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그때는 참 단순했던 것 같다. 그 날은 날씨도 더워 수업을 들을 기분도 나지 않는 날이었다. 그런 와중에 들리는 학생부장의 교내 방송. 동사무소에서 주민등록증 제작을 하러 학교로 오셨습니다. 수업을 중단하고, 부르는 반 순서대로 차례차례 과학실로 가서 한 줄로 서서 기다리세요. 정말 기쁜 소식이었다. 먼저 재미도 없는 수업을 듣지 않아도 되니까 기뻤고, 그 다음으로는 내가 드디어 ‘성인’이 된다는 소식에 기분이 좋았었다. 아직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마당에 민증이 나와도 딱히 할 일도 없는데, 그 때는 그게 왜 이렇게 좋았는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동사무소 직원이 건네준 종이에 내 이름과 주소, 주민등록번호를 적고 순순히 양 손가락에 인주를 발라 지문을 찍었다. 이 세상에 주민등록번호를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느니, 지문 날인을 거부해서 체포되었던 사람도 있다느니 같은 소리는, 한참 나중에야 진지하게 생각해봤던 일이다.


왜 나를 포함한 아이들은 그렇게 주민등록증을 만든다는 사실에 두근거렸을까? 사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주민등록증을 만든다는 행위는 정부에게 ‘지문’이라는, 매우 중요한, 그리고 고유한 생체 개인정보를 오직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는 이유로 넘겨주는 일이고, 더 나아가서는, 그런 개인정보를, 조금만 의심스러워도 경찰에게, 심지어는 편의점 알바 같은 생판 모르는 남에게 유출할 가능성을 감수하고 보여주는, 그런 용도로 쓰일 수 있는 여지를 만드는 일이다. 단순히 내 이름과 사진, 주소가 박힌 카드를 받는다는 사실이 신기해 그랬던 걸까? 그건 아니었을 것이다. 그랬으면 학생증에 만족을 하거나 동사무소로 직접 찾아가서 청소년증을 만들었겠지.(사실 그 때는 청소년증이라는 게 있는 줄도 몰랐다.) 이유는 무궁무진하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주민등록증이 자기가 성인으로 한 발짝 나아갔다는 것, 다시 말해 이 지긋지긋한 학교생활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된다는 것의 상징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주민등록증을 만들고 성인이 되면 평소에는 꿈도 못 꾸던 술도 살 수 있고, 담배도 살 수 있고, 술집에 들어가서 마음껏 술과 안주를 주문할 수도 있다. 게다가 엄마 아빠 주민등록번호를 몰래 도용해서 성인 컨텐츠도 즐길 수 있다! 도저히 기뻐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씁쓸하다. 한국에 사는 청소년은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자유롭지도 않고, 자신이 주체가 되어 어떤 일을 할 수 없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청소년의 현실이, 주민등록증을 만드는 행위를 심각하고 중대하게 받아들이는 대신, 매우 홀가분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행위에 동참하게 만든다.


▲ 성인이 되면 할 수 있는 것(...)

(2012년 9월 25일 보건복지부 앞, 대학 캠퍼스내 금주조치에 항의하는 음주시위에서)


청소년은 성인이 되기 전까지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다. 앞서 말했던 술-담배를 즐길 수 없는 것은, ‘표면적으로 봤을 때’ 할 수 없는 일이다. 만약 학교와 가정의 억압한 환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작정 가출을 했다고 생각해보자. 어찌 보면 청소년이 성인이 되기 전에 스스로 독립을 선언한 것인데, 그 청소년은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이 가능할까. 최소한 한국 사회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그것이 불가능한 이유는, 청소년이 ‘미성숙’해서가 아니다. 한국 사회가, 청소년이 주체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종류의 행위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자립을 위해서 가장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해도, 근로기준법에 서는 청소년은 친권자의 동의를 받지 않으면 노동을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는 근로기준법 같은 노동의 기본적인 권리 따윈 가볍게 무시하는 쿨한 사장님이 전국에 널려있으므로 어떻게 알바 자리를 찾아, 최저임금도 지키지 않고 주휴수당은 ‘원래 떼먹는 것’으로 인식하는 사장 밑에서 어찌어찌 돈을 벌었다고 치자. 그렇다고 해도 중학교 3학년이 되지 않으면 은행에 돈을 저축할 수 없다. 은행법에서는 만 14세 전의 청소년이 계좌를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친권자의 동의를 받아야 만들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은행에 돈을 저금하는 대신 자기만의 비밀 장소에 꼭꼭 돈을 모아 그럭저럭 하루하루 살만큼 돈을 모았다고 쳐보자. 사람은 돈만으로 살 수 없다. 인간 생활의 세 가지 기본 요소인 ‘의식주’의 ‘주’(住), 다시 말해 집이 필요하다. 그러나 민법에서는 청소년이 부동산을 거래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합법적인 경로로는 청소년이 자신의 명의로 집을 빌려 거주할 수 없는 것이다. 심지어 숙박업소나 찜질방 같은 곳에 잠깐 묵어갈 수도 없다. 청소년 보호법상, 찜질방은 밤 10시 이후에는 청소년이 이용할 수 없고, 숙박업소에는 아예 들어갈 수가 없다. 가출이 문제가 아니라 여행, 혹은 대학 입시를 치르러 먼 지역으로 갔을 때에도 묵을 데가 없다는 얘기다. 종합해보면 청소년은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돈도 벌 수 없고, 그 돈은 안전한 곳에 맡길 수도 없고, 자신을 보호해줄 집도 구할 수 없다. 가정과 학교에서 시키는 대로, 규정하는 대로만 청소년은 살 수 있다고, 법이 규정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이러한 법조항이 처음부터 ‘청소년의 자립을 막기 위해’ 제정되지는 않았다. 경제면에 종종 등장하는 ‘만 5세 아이가 주식 부자가 되었다’는 기사에서 보듯이, 어린 아이 명의로 거래를 해서 세금을 회피하려는 행위를 피하기 위해 청소년의 금융 거래를 제한하는 조항이 만들어졌다. 또한 청소년의 노동에 부모의 동의를 요구하는 것은, 지금은 많이 줄었지만 과거에 만연했던 아동 노동을 예방하기 위해서 삽입한 조항이다. 하지만 이를 감안한다 해도, 여기에는 청소년에 대한 중대한 편견이 포함되어 있다. 바로 청소년은 혼자서, 주체적으로 이러한 일들을 할 수 없는 ‘미성숙한’ 존재고, 만약 한다고 해도 이는 어른들에게 ‘이용당한’ 것이라고 해석하는 전제다. 차명계좌만 해도, 청소년뿐만 아니라 금융실명제가 확립된 지금도 다른 사람 명의를 도용해서 돈세탁을 하는 일이 종종 있는데, 왜 어른의 계좌 개설은 청소년만큼 규제하지 않을까? 부동산 거래 역시 마찬가지다. 또한 고용노동부나 각 지역의 노동청은 실제 청소년이 어떤 환경에서 노동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서, 청소년의 노동 행위에 친권자 동의만 받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처럼 생각하고 있다.


학교와 가정만이 청소년을 제약하지 않는다. 청소년을 주체적인 존재로 보지 않는 사회가 궁극적으로 청소년을 옥죄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청소년에게 민증을 만드는 일은 곧 자신이 자유로워지는 것과 동일한 행위로 받아들여진다. 민증을 만드는 것이 자기에게 궁극적인 자유를 주지 않고 오히려 국가에 자신을 예속시키는 일이라는 사실은, 청소년에게 중요하지 않다. (그 전에 정부에서 이를 말하지도 않고, 이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소수다.) 성인이 되는 순간 당장 이것도 할 수 있고, 저것도 할 수 있는데, 그것을 보장하는 증이 곧 자기한테 주어진다는 데 어떻게 그 열망을 막을 수가 있을까?


하루가 멀다 하고 인터넷 어느 사이트에서 주민등록번호가 유출됐다느니, 어디서 뭐가 도용됐다느니 하는 보도가 터져나오지만, 다들 그러려니 하는 눈치다. 어쩌면 한국 사회에서 주민등록제도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많은 비판을 듣거나 제대로 퍼지지 않는 것은, 한국인 전체의 25%를 차지하는 청소년이 주민등록증을 ‘해방’과 ‘자유’로 받아들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청소년의 인권이 계속 억압받는 상황 속에서 정부와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이에 별다른 문제를 느끼지 못하고 있고, ‘민증’은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 곳곳의 학교와 동사무소에서 지문날인을 거쳐 발급되고 있다. 이렇게 공고한 구조 속에서 한국의 청소년은 오늘도 주체성을 얻지 못하고, 정보인권을 훼손하는 주민등록제도는 많은 비판을 얻는 와중에도 계속 굴러간다. ‘민증’은 청소년을 자유롭게 하지 않는다. 대신 또 다른 억압의 길로 인도할 뿐이다.



<스카이젯>




Posted by 오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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