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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8.05 [7면] [사노라면] 힘의 방향 by 오승희
 아마 대한민국의 학생들, 혹은 학생이었던 사람들이라면 아마 한 번쯤이야 들어보지 않았을까 싶은 말이 있다. 이 말은 주로 교과서나 각종 수업 준비물을 미처 확보하지 못했을 시 주로 듣게 되는 것으로, 아마 이 말을 들으며 분노의 불길을 태워보지 않은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 필자의 의견이다. 이 역사 깊고 유세 있는 문제의 말은 바로 이것, "군인이 전쟁터에 총 안 가져가는 거 봤냐?"이다. 동의하지 않는다면 할 수 없지만, 동의하는 사람들이 적어도 반은 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측해본다.

 이 말을 기초로 해 약간의 첨삭, 수정을 거쳐 듣게 되는 말들은, 굳이 따지자면 상당한 어폐가 있다고 생각된다. 물론 분명 수긍 가는 점도 있으며 저런 말을 듣는 상황 자체가 청자의 실수로 인한 것이 대부분이니 딱히 상황에 맞지 않는 말의 인용도 아니다. 하지만 듣고 있으면 상당히 짜증이 나는 것도 사실이다.

 일단, 목숨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총과 평범한 일상생활의 소품인 수업 용품에는 상당한 격차가 있다. 물론 학교와 교실도 나름대로 목숨을 걸어야하는 장소임에도 틀림은 없지만 극한 상황인 전쟁터의 필수품인 총과 교과서, 필기구를 비교하는 것은 상당히 힘들지 않을까. 정말이지 극단적이고 너무도 비약적인 비유가 아닌가. 물론 이 이유보다는 그저 본능적이라 해도 좋을 반감과 반항심에 짜증을 내는 것이 더 큰 이유일 것도 같지만. 이것은 쓸데없는 억압이다.

 무슨 의미인가는 일단 제쳐두고, 이 이야기도 그렇게 재미없는 주제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필자가 진짜 하고 싶은 얘기는 다른 쪽이다. 이걸 격언이라고 해야 하는지, 명언이라고 해야 하는지, 아니면 단순히 흘러 다니는 말이라 해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순간의 굴욕을 참지 못하고 목숨을 내던지는 것은 멍청한 짓이다."라는 말. 소설이나 만화를 즐겨보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보지 않았을까 싶은 말이다.

 어떻게 인용한 것이라 설명해야 하는 지는 애매하지만, 이 말이 구속적이고 압박감을 선사하는 학창생활이나 괴로운 세상살이에 대한 충고에 몇 번이고 인용되는 것을 들어봤다. 그다지 나쁜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학생이 학교생활을 참지 못하고 도망친다면? 억압된 현실보다 자신이 꿈꾸던 일을 하겠다며 박차고 일어선다면? 적어도 이 사회에서는 ‘상당히 힘겨운 생활’을 넘어서 실패를 향한 지름길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행동이 될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조금 이상한 비유가 될지 모르나, 그 순간의 폭발을 억누르지 못하는 것은, 일반론으로 보아 확실히 멍청한 짓이기는 할 것이다.

 그런데 그와는 반대로, 필자가 흥미롭게 본 만화책에서 나온 인상 깊은 말이 있다. "도망쳐 도착한 곳에 낙원은 없다."라는 말이다. 위의 말과 이 말은 꽤 많이 흘러 다니는 말이지만 어떻게 보면 서로 상반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굴욕을 참고 목숨을 건지라는 말. 그리고 안위를 위해 도망친 곳에 행복은 없다는 말.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굴종해 흐름대로 살아가는 것. 이것을 도망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낙원이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곳이라고 해석한다면, 위에 언급한 경우들은 행복을 포기하고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훗날에는 행복할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현 사회상을 보며 꼭 그것도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언급한 두 말들의 주관적인 해석과 빗댐은 그렇다 치더라도, 생각해보면 그 말이 인용되는 부분을 거꾸로 뒤집어도 말이 들어맞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실에서 도망치려는 사람들에게 도망으로 행복은 구할 수 없다는 말이 잘 들어맞을 것이다. 목숨이라는 단어를 좀 순화한다면, 당장의 굴욕은 있더라도 실질적인 이득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는 다른 길을 찾으라는 식의 비유도 가능하다. 결국, 알아서 써먹기 나름이다.

 이건 말의 양면성이며, 동시에 현실의 양면성이다. 동시에 어느 쪽으로 향하든지 그것은 스스로의 판단이자 의지라는 것도 깨달을 수 있다. 이것은 하나의 스프링, 용수철과 같다.

 이백 원짜리 볼펜을 분해해 안의 작은 용수철을 꺼내 가지고 논 기억이 있다. 그 끝은 대부분 억누르는 힘에서 해방되어 허공으로 솟아오른 용수철의 실종으로 끝을 맺었는데, 여기에서 양방향으로 흐르는 힘에 따라 날아갈 방향을 정하는 용수철의 성질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위에서 언급한 현상들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써먹기에 따라서 어느 방향으로든 날아갈 수 있다.

 일단 용수철이 힘을 가지려면, 자신을 억누르는 힘이 필요할 것이다. 이것은 사회의, 제도 등등의 현실의 억압이다. 그리고 스스로의 의지나 미래의 희망, 삶의 즐거움도 억압과 상극을 이루는 힘이다. 이 압력들이 좋은 균형을 이룬다면, 용수철은 힘을 모은 채로 세상에 머물 수 있다. 그러나 이 압력이 너무 강하거나, 균형을 이루지 못한다면? 용수철은 머금은 힘을 한 방향으로 거칠게 표출할 것이다. 혹은 완전히 능력을 상실할 것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현 사회의 압력들은 전혀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균형을 이루고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도 긍정적 압력과 부정적 압력이 균형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양쪽 모두에서 부정적 압력이 가해져 억지로 균형을 이루고 있다.
어쨌든 용수철은 모은 힘을 폭발시켜 힘을 얻기 위한 용도를 가지고 있다. 용수철을 꾹 눌러 어디론가 그 힘을 분출해 날아가게 하려면 무엇들이 필요할까? 바로 강한 지지대다. 위에서 말한 긍정적 압력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용수철은 자신을 받쳐줘 방향을 잡게 해줄 지지대가 필요하다. 지지대가 약하거나 존재하지 않는다면, 용수철은 힘을 발휘하지 못하거나 엉뚱한 방향으로 사라질 것이다.

 사람들은 용수철의 방향을 잡아나간다. 압박적인 현실을 지지대로 삼아 이탈, 일탈할 수도 있고, 자신의 의지나 미래의 희망 등을 지지대 삼아 오히려 현실 속으로 거칠게 날아들 수도 있다. 그 어느 쪽, 양면의 어느 쪽을 고르더라도 용수철은 날아오른다. 바로 양방향성. 의지와 각오로 만들어낸 지지대에 따라 어느 쪽으로든 날아갈 수 있다.
어느 쪽이 옳다고 할 수 있을까? 증오스런 현실, 현실에서 얻을 수 있는 미래와 안정. 이 둘 중에 어느 지지대를 선택하더라도 각각 나름대로의 길이 존재할 것이다. 그것을 판단하는 것은 용수철의 소유주 스스로이다. 누구나 명심했으면 한다. 힘을 지닌 용수철은 누구나 가지고 있으며, 우리들은 그것을 원하는 방향으로 쓸 수 있다. 그 누구라도. 모든 사람들이 자신만의 올바른 방향을 잡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어떤 종류의 국민들과, 주로 학생들을 둘러싼 존재들에게 말하고 싶다. 용수철은 강하게 억누르면 억누를수록 거세게 반발한다. 그 여러 존재들로서는 용수철이 힘을 현실로 뿜어내 자신에게 힘을 더해주기를 기대할 것이다. 그렇다면 너무 억압하지 말라. 너무 거센 압력은 용수철을 아예 망가뜨릴 것이다. 혹은 완전히 잘못된 방향으로 날아가게 할 수도 있다. 그것에 주의했으면 한다. 용수철이 자신이 원하는 방향을 찾을 수 있도록, 그리고 적절한 힘을 모을 수 있는 사회의 힘을 기대한다.


평택한광고등학교 김정욱
Posted by 오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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