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인권 종결자
『인권, 교문을 넘다 - 학생인권 쟁점탐구』


공현



"두발자유는 머리카락의 자유인가?"

  두발규제에 맞서서 두발자유를 외치는 학생들이 아마 한 번씩은 들어봤을 법한 말. "머리카락 같은 사소한 거에 신경 쓸 시간에 공부나 해!" 그런 개념 없는 소리에 맞서기 위해 두발자유 시위 때 이런 표어도 나왔더랬다. "잘리는 건 단순히 머리카락이 아니라 인권입니다." 하지만 좀 더 발칙하게, 이렇게 질문으로 답해보면 어떨까? "그게 그렇게 사소한 거면 왜 그렇게 열심히 규제하고 단속하세요?"

  새로 나온 학생인권 책, 『인권, 교문을 넘다 - 학생인권 쟁점탐구』(한겨레에듀. 인권교육센터 들 기획. 공현, 박민진, 배경내, 오혜원, 정주연, 조영선 함께 씀.)는 바로 그런 발칙한 질문과 그 질문에 답을 찾는 과정의 결실이다. 왜 학교에서는 그렇게 학생인권을 규제하고 침해하는 데 열을 올릴까? 학생들이 이런 인권을 보장받게 되면 대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이 권리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이런 질문들을 던져나가면서 학생인권의 여러 쟁점을 탐구하는 것이 이 책의 중심 내용을 이루고 있다.

  책의 본론 격인 2부, 그 중에서도 첫 장의 소제목, "두발자유는 머리카락의 자유인가?"는 그런 책의 성격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 두발규제는 단순히 머리카락을 규제하겠다는 것이 아니요, 두발자유는 단순히 머리카락의 자유가 아니다. 독재자 박정희 대통령은 왜 장발단속을 했는지 보수적 억압적 정부가 들어선 이슬람권에서는 왜 사람들에 대한 두발복장규제가 강화되는지, 1987년 노동자 투쟁 때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의 첫 번째 요구사항은 왜 임금 인상이 아닌 두발자유였는지, 풍부한 사회적 비유와 대조를 통해 두발자유 쟁점의 의미를 탐구한다. 이 책은 두발자유의 당위성을 주장하기보다는 두발규제와 두발자유의 의미를 비교하고 탐구하는 형식을 취한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인권, 교문을 넘다 - 학생인권쟁점탐구』 2부는 두발규제, 체벌, 강제야자, 교복․복장, 휴대전화, 양심의 자유, 집회의 자유, 연애, 총 8가지 학생인권의 뜨끈뜨끈한 주제들을 꺼내서 요리한다. 그 목차는 다음과 같다.

① 두발 자유는 머리카락의 자유인가? | 한낱 머리카락에 학교가 그토록 목매는 이유
② 맞을 짓 한 자? 맞아도 되는 자! | 체벌과 폭력 사이
③ 우아한 거짓말과 구차한 양심 | 양심의 자유, 사뿐히 지르밟고 가시더이다!
④ 접속 금지, 발신 금지 | 휴대전화와 함께 추방되는 것들
⑤ 교복은 메시지다 | 복장 단속, 무엇을 단속하는가?
⑥ 도둑맞은 시간과 비어 있는 시간 | 강제 보충과 야자는 누구를 울리나?
⑦ 중립이라는 감옥, 정치적 미성숙의 감옥 | 집회의 자유는 학생의 삶을 어떻게 바꿀까?
⑧ 사랑은 아무나 하나 | '연애질', 금지된 것을 꿈꾸다



"화장실"에서부터 질문은 시작된다


  서론 격인 1부도 가볍게 읽어 넘기기에는 좀 만만치 않다. 1부는 화장실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교직원 화장실을 몰래 쓰는 재미로 학교 다니는 학생 이야기다. 그냥 시설이 좋아서 몰래 훔쳐 쓰는 게 아니다. 쓰고 나오면서 꼭 이런 것들을 붙여놓는다. "우리 학교 교사 수는 50명인데 화장실은 3개! 학생 수는 1000명이 넘는데 화장실은 몇 개일까요?" 같은 질문에서부터, "3층 남자 화장실 변기가 고장난 지 2개월째인데 수리도 안 해주고 있다!" 같은 고발까지.

  『인권, 교문을 넘다』는 어떤 화장실을 쓰느냐, "똥 쌀 권리"를 얼마나 어떻게 보장받고 있느냐, 거기에서부터 인간의 존엄성의 한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렇다. 화장실 뿐 아니라 중앙현관 학생 출입금지 같은 사소한 곳, 교무실 청소를 왜 학생들이 하느냐 하는 작은 불합리에서부터 학생들의 자기 처지에 대한 인식은 시작된다.

  이처럼 화장실로 시작한 1부에서는 동방신기 팬클럽 이야기, 무상급식과 학생인권조례 사이의 간극에 대한 이야기, 개학반대 시위 이야기 등을 거쳐서 학생인권의 봉인을 풀어나갈 질문들을 던진다. 그 질문들을 스스로 자문하다보면 어느새 학생인권에 대해 자기가 가지고 있던 '프레임'(생각 틀)들이 변화해가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학생인권이 넘어설 것들


  마지막 3부 "학생인권 논리탐구"에서는 학생인권을 이야기할 때 흔히 맞닥뜨리게 되는 여러 이야기들에 관한 논리들을 모았다. 부모 문제(친권), 미성숙, 법치주의, 보호주의, 교권 등등. 그리고 마지막에는 학교 안의 소수자와 차별 문제까지. 학생인권을 이야기할 때 우리가 넘어서야만 하는 것들, 좀 더 근본적인 관점에서 다시 이야기해야 하는 것들을 큰 틀에서 짚어주고 있다.

  긴 말 필요 없이, 다음과 같은 구절들을 직접 읽어 보자.

"미성숙은 말 그대로 성숙하지 못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사람은 달걀 프라이가 아니니 어디까지가 반숙인지 완숙인지 구분하기란 불가능하다. 겉으로 완벽해 보이는 사람도 어딘가 미숙한 구석이 있게 마련이고, 오히려 정신이 성숙하지 못한 사람들이 겉으로는 센 척, 성숙한 척하는 일도 많다. …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에서 어떤 사람을 성숙하다고 여기고 어떤 사람을 철없는 사람으로 여기느냐, 곧 성숙을 판가름하는 기준이 무엇이냐를 살펴보는 일이다."(pp.243-244.)

"보호의 반대말은 방임이 아니라 '자유'가 아닐까? 청소년이 자기 힘을 기르고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도록 하는자유 말이다. 그런데 자유는 단순히 '간섭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지원을 요구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 보호주의를 넘어서자는 말은 청소년에게 홀로서기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청소년들을 울타리 안에 꽁꽁 가둬 두는 보호주의에 묶여 있는 한, 청소년에게 정말 필요한 사회적 지원이 뭔지를 보지 못하게 된다는 이야기다."(p.260)

"교육이 전투가 될 때 교사의 전투력을 떨어뜨리는 듯 보이는 학생인권이 환영받을 수 있을까? 학생의 인권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교사의 통제력이라는 생각이 힘을 얻는 것 아닌가?"(p.264)

"학생인권을 주장하는 것은 학부모가 가진 것을 빼앗아 오자는 것도 아니고, 학부모를 학생의 삶에서 밀어내고 간섭하지 말라고 외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학부모의 위치를 제자리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는 이야기이고, 학생과 학부모가 같이 살아가기 위해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 학부모가 주인공으로 나설 무대는 자신의 삶이어야 한다. 학생인권은 이렇게 자녀의 삶에만 붙잡힌 채 자기 무대를 잃어버린 학부모도 자유를 되찾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함께 건네고 있다."(p.293)

"학교에서 인정하는 능력은 공정한 경주와 노력의 결실로 이야기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승패가 이미 예정되어 있는 경주를 공정하다고 말하고, 뒤처지거나 패배한 이들이 자기 탓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야말로 폭력이고 숨겨진 차별이 아닐까? 학교에서 인정하지 않는 능력, 돈이 되지 않는 능력을 가진 이들을 무능력하다고 얘기해도 될까?"(p.302)



학생인권 종결자


  현재 시점에서, 『인권, 교문을 넘다』는 "학생인권 종결자"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을 만한 책이다. 적어도 지금까지 학생인권에 관해 논란이 되었던 이야기들을 모두 그러모아서 이토록 넓고 깊게 파헤친 책은 이제껏 없었다. 물론 앞으로 학생인권이라는 사회의제가 더 많은 내용, 더 풍부한 이야깃거리를 가지게 되면 이 책도 부족한 부분을 많이 드러내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때까지는, 이 책이 학생인권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읽어야 할 바이블(Bible)이자 교과서 역할을 해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나 역시 책의 공저자 중 한 명으로서 더욱 그런 기대를 가지고 있다. 이 책의 내용을 뽑아내기 위해 워크샵을 하고 집필을 하는 데는 대략 1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지만, 사실 이 책에 담긴 내용은 6년, 아니 10여년의 세월 동안 학생인권을 이야기하고 발로 뛰어온 사람들이 궁리해내고 토론하면서 만들어낸 것들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교사들이나 학생들, 학부모들이 수능 문제집을 풀 시간, 취업 준비를 할 시간, 입시전형을 알아볼 시간 중 아주 조금만 할애해서 이 책을 읽는다면 학생인권 현실은 좀 더 나아질 수 있을 것이다. 또 중간중간에 제시하고 있는 더 이야기해봐야 하는 토론거리들을 가지고 같이 토론을 한다면 학생인권에 대한 더 풍부한 논의가 가능해질 것이다. 그 토론 페이지 역시 뻔하게 "두발규제가 필요할까?" 같은 게 아니라 "연애할 자유를 보장하면 여성 청소년들이 차별을 당하거나 피해를 겪는 일이 늘지 않을까?" 같은 섬세한 질문이나 "남을 모욕하는 말을 내뱉는 것은 양심의 자유 차원에서 어떻게 볼까?" 같은 어려운 질문까지, 학생인권에 대해 좀 더 앞으로 나아가고 구체화해야 할 고민지점들을 짚고 있다.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사람들은, 당연하게도 학생인권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이다. 책 디자인 자체도 학생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일러스트와 만화 등을 풍부하게 실으려고 노력했다. 학부모 분들도 읽으시면 좋다. 그렇지만 집회의 자유 보장이 빨갱이들의 음모라는 식의 무개념하고 얕은 소리가 버젓이 한국 1, 2위를 다툰다는 '정론지'에 실리는 현실에서는, 일단 그런 칼럼을 쓰는 기자들이나 교수들 먼저 이 책을 읽혀야겠다 싶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제안하자면, 학교를 졸업할 때,(재학 중에는 싸움 거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으니까) 학생들을 '잡는' 교사들에게 이 책을 졸업 선물로 선물해보는 건 어떨까? 이명박 대통령이나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그밖에 교육감들이나 장학사들, 교장들에게도 읽히고 싶다. 자기가 하는 일이 무슨 의미인지, 학생인권이 뭔지, 개념 탑재가 좀 될 수 있도록.



추신 : 책이 오탈자가 좀 많다. 급하게 편집, 디자인을 하다 보니 생긴 문제 같다. 1쇄가 다 팔리고 2쇄가 나올 땐 가능한 한 고쳐져 있길!

Posted by 오승희


  Intro

  쟝은 주변이 온통 하얀 세계에 서있었습니다.
쟝 "여긴 어디지?"
  쟝이 어리둥절한 목소리로 말을 꺼내자 갑자기 뒤에서 뭔가 기척이 났다.
??? “이봐.”
 쟝은 뒤를 돌아봤습니다. 거기에는 웬 괴상한 남자애가 있었습니다.
쟝 “!!!!! 넌?! 오승희 남자 버전? 그럼 여긴…”
오승희(학생인권조례) “그래 흔하디흔한, 어디에나 널린, "이건 꿈이다"라는 설정인 거지. 그리고 사실 나는 오승희(남)에 깃든 학생인권조례야.”
쟝 “학생인권조례?!”

▲ 오승희 남자 버전. 특히 팬시용으로 만든 특별판이다.

학생인권조례에 빙의당하여 특별출연.







 < 학생인권조례 >
많은 사람들이 학생인권조례가 여럿 있는 줄 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직 학생인권조례는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뿐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다른 모든 지역에는, 아직, 학생인권조례가 없다. 이제 곧 현직에 취임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지는 지역으로 서울, 강원, 전북 등이 꼽히고 있을 따름이다.
경기도 학생인권조례는 2010년 10월 5일 전국 최초의 학생인권조례로 취임했다.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시행의 주 책임을 갖고 있는 기관은 경기도교육청, 그리고 교육청 산하의 여러 기구들이다.(지역의 교육지원청 등등). 학생인권조례의 취임에 따라 새롭게 생겨난 직업으로 학생인권조례 담당 장학사라거나 인권옹호관, 학생인권심의위원, 학생참여위원 등이 있다.
취임한 지 10개월을 넘기고 있는 경기도 학생인권조례와 인터뷰를 시도해보았다. 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지고 취임하기까지의 과정, 쟁점이 되는 조항들에 대한 설명, 언론에서 제기되는 논란 등에 대한 뜨거운 이야기를 전한다.



쟝 “이봐, 아무리 기상천외한 직업들을 다룰 수 있다고 해도, 학생인권조례는 직업이 아니라고. 이건 조례, 법이잖아! 조례를 직업으로 다룰 순 없어!”

학생인권조례 “음 그렇긴 한데 오승희 편집진들이 "학생인권조례를 인터뷰하면 재밌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버렸거든. 넌 오승희 등장인물 중 유일한 인터뷰 전문직이잖아.”

쟝 “이상한 데 전문직이란 말 붙이지 마…. 이래도 되는 건가? 학생인권조례는 사람이 아니란 말야. 아아 이건 어쩐지 넘어선 안 되는 선을 넘는 느낌이 들어.”

학생인권조례 “다음 차례에는 표준적이면서도 신선한 직업 탐방 코너로 돌아갈 거라고 하니까, 이번만 좀 봐줘. 내가 이렇게 몸소 오승희에 빙의해서 만나러 니 꿈으로 행차해주기까지 했는데.”

쟝 “빙의는 또 뭐야, 빙의는.”

학생인권조례 “뭐 어떠냐. 공중파 TV에서 하는 드라마에서도 버젓이 빙의해서 눈에서 레이져를 쏘아대는 판에.”
(최근 방송이 종료된 임성한 작가의 괴작 <신기생뎐>을 의미.)

쟝 “Merde… 파업할까보다… 편집진 따위”
(Merde는 프랑스어로 "똥"이라는 뜻으로 영어의 Shit과 같은 욕이라고 보면 된다. 의역하자면 "젠장할", "썩을", "씨발" 같은 느낌이랄까.)

학생인권조례 “(애써 무시하고) 먼저 자기소개를 하지. 나는 유일한 현역 학생인권조례, 경기도 학생인권조례다.”

쟝 “네네, 그러시군요… 난 그냥 제 이상한 노동환경을 받아들이기로 한 쟝이라고 해. 프랑스에서 왔지. 그런데 당신은 어쩌다가 유일한 현역이 된 거야? 다른 지역은 어떻게 됐어?”

학생인권조례 “일단 한 마디 하자면, 사실 학생인권조례의 원조는 경기도가 아니야.”

쟝 “어? 그래?”

학생인권조례 “그래. 학생인권조례를 처음 제정하려고 했던 곳은 광주였어. 벌써 6년도 더 된 일이지. 그 다음에는 경남에서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하려고 했었고. 경기도는 시도했던 걸로는 세 번째야.”

쟝 “광주에서 처음 학생인권조례를 만들려고 한 건 왜 그런데?”

학생인권조례 “그게, 2000년대 들어서 학생들이 두발자유를 요구하고 종교자유를 요구하고 강제야자에 문제제기하는 등 많은 투쟁을 했거든. 학내시위도 여러 번 일어났고. 그런 모습을 보면서 학생들의 인권 내놓으라는 요구를 제도로 만들어보자는 이야기가 나오게 된 거지. 즉 나나 내 선배 격인 광주 학생인권조례(아직 현직은 아니지만…)도 학생들의 그런 활동의 결과물인 거지. 그리고 2010년, 여러 가지 상황의 작용으로 경기도가 학생인권조례가 가장 먼저 제정됐어. 그래서 내가 최초의 현직 학생인권조례가 된 거야. ㅋ 뭐, 경기도에서는 최초로 학생인권조례를 공약으로 걸었던 김상곤 교육감이 주민직선제로 당선이 됐던 탓이 컸지. 교육청에서 주도해서 안을 만들고 발의했으니까….”

쟝 “나도 학생인권조례 이야기하면 김상곤 교육감 어쩌구 하는 걸 신문에서 몇 번 봤던 거 같아. 그런데 학생인권조례 뭐 이런 걸 만들어야 할 정도로 경기도 학교에 학생인권 침해가 많나?”

학생인권조례 “그래. 가장 대표적인 예가 두발규제겠지? 그래서 처음에 경기도에서 이게 제정되었을 땐 학생들 사이에 <두발자유조례>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던데. 나에 대해 자세한 내용을 알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기도 하지만, 그만큼 학생들의 두발자유에 대한 뜨거운 마음을 알게 해주지. 그밖에도 강제야자나 체벌, 소지품 검사, 각종 차별, 학교 시설 문제 기타 등등. 하지만 경기도가 특별히 더 심했던 건 아니야. 사실 언론들이나 단체들이 눈을 반짝이고 있는 서울을 제외하면 다른 곳들은 다 비슷비슷한 편인 거 같던데? 아 뭐 그래봤자 서울도 오십보백보 수준이긴 하지만.”

쟝 “그럼 당신은 학교가 두발규제를 못하게 금지하는 일을 하는 건가?”

학생인권조례 “정확히는 학생은 두발 복장 등에서 개성을 실현할 자유를 가진다고 하고 있고, 그 다음에 학교는 학생의 두발 길이를 제한할 수 없다고 못 박고 있지.”

(제11조(개성을 실현할 권리) ① 학생은 복장, 두발 등 용모에 있어서 자신의 개성을 실현할 권리를 가진다.
② 학교는 두발의 길이를 규제하여서는 아니 된다.
③ 학교는 정당한 사유와 제18조의 절차를 따르지 아니하고는 학교의 규정으로써 제1항의 권리를 제한할 수 없다.
제18조(학칙 등 학교 규정의 제․개정에 참여할 권리) ① 학생은 학칙 등 학교 규정의 제․개정에 참여할 권리를 가진다.
② 학교는 학생의 인권을 존중하여 학칙 등 학교 규정을 제․개정하고, 이를 학교 홈페이지에 게시하여야 한다.
③ 학교는 학칙 등 학교 규정의 제․개정 과정에서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여야 하며, 학생회 등 학생자치기구의 의견제출권을 보장해야 한다.)



쟝 “뭐야, 그럼 길이만 제한할 수 없는 거야?”

학생인권조례 “아니 이 조항은 원칙적으로 두발자유를 보장하고 있다고 봐야 해. 길이 제한을 특별히 더 못한다고 하고 있는 거고. 근데 어떤 학교들은 “그럼 길이만 자유화”한다거나, 아니면 길이를 제한할 수 없다는 걸 괴악하게 해석해서 두발을 몇 cm 하는 식으로는 규제할 수 없지만 “눈썹에 닿지 않게”, “어깨에 닿지 않게” 하는 식으로는 해도 된다고 하는 곳도 봤어. 원칙은 자유고, 특별히 필요한 경우에만 제한을 해야 하는 건데 말야.”

쟝 “그러게. 프랑스에서는 여러 머리색과 피부색의 학생들이 같이 학교에 다니고 같이 수업을 받지만 아무 문제없는데. 그렇게 따지면 교복도 그래. 난 거의 모든 중고등학교들이 교복을 입는 이런 나라는 영국, 일본, 한국밖에 못 들어본 거 같아. 프랑스 같은 경우는 일부 사립학교들만 교복 입는 걸 강제하는데. 그럼 당신은 복장자유, 그러니까 교복을 입지 않을 자유도 포함하고 있는 건가?”

학생인권조례 “원칙적으로는 복장자유라고 하면 당연히 교복을 안 입을 자유나 입을 자유도 포함되겠지. 하지만 대부분 학교에서는 아예 복장자유가 “교복을 입지 않을 자유”라고는 생각도 안 하는 것 같더군. 그냥 교복을 줄이거나 할 자유 정도로 생각하지. 상상력의 빈곤이야 쯧쯧….”

쟝 “그런데 내가 보기에도 두발규제 조항 같은 경우는 좀 애매하게 해석할 소지가 많은 것 같은데…. 어쩌다가 그런 식으로 한 거야?”

학생인권조례 “말도 마.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초안을 마련하는 자문위원회가 꾸려지고 초안이 나오기까지 3개월이 넘는 시간이 걸렸어. 3개월, 그거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사실 광주랑 경남에서 이미 나온 안들이 있었고 일본의 가와사키 아동권리조례나 유엔아동권리협약 등등 참고할 만한 건 잔뜩 있었으니까, 꽤 오랫동안 논의를 하고 준비를 한 셈이지. 자문위원회 안에는 인권 전문가, 법 전문가, 교사, 교장, 사회복지 전문가 등등 여러 사람들이 있었고 그 사람들이 다 합의하는 안을 만들려고 낑낑댔거든. 그런 과정에서 애매하게 된 면이 있지.”

쟝 “만드는 과정에 아쉬움이 많나 보네.”

학생인권조례 “그래, 무엇보다 학생들이 정작 자문위원으로 참여를 하지 못한 건 정말 큰 문제야! 학생참여기획단을 꾸려서 의견을 받는 절차를 거치긴 했지만 실질적으로 학생들 의견이 막 반영된 건 아니었어. 그 학생참여기획단도 사전 교육과정이나 논의 과정도 별로 거치지 못했고. 다만 쟁점이 되는 사안에 대해서 자문위원회 회의할 때 학생참여기획단 학생들의 의견을 많이 가져다가 근거로 삼고 참고했다고 해. 그래도 역시 아쉽긴 하지. 학생들 참여가 무엇보다 중요한데.
  학생참여기획단 이야기하니까 학생참여위원회도 생각나네. 아놔…. 학생참여위원회를 내 힘에 따라 만들게 됐는데, 교육청에서 공지도 시험기간에 완전 짧게 하고, 거기다가 학교장이랑 보호자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한 거야. 학생인권에 학생들이 관심을 가지도록 홍보를 하고 스스로 숙고하고 준비할 시간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해야 하는데… 무슨 학교장 승인이야? 교육청 관료주의도 내가 일하는 데 완전 문제라니까. 투덜투덜. 내가 인사권이 있었으면 그런 장학사들은 다 징계해버렸을 거야.”

쟝 “흠, 그럼 당신은 당신 스스로의 일이 불만이야? 불완전하다고 느껴?”

학생인권조례 “꼭 그렇진 않아. 심지어 학생인권조례에서 학생들의 권리가 무엇인지 명시하는 부분은 빼고, 그러니까 그냥 헌법과 국제조약에 있는 권리를 보장한다는 식으로 쓰고, 개선 방안만 담자고 하는 안도 있었는걸. 그렇게 만들었으면 내가 일하는 의미가 별로 없었을걸?? 나는 ‘이게 바로 학생인권이다!’라고 딱 못을 박고 명확히 하는 힘이 있으니까. 꽤나 잘 만들어진 편이라고 생각해.”

쟝 “난 좀 불만스러울 거 같은데. 예를 들어 서울에서 이번에 학생인권조례를 주민발의한다고 한 건 경기도 안이 불만스러워서 좀 더 보완하려고 하는 것 아닌가?”

학생인권조례 “서울 주민발의안! 윽. 솔직히 좀 부럽긴 하지 ㅡㅡ;; 사례나 예시도 풍부하게 들어가있고… 하지만 서울 주민발의안도 바로 나, 현직 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있었으니까 나올 수 있었던 것 아닐까? 너무 자기 위안이려나? ㅎㄷㄷ
  뭐, 근데 사실 나도 교육청에서 일부 언론들 눈치 보느라 집회의 자유 조항이 중간에 빠진 건 많이 아쉽긴 해. 한국이 비준한 유엔아동권리협약에도 보장한 권리인데 괜스레 호들갑 떨긴. 하지만, 비록 조항에서 빠졌더라도, 나는 학생들의 정당한 표현의 자유로써 집회의 자유가 침해당할 때 나서서 최대한 도울 거라구!!”

(2010년 2월 10일,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자문위원회는 집회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 등을 명시한 A안과 이를 빼거나 표현을 바꾼 B안을 김상곤 교육감에게 제시했다. 김상곤 교육감은 그 중 B안을 택하여 발의했다.)




쟝 “그것 참 의욕 넘쳐서 좋구만; 근데 실제로 당신이 그만큼 힘이 있나?”

학생인권조례 “님 아까부터 자꾸 아픈 데를 찌르네 -_-;; 학생인권조례가 힘이 좀 없긴 하지. 대놓고 위반한 학교 교장을 막 바로 감옥에 처넣거나 벌금을 줄 수도 없고. 하지만 내 부하직원들인 학생인권심의위원, 학생인권옹호관, 학생참여위원 등등이 힘을 합치면 없는 것보단 나을 거야. 뭣보다 학교가 눈치를 보게 만들 순 있으니까. 특히 인권옹호관은 직접 나서서 조사를 하고 개선 조치를 취하라고 권고할 수 있어. 그리고 학생인권에 대한 조사를 정기적으로 하고 교육청 차원에서 그 학생인권 신장 계획을 세워서 집행하니까, 교육청이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강제력을 가질 수 있겠지. 실제로 내 힘으로 경기도 지역 학교 중에는 두발이 많이 완화되거나 자유화된 곳도 많고, 복장규제나 강제야자도 많이 줄었어.
  뭣보다 학생들이 직접 자기 인권을 주장하고 학교 안에서 목소리를 낼 때 힘이 되어줄 수 있으면 그것만으로 큰 역할 아니겠어? 부천 소사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학칙개정심의위원회에 참관하고 학생 의견 반영할 것을 요구하면서 시위를 한 거라거나.”

▲ 부천 소사고등학교 학생들이 운동장에서 '근조 인권', '근조 정의'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
(2010년 12월, 부천 소사고등학교 학생들을 규정개정심의위원회에 참여한 학생 대표들이 학생들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으며, 학생들이 학칙 개정 과정에 참관할 것을 보장하라고 요구하는 시위를 여러 차례 벌였다. 그 결과 규정개정심의위원회에서는 학생들의 의견이 더 많이 반영된 안이 통과되었다.)



쟝 “그거 뭔가 좀 정말 편한 대로 해석하는 것 같다만;; 근데 당신 요즘 여기저기서 많이 까이던데 생명의 위협 같은 걸 느끼지 않아?”

학생인권조례 “생명의 위협까지는 아니고…. 좀 자리의 위협을 느끼고 있긴 하지. 그리고 나 말고 다른 동료 학생인권조례들의 취임에 걸림돌이 되고 있고. 특히 문화일보 등등의 언론들은 완전 개념이 없다니까, 와.”

쟝 “조선일보에서 휴대전화로 교실이 무너진다고 보도한 건 나도 얼핏 봤어.”

학생인권조례 “그게 참, 나는 휴대전화를 학교가 완전 금지할 수 없고, 수업 중 이용에 관해서는 민주적으로 규정을 만들어서 규제할 수 있다고 하고 있거든?? 이것도 대표적인 타협 조항 중 하나지. 수업 중에 휴대전화 이용에 관해서는 학교에서, 그리고 사회적으로 합리적인 규정을 만들고 문화를 만들 문제인데 마치 내가 휴대전화 이용을 전혀 규제하거나 손댈 수 없다고 하는 것처럼 거짓말을 치더라니까.”

(제12조(사생활의 자유) ④ 학교는 학생의 휴대폰 소지 자체를 금지하여서는 아니 된다. 다만, 학교는 수업시간 등 정당한 사유와 제18조의 절차에 따라 학생의 휴대폰 사용 및 소지를 규제할 수 있다.)



쟝 “프랑스나 독일 같은 경우도 휴대전화를 학교에 못 가지고 오게 하는 경우가 대다수야. 뭐, 애초에 거기는 한국만큼 학생들이 휴대전화를 많이 가지고 있는 건 아니지만.”

학생인권조례 “그밖에도, 학생들의 인권을 존중해서 교육이 무너진다는 건 그냥 개소리란 생각밖에 안 들어. 그게 진짜라면 그 사람들이 말하는 ‘교육’이란 건 대체 뭐야? 사람을 사람으로 존중하지 않는 교육이 교육인가? 나는 학생들에게 엄청 대단한 특권이나 권력을 주는 것도 아니거든. 최소한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하자는 거지. 학생들이 수업을 제대로 안 듣고 교사를 존경하지 않는 건 학교들이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그만큼 믿음도 재미도 주지 못해서 아닌가? 학교 졸업해도 먹고 살 길 막막하고 학교 공부하는 의미도 알 수가 없는데 학교에 8시간 12시간씩 처박혀 있어야 하니까 짜증이 쌓일 만하지. 나 덕분에 학생들 학교 다니는 게 좀 더 즐거워진다면 오히려 그런 문제가 더 줄어들걸.”

쟝 “그렇겠군. 프랑스의 경우에도 한 100년 전, 50년 전에는 한국 교육이랑 비슷하게 두발복장규제도 있고 학생들을 줄맞춰 세웠다고 해. 하지만 1968년에 학생들이 들고 일어나서 시위를 하고 하면서 많은 게 바뀌었지. 지금 프랑스 교실처럼 두발복장도 완전 자유롭고 학생들이 떠들고 참여하며 교육하는 모습을 보면 한국 사람들 눈엔 개판처럼 보이겠네. 프랑스에서는 교사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라고 하면 완전 권위주의 돋는다고 생각할 거야. 그냥 이름을 부르거나 경어 정도만 쓰거든. 교사도 학생한테 존칭을 쓰고.”

학생인권조례 “유럽에서는 다 두발복장자유화 해도 되고 초등학생 때부터 학교 운영에 참여하는데 한국 학생들은 미성숙해서 안 된다? 인종주의냐 무슨. 물론, 난 인종 차별을 막기 위한 차별금지 조항도 담고 있지. ㅋㅋ”

쟝 “ㅋㅋㅋ”





학생인권조례와 같이 웃던 쟝은 잠에서 깼습니다. 밖에는 폭우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오세이돈 서울시장의 ‘무상급수’ 정책으로 오세이돈 당선에 큰 역할을 했던 강남구 서초구 등이 대량의 물 세례를 받았다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쟝은 오세이돈과 오승희 편집진들에게 바가지로 욕을 퍼부었습니다.

쟝은 50년 전 68혁명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한국에서도 68혁명처럼 학생들의 활동을 통해 학교와 교육이 조금씩 바뀌어가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68혁명은 학교 문화를 바꾼 것뿐 아니라 대학입시나 정치 참여까지도 바꿨지요. 쟝은 한국 교육도 사회도 아직 많은 과제를 남겨 놓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프랑스의 교육도 마찬가지지만요. 그나저나 쟝은 어서 돈을 벌 직업을 찾아야 할 겁니다. 학생인권조례라는 직업은, 돈을 벌지는 못하거든요.  (인권옹호관은 벌겠지만 인권옹호관이 되려면 뭔가 좀 훌륭한 사람이어야 한다더군요!)






Posted by 오승희


학생인권조례 없는 세상을 원한다.




  경기학생인권조례가 막 시행됐을 무렵 학교에서 좀 ‘논다’는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떨었던 적이 있다. 이 친구와 내가 정말 싫어했던 영어교사가 있었는데 단어시험에서 틀린 개수만큼 학생들을 때리는 걸 삶의 낙으로 삼은 교사였다. 때리는 부위도 짜증나게 변태마냥 ‘발바닥’만을 고집했다. 단어시험 망한 날은 걸어 다니기가 어려워 대걸레에 서로를 태우고 교실이며, 화장실까지 끌어서 태워다주고 택시비 내놓으라던 생각이 난다. 웃기엔… 너무… 슬퍼! 그 친구에게 ‘인권조례 통과 되서 체벌금지니까 다시 대걸레 탈일은 없겠다?‘라고 물었다. 그러자 친구가 던진 한마디 ‘철수는 교육감이 영어단어 틀려도 때릴껄? 철수 존나 쎄잖아’ 그래 맞아. 내가 좀 잊고 있었다. 그 영어교사는 수업시간에 대놓고 인권조례 때문에 영어단어 틀리는 대역죄인을 처벌할 수 없게 되었다며 무척 아쉬워(?)했단다. 장난하냐!

  근데 솔직히 좀 억울하다. 영어교사가 아쉬워하지 않아도 학교현장에서는 인권조례가 잘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니까 말이다. 교칙개정 과정에서 학생들의 목소리를 사뿐하게 무시해준 부천의 소사고도, 개교 석달 만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20명의 학생을 강제적으로 학교 밖으로 내몰았던 남양주의 가운고등학교도 잘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이제는 인권조례 자체에 대한 찬반논의를 넘어서 인권조례의 정착화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 왔음에도 우리 미성숙하고 적응력 약한 꼰대들은 아직도 인권조례가 ‘되네’ ‘안되네’나 따지고 있으니 성숙한 내가 보기엔 좀 울화통이 터진다.

  저 영어 교사처럼 일부 보수 언론과 교사, 학부모들은 학생인권조례를 두팔 벌려 환영하지는 못할망정 인권조례에 대한 비난과 우려를 쏟아내며 ‘인권조례 무력화’를 외친다. 어떤 사람들은 ‘아직 미성숙한 학생들을 ‘선동’하고 ‘빨갱이’로 키우려는 조례‘라고 비난한다. (앗. 근데 이글을 읽은 그 '어떤 사람'들이 가스통 들고 날 쫓아올것 만 같은 건 기분 탓인가?)

  또 어떤 이들은 ‘교실붕괴’와 ‘교권추락’같은 문제에 우려를 표하며 인권조례 이후의 학교를 걱정한다. 사실 내가 학교를 ‘다녀봐서 아는데’ 교실은 늘~개판이었다. 인권조례 제정 이후든 이전이든 교실은 이미 오래전부터 붕괴하고 있었다. 교사들 교권 추락하는 것도 어디 어제오늘 일이었나? 새삼스럽게 왜들 이러시나? 학교 안다녀본 사람처럼. 교실붕괴와 교권추락 문제에 대해 학생인권조례가 유일한 원인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뭐랄까 좀 게을러 보인다. 생각과 고민을 좀 더 해보셔야 할 텐데 말이다.

  이유야 어쨌든 많은 사람들이 ‘학생인권조례 없는 세상’을 원한다. 경기학생인권조례가 지난해 9월 도의회를 통과해 공식적으로 제정된 지 어느 덧 1주년이 다 되어간다. 그사이 서울에서는 주민발의 형식을 통해 시민들이 직접 ‘학생인권조례안’을 발의했고 곧 제정을 앞두고 있으며, 충북과 강원도, 광주와 전북 등 지역 곳곳에서 인권조례 제정을 위한 움직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소식들이 들려온다. ‘인권조례’가 시대의 요구사항이 되어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 많은 곳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는 것이다. 참 기쁜 소식이다.

  사실, ‘학생인권조례’ 만큼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열악한 인권현실을 잘 보여주는 것도 없는 듯하다. 인권조례는 학교 안에서는 ‘인간’이 될 수 없는 ‘학생’들의 처지를 적나라하게 나타내는, 있는 그대로의 반증이 된다는 얘기다. 그래서 나는 인권조례가 수치스럽다. 아니 그러니까 내말은 이거다. 내 머리는 내 마음대로 기르는 것, 아프면 쉬는 것, 질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과 같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생각되는 것들이 왜 이 빌어먹을 나라에선 ‘법’으로써 강제하지 않으면 지켜지지 않는 ‘논외’혹은 ‘금기’의 것들이 되냐는 말이다.

  머리길이의 자유와 같은 정말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사회에서 허용할 수 있는 수준에서의 ‘최대한’의 도구가 되어버린 듯한 학생인권조례를 보며 답답함을 느낀다. 이제 학생인권조례는 최대한의 권리를 보장하는 최소한의 도구가 되어야만 하지 않을까? 청소년들의 인권을 얘기하는데 있어, 대안을 만드는데 있어, 방법을 고민하는데 있어 학생인권조례는 첫 걸음이자 최소한의 가이드라인. 딱 그 정도이길 원한다. 학생인권조례가 학생의 인권도 보장되는 사회를 위한 ‘마지막 보루’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학생인권조례는 미성숙하다는 유보되어 왔던 학생인권, 사회적으로 논의되는 것 조차 ‘금기’ 였던 학생인권, 오랜 시간동안 ‘없는 것, 보이지 않는 것, 가질 수 없는 것’으로 숨겨져 왔던 학생인권의 봉인을 푸는 주문이다. ‘학생’과 ‘인간’이라는 단어 사이의 멀고 먼 거리를 조금씩 줄여나가는 주문이다.

  그러다 마침내 ‘법’으로써 강제하지 않아도 학생들의 인권이 보장되는 학교를 간절히 원한다. 학생인권조례 없이도 ‘학생’ 역시 존엄한 삶을 살아갈 권리가 있는 인간이라는, 너무나도 당연하고 보편적인 인식이 널리 퍼지는 성숙한 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원한다. 그렇기에 나는 이제 학생인권조례 없는 세상을 원한다. 너무나도 간절히 원한다.

Posted by 오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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