶이어야 한다. 학생인권은 이렇게 자녀의 삶에만 붙잡힌 채 자기 무대를 잃어버린 학부모도 자유를 되찾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함께 건네고 있다."(p.293)

"학교에서 인정하는 능력은 공정한 경주와 노력의 결실로 이야기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승패가 이미 예정되어 있는 경주를 공정하다고 말하고, 뒤처지거나 패배한 이들이 자기 탓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야말로 폭력이고 숨겨진 차별이 아닐까? 학교에서 인정하지 않는 능력, 돈이 되지 않는 능력을 가진 이들을 무능력하다고 얘기해도 될까?"(p.302)



학생인권 종결자


  현재 시점에서, 『인권, 교문을 넘다』는 "학생인권 종결자"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을 만한 책이다. 적어도 지금까지 학생인권에 관해 논란이 되었던 이야기들을 모두 그러모아서 이토록 넓고 깊게 파헤친 책은 이제껏 없었다. 물론 앞으로 학생인권이라는 사회의제가 더 많은 내용, 더 풍부한 이야깃거리를 가지게 되면 이 책도 부족한 부분을 많이 드러내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때까지는, 이 책이 학생인권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읽어야 할 바이블(Bible)이자 교과서 역할을 해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나 역시 책의 공저자 중 한 명으로서 더욱 그런 기대를 가지고 있다. 이 책의 내용을 뽑아내기 위해 워크샵을 하고 집필을 하는 데는 대략 1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지만, 사실 이 책에 담긴 내용은 6년, 아니 10여년의 세월 동안 학생인권을 이야기하고 발로 뛰어온 사람들이 궁리해내고 토론하면서 만들어낸 것들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교사들이나 학생들, 학부모들이 수능 문제집을 풀 시간, 취업 준비를 할 시간, 입시전형을 알아볼 시간 중 아주 조금만 할애해서 이 책을 읽는다면 학생인권 현실은 좀 더 나아질 수 있을 것이다. 또 중간중간에 제시하고 있는 더 이야기해봐야 하는 토론거리들을 가지고 같이 토론을 한다면 학생인권에 대한 더 풍부한 논의가 가능해질 것이다. 그 토론 페이지 역시 뻔하게 "두발규제가 필요할까?" 같은 게 아니라 "연애할 자유를 보장하면 여성 청소년들이 차별을 당하거나 피해를 겪는 일이 늘지 않을까?" 같은 섬세한 질문이나 "남을 모욕하는 말을 내뱉는 것은 양심의 자유 차원에서 어떻게 볼까?" 같은 어려운 질문까지, 학생인권에 대해 좀 더 앞으로 나아가고 구체화해야 할 고민지점들을 짚고 있다.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사람들은, 당연하게도 학생인권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이다. 책 디자인 자체도 학생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일러스트와 만화 등을 풍부하게 실으려고 노력했다. 학부모 분들도 읽으시면 좋다. 그렇지만 집회의 자유 보장이 빨갱이들의 음모라는 식의 무개념하고 얕은 소리가 버젓이 한국 1, 2위를 다툰다는 '정론지'에 실리는 현실에서는, 일단 그런 칼럼을 쓰는 기자들이나 교수들 먼저 이 책을 읽혀야겠다 싶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제안하자면, 학교를 졸업할 때,(재학 중에는 싸움 거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으니까) 학생들을 '잡는' 교사들에게 이 책을 졸업 선물로 선물해보는 건 어떨까? 이명박 대통령이나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그밖에 교육감들이나 장학사들, 교장들에게도 읽히고 싶다. 자기가 하는 일이 무슨 의미인지, 학생인권이 뭔지, 개념 탑재가 좀 될 수 있도록.



추신 : 책이 오탈자가 좀 많다. 급하게 편집, 디자인을 하다 보니 생긴 문제 같다. 1쇄가 다 팔리고 2쇄가 나올 땐 가능한 한 고쳐져 있길!

Posted by 오승희

밑바닥에 깔린 청소녀 알바

44만원에 그치지 않는 노동현실

윤티



44만원, 청소년 비정규직 알바

나는 청소녀 알바생이다. 시사in에서 얼마 전에 나 같은 사람들에게 이름붙이길, 일명 “44만원 세대”라고 했다. 나는 여성이며, 청소년이고, 말하자면 비정규직 노동자다. 요즘 청소년노동인권 토론회나 언론 인터뷰 등에서 내가 이런 존재라는 것을 여러 번 우려먹고 있는 사실이긴 하지만 이게 뭐 비밀도 아니고 계속 말해서 닳고 닳을 얘기도 아니니까 괜찮지 않을까? ㅋㅋ 그래서 이번에도 내 경험을 가지고 한 번 청소녀 알바생들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탈학교 청소년인 나는 부모의 눈치 압박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배우고 싶은 것들을 내가 번 돈으로 배우고 싶었다. 그래서 돈이 필요했다. 그렇게 알바를 시작했고, 내가 처음 일했던 곳은 패스트푸드점이었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나는 카운터에서 계산하는 일을 하였다. 내가 하는 일은 뒤편에서 햄버거를 만드는 남자애들의 일보다 더 편한 일인 것처럼 느껴졌고, 그래서 처음에는 (어떤 기준으로 책정된 건지 잘 몰랐지만) 남녀의 시급에 차이가 있었지만 그러한 차이에 대해 별 감각이 없었다.

하지만 일을 하면 할수록 이게 그리 편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면 할수록 진이 빠진다고 해야 할까.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그냥 계산대를 두드리고 주문을 받는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여성다움’을 같이 팔고 있었다. 일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서야 알았다. 난 주문을 하러 들어오는 손님들에게 맑은 목소리를 선사해야 했고, 버거를 만드느라 지친 몸에 못지않게 스스로를 여성스럽게 가다듬고, 언제나 웃는 얼굴을 보여야 하는 ‘험한 일’을 해야 했다.



청소녀들, 돈을 벌려면 성을 이용하라구?


어쨌든 돈은 벌어야 했기에 패스트푸드점 알바를 그만두게 된 뒤에도 다른 일을 구하였다. 그런데 그 일이 참 커다란 ‘일’이었다. 사무직 일이었는데, 처음에는 일주일에 사흘 정도만 나가서 서류 정리 조금 하면 되는 일이라고 했다. 하루 4~5시간 일하고 일당은 2만원이라고 했다. 그런데 면접을 보러 갔는데 가자마자 내게 설거지와 청소를 할 수 있겠냐고 물어보더라. 자기가 혼자 일하고 있는데, 그런 일들을 못하고 있다고. 이래서 여자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그때 깨달았어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집에서도 잘 하지 않는 일이었지만 돈이 필요하니까 한다고 얘기했고, 그렇게 그 사장의 사무실(인지 집인지)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주급을 받는 날, 그 기러기 사장의 무언가를 요구하는 눈에 나는 큰 반항 한 번 못하고 ‘당해야’ 했다. 처음엔 다리를 쓰다듬더니, 나중에는 안아달라고 했다. 그 상황에서도 아직 돈을 받지 못했다는 생각에, 그냥 박차고 나와 버릴 수도 없었던 그 때를 생각하면, 더 치가 떨린다. 나는 일을 하러 갔는데, 그 사장이 원한 건 내가 생각하는 일이 아니고 다른 일이었다는 것이 무서웠다. 여성청소년이 돈을 많이 버는 일을 구하려면 일단 이런 수모는 미리 각오하고 들어가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하며 그 오피스텔을 빠져 나왔다.

사실 처음엔 이런 일을 당했어도, 혹시나 있을지 모를 사장의 해코지가 두려워서, 또는 이제 와서 하소연해봤자 뭐가 있겠나 싶은 마음에, 내 마음 속에만 꽁꽁 숨겨왔던 것 같다. 많은 청소녀 알바생들이 그러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렇게 당당하게 자신이 겪은 일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 청소년 알바를 모집하는 광고. <사진 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밑바닥 노동, 청소년 노동인권 현실


얼마 전인 11월 27일에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에서 발표한 ‘청소년 노동자의 노동인권실태’를 보면, 청소년들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88만원 세대만도 못한 44만원 세대인 청소년 알바. 그래서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는 이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할 때, '밑바닥 노동'이라는 표현을 썼다.

시급이 3770원이었을 때도 2100원, 2500원 등등 햄버거 한 개 값만도 못한 시급을 받으며 청소년 알바는 그렇게 '헐값노동' 취급을 받아 왔다. 그나마 올해부터 시급이 4000원으로 올랐다고는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시궁창이다. 임금뿐만 아니라 노동 환경 또한 청소년 노동자들에겐 가혹하다. 실태조사 결과 발표에 따르면, 일하는 도중에 휴식 시간과 휴식 공간의 여부를 묻는 질문에 대해 '휴게시간 따로 없다/휴게실 없다'고 답한 비율이 각각 62.0%, 62.8%로 꽤나 높게 나왔다. 근로기준법에도 4시간 일을 하면 30분은 꼭 쉴 수 있게 해야 한다,라고 명시되어 있지만, 청소년 노동자들에겐 쉬는 것도 사치일 뿐인 것 같다. 나도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할 때 매일 똑같은 버거만 먹으면서 좁은 곳에서 딱 30분 쉬게 해주었던 기억이 있는데, 그 30분이 너무 짧게 느껴졌으니까.

우리가 청소년이기 때문에 고용주(비청소년)들은 우리를 더 쉽게 대한다. 실제로 어떤 청소년은 일하는 시간보다 늦게 도착했다고, 손을 들고 벌을 서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청소년'노동자가 아니었다면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일일테다. 일단 '청소년'에 대해, 거기다 공부만 죽어라 열심히 해야 할 청소년이 '알바'라는 것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 딱히 칭찬해주지 않는 사회이기 때문에 그 사회의 시선으로 보면 우리는 너무나 만만한 존재다. 그래서 서비스업, 주문을 받는다거나, 전화를 건다거나 하는 업종에 있다 보면 손님들까지 우리를 막 대할 때가 있다.

▲ 최저임금위원회 앞에서 청소년 노동자들이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용모단정(?)과 밑바닥을 벗어날 날은


나도 일을 하고 싶고, 돈을 벌고 싶다. 하지만 확실히 변하지 않는 건, 여성청소년에게는 주어진 일자리조차도 별로 없다는 것이다. 힘들게 일하고 돈 많이 주는 알바는 난 할 수 없다. 하고 싶어도 못한다. 편의점 야간알바는 대부분 남자를 뽑고 오토바이배달이나 다른 배달 쪽 일도 거의 남자가 대부분이다. 청소년 알바도 성별분업이 되어 있다. 여성들은 상냥하고 예쁘고 얌전한 일, 남성들은 힘쓰고, 몸 부딪히고, 강하고, 험한 일. 우리는 그런 식의 험한 일은 여성들의 것이 아니라는 걸 계속 교육받아왔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대중매체들에서도 여성의 직업과 남성의 직업은 확연한 차이가 있다고 보여준다. 그리고 남성 직업인데 그 일에서 성공한 여성들, 소위 말하는 '여성 엘리트' 을 보여주며, 이례적인 일이라는 투로 말하곤 한다. 그러면서 다른 여성들을 향해 말한다.
"너도 네 재주껏 해봐."
남성은 능력만 있으면 된다고 하지만 여성은 능력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말이 있다. 다시 내가 알바를 구할 때는 '용모단정'이라는 조건에 맞추기 위해 시간을 써야할 것 같은 두려움이 스물스물 생겼다.

여성청소년으로 노동을 한다는 것은, 안 그래도 '밑바닥 노동'인 청소년 노동에서 그 '밑바닥'을 뚫고 한참 더 내려가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그것은 비슷한 일을 하는 것 같은데 (안 그래도 초초저임금인) 시급에 남녀차가 있는 것이기도 하고, 손님들을 대할 때 아무리 토 나올 것 같은 손님을 만나더라도 언제나 생글생글 웃어야 하는 것이기도 하고, 주급 더 올려 줄테니, 애인이 되어달라는 마초 아저씨들의 더러운 말을 시도 때도 없이 들어야하는 것이기도 하다.

여성과 청소년, 여성 청소년의 노동 현실은 언제쯤 밑바닥을 벗어날 수 있을까.

Posted by 오승희



우리는 늘 홀로코스트와 대면한다


어릴 때부터 국사나 사회 같은 과목들을 좋아했다. 내가 전부라고 여기며 살아온 세상이 사실은 아주 좁은 세상임을 알았을 때의 ‘놀라움’이, 나보다 훨씬 이전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엿본다는 ‘짜릿함’이, 내가 태어나기 이전에 벌어졌던 역사적 사건들이 준 ‘전율’이 아마 내가 사회 과목을 좋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들이리라.

아주 나른한 오후의 수업 시간이었다. 쏟아지는 졸음을 참아 가며 힘겹게 사회 교과서를 뒤적거리고 있을 때, 내 눈에 짧은 토막글 하나가 들어왔다. 그것은 ‘홀로코스트’에 관한 이야기였다. 사회 선생님은 제2차세계대전 당시 히틀러와 나치가 ‘열등한’ 유대인들에게 저질렀던 만행을 비판하며 열변을 토했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역사적으로 반복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 노력해야 한다는 말로 수업을 마무리했다. 그때 그 수업에서 느낀 감정들은 뭐랄까. 이전까지 국사나 사회 시간에 느꼈던 기분 좋은 놀라움이, 짜릿함이, 전율이 아니었다. 그것은 기분 나쁜 공포였고, 분노였고 소름 돋는 불쾌함이었다.

참 무서웠다. 그렇게 타인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은 그들의 ‘아무렇지 않은 듯한’, ‘당연한’ 행동이 무서웠다. 그래서 참 부끄럽게도 나는 ‘홀로코스트’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마다 늘 생각했다. 이런 일들이 나에게 일어나지 않음에 참으로 감사하다고.

솔직히 말하면, 그렇게 믿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한마디로 말해서, 난 착각하며 살아온 것일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사실 어쩌면, 우리는 순간순간마다 또 다른 홀로코스트와 대면하고 있었던 것일 수도 있다. 나치가 홀로코스트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선례를 남긴, ‘사회에 해가 되는’ 부류를 신속하게 추방하고 배제하는 방식을 가장 잘 실천하고 있는 곳은, 아마도 오늘날 대부분의 청소년들이 다니는 ‘학교’라는 공간일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나는 학교를 그만두고 아수나로라는 청소년인권단체에서 활동하며 나름대로 청소년인권운동이란 것을 한다고 헐떡대며 살아가고 있다. 하는 일 덕분인지, 다양한 고민과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청소년들을 수없이 만난다. 얼마 전 이른바 언론에서 ‘40명 퇴학’으로 시끄러웠던 경기 남양주 K고등학교 학생회 임원인 성민이도 그렇게 아수나로를 통해서 만나게 되었다.



홀로코스트 인 스쿨


지난 5월 22일, 아수나로 남양주지부 회의가 있었다. 그날 성민이는 우리를 찾아왔다. 회의 내내 조용히 듣고만 있던 성민이는 회의가 마무리되어 갈 때쯤 자기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우리에게 꺼내 놓았고, 성민이의 얘기에 나를 포함한 지부의 모든 활동가들은 “헐!”을 외칠 수밖에 없었다.

성민이의 말에 따르면, 올해 개교한 성민이네 학교는 개교한 지 한 달 만에 처음 퇴학당한 학생이 나왔고, 석 달이 된 지금까지 교칙 위반으로 무려 20여 명의 학생이 강제 자퇴나 전학으로 학교를 떠났으며, 그렇게 많은 학생들이 학교를 타의적으로 떠나게 만들었던 교칙이 제대로 개정될 기미가 안 보인다는 것이었다. 더 큰 문제는 그 교칙이 그대로 적용된다면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어 있는 20여 명의 학생들이 또다시 학교를 떠나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란다. 학생이 학교를 떠나는데 참으로 큰 ‘공’을 세운 교칙의 조항은 벌점이 70점 이상이면 자퇴나 전학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 흡연 및 담배나 인화물 소지 4회 이상 적발 시 역시 자퇴나 전학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경기도교육청에서는 각 학교에 학생인권조례안을 반영한 〈학생생활인권규정〉을 5월 27일까지 제·개정하라는 공문을 내려보낸 상태였고, 학교 측은 이를 알고 있었음에도 학생회 임원인 성민이에게 “학생회 측에서 학생, 교사, 학부모용 설문지를 만들어 결과를 가져오지 않으면 규정에 인권조례 반영은 없다”는 식으로 배짱을 부리고 있던 상태였다. 게다가 학교는 교칙을 제·개정해야 한다는 사실마저도 마감을 2주일 정도 앞두고서야 학생회 측에 알렸다. 그 사실을 안 후 1주일 정도 임원 연수에 참여해야 했던 학생회 쪽에선 사실상 교칙 제·개정을 준비할 수 있는 기간이 단 1주일밖에 없었다. 학교 측의 요구가 부당한 걸 알고 있지만 도저히 다른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성민이는 애가 탔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생회 임원으로서 성민이는 큰 부담을 느꼈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학교 측 몰래 우리를 찾아왔다고 한다.

고민이 깊어졌다. 지부의 활동가들이 머리를 모았다. 일단 시급한 문제는 수많은 학생들이 학교를 떠나도록 한 교칙을 하루 빨리 개정해 더 이상 학생들이 학교를 그만두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나와 성민이는 한 팀이 되어 일을 추진하기로 했다.

새벽 5시까지 뻑뻑한 눈을 비벼 가며 설문지를 만들었다. 쟁점이 되었던 두발과 복장, 상벌점제, 핸드폰 수거 등에 대해 학생, 교사, 학부모에게 의견을 묻는 설문지였다. 문항마다 관련이 있는 학생인권조례안 조항도 함께 집어넣었다. 그러나 학교 측은 조례 항목을 삽입한 것을 두고 “편파적”이라며 설문지 배부를 불허했다. 우리는 알 권리 침해라며 반발했다. 맥이 탁 풀렸다. 성민이와 나는 밤늦게까지 어떻게 할지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다. 결국 그 다음 날, 우리는 설문지 ‘배부’를 위한 서명운동을 진행했고, 설문지 배부는 뒤늦게 그날 오후가 되어서야 허가가 됐다(서명운동의 힘이라기보다는 그날 오후 퇴학 사태와 관련해 터진 언론 보도 때문이라는 생각이 미친 듯 솟구쳐 오르긴 했다). 우리는 오전에 전교생에게 설문지를 돌리고 오후에 수거해 밤새도록 통계를 냈다. 다음 날 바로 교칙 개정 심의위원회가 있어 당일 아침까지 통계 자료를 만들어야만 했다. 그날 오후 드디어 교칙 개정 심의위가 시작됐다. 심의위에 참가한 교사들은 어떻게든 빨리 대충대충 끝내 보려 했지만 성민이를 비롯한 학생회 임원들이 끝까지 물고 늘어지다 보니 회의 시간만 7시간을 훌쩍 넘겼다. 1주일 동안 그렇게 고생했는데 대충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회의가 끝나고 동네 벤치에 성민이와 나란히 앉아 개정된 교칙을 뜯어 봤다. 벌점으로 인한 퇴학 조항과 문제가 됐던 흡연 관련 규정이 사라졌다. 일주일 만에 처음으로 기쁨의 웃음이 나왔다. 더 이상 친구들이 학교를 떠나야 하는 것을 그저 손 놓고 보고 있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었다. 성민이는 연신 나에게 고맙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러나 기쁨도 한순간뿐이었다. 교칙 개정 결과가 아무리 잘 나오면 뭐 하나. 이미 학교를 떠난 그 많은 학생들이 다시 학교로 바로 돌아올 수 있는 건 아닐 텐데. 학교를 그만둬야 했던 학생들을 만나 얘기를 들어 보고 싶었다. 사실, 한편으로는 자신이 없었다. 누군가에게는 핑계로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힘들었다. 교칙 개정으로 이미 힘이란 힘은 다 빠진 상황이었고, 그 친구들이 학교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 하는지조차 모르는 상황이었다. 쓸데없는 고민만 하다 시간이 흘러갔다.



너를 통해 나를 보다


그러던 어느 날, K고 퇴학생이라는 태희에게서 연락이 왔다. 태희는 학교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을 전했다. 친구들도 다시 돌아가고 싶어 한단다. 만날 약속을 정했다. 그렇게 우리는 처음 만났다. 학교에서 쫓겨나다시피 했던 ‘루저’와 학교가 싫어 제 발로 뛰쳐나온 ‘루저’는 그렇게 처음 만났다.

늦은 오후 시간, 우리는 조그만 회의실에 모였다. 태희를 비롯해 2년 정도 학교를 유급한 수진이, 퉁명스러운 태도로 회의 시간 내내 나를 힘들게 했던 지훈이, 핸드폰만 바라보던 태용이까지 4명의 퇴학생들과 학생회 대표로 성민이를 비롯한 학생회 임원 4명, 그리고 나, 이렇게 9명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모인 퇴학생들이 원하는 건 올해 2학기에 바로 복학하는 것. 학교 측에선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 1년 뒤에 다시 복학을 시켜 주기로 했지만 이들은 남들보다 1년만 늦어져도 영원히 밀려 나갈 것 같은 세상에서 시간을 죽이고만 있는 것 같아 불안해했다.

제일 먼저 퇴학생들에게 학교를 나오게 된 이유와 과정에 대한 진술서를 부탁했다. 말보다는 글이 편할 것 같았다. 종이를 한 장씩 나눠 주고 기다렸다. 이런저런 얘기가 튀어나온다. “내 벌점이 얼마였지?” 하는 질문부터 “길게 써도 돼요?” 하는 질문까지. 그렇게 모인 진술서를 차례로 읽어 봤다.

태희는 사실 이번에 모인 퇴학생들 중 유일하게 교칙에서 정한 퇴학 대상이 아니었다. 벌점이 퇴학 수준까지 쌓였던 것도 아니고, 흡연도 규정에서 자퇴나 전학 대상으로 정한 4회에 미치지 않았다. 그동안 자잘한 일들로 학생부장에게 ‘찍혀 있던’ 태희는 복도를 지나가던 중 화장한 것을 학생부장 교사에게 들키고 5월 중순쯤 바로 징계위원회에 회부됐다. 그날 바로 부모님도 학교로 소환돼 함께 징계위에 참석했다. 징계위가 끝나고 수업을 받던 태희에게 담임교사는 전화를 걸어 “10일 안에 자퇴서를 내든지 퇴학을 당하든지 결정하라”고 했다. 학교 측은 이 과정에서 퇴학 조치에 이의가 있는 학생과 보호자가 조치를 받은 날로부터 15일 이내 또는 그 조치가 있음을 안 날로부터 10일 이내에 ‘시·도학생징계조정위원회’에 서면으로 재심을 청구할 수 있는 ‘퇴학조치재심청구제도’나 ‘학업중단숙려제도’가 있음을 전혀 알려 주지 않았다. “그럼 10일 동안은 학교에 등교해도 되냐”는 태희의 물음에 교사는 “안 된다”고만 단호히 대답했다.

그렇게 태희는 자퇴서를 써냈다. 당장 10일 안에 전학 갈 학교를 찾을 방법이 없어 퇴학보단 나을 것 같아 자퇴를 할 수밖에 없었다. 태희를 비롯해 참석한 학생들이 자신을 자퇴생이 아니라 ‘퇴학생’이라고 하는 이유다. 그러나 자퇴 이후 다른 학교를 찾으려고 해도 이미 소문이 났는지 학교들은 태희를 받아 주지 않았다. 태희가 원서를 낸 한 예고에선 태희 부모님께 전화를 해 “여기는 문제아들이 재기할 발판을 제공해 주는 곳이 아니다”라며 입학을 거부했다.

지훈이는 교사로부터 체벌을 받는 과정에서 욕설을 내뱉었다. 그런 식으로 쌓인 벌점이 140점을 넘어 지훈이 역시 5월 중순쯤 태희와 똑같은 방식으로 자퇴를 결정했다. 지훈이는 학생부장 선생님에게 자신이 찍힌 상태라 친구들과 함께 욕을 해도 자기만 불려 가서 혼이 났다고 말했다. 태희의 말에 따르면 학생부장 교사가 자기나 지훈이를 포함해 몇몇 요주의 인물을 찍어 두고선 그들에게 집중적으로 벌점을 부과하려 했다고 한다. 어떨 땐 주의나 반성할 시간을 전혀 주지 않고 바로 벌점부터 매긴 뒤 자신들에게 통보만 해 준 적도 있다.

수진이는 흡연 사실을 네 번 적발당해 바로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었다. 담임교사는 수진이에게 역시 퇴학보단 자퇴나 전학이 더 좋을 거라고 했단다. 수진이는 근처에 있는 미용고에 전학을 가려 했지만 입학을 거부당해 어쩔 수 없이 자퇴서를 썼다. 태용이는 지각과 결석으로 벌점이 70점을 넘었다. 자퇴나 전학 대상이었다. 교사가 어머니께 전화를 걸어 자퇴나 전학을 하지 않으면 퇴학을 시킬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단다. 그렇게 태용이도 4월 말쯤 자퇴서를 냈다. 이 학생들도 모두 태희와 마찬가지로 ‘퇴학조치재심청구제도’나 ‘학업중단숙려제도’에 대해 학교로부터 전혀 안내받지 못했다.

퇴학생들의 진술서를 꼼꼼히 모두 읽고 나니, 이건 태희와 지현이, 지훈이와 태용이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건 나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래서 더 익숙했고 그만큼 더 마음이 아팠다. 태희의 진술서를 읽으면서는 특히 학교가 참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그때 저는 많은 부분을 고친 상태였어요. 화장도 안 하려고 노력했고, 복장을 제대로 갖추기 위해 더 신경 쓰고, 학교가 원하는 대로 했는데 그렇게 고친 모습의 나를 보고도 학교는 자퇴나 퇴학만을 물었어요. 그것도 전화 한 통으로.”

이미 찍혀 버린 문제아여서일까. 모난 돌이어서일까. 학교는 학생들을 학교 밖으로 내모는 것에만 집중했다. 그렇게 그들이 학교를 나오는 과정에서 겪었을 상실감, 분노, 실망. 그건 내게 너무 익숙한 감정들이었다. 그들의 모습 속에 내가 보였다.



학교, 루저를 만들어 낼 뿐


내가 학교를 때려치우고 나온 지 벌써 1년이 넘었다. 참 싫었다. 수요일마다 강제로 참가해야 했던 예배 시간이, 노랗고 구불구불한 머리를 걸리지 않으려 새벽 일찍 등교를 하거나 아예 수업 시작하고 등교를 해야 했던 일들이, 모두 참 싫었다.

편하자고 믿지도 않는 예수님을 향해 기도를 하고 꼬박꼬박 예배에 나가기는 자존심 상하고, 벌점 받기 싫어 까만 머리, 짧은 생머리를 하기엔 그건 내 미적 기준에서 볼 때 너무 찌질한 헤어스타일이라 날 때려 죽여도 학교의 취향에 맞출 수가 없더라.

사실 강제 예배나 두발 규제보다 싫었던 것은 학교의 태도였다. 교사에게 난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고 예배 시간에 책이나 읽겠다고 말하는 순간 들었던 “그럼 너 우리 학교 왜 왔니? 다른 학교 가지”라는 대답이, 두발 검사로 벌점을 받기 싫어서 “개성을 표현할 권리도 인권입니다”라는 말을 했을 때 돌아왔던 “학생한테 인권이 어디 있어?”라는 대답이 훨씬 더 싫었다. 나의 생각들을 아무리 말해 봤자 돌아오는 것은 허무함뿐이었다. 답답했다. 차라리 벽과 이야기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태희를 비롯한 퇴학생들은 학교 측의 퇴학 결정으로 어쩔 수 없이 ‘루저’가 되었고, 난 내 스스로 ‘루저’가 된 것이 차이라면 차이랄까. 자발적이든 강제적이든 그것과 상관없이, 어쨌든 학교가 학교에서 떨어져 나갈 루저를 적극적으로 만들려 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태희의 학교처럼 아예 대놓고 쫓아내든지, 아니면 내가 다닌 학교처럼 스스로 지치게 만들어 제 발로 나가게 하든지 하는 방식의 차이만 있을 뿐, 자기들이 정한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학생들을 학교 밖으로 내몬다는 점은 똑같았다.





지금, 여기에서의 홀로코스트



예전 그 사회 수업 시간에 홀로코스트에 대해 배웠을 때 느꼈던 불쾌함을 참 오랜만에 다시 경험해야 했다. 학생들의 진술을 통해서 보았던 학교의 태도, 내가 겪었던 학교의 태도 모두 히틀러나 나치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운다.

홀로코스트는 그리스어로 ‘완전히’라는 뜻의 holos와 ‘불태우다’라는 뜻의 kauston의 조합인 Holokauston이라는 단어가 어원이다. 그렇다. 완전히 불태웠다. 그렇게 히틀러와 나치는 유대인뿐만 아니라 공산주의자, 장애인, 소련군 포로, 국내 정치범 등 참 많은 사람들을 완전히 불태웠다.

참 무서운 일이다. 히틀러와 나치가 왜 이러한 일들을 저질렀는지에 대한 역사적 이유도, 배경도, 사실 이제껏 내가 신나게 떠들어 댄 이야기에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어떻게 죄 없는 ‘유대인’과 죄 많은 ‘퇴학생’ 따위를 비교하느냐는 비난도 중요하지 않다. 즉, 나는 ‘유대인=퇴학생’이라는 공식이 아니라 ‘나치의 방식=학교의 방식’이라는 공식을 우리가 보았으면 좋겠다. 나는 다만, 그들의 폭력적인 ‘방식’에 집중하고 싶을 뿐이다.

히틀러와 나치는 그들이 불필요하다고, 열등하다고 판단된 부류들과 함께 가려 하지 않았다. 그저 정말 광고 속 대사처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배제하고 제거하기만 하는 그들의 방식은 소름 끼치도록 무섭고 잔인하다. 그것이 누군가의 삶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될 때는 더 그렇게 느껴진다.

학교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유대인들은 목숨을 잃었지만, 퇴학생들은 ‘미래’를 잃었다. 자기 학교는 문제아들의 재기를 위한 발판이 아니라며 태희의 입학을 거부한 예고처럼 학생들이 다시 설 기회를 이 사회는 쉽게 주지 않는다. 어떤 학생들은 학교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접기도 했다. ‘복학 운동’을 준비하는 퇴학생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주변에 복학을 하고 싶어 하는 학생이 더 없냐고 물었더니 태희가 답했다. “연락이 안 되는 애들도 있고 어디로 전학을 간 아이들도 있고요. 그런데 연락 되는 애들은 이제 학교에는 완전히 정이 떨어졌다고, 안 돌아갈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그보다 더 슬픈 것은 그들이 느꼈을 잔인함이다. 태희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선생님들은 특히 나를 싫어하셨어요. 특히 학생부장 선생님이요. 내가 지나가면 잡을 게 없나 스캔하는 것 같았어요. 친구들이 오죽하면 그랬겠어요. 선생님이 너 자르려고 작정한 것 같다고.” 그렇게 자신을 믿어 주고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쳤어야 할 교사라는 존재가 줬던 그 잔인한 실망. 학생들은 실망을 넘어 환멸을 느꼈을 테다.

가정 이후 아마 최초로 경험했던 공동체였을 학교가 나를 거부했을 때의 그 아득함. ‘문제’가 있는 나이기에 내쳐지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학교에 대한 불신과 실망. 그 공허함과 환멸. 왜 우리는 그토록 잔인한 방식을 먼저 배워야 하는가. 학교와 나치의 다른 점이라면, 학교는 이 사회에서 보기에 그 이유가 좀 더 논리적이고 사람들한테 잘 먹힐 핑계거리가 더 많다는 것뿐. 나에게 이런 홀로코스트가 다시 반복되어선 안 된다고 말씀하셨던 그 선생님은 지금 이 사태를 어떻게 생각하실까. 이는 다른 문제라고 말씀하실까.

K고등학교에서 이토록 많은 학생들이 떠나야 했던 이유에는 아마 이 학교가 신설 학교라는 점도 한몫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올해 초 개교한 학교이다 보니 아무래도 초반에 분위기를 좀 잡는 게 필요할 것이고, ‘명문고 이미지’를 만드는 것도 좀 필요했으리라. 그렇게 마음먹고 나니 눈에 거슬리는 학생들이 한둘이 아니었겠지. 초반에 학교 이미지 잘 만들어 놓아야 나중에 착하고, 선생님 말씀 잘 듣고,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많이 오겠지. 그러기 위해선 학교의 명예를 더럽히는, 혹은 그럴 만한 학생들은 미리 잡초 뽑듯 걸러내 버려야 했을 것이다.

거기다 ‘그런 불량 학생들은 공부 열심히 하고 선생님 말씀 잘 듣는 착한 학생들이 학교생활을 하는 데 방해만 된다.’ 혹은 ‘교칙에 퇴학이라고 명시되어 있는데도 벌점이나 모으고 담배나 피우는 학생들은 공동체 생활을 하는 데 최소한의 기본마저 지키지 않은 학생들이기에 더 이상 우리도 손을 쓸 방법이 없었다’는 핑계 한마디면 무더기 퇴학은 아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딱 좋았을 것이다. 이미 그 잔인한 학교의 방식에 익숙해진 탓일까. 학교에 남은 학생들은 퇴학이 부당하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그들이 다시 학교로 돌아오는 것에 대해선 ‘무리’라고 말한다.

이렇듯 나치와 학교 모두 진짜 목적이 무엇이든지간에, 그들 독자적으로 어떠한 기준과 잣대를 세우고, 거기에 미치지 못하는 ‘루저’들을 가차 없이 제거한다는 점에서 같다. 그러나 담배 피우고 벌점 많은, 그런 문제 학생들이 학교를 떠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는 게 일부 보수적인 교사들만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처음 이 ‘무더기 퇴학’ 사건을 들었을 때, 지역 전교조 교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분은 바로 그런 일이 있었느냐며 펄쩍펄쩍 뛰시더니 당장 해당 학교 조합원 교사를 만나 진상을 파악하겠다고 하셨다. 얼마 후, 다시 연락이 왔다. 그런데 정말 진상 파악을 ‘잘’ 하고 오셨다. 문제아들을 지도해야 하는 교사들의 고충에 대한 진상 파악. “퇴학 부당하지. 부당한 거 아는데, 교사들도 힘들어. 복도가 쉬는 시간이면 담배 연기로 뿌옇대. 교사들도 많이 혼란스러워해. 학생들과 같이 끝까지 가는 것도 중요한데 교사들로서도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감이 안 잡히는 게 사실이야. 현장은 그렇지.” 앞서 말한 학교 교칙 개정 과정에 함께할 생각이 없냐는 내용으로도 전교조에 먼저 전화를 했다. 그때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과정이 어쨌든 교칙 개정 설문조사하고 심의위원회에 학생 대표까지 참여하면 학교 측은 충분히 학생 의견 반영한 거 아니냐. 더 이상 학교 측에 우리가 뭐라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어쨌든, 이 무한경쟁 사회는, 경쟁에서 뒤떨어지는 부류들과 함께 살아가기를 거부한다. 경쟁에서 뒤떨어진 부류라면, 혹은 필요 없거나 방해된다고 판단되는 부류라면 가차 없이 내버리는 이 사회에서 그들의 기준에 맞추지 못한 루저들은 그저 서럽고 고달프다. 왜 우리는 그런 루저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을 왜 이리도 어려워하고 불가능한 일로만 여기는 걸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우리는 그렇게 소위 ‘문제 있고’, 함께 살길 ‘원치 않는’ 루저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방법을 제대로 고민해 본 적조차 없다. 우리는 그저 소외시키는 것밖에 할 줄 몰랐다. 내모는 것밖에 할 줄 몰랐다. 버리고 가는 것밖에 할 줄 몰랐다. 우리는 좀 더 근본적인 이야기를 해야 한다. 우리가 어쩌면 무심코 당연하다고 여기고 넘어갔을 수많은 이야기들, 예를 들어, ‘청소년은 왜 담배를 피우면 안 되는가’ 또는 ‘상벌점제는 과연 교육적인가’라는 질문부터 시작해 그리고 마침내 루저들을 만들어 낼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에 관한 이야기들까지. 하지만 그 얘기까지 꺼내면 이 글은 끝이 나지 못할 것이다.

그들에게 ‘문제’가 있다면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함께 고민하고 또 고민하자. 그렇게 모두가 할 수 있는 길을 찾아가고 마침내 함께 걸어가자. 함께 가자. 우리가 걸어가려 하는 길에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있을지 잘 알고 있다.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해낼 가치가 있는 일임은 어느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은 학교가, 교사가, 또 학생 모두가 지혜를 모아야 하는 일이다. 서로 소통하고 존중하며 그렇게 반성하고 마침내 문제를 해결하는 그 과정 하나하나가 곧 배움이며 희망이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 과정이 지난하더라도, 지치고 힘겨운 길이라 할지라도, 그렇기에 이제는 고민을 시작해야 할 때다.

글을 마치며 ‘문제 있는’ 학교와의 싸움을 이제 막 시작한 ‘문제아’들에게 전한다. 태희, 수진, 지훈, 태용, 그리고 내 자신에게 전한다. 그대들은 세상의 모난 돌임에, 루저임에, 문제아임에 틀림없지만 그래도, 그 존재만으로도 참 소중한 사람들이라고, 그렇게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들이라고. 

혜원

※ 이 글은 <오늘의 교육> 7·8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 이 글에 등장하는 청소년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



Posted by 오승희



국회도서관은 청소년을 두려워 해?




전자책의 등장으로 종이책의 수요가 줄어들었지만- 국회 옆에 있는 국회도서관은 개관 60년을 바라보고 있는 중입니다. 60년 동안, 장소, 장서 수, 시스템 들이 개편됐지만, 아직 바뀌지 않은 것들이 많습니다. 그 중 하나가 제가 이번에 이야기할 주제입니다. 바뀌지 않은것들은 많지만- 제가 이야기 할 주제는, “청소년의 출입 제한” 문제입니다.

이 문제는, 국회도서관 운영 규칙(2010. 2. 24일 전부개정)에도 나와있습니다,

(가장 근접한 쪽으로 인용했습니다.)

제4조(대상자) 법 제2조제3항에 따른 도서관봉사를 받을 수 있는 대상은 대학생 또는 18세 이상인 자, 그 밖에 도서관자료가 필요하다고 도서관장이 인정하는 자로 한다.
                    (출처: 국회법률지식정보시스템)


국회도서관 홈페이지에도 잘 나와있습니다.

국회도서관 홈페이지- 자주 물어보는 질문
Q.고등학생인데 도서관을 이용하려고 하는데 가능합니까?
A. 국회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자료는 입법정책지원을 위한 전문서적 등으로 중·고등학생이 이용하기에는 부적합하므로 공공도서관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국회도서관의 열람대상은 다음과 같습니다.
- 전·현직 국회의원 및 국회소속공무원
- 18세 이상인 자(신분증 지참)
- 대학생(학생증 지참)
- 기타 도서관 소장자료가 필요하다고 관장이 인정한 자



이렇게 청소년이 입장 및 사용이 안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국립중앙도서관 역시 16살 미만의 청소년들은 이용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자, 이제 국회도서관이 주장하는 논리에 반박해본다면-

국회도서관 측에서는 청소년이 이용하기에는 어려운 전문서적들이 많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청소년 뿐만 아니라 어떤 사람에게도 일정한 잣대를 대서 당신이 어떤 책을 읽을 수 있나 없나 수준을 판별하긴 어려운 일입니다. 나이를 기준으로 하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또, 그게 도서관 이용을 금지하는 이유가 되는 것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또한 국회도서관은 출간하는 모든 서적을 의무적으로 납본해야하는 납본도서관입니다. 한국에서 나온 모든 책들이 다 있다는 겁니다.)

청소년이 들어간다면 청소년들이 시끄럽게 할 거라는 이유를 내세우기도 하는데요, 청소년들은 더 시끄럽게 굴 거라는 편견만으로 모든 청소년들의 권리를 막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도저히 도서관 이용을 할 수 없을 만큼 방해를 하는 사람들의 경우는 그 사람들이 도서관을 이용 못하게 하면 될 것입니다.

국회도서관을 18세 미만에게도 개방할 경우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는 논리를 대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무리 착각은 자유라지만, 진심으로 국회도서관이 그렇게 청소년들에게 인기가 많은 곳인 줄 아는 걸까요? 국회도서관에서 공부하면 서울대 간다는 소문이 나서 청소년들 수백명이 한꺼번에 찾아가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국회도서관은 청소년들에 대해 참 이상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18세 미만의 청소년들이 국회도서관을 이용하느냐 마느냐. 16세 미만의 청소년들이 국립중앙도서관을 이용하느냐 마느냐. 중요한 문제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국회도서관은 18세 미만은 이용할 수가 없는 거, 국립중앙도서관은 16세 미만은 이용할 수가 없는 거, 그게 그냥 불합리하고 억울한 겁니다.

국회도서관이 아까도 말했듯이, 60주년이 가까워지는 만큼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더욱 좋은 지식을 (지식에 질이 따로 있는건 아니지만) 차별 없이 제공할 수 있다면, 그것만큼 국회도서관의 의미가 강조될 수 있다면 정말 좋은 역할을 수행할 수 있지 않을까요?


Posted by 오승희



2011년 3월 19일, 서울 도심에서 청소년들의 집회가 열렸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가 주최했던 그 집회에서 내건 요구는 5가지였다.

○ 중간기말부터 수능까지 시험을 폐지하라!
○ 대학 안 가도 먹고 살 수 있게 하라!
○ 교육예산 확보하여 누구나 쾌적한 학교를!
○ 학생에겐 권력을, 학교에는 민주주의를!
○ 규제와 폭력 대신 자유와 소통을!

100여명 남짓 참가한 작은 집회였고 일본 지진과 겹쳐서 전혀 이슈가 되지도 못했지만, 청소년들의 요구 중에서는 가장 파격적인 주장을 내걸었던 그 집회 현장의 모습들을 전한다.



Posted by 오승희



스무살이 된 걸(girl)이 보내는 편지


엠건


작년 겨울(벌써 작년이라니 믿을 수가 없다),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를 모티브로 영상을 하나 찍으려 했었다. 나와 내 친구들을 통해 막 20대에 들어선 여자애들의 이야기를 해보겠다며 시작했던 영상은 결국 이런저런 사건사고 끝에 제목이 모든 걸 말해주는('못나서 그래') 자아성찰 다큐로 끝을 맺었다. 그래도 이 영상 찍는다고 친구들을 열심히 찾아다녔던 덕에 한 겨울을 나홀로 방콕하는 대신 친구들 그 해 살았던 얘기 들으며 보낼 수 있었다.

학교를 조용하게는 다녔지만 썩 성실하게 다니지는 않았다. 덕택에 학교친구로 핸드폰에 저장된 이름이 열을 넘지 않는다. 그나마 지금까지 만나는 학교 때 친구로는, 내 친구의 친구들로 곁다리 관계를 시작해 아직까지도 '친구가 되고 있는 중'인 대여섯 명의 여자친구들이 있다. 학교 졸업하고 부쩍 만나는 일이 줄어들면서, 이대로 멀어지는건가 멀찍이서 마음만 헛헛해하고 있던 차였다. 다큐를 찍는다는 명목으로 애들을 찾아다니면서, 이게 그리 벌어지고만 있던 거리를 좁히는 일이 되어주는 것 같아서 좋았다. 친구집에 하룻밤 모여 놀던 날엔, 한 이불 덮고 예전 고등학교 얘기, 대학교 구린 얘기, 이 얘기 저 얘기 오락가락하는 수다들을 찍으면서 빨리 이 카메라 걷어치우고 나도 같이 편하게 얘기하고 싶다 계속 생각했다.



12월의 끝자락, 홍대에서의 풍경


12월이 끝날 무렵, 홍대에서 친구들을 만났다. 살짝 비싼 스파게티도 먹고 거리에서 옷 구경도 하면서 놀기로 예전에 정한 날이었다. 내 딴엔 나름대로 고대했던 카메라 없이 맨 몸으로 애들이랑 노는 그 날이기도 했다. 좀 늦게 도착해서 만나게 된 친구들은 멀리서 보기에도 아가씨 티가 폴폴 나는 옷차림과 화장을 하고 있었다. 점심을 먹으러 유명하다는 맛집에 갔다. 슬슬 배가 불러오때 쯤, 애들이 디카를 꺼내들고 둘씩 셋씩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케이블 TV 프로 '남녀탐구생활'에서 본 게 떠올랐다. 음식을 앞에 두고 끈임 없이 사진을 찍는 내용의 '여자 편' 에피소드였다. 찰칵찰칵. 다 먹고 나선 역시 유명하다는 어딘가에 가서 달달한 케ㅇㅣㅋ을 먹었다. 케ㅇㅣㅋ도 역시 디카로 찍었다. 어쩌다보니 소개팅 얘기를 하고 있었고,옆 테이블에선 인터넷 쇼핑에서 질렀다는 부츠 얘기가 들렸다. 어느 순간 또 화장품이 보였다. 맛없는 케익을 남기고, 이번엔 바로 아래층에 있던 스티커 사진점으로 갔다. 찍는 둥 마는 둥 옆에 서있다가 애들이 사진 꾸미기를 하는 사이 가게 밖으로 잠시 나왔다. 영상을 찍는 동안 조금쯤 좁혔다고 생각했던 친구들과의 거리는 카메라 없이 애들과 홍대에서 지냈던 하루가 끝나자 무한대로 벌어져있었다.



'학생' 정체성에서의 졸업, '아가씨' 라는 정체성으로의 입학


그 날 홍대에서 내가 친구들에게 느낀 거리감은 적어도 우리가 각자 대학에 가거나 재수를 하고, 홈플러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시청에서 일하게 되는 등, 서로 다른 곳에서 다른 일을 하고 살게 되며 벌어진 '차이' 때문은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놀란 건, 그렇게 달라지고만 있는 줄 알았던 친구들이 또 다른 방식으로 너무나 비슷해지고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스무 살을 맞고 이십대 여성이 된다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지만, 친구들이 남녀탐구생활의 '여자'와도 겹쳐질 정도의 20대 여성이 되어가는 걸 보면서, 이토록 끈질기게 따라오는 '단일함의 굴레'가 참 무섭구나 싶었다. 수백 명을 '학생'이라는 단일한 존재로 만들려는 괴물 손아귀에 붙잡혀서 십 몇 년을 살았다. 같은 공간, 같은 복장, 같은 시간표, 같은 질서 같은 단일한 조건들을 서로 공유하며 살다보니 수백 명의 다른 존재가 어느 샌가 단일한 존재, '학생'이 되어 있었다. 스무 살이 되었고, 이제 우리는 서로 다른 공간 다른 옷 다른 시간표를 가지고 산다. 하지만 서로 다른 존재들을 특정 이익에 맞는 단일한 틀 안으로 우겨넣는 '같은 질서'는 활동공간을 학교에서 이 사회 전체로 확장한 채 여전히 반복된다. 학생은 학교가 무수한 청소년들에게 강요했던 단일한 정체성이었다. 그리고 그건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적어도 학교 공간 내에서 약화시킬 정도로는 절대적이었다. 여학생들이 더 이상 '학생'이 아니게 된 순간, 졸업과 동시에 또 다른 입학이 시작됐다. 이젠 '20대 여성' 혹은 '아가씨'로서의 정체성이 우리 몸에 올가미를 씌우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의 욕구는 왜 자꾸 아이러니한 결말을 맺는지


성인이 되면서 두 가지를 기억하고 가기로 했다. 19세 미만에겐 허용되지 않는 법적인 권리, 성인으로서의 사회적 권위, 뭐 그런 기득권을 좋든 싫든 갖게 되었다는 경계해야 할 사실이 하나. 또 하나는 술 취한 대학가 위로 겹쳐지는 소비자본주의 울라불라 하는 지배 질서의 음흉한 환영에 덧댄 '새로운 소비자 하나 추가요' 누군가 외치고 있는 것 같은 기분 나쁜 환청이 둘. 그 날 친구들이랑 홍대 거리를 누비고 다니며 했던 건, 함께 어울려 논다는 의미보다는 그저 소비였다. 정확히는 '홍대'라는 환상에 대한 소비였다. 그 환상을 가진 소비자들은 또 다시 홍대의 것을 비롯한 숱한 환상을 조장하는 사람들 손에 소모되고 있는 지도 몰랐다. 예쁜 여자에 대한 환상에 소모되고, 소녀시대의 환상에 소모되고, 남녀평등시대라는 환상에 소모되고. 우리가 하는 소비가 우리에 대한 소모로 돌고 돌았다. 나라고 화장을 아예 안 하는 것도 아니고, (표현이 좀 웃기지만) 어른티 나는 옷을 입어보고 싶은 욕구도 있다. 하지만 내 친구들을 비롯한 여성들이 '예쁘고 늘씬해지는 것'으로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여자라면 응당 그래야한다는 식으로 세간에 상식처럼 퍼져있는 무언의 강요들을 볼 때마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누리고 유지하려는 남성 중심적인 사회의 교묘함이 더 깊숙이 다가올 때마다, 내 욕구도 단순히 내 것이라 믿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틀 속에서 내 욕구가 정말 온전한 나의 욕구일까. 남성 중심의 사회와 그 틀에서 생겨난 욕구의 실현이 그저 내 욕구의 충족만으로 끝날 리는 없지 않느냐는 생각. 화장을 하는 것도, 사회에서 인정받는 인간이 되기 위한 투자들도, 내 욕구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하는데도 왜 자꾸만 '놈'들의 욕망을 채워주는 것으로 아이러니한 결말을 맺는지. 약자들은 왜 욕구조차 온전히 자신의 것이 아닌 건지.



사회가 요구하는 정체성이 인해 '나'를 지우기 전에


20대 여성이란 정체성은 내가 이십대 성인이고 여성이라는 단순한 사실의 조합이 아니다. 남성들에게 섹스어필할 수 있는 성인여성, 혹은 가부장의 입맛에 맞는 참한 아가씨, 이 사회가 만들어낸 '20대 여성' 이란 정체성. 이것의 정체라는 게 별 게 있겠나. 그리고 우리는 20대 여성이 되자마자 아르바이트하는 곳에서 마주치는 성희롱을 눈 감고, 대학가 남자동기들의 지극히 마초스런 발언들에 무뎌지고…살아남기 위해서였는지, 어째서였는지, 깊게 체념하고 수긍한 뒤에 속 뿌리부터 진득하게 썩어문드러지는 그런 과정을 밟고 있는 것만 같았다. 조금씩 조금씩 더 '아가씨'가 되어가는 친구들을 보면서, 그 애들을 만날 때마다 자꾸 더해가는 서글픔 때문에 이 글을 쓰게 됐다.

이십대가 된다는 게 점점 더 생각이 없어지고 얕아지는 그런 일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십대 여성이 된다는 게, 내게 향하는 폭력보다 그런 폭력이 아무렇지도 벌어지는 세상을 욕하는 것보다 시시때때로 거울보고 화장을 고치는 게 더 익숙하고 자연스러워지는 그런 일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다가는 결국 사회가 요구하는 '20대 여성'만 남고 '나'는 사라져버릴 것 같아서, 홍대에서 같이 놀던 날에도 사실은 그게 가장 두려웠던 것 같다.

그래서 내 욕구도 의심하고, 20대 여성(혹은 아가씨)으로 사회가 호명하는 내 정체성도 띠껍게 봤으면 좋겠다고, 난 이 놈의 사회를 도저히 못 믿겠으니 우리 같이 믿지 말자고, 그런 얘기들을 털어놓고 싶었는데…잘 됐는지 모르겠다. [페미니즘 인 걸]의 꼭지에 대놓고 20대가 어쩌고 하고 있는 게 잘 하는 짓인지도 다 쓰고 나니 문득 불안해진다. 그래도 마음만은 언제까지나 걸(girl)인 필자이니 이번만 너그럽게 봐주셨음 좋겠다. 아님, 페미니즘 인 걸 번외 정도로 치부해도 좋고.


Posted by 오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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