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부터 초여름까지 ‘어떤 시민들’은, 두두두 하며 발로 뛰겠다는 어느 통신사보다도 더 바쁘게 뛰어다녔다. 어느 포장마차 주인이 그들에게 “추운데 안에 들어와서 하세요” 했다는 이야기에서부터 장마전선과 태풍 ‘메아리’의 2단 콤보가 몰아치는 와중에 트위터에 “내일은 비 안 온답니다 여러분!” 외치던 이야기까지, 옷차림이 두꺼운 코트에서 얇은 면 반팔 티로 바뀌도록, 그들은 뛰고 또 뛰고, 외치고 또 외쳤다.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뜻을 함께 하겠다 한 서울시민이 자그마치 10만여 명이었다. 어떤 이는 우편으로 서명용지 한 뭉치와 편지 한 장을 보내왔다. 이 서명 받느라고 술값 밥값 많이 썼으니 꼭 제정시켜달라는, 회식자리에서 취한 김에 카드 한 장을 용기 있게 꺼내든 어느 대리의 ‘술 깬 직후’와도 같은,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감동의 도가니탕 한 그릇에 맞먹는 글귀였다. 그 ‘어떤 시민들’이 그토록 뛰어다니고 목청 높이며 하려 했던 일은, 서울특별시 소재 학교에 다니는 모든 학생들에게 인권을 되찾아주기 위한 것이었다.



‘무상급식’과 ‘체벌 금지’에 이어, ‘학생인권조례’가 교육 문제의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경기도에서는 이미 올해부터 시행되고 있으며, 서울에서는 서울시민 10만여 명이 서명에 참여해 주민 발의가 성사되었다. 서울에 이어 경상남도에서도 주민발의로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으며, 전라남북도, 강원도, 광주 등 진보적인 성향으로 알려진 교육감이 있는 지역에서도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위한 준비 작업이 한창이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반값등록금’, ‘서울대 법인화 반대’,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명동 재개발 반대’ 등 굵직굵직한 이슈들 속에서도 학생인권조례는 청소년들 사이에서 ‘관심사류 갑’의 지위를 잃지 않고 있다.



학생인권조례란 무엇인가


학생인권조례는 말 그대로 ‘학생의 인권에 관한 조례’다. 정말 그거다. ‘조례’는 ‘법’과는 달리 지방자치단체마다 다르게 제정하고 시행할 수 있기 때문에, 학생인권조례는 딱 한 가지로 정의할 수 없는 구석이 있다. 다만 현재까지 제정된, 또는 앞으로 제정될 학생인권조례들을 보면 ‘신체의 자유’, ‘사상·양심의 자유’ 등 학생으로서 꼭 누려야 할 기본적인 인권이 명시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같은 ‘신체의 자유’에 관한 내용이라 하더라도 세세한 부분에서, 혹은 시행세칙 차원에서 자치단체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학생인권조례는 ‘갑자기’ 나온 이슈는 결코 아니다. 학생들의 인권을 보장하라는 목소리는 오래 전부터 꾸준히 있어왔고, 그 노력은 ‘두발 자유화 운동’이나 ‘0교시 폐지 운동’ 등의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2006년에는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이 ‘학생인권법’이라 불리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으며, 2009년의 교육감 직접선거 이후 학생인권을 광역자치단체의 조례로서 보장하자는 목소리가 커졌다. 그리고 2011년 3월에 경기도에서 전국 최초의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되기에 이르렀다.

  ▲ 2010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 경기 인처의 교육감 후보들이 학생인권조례 정책 협약식에서 차별과 억압과 경쟁을 넘어 학생인권을 입학시키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전국 최초의 학생인권조례,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경기도 학생인권조례는 전국에서 가장 먼저 시행된 학생인권조례라는 점에서 다른 지역의 학생인권조례안에 상당한 영향을 주고 있다. 기본적으로 ‘학생인권’ 하면 꼭 들어가야 하는 ‘신체의 자유’, ‘사상·양심의 자유’, ‘교육 받을 권리’와 같은 내용들은 빠짐없이 들어가 있으며, ‘무상급식’을 인권의 영역으로 넣어 학생인권조례의 한 부분으로 만든 것이 눈에 띈다.(제23조 4항, “교육감은 직영급식과 의무교육과정에서의 무상급식을 실시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역시 먹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금강산도 식후경, 국영수도 식후독(讀)이니 ‘먹는 것’이 인권의 영역에 들어가 있는 것이 이상할 것은 없다.

경기도 학생인권조례는 모든 종류의 폭력을 금지하고 있다. 제6조 1항에 “학생은 따돌림, 집단 괴롭힘, 성폭력 등 모든 물리적 및 언어적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를 가진다.”, 2항에 “학교에서 체벌은 금지된다.”라는 문구가 있다. 즉 여기서 말하는 폭력이라는 것에는 물론 ‘빵셔틀’로 대표되는 학교 폭력 문제도 포함되지만, ‘체벌’ 역시 포함된다. ‘맞아야 말을 듣는다’라며 체벌을 정당화하던 논리에 정면으로 맞서는 부분이다. ‘교권 추락’ 논란이 있으며 또 모든 학교에서 체벌 금지 조항이 연착륙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 시행 초기이고, 또한 당연히 보호받았어야 할 학생들의 인권이 이제야 조례의 강제에 의해 지켜지기 시작했다는 측면에서 바라보면, 이러한 문제들은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되어서’가 아니라 ‘학생인권이 무시되었던 시간이 너무나 길었기 때문’이라고 봐야 옳을 것이다.

그리고 여학생들의 생리결석을 보장되어야 할 건강권으로 보고 인권조례 차원으로 보장하고 있다.(제24조 2항, “여학생은 생리로 인한 고통 때문에 결석하거나 수업에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 그로 인하여 불이익을 받지 않을 권리를 가지며, 학교는 생리 중에 있는 여학생에게 불이익이 없도록 적절한 배려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 이것으로 생리로 인해 결석이나 조퇴를 하려 해도 교사의 무지, 혹은 인권의식 결여로 인해 해당 학생에게 수치심을 주었던 일들이 사라질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학생들이 스스로 학칙을 제정하고, 정책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가 명시되어 있다. 제18조와 제19조에서 각각 “학생은 학칙 등 학교 규정의 제․개정에 참여할 권리를 가진다.”, “학생은 학교 운영 및 교육지원청의 교육정책결정과정에 참여할 권리를 가진다.”라는 문구로 학생들의 일종의 참정권을 보장하고 있다. 또한 교육감이나 학생인권옹호관에게 직접 인권조례의 개정, 학생 인권 실태 등에 대한 의견을 낼 수 있는 ‘학생참여위원회’를 설치하도록 되어 있다. 모집에 응한 학생들 중 추첨으로 100명 이내의 학생들을 위원으로 선발할 수 있고, 그 중 20명 정도는 반드시 소수자 중에서 선발하도록 되어 있어, 선거권이 없는 학생들이 교육 정책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두고 있다.

다만 두발의 자유를 명시한 부분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제11조 1항에는 “학생은 복장, 두발 등 용모에 있어서 자신의 개성을 실현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되어 있고, 2항에는 “학교는 두발의 길이를 규제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되어 있어 일견 두발자유를 보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구체적으로는 ‘길이’에 대한 규제만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종류의 두발 규제는 막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머리는 취향입니다. 존중해주시죠.

또한 조례문의 ‘교육 목적상 필요한 경우’라는 표현의 애매함도 지적되고 있다. 사생활의 자유를 명시한 제12조에서 “교직원이 교육목적으로 필요하여 불가피하게 학생의 소지품 검사를 하는 경우”, “교직원은 일기장이나 개인수첩 등 학생의 개인적인 기록물을 열람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교육목적상 필요한 경우에도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라는 표현이 있는데, ‘교육 목적’이라는 표현이 얼마든지 자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음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논쟁이 되는 휴대전화에 관련해서는 소지나 사용을 완전 금지하지는 못하되, 수업 시간 중 사용은 규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다만 이 역시 학교에서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사실상 사용을 완전 금지하는 경우도 있다.

한편, 학생 및 교사 뿐 아니라 학생의 보호자에게도 인권 교육을 실시하도록 하는 조항도 있다. 학교는 보호자에 대하여 학생의 인권에 관한 교육 또는 간담회를 연 2회 이상 추진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학생에 대한 인권 침해는 학교에서 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많이 일어나고 있으며, 특히 학부모가 학교에 요구해 더욱 인권을 침해하도록 하는 경우도 많은 만큼, 이러한 규정을 포함시키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해당 조항이 흐지부지 사문화되어버리지 않도록 매의 눈으로 감시할 필요가 있다.




시민과 전문가들이 모여 보완한 서울 주민발의안



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올해 3월부터 전면 시행됨에 따라, 경기도 소재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최소한의 인권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전국 최초로 시행되는 것인 만큼 조항 내부에 허점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안은 경기도 조례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혹은 타협 끝에 양보된 조항들을 주워 담아 수정·보완을 거쳤다. 당초 시민 8만 5천여 명의 서명을 받아 주민발의에 성공했으나, 서명지 확인 과정에서 중복·무효 서명지가 많이 나와 서명 보정 기간을 갖게 됐다.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 서울본부는 서명 보정 기간에 당초 목표로 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3만 명의 서명을 받는데 성공, 무사히 발의안을 제출하여 2011년 7월 현재 시의회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서울 주민발의안은 경기도 조례와 같은 뿌리를 갖고 있는 만큼, 전체적으로 보아서는 크게 다르지는 않다. 예를 들면, 제23조에 “교육감은 직영급식과 의무교육과정에서의 무상급식을 실시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라는 문구를 넣어둠으로써 경기도 조례와 마찬가지로 무상급식을 인권의 영역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먹는 것’의 중요성을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을진대, 서울특별시와 그 수장은 뭘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그 밖에 생리결석의 보장(제24조 2항), 학생참여위원회 설치(제37조) 등 많은 부분에서 경기도 조례와 유사한 면을 갖고 있다.

거기에, 경기도 조례의 허점을 보완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던 만큼 서울 주민발의안은 경기도 조례보다 구체적이다. 특히 ‘양심종교의 자유(제15조)’, ‘사생활의 자유(제13조)’ 등에 대해서는 인권을 침해하는 경우를, ‘자치활동의 권리(제17조)’에서는 학생 자치 조직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 조목조목 짚어주고 있어 실제 효력이 좀 더 강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조례 첫 부분의 ‘적용 대상’이 경기도 조례는 “경기도 내 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으로 되어 있는 데 비해, 서울 주민발의안은 서울시내 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은 물론, “입학, 퇴학 여부를 다투는 이” 또한 포함하도록 되어 있다. 졸업식과 입학식 사이의, 내가 중학교 3학년인지 고등학교 1학년인지 아니면 백수인지 정체성의 혼란에 빠질 수도 있는 그 애매한 기간에도 조례의 적용을 받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경기도 조례와 마찬가지로, 역시 탈학교 청소년은 해당 조례의 적용을 받을 수 없어, 이 부분을 보완할 대책을 과제로 남겨두고 있다.

서울 주민발의안은 경기도 조례와는 달리 ‘교육 목적상 필요한 경우’를 배제하고 있다. 즉 어떤 경우에라도 학생의 인권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함으로써 실질적으로 학생에게 도움이 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더해 학생에게는 “인권을 학습하고, 자신의 인권을 스스로 보호하며, 교사 등 타인의 인권을 존중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는 의무조항(제4조 3항)을 두어, 자칫 일부에게 ‘인권=방임’으로 인식될 수도 있는 경우를 차단하였다. 자신의 인권이 소중한 만큼 타인의 인권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시키고 있는 것이다. 또한 경기도 조례가 두발에 관해서는 길이를 제한하는 것만을 금지하고 있는 데 반해, 서울 주민발의안은 두발에 대한 어떤 제한도 금지하고 있다. 제12조 1항에서 “학생은 두발, 복장 등 용모에 있어서 자신의 개성을 실현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명시한 것은 경기도 조례와 같지만, 제2항에서 “학교의 장 및 교직원은 제1항의 권리를 제한할 수 없다.”라고 한 것은 경기도와는 달리 어떤 경우에도 학생의 개성표현을 막을 수 없다고 명시한 것이다. 그 밖에, 경기도 조례가 놓치고 있는 ‘집회의 자유’를 서울 주민발의안은 명확하게 짚고 간다.(제16조 3항, “학생은 학교 안팎에서 집회를 열거나 참여할 권리를 가진다.”) 경기도 조례에는 집회의 자유를 명확히 하는 부분이 없다.



전북, 강원은 ‘학교인권조례’로


타 시도에서도 학생인권조례 제정 작업이 착착 진행되고 있다. 경상남도에서는 서울에서의 주민발의와 마찬가지로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위한 서명운동이 한창이며, 이러한 상황은 충청북도에서도 유사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특히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는 교육감들이 있는 곳에서 더욱 활발한데, 강원도나 전라북도는 학생인권조례의 전 단계로 인식되고 있는 ‘체벌금지조항’을 서울, 경기도와 비슷한 시기에 내놓아 주목 받은 바 있다.

경기도와 서울시의 학생인권조례에 비해 어느 정도 후발주자라 할 수 있는 만큼, 이들 시도 교육청은 각자 공청회를 열고 각 지역 특성에 맞는, 또 앞선 학생인권조례에 더해 보완할만한 부분을 포함시키고자 하고 있다. 강원도는 ‘학교인권조례’라는 이름으로 학교 내 구성원들의 인권을 포괄적으로 다루고자 하고 있으며, 전라북도는 ‘학생인권조례’와 ‘교사인권조례’를 병립시키려 하고 있다. 여기서 ‘교사인권조례’는 교원의 권한을 분명하게 명시하고 상부의 부당한 간섭을 배제하려는 목적이다. 그러나 교사의 권한에 학생의 인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예를 들면 꿍디꿍디……가 아니라 체벌에 관한 권한 등)가 포함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다소 우려가 되는 부분도 있다.



학생인권조례, 앞으로의 과제


학생인권조례가 경기도에서는 이미 시행되고 있고 서울에서는 시의회 통과를 앞두고 있으며 전국의 많은 시도에서 제정 작업 중에 있거나 그럴 예정이다. 아직은 시행 초기라 시행착오도 있을 수 있다. 또 아주 극적인 변화가 하루아침에 일어나기를 기대하는 것도 조금 무리다. 그럼에도 광역자치단체 조례 차원의 든든한 방패막이가 있음에, 학생인권의 현실이 지금보다는 훨씬 더 나아질 거라는 믿음이 생긴다.


그러나 아직도 어떤 시도에서는 학생인권조례 제정 움직임이 기성세대의 힘에 눌려 제대로 발현되지 못하고 있으며, 보수 언론들은 학교에서 이따금씩 나타나는 일부 사고를 비약하여 “학생인권을 보장하면 학교가 무너진다”라는 식으로 시원하게 맹물을 타고 있다. 여기에, 경기도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교육청의 입김이 너무 커진다는 비판도 있다. 해당 문제의 주체인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나서 조례 제정에 나서는 것이 바람직한데, 교육청이 너무 앞서나가면서 독선적인 행정을 펴고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학생인권조례 자체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학교에 다니지 않는 청소년의 인권을 보장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 조례는 어디까지나 초중등교육법상 학교 교육을 받고 있는 이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러나 적지 않은 청소년들이 학교에서 벗어나 있고, 이들은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도 사실이다. 탈학교 청소년들의 인권도 보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곧 우리들에게 남겨진 과제라 하겠다. 그 과제, 되도록 빨리 해서 제출하면 좋겠다.



▲ 서울 학생인권조례 서명 선전전에 사용되었던 피켓들

Posted by 오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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