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치

 

작년 9월, 박정근이라는 이름의 한 사진가(라고 쓰고 ‘트위터 명망가’라고 읽는다. 아니, ‘망명가’인가?)는 갑자기 트위터에 ‘지금 자신이 운영하는 사진관과 집에 경찰들이 몰려와 압수수색을 하고 있으며, 자신은 PC방으로 피신해 몰래 이 글을 쓰고 있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당시 그를 팔로우하고 있지 않던 나는 한참 뒤에, 리트윗된 것들을 보다가 대체 이게 무슨 소린가 싶었다. 뭐가 뭔지, 뒤죽박죽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트위터 타임라인을 지켜보며, 이곳저곳의 정보를 취합해보며 겨우 사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의 죄목은 어처구니없게도, ‘국가보안법 위반’이었다. 아아, 국가보안법이라니. 내가 느낀 감정은 뭔가 7080스타일 복고풍 배바지 패션을 강의실에서 본 것과 비슷하달까, 한 기분이었다. 아, 세상에! 그러나 또 한 가지 충격적인 사실은, 경찰이 사진관과 집을 탈탈 털어 압수한 물품들 중에는 <오답 승리의 희망>도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아, 세상에!

경찰이 박정근에게서 압수했다가 돌려준 물품 목록에 있는 오승희 제10호.
참고로 10호는 창간 때부터 계속 편집위원 노릇을 했던 내게도 없는 레어 아이템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전에는 ‘국가보안법’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다. 전부터 국가보안법의 폐해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막연히 지금은 거의 유명무실해진 상태이겠거니 했다. 물론 요즘 뭔가 심상치 않다는 느낌은 있었다.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오던 ‘무슨무슨 간첩단’ 사건들, 특히 최근에 있었던 ‘왕재산 간첩단 사건’과 같은 일들은, 국가보안법이 아직은 살아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사건들이었다. 하지만 그 어처구니없는 사건 소식들을 들으면서도 여전히, 바보처럼 그런 사건들은 뭔가 북한에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거 아닌가, 하고만 생각했고, 나 같이 별 거 없는 평범하디 평범한 소시민들과는 별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국가보안법의 시초는 1907년에 통감부가 조선인들의 자강운동이나 독립운동을 봉쇄할 목적으로 대한제국 정부에 강요해 제정하게 한 ‘조선통감부 보안법’이다. 언론의 자유를 송두리째 박탈한 ‘신문지법’과 함께 조선인들을 억압한 대표적인 법이었는데, 대한자강회와 같은 수많은 조선인 단체들이 이 법의 철퇴를 맞고 해체됐다. 3·1운동도 보안법에 의해 강력한 탄압을 받았는데, 유관순 열사의 죽음 역시 이와 관련되어 있다. 1925년에 제정된 치안유지법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간 것이었다. 일본에서 처음 제정되어 조선에도 적용된 이 법은, 군국주의로 치닫는 일본의 상황에 찬동하지 않는 모든 이를 ‘반체제주의자’로 몰아 형무소에 가두거나 사형시키는 데 이용되었다.

치안유지법은 해방 직후에 폐지됐지만, 한국에서는 곧 국가보안법이라는 이름으로 부활했다. 이것은 당시에는 농민, 서민층에서 널리 유행하던 사회주의 계열의 사상을 탄압하는 데 쓰였고, 군부 집권 시기에는 민주화 운동을 탄압하는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17대 국회에서 거대여당이 된 열린우리당은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겠다고 공언했고 당 내에서 여러 가지 논의가 이루어진 바 있으나, 결국 국가보안법 폐지안은 국회에 상정조차 되지 못하고 묻히고 말았다. 오히려 참여정부 기간에 국가보안법으로 기소된 사람들이 늘어나는 경향을 보였다. 아마 별로 폐지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을 것이다.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활동을 규제함으로써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존 및 자유를 확보함을 목적으로 한다.’(국가보안법 제1조 1항)는 미명 하에, 정권에 조금만 거슬려도 잡아넣을 수 있으니, 집권 여당 입장에서는 얼마나 편리한가!

박정근은 대체 무엇을 잘못해서 압수수색을 받았던 걸까? 경찰 측에서는 ;북한 관련 트위터를 리트윗하는 등 북한의 주의·주장에 동조하는 점 등 국가보안법 위반에 혐의를 두고 압수수색했다’라고 밝혔는데(한겨레, 2011년 9월 23일 보도), 박정근이 한 것이라곤 북한의 대외 선전용 트위터 계정인 ‘우리민족끼리’가 올리는 별 쓸데없는 내용들을 리트윗하고, ‘장군님 만세!’와 같은 트윗을 몇 번 했던 게 전부였다. 누가 봐도 그것은 농담이거나 조롱이었고,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활동’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정말로, ‘누가 봐도’ 그랬다. 그랬기에 그가 압수수색을 받고 스트레스성 정신질환을 호소하는 그 상황에서도, 사실 그게 실제로 구속이나 실형까지는 이어지지 않고 그저 거기서 끝나겠거니, 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고, 박정근 본인도 그렇게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압수수색 이후로 그는 몇 번의 경찰 조사를 받았고, 여전히 북한과 관련된 농담을 했고, 오히려 더 강력하게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했고,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국가보안법을 조롱하고 폐지를 요구하는 행사 ‘뉴타운간첩파티’를 열었다. 작년 12월 3일에 백여 명의 간첩(?)들이 모여서 신나게 노래하고 춤추고 “김정일 만세”, “장군님 만세”를 외쳤다. 물론 그 김정일은 어느 기업인 ‘김정일’ 씨, 장군님은 ‘이순신 장군님’이었다.

'뉴타운 간첩파티' 중에 전시된 "나도 박정근이다" 프로필 사진들을 지나가던 시민이 보고 있다.

“나도 박정근이다!”를 외치며 박정근의 사진을 자신의 프로필 사진으로 삼았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다시 자신의 원래 사진으로 돌아갔고, 박정근은 트위터로 여전히 신나게 떠들었고, 연말을 장식했던 서울 학생인권조례 문제, 동국대 구조조정 문제 등이 새롭게 타임라인을 덮었고, 박정근에 대한 추가 조사도 없었고, 그렇게 해가 바뀌었다. 일은 이렇게 슬금슬금 묻히는 듯했다. 아니었다. 2012년 1월 10일, 난데없이 그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됐으니 법원에 나오라는 연락이 왔다. 구속영장에 적힌 ‘범죄사실의 요지’ 부분이 또 그렇게 멋들어진 명문이었다.

피의자는 2010. 3. 21. 트위터에 ‘seouldecadence’라는 아이디로 계정을 개설하여 북한 조평통(편집자 주 : ‘조국평화통일위원회’의 줄임말. 북한의 대남통일전선기구이다.)에서 체제 선전, 선동을 위하여 운영하는 우리민족끼리 사이트, 트위터, 유튜브 등에 접속 이적표현물 384건을 취득, 반포하고, 북한 주의, 주장에 동조하는 글 200건을 작성, 팔로워들에게 반포하였으며, 학습을 위하여 이적표현물인 북한 원전 ‘사회주의문화건설리론’을 취득 보관함.


여기서 말하는 ‘이적표현물’이라 함은 트윗을 말하는 것이고, 작성, 반포했다는 글 200여 건은 그가 작성한 트윗을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나오는 ‘사회주의문화건설리론’이라는 책이 얼마나 대단한 책인가 하고 구글에서 검색해봤더니, 딱 하고 바로 나온다. 1985년에 사회과학출판사에서 발행했고, 총 259페이지로 되어 있단다. ‘자주 나오는 단어 및 구문’도 정리돼 있고, 심지어 관련도서들은 물론 키워드를 넣으면 본문 어디에 쓰였는지 검색도 해준다! 좀 더 검색해보니 헌책방에서도 거래되고 있는 모양이다! 심지어 대학도서관에도 있는 책이란다! 하기야 오승희도 이적표현물로 의심 받아 압수됐던 물품 중 하나였으니, 이적표현물이라는 표현이 뭐 그리 대단해보이지는 않는 게 사실이다. 어쨌거나, 이 와중에도 솔직히 구속영장은 기각되고 박정근은 다시 별 일 없이 트위터를 계속할 거라고 생각했다. 아마 박정근 본인도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다음날 저녁 7시 무렵, 그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됐고 그는 그 길로 곧장 구속됐다.

그는 평소에 북한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고, 트위터에서도 북한과 관련된 농담과 함께 북한 체제를 조롱하거나 비판하는 트윗을 자주 올렸다. 도대체 아무리 봐도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활동’이라고 볼만한 것이 없었다. 그는 “이건 무슨 의도로 쓴 거냐.”고 묻는 경찰에게 “농담이었다.”, “장난이었다.”고 밖에 대답할 수 없었다고 했다. 평양냉면을 예찬하고, 평양 현지의 맛을 궁금해 하는 트윗이 대체 어떻게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한단 말인가? 그 정도로 위태로울 국가 안전이라면 한국은 진작 골백번도 더 망했어야 맞는 것 아닌가?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는 조사를 받는 가운데서 단 한 번도 자신이 북한을 비판했었다는, 그리고 자신이 평소에 반북 성향을 갖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 만약 그가 북한을 비판했었다는 이야기를 했다면 그는 구속되지 않았을지 모른다. 사실 그게 가장 쉬운 방법이었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 그것은 그의 개인적인 일이 된다. 그는 북한을 찬양할 목적이 전혀 없었고 오히려 비판적이었으므로 국가보안법이 오남용된 사태의 피해자가 된 셈이지만, ‘그렇다면 정말로 북한을 찬양한 사람은 잡아 가두어도 괜찮은가?’ 하는 물음, ‘국가가 마음대로 국민에게 어떤 종류의 사상을, 그 사상을 표현할 자유를 구속해도 되는가?’ 하는 물음은 해결되지 못한 채로 남는다. 그는 그에게 ‘모범답안’을 요구하는 권력 앞에서, 그렇게 ‘오답’을 말했다.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그의 투쟁방식이었다.

물론 정말로 국가를 위태롭게 하는 행위, 이를테면 국가기밀을 수집해 팔아넘긴다거나 하는 행위를 한 경우라면 당연히 잘못된 것이고 처벌받아야 하는 게 맞다. 하지만 단순히 몇 마디 말을 했다고 해서 처벌한다는 것이, 헌법에 ‘표현의 자유’를 명시한 나라에서 온당한 일인가? 고작 몇 마디의 말이 국가의 존립에 큰 위해를 가할 수 있는가? 당장 국가보안법 제1조 2항만 봐도 ‘이 법을 해석적용함에 있어서는 제1항의 목적달성을 위하여 필요한 최소한도에 그쳐야 하며, 이를 확대해석하거나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일이 있어서는 아니된다.’는 구절이 나온다. 이 조항, 지켜지고 있나?

어떤 이들은 “분단국가라는 현실에서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 “평범한 다수의 사람들은 조용히 잘 살아가고 있지 않느냐.”며, 국가보안법은 필요악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분단국가라는 현실이 모든 인권 침해를 정당화시켜주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국가보안법이 북한을 바로 알고 대응하는 데에 지장을 주어 국가안보에 방해가 된다는 주장도 있다. 국가정보원이라는 조직이 김정일의 사망 소식을 조선중앙방송의 보도를 통해서야 겨우 알았다는 현실에서, 국가보안법이 수호한다는 안보라는 게 대체 무엇인가?

또한 ‘평범한 다수의 사람들’이라는 표현은 문제를 애써 외면하려는 태도다. 이를테면, ‘모든 여성들은 치마를 입어야만 한다.’는 법이 제정됐다고 치자. 원래 치마를 즐겨 입던 사람들이라면 별 피해를 받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법이 악법이 아닌 것이 되나? 치마와 바지를 골라 입을 자유는 어디로 간 것인가? 이처럼 국가보안법은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한다. 당장 트위터만 해도, 이제는 정말 별 거 안 해도 구속될 수 있다는 생각이 트위터러들을 옥죄어 자기검열을 강요하고 있다. 국가보안법 이야기는 아니지만, 필자는 2007년 대선 직전에 인터넷에 제목은 ‘ㅇㅁㅂ = 단세포’, 내용은 ‘아메바는 단세포 생물이다.’라는 글을 올렸다가 선거법 위반 혐의로 경찰서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이후 선거 때 까지는 인터넷에 어떤 글도 쓰지 않겠노라고 마음먹었다. 아메바의 2차 습격이 좀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표현의 자유는 이렇게 훼손된다.

 

얼마 전에 간첩단 조작 사건으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수십 년 동안 지옥 같은 삶을 살았던 ‘송씨 일가 간첩단 사건’의 피해자들에게 무죄가 선고됐고, 뒤이어 국가가 그들에게 110억 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내려졌다. 국가보안법은 이렇게 ‘국가안보 수호’라는 명분 아래, 개인들의 삶을 파괴한다. 박정근 역시 압수수색 이후 불면증을 비롯한 여러 가지 스트레스성 장애를 호소했고, 자신의 사진관과 방에 가는 것도 두려워했다고 한다. 구속되어 있는 지금이야 말할 것도 없다. 개인의 삶을 이렇게 파괴하는 법이 존재하는 것이 온당한가? 일찍이 김수영 시인은 <김일성만세(金日成萬歲)>라는 시에서, 표현의 자유를 인정치 않는, 한국이 채택하고 있다는 ‘자유민주주의’의 모순을 이야기했다. 김수영의 그 시를 인용하며, 국가보안법 폐지를 다시 한 번 외쳐본다. 그리고 오승희, 이적표현물 아니에요. 좀 불순하긴 해도…….

'김일성만세'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언론의 자유라고 조지훈이란

시인이 우겨대니

 

나는 잠이 올 수 밖에

 

'김일성만세'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정치의 자유라고 장면이란

관리가 우겨대니

 

나는 잠이 깰 수 밖에

- 김수영, 1960. 10. 6

 

Posted by 오승희

쥬니

 

안녕하세요. 저는 대한민국의 일반 중학교 중에서는 거의 유일하다고 할 법한, 학생들이 기획부터 최종 편집까지 모든 과정을 책임지는 모 중학교의 신문편집부 멤버입니다. 구체적인 학교 이름과 직위(?)는 밝혔다가 여러 가지 위협이 생길 수 있을 것 같아 추후 관심 있으시면 밝히겠고요. 그냥, 이런 문제 제기를 해보는 것도 재밌지 않을까 싶어 이렇게 투고를 해봅니다.

저는 사실 두 번 정도 학교에서 운영하는 매체에 참가한 적이 있습니다. 교장 선생님 퇴임 기념으로 발간된 교지를 제작하는 교지편집부에 원서를 내면서, “새로운 느낌의 신문을 만들어 보겠다.”는 각오로 들어왔었지요. 하지만 딱 한 번의 편집부 회의 이후, 저희는 다시 모여서 구체적으로 어떤 방향으로 교지가 제작되는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그냥 3학년 선배들이랑 담당 선생님들이 정해놓은 것을 일방적으로 따라가기만 하는 수준이었으니까요. 그게 못내 아쉬웠었습니다.

그리고 2학년이 되서, 학교 소식지를 만들 때 기사를 하나 냈던 적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정말 재미없었던 체육대회 관련 기사에 대한 내용이었는데요. 저는 비판적인 평가를 담아 그 기사를 작성했었습니다. 하지만 그 기사를 담당 선생님께 갔다 드리니 깔깔 웃으시면서 “그래도 칭찬도 좀 해야지.”라는 말씀을 하시더군요. 뭐, 기사라는 게 중립적인 입장에서 써야 하는 경우도 있으니 그 경우에는 제가 기사를 잘못 쓴 셈이긴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일을 겪고 나니 두 개의 큰 의문이 들더군요.

첫 번째, 보통 각 학교에는 그 학교를 대표하는 교내 신문이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 신문들이 다루는 그 학교 학생들의 이야기는 상당히 적은 편입니다. 기껏해야 수련회, 수학여행 다녀오고, 좀 더 지면이 남으면 참관 수업 다녀온 거나 외부 상을 타온 것을 보도하는 기사 정도나 남지요. 대체 예산의 일부분을 사용하고, 학교를 대표하는 신문이라고 스스로를 칭하면서, 왜 정작 학교의 주인인 학생들의 살아있는 이야기를 담는 것은 그리도 어려울까요?

두 번째, 학교 신문의 주도권이 왜 학생들한테 없는 걸까요? 결국 학생들의 이야기는 학생들 스스로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것이고, 학생들이 학교의 주인인데 말이지요. 대체 왜 우리는 항상 우리의 돈으로 만들어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형편없고 재미없는 학교 신문을 받아봐야 했던 걸까요?

그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3학년이 된 뒤 새로 구성된 신문편집부에 경력직(?)으로 입사하면서 제일 먼저 1, 2학년 후배들과 선생님께 신문 예시를 통해 드린 말씀이 있습니다. 아래의 내용이 바로 그 내용입니다.

우리의 학교 신문은 뭐가 되어야 할까요?

그동안 우리에게 학교 신문은 그저 학교 신문이었습니다. 교장선생님이 좋은 말씀 한번 하시고, 가정통신문에서나 한번쯤 본 듯한 이야기를 보았지요. 차라리 가정통신문을 엮어서 보는 게 더 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한 학생은 이렇게까지 이야기를 하더군요.

“신문이라고 덩그러니 놓여있는걸 나눠주면, 거기에는 빽빽한 글씨와 딱히 관심 없는 이야기들만 가득했습니다. 누군가는 분명히 그걸 열심히 편집했겠지만, 알게 뭡니까. 나한테 재미가 없는데요. 근데 학교에서는 왜 가져가라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가방에 싸서 가져갈까 하다가 그냥 버리고 갑니다. 저 신문을 만드는데 쓰인 종이가 아깝습니다. 정말로요.”

학교신문은 학교 안의 이야기를 하는 신문입니다. 그리고 누가 뭐라고 해도 학교의 주인은 학생입니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학생한테 학교신문은 학교의 주인인 학생의 이야기를 하는 신문이라기 보단, 학교에서 일방적으로 발행하는 종이뭉치(쓰레기)였을 겁니다.

이제, 지금부터 ‘일방적으로 만들어진 종이뭉치’가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는 신문’을 만들고자 합니다. 처음 발을 딛는 친구에게도, 1년이 지나 익숙해진 친구에게도, 1년 있으면 졸업할 친구들이 모두 “아, 이거 내 이야기다!” 하는 신문을 만들고자 합니다.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글씨, 한번쯤 고민해봤을 이야기를 싣고자 합니다.

많은 관심과 기대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이게 바로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다!’ 싶은 내용이 있었는데 학교 신문에 실리지 않았다거나, 정말로 학교에 있는 모두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주저 말고 신문부실의 문을 두드려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학교에 있는 동안만큼은 신문부실의 문은 여러분을 위해 열려있습니다.

이만 글을 줄입니다. 재밌게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이야기>를 만든 또 다른 ‘우리들’이 드림


각기 품은 이상이 달랐을 수는 있지만, 적어도 제가 품고 있던 이상은 저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이야기가 담겨진 신문. 학교 선생님들이 배구치고 농구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배구하고 농구한 이야기가 담겨있는 신문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학교신문이라는 이름을 달고 수많은 예산을 소요하는 신문의 정체성이고, 그것이 참된 학교 신문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지도교사였던 A 선생님도 저랑 비슷한 생각을 갖고 계셨고, 애들도 어느 정도 그런 방향성에 동의를 했었기에 생각보다 순조로운 작업이 가능했습니다.

초기에는 굉장히 열악했습니다. 편집할 공간이 없어서, 학교 영어전용실(말하기 연습용으로 깔아놓은 컴퓨터가 있었습니다)에서 작업을 해야 했었으니까요. 게다가 제가 그 때 하필 가족여행이 겹치는 바람에, 첫 편집회의에 나가지 못하게 되서 후배들과의 거리가 약간 벌어졌었습니다. 그렇게 돌아와서 이런 저런 일을 하다 보니, 저와 제 친구가 애들을 점심시간에 무리하게 불러 애들과 갈등이 심해지고, 게다가 제 친구가 선생님과 갈등을 빚는 바람에 15명 정도 됐던 신문부가 딱 10명 정도로 줄어들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그 떠난 사람들은 3학년, 2학년 등의 신문이나 글이라는 걸 좀 써봤던 경험자들이었습니다. 참 슬펐죠. 어떻게 해야 하나 답답하기도 했고. 제 친구는 이 신문이 제대로 굴러갈 리가 없다며 나오라고 하기도 했었고요. 하지만 이왕 시작했고, 아직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한 꿈을 접을 수는 없었습니다. 선생님과 함께 애들을 추스르고, 남은 사람들을 모아 마저 신문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 사이 학교에서는 고맙게도 신문편집실을 배정해 주었지요.

배정된 신문편집실의 시설이 솔직히 그리 좋지는 않았습니다. 프린터는 예산을 들여 아주 좋은 걸 사줬었지만, 컴퓨터는 컴퓨터실에서 쓰던 구형 컴퓨터를 폐기하는 대신 들고 와서 연결했었고(뭐, 기사 작성하는데 큰 무리는 없었습니다.), 동아리방은 학교 맨 끄트머리에 둬서 그 근처에 반이 있던 저를 빼고는 상당히 접근하기 불리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여름방학이 되기 전엔 냉난방시설도 없어서, 여름에는 쪄죽고 겨울에는 얼어 죽는, 그리 좋지 않은 입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좋았습니다. 어쨌거나 저희 맘대로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긴 셈이니까요.

처음 신문을 제작하다 보니, 애들한테 미처 가르쳐주지 못한 것들이 꽤 있었습니다. 나름대로 기자라는 애들인데 타수가 빠르지도 않고, 좋은 기사를 골라내는 능력이 좋은 것도 아니고, 기사에 자신의 의견을 다는 것도 아직 미숙했고, 어떤 학교의 대소사를 잡아서 끈질기게 취재하는 것도 그다지 좋지는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싸우기도 했었지만, 차츰 시간이 흘러가면서 애들도 어느 정도는 일을 할 줄 알게 되고, 정말 신문에 열정이 있는 애들이 한 둘 들어오니 그나마 사정이 좀 나아졌습니다. 의견 차이가 있어 신문 발간이 늦추어 진다거나 하는 해프닝은 몇 번 있긴 했었습니다.

근데 사실 가장 아쉬웠던 건, 애들과의 갈등도 수습하고, 무언가 애들이 스스로 신문을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과 제한된 시간에 쫓기다 보니 기존 학교 신문이 밟았던 길을 반절쯤은 답습했다는 점이었습니다. 편집부에서 웬만하면 교장 선생님 말씀이나 교직원 배구대회 같이, 애들이 전혀 관심 없어 할 법한 것들은 가능한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어쨌거나 최종 발행을 결정하는 건 교장 선생님과 학교 당국이었기 때문에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나마 저희 학교는 조금 유연하게 신문이 발행됐었지만, 만약 학교 당국이 재미없는 신문을 계속 답습할 생각이 있다면, 신문편집부로서 그것을 막을 방법은 없던 셈이지요.

지면상의 문제도 있었습니다. 애들이 아직 능숙하지를 못해서, 한 달 안에 (격주 발행이지만, 총 두 팀이 번갈아서 신문을 발행했거든요.) 교정 및 최종 편집까지 완료해야 하는 신문이 제작되는데 애로사랑이 적지 않게 있었습니다. 그래서 신문 면수가 2면으로 제한됐었고, 그나마도 1면은 NIE 신문 성격으로 발행이 되었습니다. 그나마 주제를 학생들이 관심 있어 할 만한 주제로(사교육, 셧다운제, 입시 같은 것을 다뤘습니다.) 다뤘기에 망정이지, 정말 재미없는 주제로 NIE가 발행됐었다면 정말 꿈도 희망도 없었을 겁니다.

이런 이야기를 2011년 최종호를 마치고 신문편집부 회식에서 넌지시 이야기를 꺼냈었습니다. 그 때 나온 말은, 첫 술에 배부르라는 법 없다는 것이었고 아직 토대를 잡는 과정이었기에 저희가 겪었던 시행착오가 내년이 되면 줄어들 것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근데 내년에 신문부가 그대로 지도교사가 유지될지, 아니 유지가 되기는 할지 확신을 못 하거든요. 학교당국의 결정에 따라 얼마든지 존폐여부가 갈릴 수 있으니까요. 이런저런 걱정을 하다가, 회식이 끝났습니다.

그냥 이렇게 저희 학교 신문부 이야기를 길게 다뤘던 건, 과연 지금 학생들의 이야기를 전해야 할 학교 신문의 실태가 어떤지 <오승희>에서 한번 알아봐 주시면 어떨까 싶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학교라는 곳은 배움의 장소이기도 하지만, 비슷한 나이대의 또래들이 이루어나가는 하나의 사회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 사회의 여러 의견을 조화롭게 담아내는 것이 학교 신문이라는 것이 저의 생각이기에, 과연 지금, 한국의 학교 신문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궁금해 졌습니다. 특목고나 자사고같이 예산도 많고 이런 저런 경험이 많은 학생들이 만드는 신문과, 일반 고등학교의 신문, 또는 일반 초중등학교의 신문이나 국제중의 신문을 비교해 보는 작업 같은걸 해주시는 건 어떨까 싶어 이렇게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이야기를 실어봅니다. 그리고 혹시 저희 학교의 신문부가 특이케이스라고 생각해 한 번 알아보고 싶으신 생각이 있다면, 2011년에 발행된 1호부터 8호까지의 신문을 제공해드릴 용의가 있습니다. 관심 있으시면 appel2994@naver.com으로 연락 주셨으면 합니다. 비록 특목고에 지원해 1차를 붙었다가 2차에서 떨어졌던 학생이고, 현재는 대학 서열화에 따라 정해진 명문대학으로의 진학을 생각하고 있는 속물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적어도 그 속물적 의도가 아닌 다른 의도를 가지고 그 학교들을 꿈꾸고 있고, 학교라는 곳이 학생들을 위해 존재할 수 있는 사회로 바뀌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두서없이 써내려가 죄송하기도 합니다만, 한 번 이런 주제를 가지고 생각해 보시는 것은 어떨까 싶어 이렇게 글을 남겨봅니다.


쥬니 님의 글 잘 읽으셨죠? ‘학교신문’에 대한 사례를 오승희 투고게시판에 보내주세요!

보내주신 글들은 언젠간 나올 (ㅠㅠ) 제15호에 실리게 됩니다!

 

Posted by 오승희

봄비맞은새싹

 

대학교 내에서 일어나는 몇 가지 인권침해 사례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기숙사 내 셧다운제

학교 기숙사 내에서 새벽 두 시부터 네 시까지 인터넷 연결을 끊는 (인터넷) 셧다운제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보는 피해가 만만치 않습니다. 본인은 아침시간보다 저녁시간에 더 활용할 시간이 많고 효율이 좋습니다. 그러나 일방적으로 기숙사에서 인터넷을 끊기 때문에, 인터넷이 필요한 많은 일들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진정 학생들을 위한 것인지, 또한 셧다운제가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해 나온 제도인지, 이것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혜택을 누리는지, 실질적으로 혜택을 누리는 친구들보다 피해를 입는 친구들이 많지는 않은지 궁금합니다.

 

2. 기숙사 내 소지품 검사

학교 기숙사 내에서 학기에 한번은 꼭 불시에 기숙사 방문을 허락도 없이 열고 들어와 (들이닥친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듯합니다.) 소지품을 검사합니다. 옷장과 서랍, 신발장, 게다가 냉장고와 침대까지 검사를 하고 갑니다. 심지어 자리에 없거나 자고 있는 학생의 자리까지 검사합니다. 이건은 명백한 사생활침해이며, 인권침해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3. 기숙사 12시 이후 출입금지, 통행제한

이 또한 학생들의 거주이전의 자유를 제한하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12시면 벌점을 먹고 기숙사에 들어가야 하고 1시가 지난 이후에는 아예 출입문이 폐쇄되기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문이 개방되는 5시까지 학교 근처에서 시간을 때우든지 졸린 눈을 비비며 문 앞에서 기다려야만 합니다.

 

4. 기숙사내 주류 반입 전면금지

또한 기숙사 안에서 술 반입을 전면 금지하고 있어서 대학가에서 간단히 술을 마시고 들어오고 싶었던 친구들은 12시가 1분이라도 넘으면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기독교학교이기 때문인지 (기독교라고 이래도 되는지 싶지만) 기숙사에서 (학교에서 일방적으로 정한) 음주금지라는 사칙 때문에 오히려 학생들이 외부에서 조금 마셔도 될 술을 더 많이 마시게 됩니다. 일단 시간을 때울 곳이 필요하니까요. 또한 기숙사 내에서 자신들의 자유에 따라 적당량을 마시면 다음 수업에 전혀 지장이 없었을 학생들이 어떻게든 5시 이후에야 기숙사에 들어와 자야만 하기 때문에 -바꿔 말하자면 5시 이전에는 술을 먹든, 어떻게든 깨어있어야 하기 때문에- 다음날 수업에 지장을 미치는 경우를 더 많이 봅니다. 또한 기숙사 내에서 주류 반입 금지사칙에 대한 정당성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우리는 스스로가 먹고 마시고 싶은 것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5. 아무런 공고와 사전 안내도 없이 맡긴지 1년이 지난 옷은 무조건 봉사단체에 넘기는 학교 내 독점 빨래방

저는 1년 동안 휴학을 하고 다시 학교에 돌아왔습니다. 그 전에 맡겼던 옷을 찾으러 교내 빨래방에 가자, “언제 맡겼느냐, (일 년전이라고 하자) 그럼 없다.”는 황당한 이야기만 들었습니다. 빨래방에서는 1년이 지난 옷은 보관하지 않고 봉사단체에 넘긴다고 하는데, 저는 그런 이야기를 전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사전 안내가 있었다면, 휴학을 하기 전에 찾으려는 노력을 했을 것이며, 옷을 넘기기 전에 빨래를 맡긴 당사자에서 미리 공고를 해주었다면 부탁을 해서라도 아마 찾아놨을 것입니다. 군대를 갔다 오기 위해 최소 2년을 휴학하는 다른 동기들의 경우는 어떡하죠?

 

6. ‘스킨터치 금지구역’이라는 무시무시한 말을 들이대며, 기숙사 로비에서 남녀 신체접촉을 제한하는 일

중심을 못 잡고 넘어진 나를 잡아주던 제 남자친구와 저에게 사감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여긴 스킨터치 금지구역이에요, 스킨십 금지입니다.”

스킨터치 금지구역이라는 내용에 대해서는 입학 전후 어떠한 공지도 받지 못했으며, 그런 구역을 표시하는 안내판도 교내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또한 기숙사 로비라고 남녀 간 신체접촉이 불가하다는 것은 무슨 논리입니까? 그럼 기숙사 외벽에서 신체접촉을 하면 그것은 정당한가요? 황당합니다.

 

7. 강제 채플 수업

채플을 4학기 간 이수하지 못하면 졸업이 불가합니다. 채플수업에 대해서는 이미 공론화가 충분히 되었으니 길게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몇 마디를 붙이자면, 무신론자인 저는 채플수업에서 전해 듣는 이야기들이 상당히 불편했습니다. 또한 그 시간에는 몇몇 채플조교들이 감시를 하며 잠을 자거나, 책을 보거나, 문자를 하거나, 핸드폰을 만지는 등 채플 수업에 집중을 하지 않으면 제재를 가했습니다. 강제 채플이 시행된다는 것이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엄연한 인권침해 사례이며, 또한 그 시간 동안 감시와 개인의 자유로운 행동에 대해 제재를 가하는 것은 이중의 인권침해라고 봅니다.

8. 기숙사 내 고데기 등의 전열기구 사용 금지

화재의 위험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한번 솔직히 바라봅시다. 지금 ‘들키지 않게’ 고데기를 기숙사 내에서 소지하고 있는 여학생들이 얼마나 많을까요? 고데기를 소지한 학생들과 화재가 난 사건의 비율을 따져보았을 때 극히 소수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소수의 위험성도 배제를 해야 한다? 모든 학생들을 잠재적 방화범으로 바라보는 건가요? 차라리 학생들에게 화재 예방 교육이나, 현재 시행하고 있는 RA제도를 통해 고데기 사용에 대한 주의요구와 위험성 전달 등을 할 수는 없나요? 참고로 전열 기구에는 밥통 등도 포함됩니다.

 

청소년 여러분들이 스스로의 권리를 찾아가기 위해 애쓰는 모습, 보고만 있어도 가슴이 벅찹니다. 본인은 대학생인데, 저도 인권침해 현장 그 자체인 중고등학교를 지나왔죠. 항상 무언가가 불합리하고 옳지 못 하다고는 생각했지만 그 정도에서 멈췄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의 푸른 꿈을 응원하고, 저도 지금이라도 제가 청소년인권을 비롯, 많은 사람들의 인권을 지킬 수 있는 일들을 하고 싶습니다.

아무튼 대학교는 확장과 등록금 올리기에만 열 올리지 말고 학생인권에나 신경 썼으면. 취업지원이고 경력개발이고 기본적 권리나 존중해 주고 씨부리기를.

Posted by 오승희

(※ 이 글은 출간 시 디자이너의 실수로 밑의 한 문단을 빼먹고 인쇄되었습니다. 필자와 독자 분들에게 심심한 사과의 말을 전합니다.)

navi

 

내가 지금 벌써 20대이다. (ㅠㅠ) 그리고 내가 초등학교 때 학교폭력이랑 ‘왕따’, ‘이지메’ 어쩌구 하는 이야기가 나와서 시끌시끌해졌고, 이천 몇 년에는 학교폭력특별법이란 것도 제정이 됐다. (네이버에서 쳐보니 2004년이었다.) 그러더니 2005년에는 “일진회”라는 게 학교 안에 있다면서 나라가 발칵 뒤집혔고, (편집자 주 : 학교 내 ‘일진회’ 문제가 처음 불거진 것은 1996 ~ 1997년부터였다.) 부산에서는 어느 고등학생이 다른 고등학생을 때려서 죽게 해서 또 난리가 났었다.

그때마다 정부에서는 역시, 뭐 특별법 제정이든, 스쿨폴리스(배움터지킴이) 도입이든, 처벌 강화든, 여튼 뭘 하느니 마느니 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온갖 이야기를 했다. 그중에는 굉장히 그럴 듯해 보이는 것도 있었고, 어이가 없는 것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그 때뿐이었다. 그래서 그 대책이 제대로 시행이 되었는지, 그 시행이 정말 효과가 있었는지, 효과가 없었다면 어떤 대책이 필요한 건지, 그런 것을 진지하게 알아보고 계속해서 하려는 건 잘 보이지 않았다. 청소년폭력예방재단같은 전문 단체들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2011년 12월 말부터 갑자기 막 이야기가 터져 나오기 시작한 ‘학교폭력’(학교폭력이란 말도 좀 웃기다. 학생들 사이의 폭력을 왜 학교폭력이라고 부르지? 부를 거면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폭력을 전부 다 묶어서 그렇게 부르든가.) 이야기 잔치가, 아무리 생각해도 답답하다. 십 몇 년 동안 도대체 뭘 한 거지? 그러면서 부끄럽지도 않나? 어떻게 그 동안 신경도 안 쓰다가 저렇게 뻔뻔하게 요즘 애들이 어쩌고 하면서 떠들 수 있는 걸까?

잘 모르겠다. 우리 사회가 학생들에게 진심으로 관심이 있기나 한 건지. 그냥 신문 잘 팔리게 만들어주는 ‘핫이슈’ 정도로 소비하고 있는 건 아닌지. 학생들이 선거권이 없어서, 그래서 학생들 이야기는 듣지도 않고 지들 맘대로, 좀 이런 거 한다고 생색내고 보여줄 수 있는 정책만 반짝 나오고 마는 건가 싶기까지 하다. 특히 요즘 나오고 있는 소리들을 보면 그런 생각은 더 쎄진다.

 

자세히 들여다봐야

학생들 사이에 폭력이나 괴롭힘 같은 건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보다도 종류가 다양하다. 예를 들면 난 중2 때 같은 반에 학교에서 좀 노는 애가 있어서 걔가 애들한테 삥을 뜯곤 했다. 하지만 걔는 삥만 좀 뜯었지, 누구 하나를 찍어서 괴롭히거나 패거나 하진 않았다. 중3 때는 다른 데서 전학 온 애, 사투리 쓰는 애가 따돌림을 당하고 괴롭힘 당하는 일이 좀 있기도 했다. 근데 고등학교 때는 또 달랐다. 선후배 문화가 강한 곳에 가서, 선배들이 후배들을 기합 주고 두들겨 팼다. 인사 안 한다고 맞는 애도 있었다. 기숙사나 동아리에서는 그런 게 더 심했다. 때로는 교사가 3학년이나 2학년들한테 1학년들 군기 좀 잡으라고 뒤에서 조종하기도 했다.

그래서 학생폭력 대책이라고 딱 말하면 그냥 간단해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각각 원인도 과정도 결과도 다르다. 더 구체화해서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접근해야 한다. 특수학급에 장애인 학생이 차별 당하고 괴롭힘 당하는 사건이랑, 일진이 걍 별 이유 없이 찐따를 찍어 놓고 괴롭히고 패는 사건이랑, 선배가 후배들 군기 잡는다고 패고 기합 주는 사건이, 같을 수가 없단 말이다. 그런데 요즘 나오는 ‘학교폭력 대책’이란 것들은 도대체 그런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냥 마냥 포괄적이고, 때로는 자극적이다.

학생 폭력 해결에 이게 좋다! 이거만 하면 없어진다! 하는 그런 신의 정답, 난 모르겠다. 차라리 학교를 없애버려야하나 할 정도다. 하지만 이거 하나는 알겠다. 지금처럼, 학생들 이야기에 귀 안 기울이고, 보여주기식 대책만 내놓으면, 학생 폭력 백날 가도 안 없어진다. 그래서 답답하다.

Posted by 오승희

둠코

 

요즘 전국 이곳저곳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고 있다. 서울에서도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가 성사되고, 서울시의회를 통과했다. 전국에 학생인권의 바람이 불자, 이를 반대하는 진영에서 학생인권조례가 학교폭력을 부른다는 논리로 학생인권조례를 사정없이 까대고 있다. 체벌 등의 징벌을 할 수 없어 교권이 추락하고 일부 날라리 학생들이 조례로 인해 자유를 얻게 되어, 인권 같은 거 없이도 행복하게(?) 학교생활을 할 수 있는 다수의 선량한 학생들을 괴롭히게 된다는 것이다. 보수언론들은 연일 학교폭력에 대한 기사를 쏟아내어 가해학생들의 악마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폭력 모두가 학교폭력이 아니라 학생들 간에 일어나는 폭력만 학교폭력이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됐을 때, 학교폭력이라는 말은 많은 것을 가려버린다. 학생 간의 폭력 이외에 학교의 제도가 부추기는 폭력들을 숨긴다. 체벌이나 언어폭력, 과도한 경쟁 등이 그것이다. 또한 학생 간의 폭력이 학교의 폭력적 구조 때문에 일어난다는 사실 역시 얼버무린다. 학생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폭력적 상황은 아무 이유도 없이, 극악무도하고 이해 할 수 없는 학생들에 의해 일어나는 것으로 치부해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학교에서 일어나는 폭력은 그것이 전부인 양 말한다. 그래서 학생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폭력 상황만을 분리해서 표현하는 ‘학생 간 폭력’이라는 단어와 함께, 이런 폭력 상황에 대해 뜯어보고, 학생인권의 눈에서 해결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학생 간 폭력은 크게 두 가지의 경우가 존재한다. 하나는 학교 어디에나 있는 힘 재기에서 비롯되는 폭력이고, 두 번째는 사회적인 차별에 의해 가해지는 폭력이다. 학교 안의 힘 재기는 학생들에게 습관처럼 일상적으로 이루어진다. 학기 초가 되면, 서로 모르는 이들이 가득한 교실 속에서 학생들은 모두 자신이 잠재적 왕따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 시달린다. 그래서 쉬는 시간, 점심시간에 전혀 안면도 모르는,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도 모르는 누군가를 붙잡고 같이 화장실에 가자거나, 같이 점심을 먹자고 하며 친해지기를 시도한다. 그렇게 학기가 반쯤 지나가면 누구는 누구와 친하고, 내가 소속된 그룹은 어디이고 자신이 어떤 위치인지가 명확해 진다. 그리고 그 안에 누구와도 친해지지 못하거나, 그런 데 관심이 없는 학생들도 있게 마련이다. 이런 참으로 피곤한 교우관계의 유지는 학교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의 경쟁과 맥을 같이 한다. 학교는 학생들의 관계를 성적과 마찬가지로 위와 아래로 나누게 만든다. 외모, 성적, 자신 외의 다른 교우관계, 교사의 신임 등등 수많은 사항들을 고려해서 거스르면 안 될 사람과 좀 더 거만하게 굴어도 되는 사람을 선별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한다. 이 과정에서 자신이 가장 밑바닥에 있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자신보다 아래에 있다고 생각되어지는 누군가에게 폭력을 휘두르게 된다. 차별에 의한 폭력의 경우, 그 차별 사유는 사회에서의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성(性)소수자나 장애인에 대한 차별 등이 그것이다. 이런 사회적 소수자들은 차별의 대상에서 더 나아가서는 혐오의 대상이 되고, 폭력의 대상이 된다. 이는 그들이 말 그대로 소수자, 그러니까 힘 재기의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자의 축에 속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학교는 사람을 여러 항목에서 끊임없이 줄 세우게 하고, 힘이 약한 누군가에게 폭력을 가하는 것을 용인하는 구조로 되어있다. 타인과 어떤 관계를 맺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자신이 무엇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관계가 결정된다. 끊임없는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는 그대로 폭력성이 된다. 자신이 다른 누군가보다 가치가 있음을, 조금 더 가진 게 많음을 증명하기 위해 폭력이라는 수단을 선택하는 것은 그 중압감 때문이기도 하다. 폭력적인 구조로 만들어진 학교가 그 안의 학생들을 폭력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지금까지 학생 간 폭력을 해결하는데 있어서, 교사의 역량이 주로 이야기 되어왔다. 매를 휘두르던지, 아니면 사랑으로 아이들을 끌어안던지, 교사의 권한을 증대시키는 것이다. 요즘은 교사가 해결하기에는 짐이 무거우니 학교 안에 학생 간의 폭력 사건을 전담하는 경찰을 두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어느 쪽이든 이 담론들에서 학생은 불쌍한 피해자이거나 혹은 이해 할 수 없는 극악무도한 가해자로 그려진다. 자신들을 둘러싼 상황과 구조들에 대해 학생이 결정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전무하다. 이런 방법은 학생인권의 이야기가 본격화 되지 않았을 때부터 계속 논의되고 존재했던 방법이고, 그 때나 지금이나 학생 간 폭력은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학생 간 폭력의 그 다양한 이유들은 점점 더 가려지고 뭉뚱그려 져서 알 수 없는 위험한 10대들이 하는 짓으로 비춰진다.

학생 간 폭력의 이유가 차별일 때, 학교에서 해야 하는 가장 첫 번째는 인권교육이다. 다수의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은 나쁜 것, 더러운 것, 열등하거나 배척해야 할 것이 아님을 확실히 전달하고 몸에 배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누군가에게 소수성을 이유로 폭력을 가하는 것을 단호하게 거부하는 문화를 조성하는 것이다. 단지 인권교육에 수업시간을 할당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학교에서의 생활에 나타날 수 있도록 하는 것 또한 학교의 역할이다. 또 학생들이 학교의 운영에 참여하고 인권이 보장되는 학교에서 생활하는 것으로 일명 ‘찌질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학생 간 폭력에 대한 해답도 찾을 수 있다. 서로 비교하고 등수 매기는 기존의 환경에서 자신도 같은 방식으로 사고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그런 상황에 처하게 하는 조건들을 바꾸어 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학교 안에서의 폭력적 상황에 대해 권력자인 교사의 처분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권리를 가지게 되면, 학생 간 폭력의 귀결은 ‘징벌’이 아니라 폭력적으로 망가져 버린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고민으로 바뀐다. 학생 간 폭력에 대한 교사의 중압감, 권위를 세우기 위한 인권침해도 사라질 수 있다.

학생들이 최소한 타인에게 폭력을 휘두르지 않을 수 있는 환경. 자신과 남에 대해 힘의 논리가 아니라 존엄한 인간이라는 인식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이라면 학교는 달라지지 않을까?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윗사람의 처분이나 결정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직접 두 팔을 걷어 부치고 해결하는 것이 당연해 진다면, 학생 간 폭력은 지금처럼 ‘난제’로 남아있는 일은 없지 않을까?

Posted by 오승희

서울시 삼성역 근처 블무슨무슨 학원.

…학원 이름은 밝히지 않겠습니다.

맨 처음 학원에 등록했을 때 체벌동의서 같은 것을 받더군요. 체벌이라면 누구나 싫어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동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학생 입장에서 학원을 다니기 싫다고 해서, 나랑 안 맞는다고 해서 안 다닐 수 없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 학원은 선생님들이 무차별적으로 학생들을 때리는 곳은 아닙니다. 하지만 체벌은 엄연한 인권침해입니다. 체벌동의서를 받는 다는 것은 인권침해동의서를 받는 것과 마찬가지 아닙니까?

우리 학원에서는 C를 2번 받게 되면 체벌경고를 받게 되고, C를 3번 받게 되면 체벌을 받게 됩니다. 체벌은 말도 못하게 아픕니다. 동그란 부분이 손바닥만 한 긴 주걱으로 손바닥을 때립니다. 처음 맞을 때는 3대, 그다음은 4대, 그다음은 5대로 점점 늘어납니다. 3대도 맞으면 손바닥이 매우 아픈데, 5대부터는 참을 수 없습니다.

학생이 체벌을 거부하면 ‘수중예’를 받게 됩니다. ‘수중예’란 수업중단예고 입니다. 수중예를 받은 뒤 4번 안에 숙제를 완벽하게 한번 이라도 해오지 않으면 학원을 다니지 못하게 된다고 합니다.

부모님에게 말 해봤지만 네가 잘못해서 그런 거라며 숙제나 제대로 해 가라고 합니다. 정말 정말 답답하고 하소연해봤자 들어줄 데도 없고, 그래서 여기에나마 글 올립니다.

학원 체벌, 정말 이대로 놔둬도 되는 겁니까?

Posted by 오승희

봄비맞은새싹

 

이 글은 다음 책을 읽고 수필 형식으로 쓴 글입니다. 이 글을 쓰고 친구들과 함께 선비 정신, 우리 시대의 진정한 선비와 같이 ‘선비’에 대해서 열띠게 토론했던 기억이 납니다. 사실 글의 초점은 그게 아니었는데 말이죠. ㅎㅎ

아름다운 우리 고전 수필 | 강희맹 外 지음 | 손광성 外 편역 | 을유출판사 | 2003년 5월 | 9,000원

 

나는 떡볶이를 참 좋아합니다. 나와 내 친구가 떡볶이를 좋아하는 것만큼이나 좋아하는 떡볶이집이 있습니다. 입이 까다로운 선배가 맛있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든 그곳에 갔던 처음 두 번은 허탕을 치고 돌아와야 했습니다. 세 번째 발걸음 만에 드디어 먹게 된 떡볶이는 상상했던 것처럼 맛있었습니다. 우리가 이곳을 좋아하는 까닭은 비단 ‘맛’있는 떡볶이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곳에는 우리를 자꾸만 찾게 만드는 사장님의 후한 인심과 마음이 있습니다. 남은 음식을 포장해달라는 우리의 부탁에 사장님은 떡볶이를 몽땅 얹어주시고는 “그릇이 차지 않으면 제 마음이 차질 않아서요.”라고 멋쩍게 웃으십니다. 우리는 따끈따끈 떡볶이가 든 봉지를 쥐고 더 따스한 마음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나는 그분이야말로 정말 행복한 사람, 마음의 부자가 아닐까하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이 어질고 청명하다 자처하며 남의 마음을 돌아서게 한 그릇된 우월감과 과시욕이 아닌, 진정으로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며 깨닫게 하니 이분이 진정한 선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회오리바람은 하루아침을 가지 못하는 것이요, 소나기는 하루 동안을 채우지 못한다.’는 구절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인간의 권세도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 나온 이야기이지만 나에게는 이 말들이 여러 가지 의미로 다가옵니다. 사람 위에 서고자하는 명예와 권력은 결국에는 스러지고 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을 안고 함께 나가는 가랑비는 작은 손짓으로 결국 누리를 적시게 될 것입니다. 자신만을 아는 강하고 곧은 마음은 부러지지만 자신을 낮추고 사람을 바라보는 유연함은 휠지언정 부수어지지 않습니다. 관상쟁이의 말이 단순한 반어가 아니라 본질을 꿰뚫는 옳은 말인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됩니다.

산천과 미물을 바라보는 선인들의 태도에서 이러한 마음을 다시 한 번 깨닫습니다. 여러 철 동안이나 들끓으며 성가시게 하는 파리를 보며 굶어죽는 서글픈 백성들을 생각하는 정약용의 마음은 이와 다르지 않겠지요. 흉악한 외모에 그저 부질없다고 여겼던 박쥐를 바라보며 ‘형과 질에 따라 차별을 둘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하던 선인의 지혜가 놀랍습니다. 이것은 은혜로운 동물이었던 고양이가 마음에 따라 해로운 동물이 되기도 하였던 것과도 비슷한 이야기라고 생각됩니다. 마음을 달리함에 따라 마음속에 어떤 것의 가치가 달라지는 것을 잦게 봅니다. 사람의 편의에 따라, 우리에게 주는 이로움과 해로움에 따라서 말이죠. 그러나 어떠한 기준에 따라 가치가 매겨진 미물이라 하더라도 결국 자연 속에서 바라보면 각각의 존재 이유로 살아가는 우리와 같은 생명체들입니다.

하물며 이러한 미물들뿐 아니라 우리 인간들 또한 어떤 가치기준에 따라 서열화될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질서지울 수 있는 것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사람됨’이라는 추상의 기준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그 구조는 수직적인 것이 아니라 수평적인 구조가 되기를 바랍니다. 떡볶이 사장님의 푸진 인정을 가슴에 담고 떡볶이와 함께 무르익어가는 저의 생각들이 해가 갈수록 또한 깊어지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오승희

limbo

 

솔직히 까놓고 말해 나는 모범생이다. 공부도 그럭저럭 해서 선생님이 호의의 눈길로 봐주시는 편이고, 집에서도 나름대로 인정받고 살고 있었다. 친구들이 영화 <쌍화점>을 보고 열광할 때에도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는 절대 보지 않았고, 욕설이 들어간 노래는 아무리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라고 해도 절대 듣지 않았다. 아무도 간섭하지는 않았지마는 내 나름대로 뭔가 죄의식을 느꼈던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어정쩡’한 아이가 되고 있었다. 뉴스에서 싸움판을 벌이고 있는 정치가들을 볼 때, 4·19혁명이나 6월 민주항쟁을 맹렬히 비판하는 어른들을 볼 때, 점수를 빌미로 학생을 협박하는 선생님을 볼 때, 항상 속에서 울컥울컥 무언가가 올라왔었다. 하지만 그렇다해도 나는 결국 고리타분한 아이일 뿐이었다. 치마를 짧게 입거나, 화장을 진하게 하거나, 파마를 한 학생들을 보면 반감부터 드는 게 사실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 오승희를 보게 됐는데, 이 잡지(?)는 텅텅 빈 자습실 책상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뭐지? 학교 앞에서 나눠주는 학원홍보용 공책인가?” 별 생각 없이 잡지를 펼쳐 보았고, 솔직히 말해 처음 봤을 때 조금 반감이 들기도 했다. 정말로 솔직담백한 표현과 거침없는 욕설(?)에 놀라기도 했는데, 글을 하나하나 찬찬히 읽어보니 정말로 화가 났다. 나는 이렇게 인권 침해를 당하면서도 그것도 모르고, 내 권리를 주장하지도 못하면서 혼자 똑똑한줄 알고 살고 있었고, 정말 junk적인 사고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앞서 말했듯, 나는 학교에서 말하는 소위 ‘복장불량’인 학생을 보면 반감을 느끼곤 했고, 선생님 말씀에 반항하는 아이들에게 거리감을 느꼈다. 도대체 왜 그랬던가? 나는 학생인데 왜 어른들의 편에 서서 저들을 함께 비난했는가? 나는 내가 이렇게 바보였는지 상상도 못했지만 사실 나는 어른들의 주입식 교육에 아주 푸욱 젖어서, 그 말만이 옳은 줄 알고서 자유를 억압하는 그들의 횡포를 반대하기는커녕 함께 찬성하며 우월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 창피했다. 오승희를 보는 내내, 목이 터져라 길거리에서 청소년인권 보호를 외치는 청소년 운동가들에게 너무 미안했고, 학교에서 별다른 이유 없이 자퇴당한 학생들에게 내가 정말 부끄러웠다. 왜 우리나라가 이렇게 되었는지, 우리나라만 이따위가 되었는지 정말 분했다. 학교에서 오후 11시에 심야자율학습을 끝내고 집에 들어와서 씻고, 폭식하고, 자고, 다음날에 일어나서 다시 학교를 가려고 준비하는 내 자신을 발견하며, 이렇게 왜 사나는 생각까지 들었다.

청소년의 인권이 이다지도 침해되다 못해 갈기갈기 찢어지고 헤어져 이 지경까지 된 이유는 어른들의 횡포뿐만이 아니라, 청소년들의 무지함에도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오승희를 정신없이 보고 있자, 나름대로 친한 전교1등 친구가 다가와서 뭘 보냐고 묻더니, 표지를 보고 한 마디했다. “헐!”이라고. 그 한 마디에서 나는 많은 것을 들었다. “이런 걸 왜 봐?’부터 시작해서 “공부 잘 하고 선생님께 이쁨 받는 아이들은 이런 것쯤 보지 않아도 되잖아.” “우리에게 큰 피해는 없잖아. 나름대로 잘 돌아가는 사회를 왜 비판하려고 나서니?” “적당히 해. 너 괜히 이런 거 보다가 선생님한테 미움 받고 싶니?” 까지…. 이건 꼭 읽어봐야 한다고, 한번 보라고 그 친구에게 권하자, 그 친구는 멋쩍게 웃으며 다시 내 손에 그 잡지를 쥐어주었다. 나는 잡지에서 나오던 무시무시한 청소년인권 억압 현실을 봤을 때보다 친구의 그 반응을 보았을 때 정말로, 정말로 좌절했다. 계속 이대로라면, 이 사회는 영원히 약자들의 인권을 억압하고 짓밟을 것이고 영원히 나아지지 않을 것 같다.

이 글을 보고 반감을 가지는 이들도 많을 것 같다. 내가 쓰면서도 좀 재수가 없긴 하다. 그래봤자 나는 청소년인권을 돌려달라고 선생님 앞에서 자신 있게 말할 용기도 없는 소심한 학생일 뿐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여기 독자투고란에 글을 올리는 것도 이 글을 보는 모든 독자에게 매우 죄송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다 글을 쓰는 이유는, 용기가 없는 나를 대신해 다른 청소년들에게 좀 알려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다. 나처럼 청소년인권에 대해 몰랐던 아이들이 새로이 알게 되고, 의식을 깨운다면, 우리 다음 세대, 아니 다음다음 세대라도 더 이상 이런 쳇바퀴 같고, 창의성이라고는 짓이겨버리는 교육을 받지 않게 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추신. 필자가 워낙 주입식 교육의 산물이라 창의력 따위 키우지 않아 글을 창의적으로 재미있게, 통통 튀게 쓰지 못했다. 용서를 빌고 싶다. ㅠㅠ 지루해도 읽어주십사….

Posted by 오승희

공현

 

어느 날 점심을 먹으러 가던 중 횡단보도에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는데, 신호등 앞에 서있는 봉고차를 봤다. 학원차인 듯한 그 노란색 차에는 이런 문구가 쓰여 있었다. ‘예비 5세 과정 신설’, 한순간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가서 멍하니 그 글자들을 보고 있었다. 저건 뭐지? 예비 5세? 결혼 직전의 여자 사람을 예비 신부라고 하고 고등학교 가기 직전의 중학생을 예비 고등학생이라고 하고 진화하기 직전의 피카츄를 예비 라이츄라고 하는 것과(그럴 리가 있냐) 같은 건가? 그럼 4살을 말하는 건가? 근데 왜 4세라고 안 쓰고 ‘예비 5세’라고 쓰는 거지? 나이 먹는 것도 예비해야 한단 말인가? 뭐지, 저건?

작은 혼란 속에 봉고차 옆에 있는 짤막짤막한 광고 문구들을 모아서 추론한 결과 그건 이런 말이었다. 보통 5살이면 유치원엘 간다. 그런데 요샌 유치원에서도 공부를 시킨다. 한글이나 산수는 물론이요, 영어까지 가르친다. 그런데 아무 대비 없이 그냥 보내면 애가 적응도 못하고 뒤떨어진다. 그러니까 우리 학원에 4살 때부터 보내서 ‘예비 5세’ 준비를 시켜라. 오오 이것은 혁신적인 학원 오오. 대충 이런 뜻이었던 것 같다.

대학입시를 고3 때 준비하는데 그 고3 생활을 고2 때부터 준비해야 한다고 하고 고2들을 ‘예비 고3’이라고 부르는 일이 종종 있다. 그런 표현이 점점 적은 나이로 가면서 예비 고등학생, 예비 중학생, 예비 중3 같은 말들도 간혹 듣곤 한다. 바로 며칠 전에는 TV를 보다가 광고에서 초등학교 4학년 때 성적이 중학교 때 성적을 좌우한다며 초등학교 4학년 때 공부시켜야 한다고 하는 학습지 광고를 보았다. 말이 좋아서 예비이지, 실제로 하는 건 대체로 이른바 ‘선행학습’을 한다거나 미리 빡세게 공부를 시키는 일이다. 그래 그, 말이 좋아서 선행학습이지 그냥 먼저 머릿속에다가 우겨넣는 일말이다. 이젠 드디어 ‘예비 5세’까지 등장했다.

본질적으로는 청소년이 아닌 사람들도 다를 바는 없다. 이 사회가 사람들에게 주문하는 게 온통 ‘예비’하고 ‘대비’하고 ‘준비’하는 일인 것이다. 모두가 ‘미래’를 대비하고 준비하는 데 ‘현재’를 갖다 바치라고 한다. 유예하고, 유예하고, 또 유예하라는 말이다. 노인일 때는 죽을 때를, 병들었을 때를, 자식이 결혼할 때를 위해 예비하고, 중년일 때는 노인이 될 때를 예비하고, 청년일 때는 중년일 때를 예비하고, 20대 초반에는 취업을 예비하고, 10대 때는 대학입시를 예비하고, 초등학교 4학년 때는 중학생 때를 예비해야 하며, 4살 때는 5살 때를 예비해야 한다. 온통 예비 인생이다.

김창완밴드의 노랫말대로, ‘열두 살은 열두 살을 살고 열여섯은 열여섯을 산다.’ 열두 살은 예비 열셋이 아니고 열여섯은 예비 열일곱이 아니다. 준비하고 예비하라고? 그럼, 우리는 대체 언제 사는 건가? 그렇게 미루고 준비한 삶, 결국 언제 사나? 다음 생에? 천국 가서? 삶을 예비하는 법은 없다. 삶은 그냥, 지금 여기이다. 네 살은, 네 살을 산다. ‘예비 5세’가 아니라.

Posted by 오승희

Intro

쟝에게는 누나가 한 명 있습니다. 쟝의 누나 역시 가족의 경제적 곤궁함을 타파하기 위해 직업을 알아보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인터넷에 뭐든 물어보면 대답해준다기에 네이★에 서툴게 배운 한국어로, ‘안정적이고 돈을 좀 버는 직업’을 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질문을 해봤습니다. 그러자 달린 대답. ‘고시 준비하셈 ㅋㅋ’

고시를 준비한다는 건 어떤 것일까요? 고시생이란 대체 어떤 일을 하는 걸까요? 고시를 준비하면 안정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걸까요? 쟝네 누나는 고시 준비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서 요즘 각광받는 SNS를 써먹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정치적 입장이나 좋아하는 음악 등이 비슷해서 친해졌던 한국의 트위터러 한 명을 통해 고시를 준비하고 있는 중인 고시생을 소개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고시생과 페이스북으로 채팅을 하며 질문도 하고 귀중한 조언도 받았습니다.

이번 호 인터뷰 대상 : 고시생

2011년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청년층(15 ~ 29세) 비경제활동인구 중 ‘고시, 전문직’을 준비 중인 사람은 총 6만 7천여 명에 이른다. 물론 6만 7천이라는 수가 정확한 건 아니다. 고시뿐 아니라 ‘전문직 준비생’도 포함되어 있고, 30세 이상의 고시생도 충분히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대학생이거나 다른 직업을 가졌으면서 고시를 준비하는 투잡인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법고시, 행정고시, 외무고시, 입법고시, 임용고시, 경찰고시 등등 ‘고시’라고 부를 만한 모든 국가시험들의 응시생 수를 모두 조사하여 총합하면 고시생의 규모를 대충 알 수 있을까? 한 사람이 여러 시험을 보는 경우도 있으니 그것도 안 되겠다. 다만 넉넉잡아 10만 명쯤은 고시생이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겠다. 고시생들의 직장은 주로 노량진과 신림동에 많다고 알려져 있다. 노량진에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고시생 한 분을 만나서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꾸며보았다.


쟝의 누나(이하 ‘쟝누’): 안녕하세요?

고시생네, 안녕하세요.

쟝누이렇게 시간 내주셔서 감사감사에요.

고시생뭐, 아니에요. ㅋㅋ 자기소개를 하자면, 저는 노량진에서 7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고시 준비 2년 차의 고시생입니다.

쟝누음…. 바로 물어볼게요. 고시생이 뭐예요?

고시생말 그대로 고시를 준비하는 거죠. 그리고 어… 고시는 그러니까, 변호사, 검사, 판사 같은 사람이 되기 위해 보는 사법고시, 교사가 되기 위해 보는 임용고시, 외교관이 되기 위한 외무고시, 7급 공무원 시험, 5급 공무원 시험 등등… 그런 식으로 공무원이 되기 위해서나 국가자격증을 따기 위한 시험이에요.

쟝누그런 거군요. 프랑스도 교사 임용 등에서는 국가고시가 있어요. 그거랑 비슷한 거네요? 그럼 고시생에도 종류가 여러 가지가 있겠어요.

고시생네. 종류에 따라 모여 있는 곳도 달라요. 사법고시는 주로 신림동 고시촌이고, 행정고시나 임용고시 등등은 주로 노량진에 있어요. 공무원이 되려고 준비하는 고시생들도 종류가 많아요. 선관위도 있고, 국회 사무처에서 일하는 사람 뽑는 입법고시도 있고요. 법원도 따로 뽑고, 경찰, 소방관도 따로 뽑고. 직분별로 세분화되어 있고 직렬별로도 세분화되어 있어요. 예를 들어 외무부 쪽도 국내에서 하는 거 따로 뽑고 영사직 따로 뽑고 출입국관리는 또 따로 뽑아요. 공무원 하면 몇 개 안 되는 시험으로 뭉뚱그려진 거 같은데 생각보다 되게 다양하더라고요.

재밌는 얘기 해줄까요? 노량진에서도 임고생(임용고시생)들이랑 행시(행정고시) 등을 준비하는 고시생들이 사는 곳, 학원들이 구역이 나뉘어져 있어요. ㅎㅎㅎ 그리고 딱 봐도 임고생들이랑 다른 고시생들이 구별이 되는데요. 임고생들은 스타일이 우와- 잘 입고 다닌다, 노량진의 부르주아 귀족층? 화장이나 옷 스타일만 보면 그래요. 그게 임고생들은 전철 등 타고 좀 멀리 가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 거 같아요. 노량진에 재수학원도 많고 기숙사도 있는데요. 학원끼리 협의를 한 건지 모르겠지만, 마치는 시간대가 달라서 저녁 5시쯤에는 재수생이 바글거리고 6시쯤 지나면 고시생들이 바글거려요. 서로 섞여서 밥을 먹는 경우는 별로 없어요.

쟝누고시 준비를 한다는 건 주로 어떤 일을 하는 거죠, 구체적으로?

고시생공부를 합니다. ㅋㅋ 음, 뭐- 고등학생들 수능 보는 거랑 비슷해요. 국어, 영어, 국사 같은 공통과목이 들어가 있어요. 국사가 조금 난도가 있죠. 공부하는 건 법이 제일 많아요. 행정법이나 헌법 같은 것들 말이죠. 어딜 가든 법은 기본적으로 하는 거고. 저 같은 경우는 경제학을 합니다. 7급 일반 공통 과목이 경제학이거든요. 그래서 느낀 건데요, 수학은 죽을 때까지 버릴 수가 없어요. ㅠㅠ

쟝누음…. 그 공부는 재택인가요? 출근인가요?

고시생출근이라, 뭐- 말하자면 출근이겠죠. ㅋㅋ 제 직장(?)은 아까 저기 있던 독서실이고, 귀찮으면 재택으로 하는 경우도 있어요. 공부하는 시간은 보통 많으면 14시간? 노동시간이라 해야 하나. ㅋㅋㅋㅋㅋ 순수 노동시간만으론 10 ~ 12시간 정도?

학원은 오전에 가요. 9시에서 1시까지 학원 다닌 뒤, 대충 밥 먹고 독서실 가서 복습하고, 모자라면 인터넷 강의 듣고서 문제풀이 하고.

쟝누공부를 많이 하네요. 힘들겠어요.

고시생이렇게 생활하다가 아주 가-끔 돌아버리거나 아파서 나가는 사람도 본 적 있어요. 뭐, 공부하는 보람이 있기는 하죠.

쟝누그래요? 어떤 거예요? 궁금 @_@

고시생합격? ㅋㅋㅋ 공부에 취미가 있는 사람들의 경우는 점수가 올라가는 데 느끼는 만족? 그런 거? 약간의 자아실현? 그리고 워낙 직업군이 다양하다보니까 자아실현도 어느 정도 가능해요. 식견을 넓히는 데도 좋아요. 판례를 보면서 알게 되는 것도 많고요. 금융계에서 일하고 싶다거나 해외를 돌아다니고 싶다거나 그럴 때 맞는 자리들이 있거든요. 이렇게 나름대로 자아실현의 방법이 있죠. 물론 합격만큼 소중한 건 없습니다.

쟝누그렇군요. 그럼 합격은 많이들 하세요?

고시생합격이라…. 여기 있으면 도시전설처럼 들리는 얘기죠.

쟝누도시전설?

고시생뭐, 그 동네마다 하나씩 있는 도시괴담 같은 거… 코끼리 바위가 있는데 코끼리가 바위가 되어서… 그런 얘기 있잖아요? 그런 것처럼 학원에서 누가 합격을 했다더라, 그런 식의 소문은 있어요. 실제로 만나본 사람은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는데. 거의 그런 거죠. 전설의 고향 같다고 해야 하나? 아, 맞다. 합격한 사람 봤다. 우리 사촌 누나 두 명이 합격을 했어요. 고시생 탈출했죠.

쟝누어…. 그러니까 다시 말해 별로 많지 않다는 말이죠??

고시생그렇죠, 뭐. 에휴… 여기 있는 사람들이 취직을 하다 하다 안 돼서 여기까지 온 경우가 되게 많아요. 그런데 보통 고시 경쟁률은 100 : 1이 넘어가요.

쟝누그렇구나. 그럼 그렇게 공부만 하면 돈은 어떻게 버세요? 합격할 때까지는 계속 그렇게 공부할 거 아니에요?

고시생돈 버는 건 0원이죠. 빵원. 부모님 용돈 받아서 월 40만원? 쓰는 건 계속 있죠. 학원비가 거의 대학 등록금이랑 비슷한 것 같아요. 4개월에 200 정도? 저는 부모님의 덕으로 생계를 유지 중입니다.

쟝누공부하면서 다른 일 같은 건 안 하시나보죠?

고시생거의 못 해요. 시험 끝나고 조금 알바하나? 그럴 땐 주로 대형마트 같은 데로 가죠. 거기서 일해서 월 60 ~ 70만원 받아요. 그걸로 먹고 살고 하는 경우도 있고요. 보통 노량진에 있으면 둘 중 하나에요. 미리 벌어둔 돈이나 옛날에 적금 모아둔 거 있으면 그거 깨서 갉아먹고, 그러다가 돈이 다 떨어지면 인생의 나락으로 추락… ㅠㅠ

쟝누안정적인 직업을 얻으려면 고시생이 되라고 하던데, 얘기를 듣다 보면 별로 그렇지가 않은 것 같은데요? 음… 그런데 왜 고시생을 하세요?

고시생뭐, 결국은… 안정적 직장을 향한 인간의 욕망 때문에? 왜냐면 이거 말고는 그만큼 안정적 직업을 갖기 어려운 거예요. 비정규직은 되기가 싫고 먹고는 살아야 하고, 내가 노동하는 만큼 적당한 임금을 받고 싶고, 그러니까 고생 한 번 더 해서 차라리 공무원이 되자! 이렇게 생각하고 많이들 하죠. 여기 오는 게 어떻게 보면 남들 눈에는 패기가 없어서 할 게 없어서 여기까지 왔다 얘기할 수도 있는데, 사실 이 많은 사람들이 여기 오기까지 한국에서 직업이 불안정적으로 흘러가는 흐름이랑 비슷하단 말이에요.

저희 아버지 때 같을 땐 집에서 너무 놀아서 취직이 안 되면 두 달 만에 공부해서 합격하고 그런 경우도 굉장히 많았대요. 공부 안 하고 속 썩이는 애들이 공무원이나 했다고 하고. 그 때는 경쟁률이 2 : 1, 3 : 1 이랬다고 하고 10년 전까지도 30 : 1 이 정도였는데 어느 순간 100 : 1 식으로 팍팍 올라간 거죠. 그만큼 안정적 직업이 없으니까 고시로 몰리는 거 같아요. ㅠㅠ

쟝누경쟁률이 올라간다는 게 고시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그래요? 아니면 정부에서 채용인원을 줄였나요?

고시생말씀드렸다시피, 안정적 직업이 줄면서 준비하는 사람도 늘었고요. 신자유주의를 추진하며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것도 크죠. 옛날에는 공무원이 하던 소관을 민영화한 경우가 많아요.

쟝누그렇군요.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도 그런 식으로 하려고 하다가 많은 반대에 부딪쳤었는데요.* 그래도 고시에 합격하기만 하면 안정적인 직업이 보장이 되긴 하는 건가 봐요? 어때요, 지금 준비하시는 7급 공무원은?

고시생제가 준비하는 7급 공무원은 중앙부처에서 실무 담당자라고 해야 할까? 가장 밑은 아니고 중간직이에요. 아, 그리고 여담이지만 생각보다 공무원 일 힘들어요. 예전에 구제역이 전국으로 퍼져 비상이 났을 때 3교대로 일했다는데, 과로사로 돌아가신 공무원들도 있어요. 이건 뭐 순직도 아니고 산업재해죠. 공무원 하면 ‘칼퇴근’ 이런 거 생각하던데, 칼퇴근할 수 있는 자리는 드물더라고요. 칼퇴근 같은 거 노리고 오는 사람한테는 합격하고 남는 건 실망밖에 없어요.

다시 이야기를 해볼까요. 일단 받는 돈으로 치면 기업 정규직에 비하면 처음에 받는 임금(초봉)은 적죠. 월 120? 많으면 200만원 정도? 그래도 안 짤리니까. 그래서 20년 후엔 500만원을 바라볼 수 있으니까요. 글구 해외로 나가는 일도 많고 연수 혜택도 되게 많아요. 꽤 괜찮은 직업이죠. 한국에서 이정도 해주는 직업이 없을걸요? 아, 그런데 저는 좀 위험합니다. 합격하자마자 공무원노조에 가입할 거거든요. 노조 하면 합격한다고 해서 안 짤린다는 보장이 없더라구요. ㅋㅋㅋㅋ

쟝누헐…. ㅠㅠ 노조 활동을 하면 짤릴 수도 있다니, 이상하네요.

고시생한국이 그렇죠, 뭐.

쟝누으음, 그런가요. 그렇다면 주로 어떤 사람들이 고시생이 돼요?

고시생음, 운동권? ㅎㅎ

쟝누운동권? 그게 뭐죠?

고시생대학 다니면서 운동 하던 사람들이요. 스포츠 말고 무브먼트(movement). 운동권 출신이 은근히 많아요. 왜냐면 운동하느라 학점 관리 잘 안 해서 학점 망하고 취직할 데가 없어서 고시 준비하는 거죠. 가사노동자도 있고요. 계약 만료되어서 짤린 비정규직 노동자. 직업을 가지고 있다가 고시 보려고 준비하는 사람도 있어요. 아, 부모님이 등 떠밀어서 보낸 경우도 있어요. 부모님이 잡고 끌고 들어온 18살 청소년도 본 적 있어요. 자기가 하고 싶어서 하면 뭐 모르겠는데, 부모님이 그렇게 끌고 들어와서 시키는 건 참 보기 그렇죠. 또 다른 수능이죠.

청소년 하니까 생각나는데… 내년부터 과목이 바뀐답니다. 사회, 과학, 수학이 선택과목으로 등장한다네요. 정부에서 생각하는 건 정말로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9급 공무원시험에 응시해서 붙을 수 있게 해주겠다는 시스템인 거 같아요. 우리는 망했죠. 솔직히 행정학보다는 사회가 쉬울 거 아니에요?

쟝누선택과목이 바뀐다는 게 무슨 말인진 잘은 모르겠지만, 대충 더 어려워질 거 같다는 이야기죠? 앞으로는 고시생으로서 어떨 거 같으세요?

고시생여기를 박차고 나가는 사람의 숫자는 점점 줄어들 건데 여기로 들어오는 사람의 숫자는 점점 늘어날 거예요. 나이도 점점 어려질 거고. 이제 자발이 아니라 비자발적으로 들어오는 사람들도 꽤 늘어날 거예요. 암울하죠. 부모님 손에 이끌려 들어오는 것도 몇 번 봤어요. 우리가 생각하는 직업이라는 게 고작 이 수준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약간 서글펐어요.

쟝누부모님 손에 끌려 온다구요? 우와, 그것 참. 상상이 잘 안 가네요. 제가 고시생을 할까 생각했는데 어떨 거 같아요? 혹시 충고라거나, 해주실 말씀 있으세요?

고시생일단 한국 사회에서는 고시 준비한다고 하면 왠지 그런 거 있어요. 꿈도 없고 패기도 없다고 하는 시선? 최근에 국제 구호활동가 한비야 씨가 꿈이 7급 공무원이라고 한 청년한테 꿈이 그게 뭐냐고 때렸다는 기사가 났더라구요.* 그래서 화가 났었어요. 어떻게 보면 그런 직업이 꿈이 되는 시대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그걸 무가치하다고 느낄 수 있는 어른들의 꼰대정신이랄까? 어렸을 때 뭔가 아이들의 꿈 얘기하면 전 소방관이 되고 싶습니다 간호사가 되고 싶습니다 의사가 되고 싶습니다 대통령이 되고 싶습니다 했을 때 꿈이 없다고 비난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근데 왜 공무원은 안 될까?

쟝누공무원이 꿈이면 안 된다고 한 거면 참 이상하긴 하네요. 흠… 대통령도 공무원이잖아요?? ^^

고시생그러게요. 대통령도 계약직에 불안정 노동자인데. ㅋㅋ 탄핵도 당할 수 있는데 말이죠. 오래 전부터 우리는 직업이 꿈인 시대를 살고 있으면서 왜 20대 청춘들에겐 열정이란 이름으로 다른 무언가를 더 바라고 있는지 모르겠더라구요. 솔직히 우리에게 열정이 어디 있어요. 무급인턴 같은 거 만들면서, 청년은 열정을 가지고 패기를 가지고 해야 한다 하는데. 사실 돈 안 받고 일하는 거 그걸 원해서 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각자의 마음 속 문제이긴 한데 솔직히 어쩔 수 없이 하는 게 더 많잖아요. 저도 말하자면 ‘학습 노동’하는 노동자 입장에서도 어쩔 수 없이 여기 온 거죠. 물론 자발성은 있습니다만. 그래도 패기가 없다 열정이 없다 이야기하면… 열심히 하는 사람 입장에선 싫죠.

정부에서도 저희를 탄압해요. 작년엔 공무원 시험을 없애겠단 얘기도 나왔어요. 수많은 사람들이 여기 매몰되어서 다른 일을 하지 않는다는 식의 이유를 대더라고요. 어이가 없어서. 그러니까 그런 식으로 고시 준비에 사람들이 가지는 편견들, 그런 걸 미리 아셔야 할 거예요.

고시생생활하면서 좋은 건 또… 음 고시식당 밥이 참 싸죠. 반찬도 적지 않은데. 그런데 식재료를 안 좋은 걸 써서 고시식당 밥을 노인 분들이 한 달 먹으면 탈난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하도 싸니까 나오는 얘기죠. 글구 정말 좋은 팁인데… 여의도에서 불꽃놀이 축제하잖아요? 학원에서 창문 열면 다 보여요. 일단 야경이 좋아요. 한강 조망권에 남산 조망권에 안 보이는 게 없어요. 학원 옥상 올라가면 노량진 펜트하우스라고들 해요. 되게 좋아요. 여름에는 유랑선 둥둥 떠다니고.

쟝누예. 조언 감사해요. ㅎㅎ 저도 좀 더 고민해볼게요.

고시생오시고 싶으면 가능한 한 빨리 오세요. 노량진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ㅋㅋ 저도 얼른 붙어서요. 다음에 또 뵐 때는 공무원으로 뵙겠습니다. 그럼 ㅂㅂ

 

쟝의 누나는 페이스북 창을 닫으면서 고민해봤습니다. 고시를 준비해서 공무원이 된다면? 뭐, 그리 나쁘진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러려면 최소한 이삼년씩 시간을 들여야 합니다. 결국 이삼년씩 시간을 들일 여유도 없는 사람은 공무원도 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쟝네 집 사정도 그런 걸 준비할 만한 상황은 아니었거든요. 얘기를 들어보니 솔직히 붙을 자신도 없었고요. 그런 가능성도 별로 없는 시험에 계속 도전해야 한다는 것도 너무 힘들 것 같았습니다. 결국 쟝의 누나는 고시생을 포기하고, 다른 직업을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쟝의 집네 통장은 언제쯤 촉촉해질 수 있을까요?

Posted by 오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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