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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8.05 [2면] [기획고찰] 등교시간 考察 by 오승희
 한 때 "아침밥 먹기"가 대세가 된 적이 있었다. "아침을 거르면, 두뇌 활동에 필요한 탄수화물이 어쩌고, 저녁을 먹은 뒤 다시 음식을 먹기까지의 시간 갭이 너무 커서 저쩌고, 그러니까 니들 꼭 아침밥 쳐 드셈, 특히 수험생……." 하는 멘트를, 거의 매일같이 TV에서 무한반복 재생해주던 때였다. 그래서 해장국 전문점들이 오랜 불황을 벗어나게 되었는지 어쨌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최소한 하나는 확실하다 - 아침밥은, 여전히 찬밥신세란 사실.
 필자야 워낙 위대(胃大)하여 밥을 안 먹고는 도저히 1∼4교시를 버틸 자신이 없어 꾸역꾸역 먹는다지만, 그런 필자조차도 요즘은 아침밥을 먹는 데 애로사항이 꽃피곤 한다. 왜 그럴까? 이유는 간단하다. ‘시간이 없어서'다. 필자가 늦잠꾸러기인가? 글쎄, 6시30분 기상이면 나름대로 늦잠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매일 아침 노현정 아나운서의 낭랑한 목소리를 들으며 일어나 세수하고 머리감으니까. 그럼 무엇이 문제인가? 교복이 무슨 기모노처럼 복잡해서 옷 입는 데 몇 시간 걸리는 것도 아니고, 신발 끈 묶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도 아니며, 학교에서 먼 곳에 사는 것도 아니다. 정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등교시간이 너무 이른 것이다.
 필자가 다니는 S고의 등교시간은 1․2학년이 7시40분, 3학년이 7시20분이고, 수업은 8시10분에 시작한다. 집에서, "커피 한 잔의 여유", "한 박자 천천히" 따위 광고를 믿고 ‘음, 바쁘지만 여유롭게-'라는 생각을 잠깐이라도 하게 되면, 정말로 ‘여유롭게' 오리걸음이나 앉았다 일어나기 등의 하체근육 강화훈련을 받아야 한다. 그렇게 고된 근육 강화훈련을 마치고 교실로 들어가면 이번엔 담임선생님 차례다. 아앗, 선생님, 일사부재리의 원칙… 시끄러! 그리고 자리에 앉으면, 의자가 왜 이리 포근하니, 어머 웬일이니, 눈을 뜨면 2교시다. 뭐야∼ 안 되겠네∼
 그럼 아침에 더 일찍 일어나면 안 되나?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에게 필요한 수면시간은, 물론 개인차가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우리 또래의 청소년에게는 7∼8시간 정도다. 야간 자율학습이 몇 시에 끝나나? 필자의 S고는 10시, 기숙사생은 한 시간의 프리미엄이 붙어 11시다. H고는 11시, 전주 시내의 또 다른 S고는 10시에 끝나는 등, 일반적으로 10시 이후에나 학교에서 나오는 것이 가능하다. 아주 호화로운 학교라 교실 안에 침대며 이불이 구비되어 있어 야자가 끝나자마자 바로 잔다고 쳐도 8시간을 채우자면 다음날 6시다. 실제 학생들이 잠자리에 드는 시각이 12시 전후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미 잠을 줄일 대로 줄여 놓은 상황에서 더는 줄일 수 없다는 계산이 나온다. 아니, 따지고 보니 실로 국회의원들은 심야온라인게임규제 따위보다 학교부터 규제하는 게 청소년 수면권을 보호하는 일임을 알아야 한다.
 아침에 더 이상 일찍 일어나기란 곤란하다고 봤을 때, 결론은 하나뿐이다. 등교시간을 조금 늦춰서 아침밥만이라도 먹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강약약 강강강약 강중약 패턴으로 청원서 40단컴보를 교육인적자원부 앞으로 보내기라도 해야 하나? 물론 가장 좋은 방법은 입시경쟁 위주의 교육이 철폐되고 대학서열화가 무너지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나오는 것이겠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어설프게 손댔다가 "내신 등급제" 따위의 배틀로얄 정책이 또 나오지 말란 법은 없다. 대신, 비교적 간단한 방법으로도 소기의 효과를 볼 수 있다.
 S고에서는 2005년, 그러니까 작년 1학기에 한시적으로 등교시간을 10분씩 늦춘 적이 있었다. 단 10분이었지만, 그 10분으로 인해 학교생활이 얼마나 윤택해졌는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늘어난 10분의 시간을 차분히 학교생활을 준비하는 데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처럼, 단 10분 늦추는 것만으로도 소기의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러나 필자는 이에 그치지 않고 과감하게 아침'자율'학습을 없앨 것과 8시 이후로 등교시간을 늦출 것을 주장한다. 기숙사와 스쿨버스가 갖춰진 학교라면 8시10분 정도면 적절할 것이고 그렇지 못한 학교면 8시30분 이후가 적절할 것이다. 이 정도 시간이라면 수업시간을 조금씩 뒤로 밀고 야간'자율'학습을 줄이는 선에서 충분히 확보 가능하며, 이렇게 20분 이상 늘어난 아침 시간을 학생들이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게 되어 복지 및 능률 향상을 기대할 수 있게 된다. 허둥지둥 잠이 덜 깬 모습으로 학교에 와 20분 공부하는 것과 말짱한 정신으로 공부할 준비가 되어있는 것, 어느 것이 효율적이겠는가? 무엇보다 건강에 필수적인 ‘규칙적 아침식사'가 가능해진다.
 물론 이런 방안도 근본적 해결책이 되지 못함은 인정한다. 대학의 첫 강의는 일반적으로 9시에 시작하며 따라서 대학생들은 여유 있게 하루를 준비하고 강의에 임할 수 있다. 본인의 의지나 상황에 따라서는 아침에 학원을 다니며 자기계발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모두가 알다시피 한국의 인문계 고등학교라는 것이 ‘상식적으로' 운영되는 상태가 결코 아니지 않은가. 랠리 포인트를 ‘서울대'에 찍어 두고 목숨 건 달리기를 강요하며 입시서바이벌에서 살아남는 것을 그 최우선 목표로 삼는 한국의 인문계 고등학교에 근본적 해결책을 요구하는 것은 억지에 가까울 수도 있다. 그러려면 아침‘자율'학습을 위한 강제등교뿐 아니라 야간‘자율'학습도 없애야 할 테니. (우리를 걱정해주시는 어르신들께서 그런 것을 용납하겠는가? 고등학교 교장이 인터뷰에서 최고의 학생인권은 명문대 보내는 거라고 하는 나라다.) 그러나 등교시간을 늦추는 방안은 결코 무리한 것이 아니며 당장이라도 시행할 수 있는 것이다.
 의식동원(醫食同源)이라는 말이 있다. 적절한 식사가 보약이라는 뜻이다. 규칙적인 식사야말로 건강의 기초이자 지름길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건강을 챙길 시간도 없다. 등교시간을 늦추는 것은, 바로 아침밥 먹는 시간을 보장하는 것이다. 일단 몸이 건강해야 힘내서 공부하여 서울대건 어디건 도전해볼 것 아닌가. 학교에 묻는다. 20분가량을 무르고 학습 효율을 배가하는 것이 효율적인가, 시간을 빡빡하게 쓰면서 정작 수업시간엔 소화기관의 관악 4중주를 감상하며 몽롱한 정신으로 앉아만 있는 것이 효율적인가?
Posted by 오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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