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기긱'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3.06.10 [커져버린 스토리: 청소년은 미성숙해?] 청소년의 성 by 오승희



청소년은 인간이다. 인간은 성적 욕구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청소년은 성욕을 가지고 있다. 쉬운 삼단 논법이다. 굳이 이런 것까지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청소년이 성적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당연한 이야기다. 그런데 왜 2012년 대한민국에서는 청소년과 성은 마치 따로 있어야 하는, 개별 분야인 것처럼 구분되고 가려질까?


성과 연애와 같은 이야기를 청소년들이 부모나 교사에게 상담이라도 할라치면 나오는 대답은 늘 뻔하다. “그런 건 나중에 대학 가서 알아도 돼. 나중에 다 때가 되면 알게 되어 있어. 가서 공부나 열심히 해!” 그래서 아무도 질문하지 않고,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청소년의 성, 나아가 성 전반을 터부시하는 태도가 당연한 상식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니, 뭔가 이상하다. 과연 이 지식들과 경험들을 대학 가서, 나중에 성인이 되어서나 배우고 경험해야 하는 걸까? 


이 만연한 꼰대스러운 태도가 청소년들에게, 더 나아가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혹시,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독자 여러분, 콘돔 제대로 끼우는 법 알고 계시는지?

▲ 바로 이렇게 끼우는 것이다. 반드시 앞부분을 비틀어 공기를 완전히 빼야 한다! 잘못하면 터질 수도 있다.

(그림 제공: 대한민국 성포탈 aoosung.com)


여러분, 이런 거, 집이나 학교에서나, 누가 가르쳐 준 적 있으신지? 아마 그런 경험을 하신 분, 별로 없을 것이다. 나도 물론 그랬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장장 12년에 이르는 정규 교육 과정에서 콘돔 끼우는 법은 물론 제대로 된 피임법도 배우기가 힘들다니! 통탄스런 일이다.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건, 정말 별 거 없었다.


아마 많은 학생들이 위와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이다. 성교육 특강이랍시고 와서, 낙태 사례가 담긴 동영상, 아이가 찢기는 동영상만 잔뜩 반복해서 틀어주면서 오히려 성관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만 잔뜩 생기는 경험 같은 것 말이다. 소위 ‘성교육’이랍시고 몇 년간 나에게 행해졌던 학교에서의 여러 교육들은 제대로 된 성 지식을 알려 주기는 커녕, 성을 부끄러운 것, 가려야 하는 것, 그리고 두려운 것으로 여기게 했다. ‘연애’라거나 ‘성관계’, 이런 거 하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그런 분위기는 비단 학교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성에 대한 이야기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가족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이런 콘돔 끼우는 법과 같은, 현실적이며 정말 기초적인 정보 하나 제대로 몰라 허둥대고 우왕좌왕해야하는 이런 코미디 같은 상황은, 성을 무조건 가리려고만 하는 경직된 분위기에서 비롯되는 거다. 성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며, 가려져서도 안 되는 것인데 말이다.


하지만 분명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당연히 청소년들을 그러한 ‘유해한’ 정보로부터 ‘보호’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말이다. 하지만 청소년을 소위 ‘음란한’ 것으로부터 ‘보호’를 해야 한다는 명분 하에, 오히려 실제로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부분은 가려지고 있다. 물론 ‘보호’ 자체를 부정해야 하는 것도 아니며, 청소년의 ‘미성숙’ 역시, 어쩌면 부분적으로는 맞는 이야기일지 모른다. 하지만 누가 ‘미성숙’과 ‘성숙’을 재단하는가? 단순히 나이에 따라서? 나이가 많다고 성숙한 것이 아니듯이,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그 모든 정보로부터 통제되고 격리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맞는 시기에 제대로 된 교육과 지원이 필요한데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이러한 억지명분에 매몰되어, 청소년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은 전혀 주지 못하고 있다.


사실 ‘보호’와 ‘미성숙’이라는 말 자체가 상당히 기만적이다. 이는 마치 청소년들을 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청소년의 삶에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보호’라는 윤리적인 것처럼 보이는 단어로 억압과 통제를 가려버리고 있다. 그리고 성인들에게는 청소년들을 보호하고 있는 듯한, 무언가 도움을 주고 있는 듯한 착각을 주는데, 이는 그냥 쉬운 길을 택한 걸 정당화시키는 걸로 느껴진다. 올바른 성 지식에서부터 성적 자기결정권, 성에 대한 책임감을 내면화시키기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상당히 많은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보다는 우선 차단시키고 격리시키고 보는 것이 좀 더 비용과 힘이 적게 들고, 쉽고, 통제하고 싶은 욕망까지 만족시키는 방법이니까 말이다.


‘이팔청춘’이라는 말이 있듯, 전통적으로는 15~16세 정도에 혼인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조선 시대 제민 통제의 근거가 되었던 주자의 ‘가례’에 따르면, 남성은 16~30세, 여성은 14~20세가 혼인 적령기로 되어 있었다. 다시 말해서, ‘어른’들이 참 좋아하는 그 봉건적이고 위계적이며 나이주의적인 ‘가부장적 유교적 질서’ 속에서도, 이미 14~16세 정도면 ‘가정’을 이룰 수 있는 하나의 ‘주체’로 인정해왔던 것이다. 물론 혼인이 곧 성적 결합을 의미하지도 않고, 당시의 관념으로는 성이 단지 ‘자손 생산을 위한 행위’ 정도 수준으로 통제되어왔으니 적절한 예시가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19금’을 신성 불가침의 신조로 여기는 ‘꼰대’들에게는 이 정도도 충분히 충격적일지 모르겠다.


당연히 이 또한 제대로 된 해답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통제’의 상한선이 아니라, 기준이 되는 나이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이라도 ‘사람’으로서 똑같은 대우를 받으며, 차별 받거나 사회적으로 배제당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성에 대한 제대로 된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청소년을 단지 아직 둥지를 떠나지 못한 ‘자식’ 정도로만 보고,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는 ‘마리오네뜨’인 양 여기는 관념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다. 학생인권조례에 성적 지향성에 따른 차별 금지 조항, 청소년의 성적 권리, 임신/육아에 관한 차별 금지 조항이 반드시 들어가야 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정말 믿기 힘들겠지만, 청소년도 사람이다.


과연 무조건 통제하는 것만이 능사일까? 그냥 청소년들 연애하는 것 꼴 보기 싫은 것, 쉬운 길로만 가고 싶은 그런 귀찮음, 청소년들을 자신들의 통제 하에 두고 싶은 그 욕망을 ‘미성숙’이라는, 그리고 ‘보호’라는 담론으로 정당화하려는 것 아닐까? 성을 ‘부끄러운 것’으로 만들지 말았으면 좋겠다. 이제부터라도 청소년의 성을 음지로 몰아넣지 말고, 무조건 통제하는 대신 제대로 된 길을 갈 수 있는 이정표를 제시해 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말로만 “성은 아름다운 거예요~” 하지 말고 제대로 아름답게 느낄 수 있게 해 달라.


<ㄱ기긱>


Posted by 오승희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