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답승리의희망시즌1(1~8호)/::제8호:: [2008. 여름]'에 해당되는 글 17건

  1. 2009.09.15 [8면 후기] 오승희 시즌1 마지막 편집을 끝내고 + [알림] by 오승희
  2. 2009.09.15 [8면] 오답 문제 by 오승희
  3. 2009.09.15 [8면] 오승희 시즌1 HERSTORY by 오승희
  4. 2009.09.15 [8면] 오답 승리의 희망 시즌1 엔딩 by 오승희
  5. 2009.09.15 [7면 만화] 요술램프의 지니? 알바!! by 오승희
  6. 2009.09.15 [7면 Show me the 개념] 보수에 관한 짧은 이야기 by 오승희
  7. 2009.09.15 [6면 Show Me the 개념] 우리 안의 군사주의 by 오승희
  8. 2009.09.15 [5면 Show Me the 개념] 패러독스(paradox)냐, 미스테리(mistery)냐 by 오승희
  9. 2009.09.15 [5면 Show Me the 개념] 진정한 평등한 기회 by 오승희
  10. 2009.09.15 [5면 만화] 거절권 by 오승희

오승희 시즌1 마지막 편집을 끝내고


… 안녕하세요. 청소년자유언론 오답 승리의 희망입니다. “오승희”라고도 부릅니다. 대체로 한겨레결체를 씁니다. 드디어 오답 승리의 희망 8호 몰아치는 듯한 편집이 끝났습니다.

… 오승희는 청소년들의 자유로운 투고를 받아서 만드는 신문으로, 의견, 주장, 질문 등등이 있는 유니크한 신문입니다. 검열 없는 신문을 지향합니다만 지면이 부족할 때는 간혹 글을 자릅니다. 이런 물리적 한계는 용서해주시리라 믿습니다. 투고받은 글들은 편집진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단, <투덜리즘>은 편집진에서 씁니다.

… 신문 형태의 오승희 시즌1은 이번호로 끝입니다. 이제 잡지 형태의 시즌2가 시작됩니다. 가격이나 기존 구독하시던 분들 관련 정책(?) 등에 대해서는 8월이 되기 전에 홈페이지에 공지하겠습니다.
  참, 홈페이지에 들어오시면 지난호도 보고 돈 좀 후원해주세요.

  http://cantabile.mireene.com




알림♥

연재소설 「어떤 학교로부터의 편지」는 ‘시국펑크’를 냈습니다. 아마 작가 [표절만땅]이 촛불집회 다니느라 바빠서 못 썼나 봅니다.

(참 딴 얘긴데, 호외에 썼던 만평은 서울신문 5월14일자 만평인 걸로 확인됐습니다.)
Posted by 오승희



◀ 아주 우울하지만, 여러분의 ‘오답도’를 체크하기에 나쁘지 않은 오답 문제.
“바람직한”이란 말도 문제지만, “이성교제”라는 이성애중심주의적인 표현에도 딴지를 걸 수 있을 거 같스빈다.
오답 승리의 희망 독자 여러분. 답으로 무엇을 선택하시겠스빈까? 여러분의 답은?
(여하간 문제가 참 웃긴-_-)
Posted by 오승희

◆ 2005년 12월 “교내 지하신문 계획서”라는 수상쩍은 문건으로부터 시작했던 오승희. 그 창간호가 나온 게 2006년 3월 14일입니다. 그땐 완전 글을 우겨넣어서, 6호 등과 비교해보면 거의 두 배 가까운 양의 글들이 들어가 있습니다. 여백이 획기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한 건 3호부터랍니다. 원래 전북청소년인권모임(“나르샤”가 된)에서 만든 건데, 나르샤가 거의 망한 후에도 오승희는 계속 나옵니다.


◆ 2006년 9월에 발간된 오승희 2호에는 날짜 대신 “하반기”라는 표현이 사용되어 있습니다. 원래 1년에 2번 내기로 했었거든요. 3호부터는 계간지로 바꾸는 구상을 하고 있어서 ‘3월 발간’이라고 표기했습니다. 이 표기방식은 계속 이어져서 7호까지 “★년 ☆월” 식으로 표시했죠.


◆ “오답 승리의 희망”이라는 이름은 권리 씨의 소설인 『싸이코가 뜬다』에서 영감을 얻은 겁니다. 오승희 편집진 중 한 명이었던 바라나기 님의 블로그 이름이기도 했죠. 코너 이름 정할 때도 참 힘들었다지요.


◆ 1호부터 4호까지 테두리는 인터넷익스플로러 창을 썼습니다. 5호에선 윈도우의 폴더창을 써보기도 했지요. 마소 것만 맨날 쓰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6호부터는 불여우 창을 쓰고 있습니다. 다음엔 오페라는 어떨까요?


◆ 제주도를 패러디(??)해서 “삼무(三無) 원칙”이라는 것도 있었다지요. ① 검열 없는 신문 ② 기사 없는 신문 ③ 발간주체 없는 신문. 뭐 지금에 와서는 발간주체 없는 신문이라는 건 큰 의미가 없는 것도 같네요.


◆ 캐릭터는 소에 님이 그려줬습니다. 원숭이, 고양이, 미이라, 소녀 등이 후보에 올랐었지요. 결국 칼&방패를 든 소녀(왼쪽 그림)가 뽑혔는데, 칼&방패보다 펜을 드는 게 낫겠다고 해서 지금과 같은 이미지(위의 그림)로 정해졌습니다.


◆ 지금까지 오승희 발행 부수는 다음과 같습니다.
1호:1000부 2호:2000부 3호:3000부 4호:2000부 5호:2000부 6호:2000부
7호(2주년특별12면):1500부 호외(7.5호?):1000부 8호:2000부
Posted by 오승희


  오승희 시즌엔딩에 끝내 눈물을 보이는 어느 독자. 그러나 걱정마시라. 곧 시즌2가 찾아오니까. Soon 이가 오고 있다.



  사실, 우리가 오답 승리의 희망을 처음 구상했을 때에는, 이렇게 오래 살아남을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처음 계획이 어떠했는가 하면, 무려 ‘A4’ 판형에 ‘4면’으로 ‘200부’ 정도를 찍어 ‘전주 일대’에 배포할 예정이었거든요. 그러던 것이 창간호부터 인쇄 견적을 구하던 중에 덜컥 스케일이 커져버렸습니다. ‘타블로이드’ 판형에 ‘8면’으로 ‘1000부’를 찍어 ‘전국적으로’ 배포하는 것으로요. 호수가 거듭되면서 2000부, 3000부도 찍어봤고, 12면짜리도 찍어봤습니다. 물론, 우리의 슬로건대로, 문제는 ‘빈약한 자본’이었죠.


  미드는 몇 개의 에피소드가 지나가면 시즌이 끝나고 새 시즌이 새롭게 시작됩니다. 미드가 뭐냐구요? 아, 그, ‘미’국 ‘드’라마라고, CSI나 하우스, 프렌즈, 뭐 이런 거 있잖아요. 국회의원은 4년마다 새로 채워지고, 대통령은 5년마다 바뀌지요. 심지어 강산마저도 10년에 한 번 씩은 바뀐다지요. 바뀌지 않고 계속 가만히 있는 것은, 단언컨대, 이 세상에는 거의 없다고 봐야 됩니다. ‘현재’라는 자각을 하는 바로 그 순간마저도, 이미 과거가 되어 있지요. 제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은 현재이지만, 독자 여러분이 이 글을 보게 되는 시점에서는 이미 머나먼 과거가 되어 있을 테니까요.


  오답 승리의 희망이, 새로운 시도를 하려 합니다. 감히 ‘신문’이라 하기 어려운, 발행 간격이 3달이나 되는 흑백 타블로이드 언론이, 면수를 크게 늘리고 알찬 내용들을 추가한 잡지로 거듭납니다. 어쩐지 길거리에서 뿌리는 ‘찌라시’ 같던 느낌을 지우고, 폼나는 디자인으로 거듭납니다. “그래서 이 신문의 ‘야마’가 뭐야?” 싶던 것이, ‘게시판’으로서의, 본연의 기능에도 충실하면서 청소년에게 필요한 정보들을 포함한, 새로운, ‘잡지’ 형태의 언론으로 거듭납니다. 사실, 이건 비밀은 아닙니다만, 이런 생각 처음 해본 건 아닙니다. 창간 때부터 제기된 의견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왜 지금까지 생각에만 그쳤냐구요? 아시잖아요, ‘빈약한 자본’.


  지금, 종로에 있는 M아무개 패스트푸드점에서 밤을 새며 이걸 쓰고 있는데, 좀 피곤하네요. 좀만 더 있다가는 별 희한한 소리들을 끄적여댈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게 다 설치류 동물에 비견되곤 하는 그 누구 때문입니다. 그 분 정신 좀 차리게 해 드리려고 거리에 나갔다가 막차가 끊겨서 첫차 때까지 이러고 있지 말입니다. 휴, 이래저래 좀 힘들군요.

Posted by 오승희




▲ 시급3000원으로 ‘사람답게’ 먹고사는 건 이 라면 800원 시대에 불가능하고, 우린 요정이 아닌 ‘사람’이다. 내년 최저임금은, 살인적 물가인상에도 불구, 쪼잔한 사장/회장들의 고집 속에 꼴랑 6% 오른 4000원이다.


(만화출처 : <인권오름> 고달이의 [싱싱고고])
Posted by 오승희

  오승희에 처음 글을 투고하는 알렉시스입니다. 오늘 다음 아고라에 제가 글을 올렸는데요, 다음과 같은 글입니다.:


  조지 오웰은 우리에게 <1984>와 <동물농장>으로 잘 알려진 소설가입니다. 그런 그의 전작 중 <Coming Up for Air>(숨쉬러 올라오기)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1984나 동물농장에 비하면 썩 잘 쓴 작품이 아니지만, 이것저것 생각해 볼만한 거리들이 제법 등장하는 소설입니다. 배경은 제 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될 무렵의 영국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이 소설의 등장인물 중에 포셔스(Old Porteous)가 있습니다. 그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고대 그리스 로마 역사를 전공한 노장 학자입니다. 그의 집에는 책만이 잔뜩 놓여 있을 뿐, 신문이나 라디오 등 조금이라도 “현대적인” 물건들은 전혀 놓여 있지 않습니다.

  이제 그에게 질문을 하나 해 봅시다.

“포셔스 씨, 히틀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히틀러는 제 2차 세계 대전의 원흉이죠. 그런데 그의 대답이 걸작입니다.

“허허, 난 그런 사람은 생각하지 않는다네!”

“하지만, 이번 전쟁은 옛날의 전쟁과는 성격이 다르잖습니까?”

“태양 아래 ‘다른’ 것은 없네. 히틀러나 스탈린 모두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이들일 뿐이야.”

  그는 이제 고대 그리스 로마 시절의, 히틀러나 스탈린과 비슷한 아무개 왕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 왕은 히틀러나 스탈린과 제법 똑같군요.

  이제 그가 시를 한 수 읊습니다. 그런데 옛날에 그를 만나 들었던 시와 똑같은 시에, 똑같은 악센트에, 똑같은 곳에서 목소리가 격앙되고, 똑같은 곳에서 숨을 고릅니다. 예전과 한 치도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의 주인공 조지 볼링 씨는 이렇게 결론짓습니다.

  HE'S DEAD.(그는 죽었다.)

  그는 교육도 잘 받았고, 한때 교장까지 역임했을 정도로 사회적 지위도 누렸지만, 그는 이제 더 이상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거죠.


  ‘보수’ 혹은 ‘보수주의(Conservati sm)’란 과거의 생각이나 방식을 바꾸지 않으려는 태도나 주의를 일컫는 말입니다. 이것은 진보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합리적인 보수는 진보가 지나친 급진주의로 흐르는 것을 적절히 견제하는 완충재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지금 이명박 정부는 과연 합리적 보수일까요? 70년대식 토건 개발을 그것도 밀어붙이기 식으로 일관하고, 이에 대항하는 21세기의 국민들에게 70~80년대식의 공안 정국 분위기를 조성하며 협박하려 합니다. 포셔스 씨는 시대를 초월하는 보수였지만 그의 생각은 죽어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보다 차라리 낫군요. 그는 시대를 초월하지도, 생각이 살아 있지도 못하니까요.

  이것은 단순히 이명박 대통령의 문제로 국한되지 않습니다. 두발, 복장 규제 등 생활 지도라는 이름 아래 병영식의 통제가 자행되는 중고등학교에서부터 대학교 내 교수-학생 간 상하 위계적 관계, 직장 상사-부하 간 불평등한 관계까지 보수의 해악은 너무도 큽니다. 프랑스의 68혁명은 정치적 혁명을 일으키지는 못했지만, 사회적 혁명에는 큰 역할을 해 냈습니다. 일상에서 권위주의의 잔재를 타도한 것이죠. 한국의 촛불집회도 일상에서 보수적 권위주의를 타도하는 데 큰 역할을 하기를 바랍니다. 기성세대 여러분이 YOU'RE DEAD 소릴 들으면 기분이 좋을지 한번 생각해보세요. 그리고 어딘가에서 비슷한 소리를 듣게 된다면 “내가 이제 변화를 받아들일 때가 된 거구나”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지금까지 YOU'RE DEAD(혹은 그것과 비슷한 DOWN WITH THE 2MB BASTARD 등등의) 소리를 넌덜머리나게 들어 왔을 2MB가 특히 이렇게 생각해야 되겠지만, 현재까지 그가 늘어놓은 거짓 사과들로 미루어 보아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습니다. 그래도 우리의 촛불집회가 지금까지 이루어 놓은 것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가령 대운하 밀어붙이기를 저지하는 식으로요.(하지만 쇠고기 재협상은 아직까지 안 받아들여지고 있군요.) 촛불을 아직 끌 때가 아닙니다.(이 시구를 따라하는 건 저작권법 위반일까요? XD) 부디 우리 한국인이 귀신을 대통령으로 뽑는 머저리 국민이 되지 않기를 촛불 앞에 간절히 빌어 봅시다. “모든 정부는 본질적으로 독재이다.”라는 애머슨(미국의 아나키스트)의 말대로라면 그는 쇠고기 협상을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머저리나 독재자 딱지를 뗄 순 없겠습니다만, 그래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Outro
  얼마 전 학교에서 복장 때문에 혼이 났습니다. 제가 다니는 학교에서는 교실에서 더우면 교복을 벗고 티셔츠 한 장만 입어도 됩니다. 하지만 그렇게 입고 등하교하는 것은 교칙 위반이랍니다. 그럼 그런 교칙은 왜 있느냐? 학생으로서의 품위를 유지하게 하기 위해 있다는군요. 요즘과 같은 자유의 시대에 품위도 이런 품위가 웬 말입니까? 병영식 품위인가 보군요.

  어쨌든 결론은, 우리가 때려잡아야 할 대상은 쥐박이만이 아니라는 겁니다. 학생도 단결하여 우리가 일방적인 지도의 대상만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도 어엿한 하나의 사회적 세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받아야 합니다. 68혁명으로 프랑스에서 권위주의가 무너지고 많은 사회적 변화가 있었듯, 한국에서도 촛불시위를 거치면서 많은 것이 변하리라고 믿습니다. 저도 오승희를 촛불시위 현장에서 알게 되었으니까요.



[Aleksis]
Posted by 오승희

01
  학교에서 어느 여선생님 시간에 잔소리를 한 마디 얻어 들었다.
“차라리 싹 벗어 버리지 그러니? 옷 좀 입어.”
  그런데 왜? 죄목은 민소매티를 입고 있었단 것. 이 학교에선 교실에서 더울 때 티셔츠 한 장만 입는 것 정도는 허용된다. 그런데 성별이 달라선지 민소매티만 입은 학생 모습을 보고 있기가 민망했던 모양이다.
  처음에는 옷을 순순히 입어 주었다. 그러다가 더위를 참기가 힘들어서 한번 다시 벗어 보기로 했다. 내가 그 정도 억압에 굴할 수는 없지. 그것이 다시 선생님의 눈에 띄어 “옷 좀 입어야...”소리를 다시 듣고 말았다.
  결국 다시 옷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02
  쉬는 시간에 나는 다시 교복을 벗고 민소매 티만 입고 있었다. 그런데 친구들의 반응이 걸작이었다.
“너 왜 그렇게 혼나놓고도 다시 옷 벗고 다니냐? 쟤 진짜 병신 같애...”
  저 소시민 자식들. 나는 화가 나서 이렇게 쏘아 붙였다.
“오, 그래. 나 병신 같은 새끼니까 상종하지 마라.”
  그러자 친구들이 이렇게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쟤 저렇게 멋대로 하고 다녀서 군대 어떻게 갈까?”
“쟤는 말라서 군대 못 갈걸.”
“아냐, 저 정도면 군대 가.”
“쟤는 키가 크니까 그렇지. 저렇게 말라서는 힘들 거 같은데.”


03
  예로부터 지금까지, 탈주류의 길을 고민하는 사람들은 병신 취급을 당하기 일쑤이다. 하지만 사회의 발전을 이끈 사람들이 바로 이 탈주류의 사람들이기도 하다. 따라서 나는 병신 취급을 당하더라도 별 상관은 하지 않는다. 내가 묻고 싶은 것은 옷을 입어야 하는가가 아니라 “대관절 우리가 군대를 가기 위해 태어났단 말인가?”이다.
  군대를 가고 싶어서 가는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신성한 의무? 2년간 썩어서 나오는 것이 신성한 의무인가? 그럴 리는 없다.
  장 부르디외는 학교를 사회적 폭력을 행사하는 곳으로 규정한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경우 더욱 노골적으로 적용된다. 획일성과 규율과 억압이 지배하는 일반계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거나 나와 본 사람들은 모두 동감하리라. 동감하고 통감할 일이다. 군대 운운하는 나의 친구들이 거기에 너무나 많이 길들여져 있다는 것이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군대는 거기에 더해지는 보너스 스테이지이다. 학교보다 더한 획일성과 규율과 억압과 폭력이 지배하는 공간. 이를 통해 기성세대들이 신세대들에게 무엇을 바라는 것일까?


04
  박노자 교수의 <당신들의 대한민국>에서 약간의 단서를 찾을 수 있었다. 자신이 어느 대학교의 노어과 강사로 일하던 시절, 군대를 다녀온 뒤 더욱 강압적이고 권위적으로 변하거나 혹은 그곳에서 당한 폭력으로 인해 정신적으로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그에게 찾아와 흐느끼기까지 하는 학생들을 만났다나 뭐라나.
  물론 나는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박노자 교수와는 달리 아나키즘을 지향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차이가 여기서 무슨 대수랴? 둘의 진정한 정신은 권위주의에 대한 반발에 있다는 데에 둘의 공통점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독자 여러분은 조금 전 사용된 단어에서 정답을 찾았을지 모른다. 그렇다. 답은 권위주의이다.(물론 정답이라는 건 아니지만) 신세대를 기존 질서에 길들이고, 자신들에게 복종하는 충견들로 만들려는 것이다. 가령 촛불시위를 진압하는 전경들 중 진심에서 우러나와 진압에 나서는 전경들이 몇 명이나 될 것인가?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전역을 신청했다가 영창에 갇힌 전경들까지 있는 걸로 보아 대다수의 전경들은 억지로 진압에 나서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억지로’라도 그렇게 열성적으로 진압에 나서게 할 수 있는 걸로 보아 제도적 폭력과 권위주의의 힘은 정말로 위대하다.


05
The false empires will crumble and all illusions shall be destroyed
The enslavers tremble with fear, soon our stars align
  Dissection의 <Starless Aeon>의 가사 일부를 인용한 것이다. 제도적 폭력과 권위주의의 힘보다 위대한 것은 그들을 벌벌 떨게 만드는 반항아, ‘병신’의 힘에 있다. 부르주아와 그들의 대변인인 프랑스 의회에 항의하며 프랑스 국회 의사당에 폭탄을 던진 오귀스트 바이양(Auguste Vailla
nt)의 목숨을 거두어 간 저승사자는 프랑스 대통령 사디 카르노(Sadi Car not)가 불러낸 것이었다. 카르노는 후에 이탈리아인 저널리스트 산테 제로니모 카제리모(Sante Geronimo Caserio)에 의해 암살된다. 바이양의 원수를 갚은 것이다.
  기득권층에게 반항하며 자유를 외치는 ‘병신’. 나는 대놓고 반항하지 못하는 반쪽짜리 ‘병신’이다. 하지만 나는 나 자신으로서 태어난 것이지 국가를 위해, 군대에 가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음을 알고 있는 ‘병신’, 제도적 폭력과 권위주의보다 민중의 힘이, 약자의 힘이 더 위대함을 알고 있는 ‘병신’이라면 일단은 충분하리라. 어쨌든 enslaver들이 공포에 떠는 날이 오고 말 것이다. 현재의 정국으로 보았을 때는. 그 때가 되면 ‘병신’들이 이제 자유의 영웅으로 등극할지 누가 알겠는가?


Outro
  1시간 만에 뚝딱 완성한 졸속 수필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내 메세지는 대부분 전달됐으리라 믿는다. 적어도 이건 졸속 쇠고기협상보단 낫지 않은가? 어쨌든 이제 모두들 각성해야 한다. 변혁의 기회가 온 지금이 바로 우리의 기회이다. 다시 만나기 힘든 기회인 것이다. 탈주류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군대 운운하는 우리 안의 군사주의는 벗어던지자. 거기에 ‘자유'라는 새 옷을 입을 때, 진정한 행복이 있고, 진정한 자아를 찾을 수 있으리라고 나는 믿는다.


[Aleksis]
Posted by 오승희

  얼마 전, 9시뉴스에서는 선후배 기강을 확립한다는 저능아적 발상으로 대학 동아리에서 행해지고 있는 정당화된 학원폭력을 몰래카메라 형식으로 취재한 기사가 방영되고 있었다.

  당연히 별다른 이유 없이 - 선배가 이야기하는데 담배를 입에 물고 대답했다던가, 뭐 대충 그런 거였던 것 같다 - 신입생들은 동아리방 내에서의 갖은 욕설과 줄빠따에 이어 운동장에서의 원상폭격 + 족(足)질 콤보 등 선배님들께서 친히 준비해주신 다양한 얼차려세트메뉴들을 맛보고 있었고, 대학 운동장이라는 열린 공간에서 행해지던 그 공개적인 폭력행사에 딴죽을 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군사정권을 향해 화염병을 투척하던 선배님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조국의 참된 민주화와 노동해방을 위해서 온몸을 불사르리라던 아름다운 청년들도 자기네 앞마당에서 벌어지는 극악의 군사 문화적 행태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작은 돌멩이 하나 집어들지 않았다. 노출이 심한 교내 연극동아리의 포스터가 붙었을 때나 수배자를 검거하기 위해 교문 안으로 경찰이 투입될 때면 신성한 캠퍼스 운운하며 지랄발광을 하던 캠퍼스의 수호자들도 어찌된 일인지 보이지 않았다. 이래가지고서야, 이놈의 캠퍼스가 신성한 캠퍼스인지 실성한 캠퍼스인지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누가 노래했던가. “대학, 본 얼굴은 가린 채 근엄한 척!” 정신은 썩고 권위만 남은 잘난 상아탑. 자본주의를 조롱하는 총명한 청년 서태지가 그곳에 가지 않은 이유를 이제 조금은 알 것도 같다.


군기가 빠졌구만…


  도대체 왜?! 군대는 근처에도 안 가본 준태(내 이름)가 저 문장에 익숙해져 있어야 하는 것일까. 도대체 언제까지 준태는 수많은 선배와 교사들의 황당한 군기타령에 어리둥절해 해야만 하는 것일까. 군대가 아닌 곳에서, 왜 준태는 군기가 들어 있어야 하는 것일까. 그들은 제대한 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나야 드디어 자신이 군대가 아닌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을 자각할 수 있을까. 아마 그런 날은 오지 않겠지. 한국이라는 사회 자체가 거대한 군대이니까. 그들은 자각할 수도, 자각할 필요도 없는 거겠지.


◀ 이런 폭력들이, 학교에서의 일상적인 풍경이란 거지.


  사실, 선배가 후배를 구타하는 일 따위는 뉴스거리도 되지 못하는 것이 오늘날 이 나라의 현실이다. 오히려 언론이 선배의 구타를 신고했다는 후배를 싸가지 없는 새끼로 몰아가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 곳이 바로 한국 사회인 것이다. 저항의 록 스피릿을 운운하던 준태네 학교 그룹사운드 동아리는 콘크리트에 머리를 박으라는 술 먹은 선배의 어명에는 결코 저항하는 일이 없었고, 군 시절 김건모가 오밤중에 자는 후배를 깨워 노래를 시켰다는 일이나 지금은 둘도 없는 젠틀맨처럼 행세하는 신동엽이나 안재욱 같은 인간들이 대학시절 동아리 후배들에게 각목으로 갖은 공갈 협박을 일삼았던 일들이 TV 토크쇼에서 재미있는 추억거리로 회자되고 있으며 뺑소니 범죄를 저지르고도 별다른 단죄 없이 방송에 복귀한 인간성 좋은 김흥국은 싸가지가 없다며 한국축구 응원단 붉은 악마의 단장을 구타하고도 버젓이 얼굴을 들고 브라운관을 누비고 있다. 아마도 정확히 말하자면 붉은 악마의 응원단장이 맞은 이유는 나이가 어렸기 때문일 테고, 김흥국이 인간성 좋다는 말은 기존의 방송·연예계 권력자 어르신들의 비위를 잘 맞춘다는 것일 테다.


그들의 신세대는 없다


  신. 세. 대. 기성세대와는 다른 개인주의적 사고방식의 소유자들로 권위와 억압을 혐오하는 자유주의자들이라던 그들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지나친 이기주의가 조직을 붕괴위험으로 몰고 갈지도 모르고 과도한 방종으로 인해 기성세대에 대한 존경심조차 사라질지 모른다며 어르신들을 노심초사하게 만들던 그 신세대들은 과연 어디로 갔는가. 준태가 본 TV 뉴스에서 이젠 군대에서조차 사라졌다는 - 설마 진짜 그럴 리는 없겠죠, 국군장병아저씨? - 구타를 몸소 행하고 계셨던 멋진 밴드부 선배님들은 꽉 막힌 구세대일까? 더러운 기성세대일까? 주민등록증을 까보면 당장에 알 수 있는 일이겠지만, 그들은 신세대다. (아니, 나이만으로 본다면 포스트 신세대가 더 적당할 테다.) 후배를 엎어놓고 욕하고 때리고 발길질하고 쓰러지면 밟아대던 그들이 바로 권위와 억압을 혐오한다던 그 신. 세. 대. 분들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란 원래 그런 거야…’하는 어른스러운 사고방식으로 현재의 불합리를 강인한 정신력과 인내심으로 견디어 내던 뉴스 속의 신입생들은 과연 신세대일까? 천만에 말씀 만만에 콩떡일 테다. 그들이 현재의 권위에 복종하는 이유는 몇 년 후 자신이 그들의 위치에 섰을 때 그들과 똑같은 권위를 인정받기 위해서 일 뿐. 그러므로, 머지않은 훗날 우리는 분명 똑같은 장소 똑같은 상황에서 똑같은 광경을 어렵지 않게 목도할 수 있을 것이다.


  신세대, X세대, Y세대, N세대…
  몇 년을 주기로 이름만 바뀌어 온 그 명칭들은 그저 기성세대의 “싸가지 없는 요즘 것들”에 대한 통칭일 뿐이다. 돈에 미친 장사꾼들의 싸구려 상술일 뿐이다. 그 밖에 아무 것도 없다. 신. 세. 대. 이기주의와 권위주의의 유산을 그대로 이어받은 나이 어린 기성세대여… 그들에게 희망 따위가 있을 리 없다. 누가 말했던가, 아- 끝없이 반복되는 역사의 수레바퀴여!



[준태]
Posted by 오승희

정말 평등하게 주어지는 기회.
그 속에서의 각자의 노력으로 얻어지는 산물들.
그것들이 바로 내가 바라는 사회다.


자신의 노력없이 무조건적인 공평한 분배?
그런 건 절.대. 원치 않는다.


솔직히
과연 누가 누구를 열심히 노력했다 평가할 수 있겠는가.
얼만큼 일했고 얼만큼의 열정이 있는지
제 자신도 그걸 평가내릴 수 없는데. 과연 누가.


인간이 인간을 평가내리고 가치를 따지는 것 자체가 모순이지만
이 모순된 세상에서도 최소한의 평등함은 있어야하지 않겠는가.


말만 평등한 기회이면 뭐하나.
정작 성실하게 죽자고 노력해도, 비겁하고 더러운 짓으로 돈버는 자 따를 수 없는데.



[레지나]
Posted by 오승희



▲ 거절권은 꽤 통쾌한 기술이다. 피라미인 말단 교사 하나를 잡을 때보다는, 폭력적인 이 세상을 향해, 불평등한 게 당연한 이 사회를 향해, 거절권을 날릴 때 더욱 통쾌하다♡

(출처 : 3cf 보노님의 「생존류 호신술」 中)
Posted by 오승희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