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인권 종결자
『인권, 교문을 넘다 - 학생인권 쟁점탐구』


공현



"두발자유는 머리카락의 자유인가?"

  두발규제에 맞서서 두발자유를 외치는 학생들이 아마 한 번씩은 들어봤을 법한 말. "머리카락 같은 사소한 거에 신경 쓸 시간에 공부나 해!" 그런 개념 없는 소리에 맞서기 위해 두발자유 시위 때 이런 표어도 나왔더랬다. "잘리는 건 단순히 머리카락이 아니라 인권입니다." 하지만 좀 더 발칙하게, 이렇게 질문으로 답해보면 어떨까? "그게 그렇게 사소한 거면 왜 그렇게 열심히 규제하고 단속하세요?"

  새로 나온 학생인권 책, 『인권, 교문을 넘다 - 학생인권 쟁점탐구』(한겨레에듀. 인권교육센터 들 기획. 공현, 박민진, 배경내, 오혜원, 정주연, 조영선 함께 씀.)는 바로 그런 발칙한 질문과 그 질문에 답을 찾는 과정의 결실이다. 왜 학교에서는 그렇게 학생인권을 규제하고 침해하는 데 열을 올릴까? 학생들이 이런 인권을 보장받게 되면 대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이 권리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이런 질문들을 던져나가면서 학생인권의 여러 쟁점을 탐구하는 것이 이 책의 중심 내용을 이루고 있다.

  책의 본론 격인 2부, 그 중에서도 첫 장의 소제목, "두발자유는 머리카락의 자유인가?"는 그런 책의 성격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 두발규제는 단순히 머리카락을 규제하겠다는 것이 아니요, 두발자유는 단순히 머리카락의 자유가 아니다. 독재자 박정희 대통령은 왜 장발단속을 했는지 보수적 억압적 정부가 들어선 이슬람권에서는 왜 사람들에 대한 두발복장규제가 강화되는지, 1987년 노동자 투쟁 때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의 첫 번째 요구사항은 왜 임금 인상이 아닌 두발자유였는지, 풍부한 사회적 비유와 대조를 통해 두발자유 쟁점의 의미를 탐구한다. 이 책은 두발자유의 당위성을 주장하기보다는 두발규제와 두발자유의 의미를 비교하고 탐구하는 형식을 취한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인권, 교문을 넘다 - 학생인권쟁점탐구』 2부는 두발규제, 체벌, 강제야자, 교복․복장, 휴대전화, 양심의 자유, 집회의 자유, 연애, 총 8가지 학생인권의 뜨끈뜨끈한 주제들을 꺼내서 요리한다. 그 목차는 다음과 같다.

① 두발 자유는 머리카락의 자유인가? | 한낱 머리카락에 학교가 그토록 목매는 이유
② 맞을 짓 한 자? 맞아도 되는 자! | 체벌과 폭력 사이
③ 우아한 거짓말과 구차한 양심 | 양심의 자유, 사뿐히 지르밟고 가시더이다!
④ 접속 금지, 발신 금지 | 휴대전화와 함께 추방되는 것들
⑤ 교복은 메시지다 | 복장 단속, 무엇을 단속하는가?
⑥ 도둑맞은 시간과 비어 있는 시간 | 강제 보충과 야자는 누구를 울리나?
⑦ 중립이라는 감옥, 정치적 미성숙의 감옥 | 집회의 자유는 학생의 삶을 어떻게 바꿀까?
⑧ 사랑은 아무나 하나 | '연애질', 금지된 것을 꿈꾸다



"화장실"에서부터 질문은 시작된다


  서론 격인 1부도 가볍게 읽어 넘기기에는 좀 만만치 않다. 1부는 화장실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교직원 화장실을 몰래 쓰는 재미로 학교 다니는 학생 이야기다. 그냥 시설이 좋아서 몰래 훔쳐 쓰는 게 아니다. 쓰고 나오면서 꼭 이런 것들을 붙여놓는다. "우리 학교 교사 수는 50명인데 화장실은 3개! 학생 수는 1000명이 넘는데 화장실은 몇 개일까요?" 같은 질문에서부터, "3층 남자 화장실 변기가 고장난 지 2개월째인데 수리도 안 해주고 있다!" 같은 고발까지.

  『인권, 교문을 넘다』는 어떤 화장실을 쓰느냐, "똥 쌀 권리"를 얼마나 어떻게 보장받고 있느냐, 거기에서부터 인간의 존엄성의 한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렇다. 화장실 뿐 아니라 중앙현관 학생 출입금지 같은 사소한 곳, 교무실 청소를 왜 학생들이 하느냐 하는 작은 불합리에서부터 학생들의 자기 처지에 대한 인식은 시작된다.

  이처럼 화장실로 시작한 1부에서는 동방신기 팬클럽 이야기, 무상급식과 학생인권조례 사이의 간극에 대한 이야기, 개학반대 시위 이야기 등을 거쳐서 학생인권의 봉인을 풀어나갈 질문들을 던진다. 그 질문들을 스스로 자문하다보면 어느새 학생인권에 대해 자기가 가지고 있던 '프레임'(생각 틀)들이 변화해가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학생인권이 넘어설 것들


  마지막 3부 "학생인권 논리탐구"에서는 학생인권을 이야기할 때 흔히 맞닥뜨리게 되는 여러 이야기들에 관한 논리들을 모았다. 부모 문제(친권), 미성숙, 법치주의, 보호주의, 교권 등등. 그리고 마지막에는 학교 안의 소수자와 차별 문제까지. 학생인권을 이야기할 때 우리가 넘어서야만 하는 것들, 좀 더 근본적인 관점에서 다시 이야기해야 하는 것들을 큰 틀에서 짚어주고 있다.

  긴 말 필요 없이, 다음과 같은 구절들을 직접 읽어 보자.

"미성숙은 말 그대로 성숙하지 못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사람은 달걀 프라이가 아니니 어디까지가 반숙인지 완숙인지 구분하기란 불가능하다. 겉으로 완벽해 보이는 사람도 어딘가 미숙한 구석이 있게 마련이고, 오히려 정신이 성숙하지 못한 사람들이 겉으로는 센 척, 성숙한 척하는 일도 많다. …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에서 어떤 사람을 성숙하다고 여기고 어떤 사람을 철없는 사람으로 여기느냐, 곧 성숙을 판가름하는 기준이 무엇이냐를 살펴보는 일이다."(pp.243-244.)

"보호의 반대말은 방임이 아니라 '자유'가 아닐까? 청소년이 자기 힘을 기르고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도록 하는자유 말이다. 그런데 자유는 단순히 '간섭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지원을 요구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 보호주의를 넘어서자는 말은 청소년에게 홀로서기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청소년들을 울타리 안에 꽁꽁 가둬 두는 보호주의에 묶여 있는 한, 청소년에게 정말 필요한 사회적 지원이 뭔지를 보지 못하게 된다는 이야기다."(p.260)

"교육이 전투가 될 때 교사의 전투력을 떨어뜨리는 듯 보이는 학생인권이 환영받을 수 있을까? 학생의 인권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교사의 통제력이라는 생각이 힘을 얻는 것 아닌가?"(p.264)

"학생인권을 주장하는 것은 학부모가 가진 것을 빼앗아 오자는 것도 아니고, 학부모를 학생의 삶에서 밀어내고 간섭하지 말라고 외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학부모의 위치를 제자리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는 이야기이고, 학생과 학부모가 같이 살아가기 위해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 학부모가 주인공으로 나설 무대는 자신의 삶이어야 한다. 학생인권은 이렇게 자녀의 삶에만 붙잡힌 채 자기 무대를 잃어버린 학부모도 자유를 되찾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함께 건네고 있다."(p.293)

"학교에서 인정하는 능력은 공정한 경주와 노력의 결실로 이야기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승패가 이미 예정되어 있는 경주를 공정하다고 말하고, 뒤처지거나 패배한 이들이 자기 탓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야말로 폭력이고 숨겨진 차별이 아닐까? 학교에서 인정하지 않는 능력, 돈이 되지 않는 능력을 가진 이들을 무능력하다고 얘기해도 될까?"(p.302)



학생인권 종결자


  현재 시점에서, 『인권, 교문을 넘다』는 "학생인권 종결자"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을 만한 책이다. 적어도 지금까지 학생인권에 관해 논란이 되었던 이야기들을 모두 그러모아서 이토록 넓고 깊게 파헤친 책은 이제껏 없었다. 물론 앞으로 학생인권이라는 사회의제가 더 많은 내용, 더 풍부한 이야깃거리를 가지게 되면 이 책도 부족한 부분을 많이 드러내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때까지는, 이 책이 학생인권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읽어야 할 바이블(Bible)이자 교과서 역할을 해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나 역시 책의 공저자 중 한 명으로서 더욱 그런 기대를 가지고 있다. 이 책의 내용을 뽑아내기 위해 워크샵을 하고 집필을 하는 데는 대략 1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지만, 사실 이 책에 담긴 내용은 6년, 아니 10여년의 세월 동안 학생인권을 이야기하고 발로 뛰어온 사람들이 궁리해내고 토론하면서 만들어낸 것들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교사들이나 학생들, 학부모들이 수능 문제집을 풀 시간, 취업 준비를 할 시간, 입시전형을 알아볼 시간 중 아주 조금만 할애해서 이 책을 읽는다면 학생인권 현실은 좀 더 나아질 수 있을 것이다. 또 중간중간에 제시하고 있는 더 이야기해봐야 하는 토론거리들을 가지고 같이 토론을 한다면 학생인권에 대한 더 풍부한 논의가 가능해질 것이다. 그 토론 페이지 역시 뻔하게 "두발규제가 필요할까?" 같은 게 아니라 "연애할 자유를 보장하면 여성 청소년들이 차별을 당하거나 피해를 겪는 일이 늘지 않을까?" 같은 섬세한 질문이나 "남을 모욕하는 말을 내뱉는 것은 양심의 자유 차원에서 어떻게 볼까?" 같은 어려운 질문까지, 학생인권에 대해 좀 더 앞으로 나아가고 구체화해야 할 고민지점들을 짚고 있다.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사람들은, 당연하게도 학생인권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이다. 책 디자인 자체도 학생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일러스트와 만화 등을 풍부하게 실으려고 노력했다. 학부모 분들도 읽으시면 좋다. 그렇지만 집회의 자유 보장이 빨갱이들의 음모라는 식의 무개념하고 얕은 소리가 버젓이 한국 1, 2위를 다툰다는 '정론지'에 실리는 현실에서는, 일단 그런 칼럼을 쓰는 기자들이나 교수들 먼저 이 책을 읽혀야겠다 싶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제안하자면, 학교를 졸업할 때,(재학 중에는 싸움 거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으니까) 학생들을 '잡는' 교사들에게 이 책을 졸업 선물로 선물해보는 건 어떨까? 이명박 대통령이나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그밖에 교육감들이나 장학사들, 교장들에게도 읽히고 싶다. 자기가 하는 일이 무슨 의미인지, 학생인권이 뭔지, 개념 탑재가 좀 될 수 있도록.



추신 : 책이 오탈자가 좀 많다. 급하게 편집, 디자인을 하다 보니 생긴 문제 같다. 1쇄가 다 팔리고 2쇄가 나올 땐 가능한 한 고쳐져 있길!

Posted by 오승희



우리는 늘 홀로코스트와 대면한다


어릴 때부터 국사나 사회 같은 과목들을 좋아했다. 내가 전부라고 여기며 살아온 세상이 사실은 아주 좁은 세상임을 알았을 때의 ‘놀라움’이, 나보다 훨씬 이전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엿본다는 ‘짜릿함’이, 내가 태어나기 이전에 벌어졌던 역사적 사건들이 준 ‘전율’이 아마 내가 사회 과목을 좋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들이리라.

아주 나른한 오후의 수업 시간이었다. 쏟아지는 졸음을 참아 가며 힘겹게 사회 교과서를 뒤적거리고 있을 때, 내 눈에 짧은 토막글 하나가 들어왔다. 그것은 ‘홀로코스트’에 관한 이야기였다. 사회 선생님은 제2차세계대전 당시 히틀러와 나치가 ‘열등한’ 유대인들에게 저질렀던 만행을 비판하며 열변을 토했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역사적으로 반복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 노력해야 한다는 말로 수업을 마무리했다. 그때 그 수업에서 느낀 감정들은 뭐랄까. 이전까지 국사나 사회 시간에 느꼈던 기분 좋은 놀라움이, 짜릿함이, 전율이 아니었다. 그것은 기분 나쁜 공포였고, 분노였고 소름 돋는 불쾌함이었다.

참 무서웠다. 그렇게 타인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은 그들의 ‘아무렇지 않은 듯한’, ‘당연한’ 행동이 무서웠다. 그래서 참 부끄럽게도 나는 ‘홀로코스트’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마다 늘 생각했다. 이런 일들이 나에게 일어나지 않음에 참으로 감사하다고.

솔직히 말하면, 그렇게 믿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한마디로 말해서, 난 착각하며 살아온 것일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사실 어쩌면, 우리는 순간순간마다 또 다른 홀로코스트와 대면하고 있었던 것일 수도 있다. 나치가 홀로코스트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선례를 남긴, ‘사회에 해가 되는’ 부류를 신속하게 추방하고 배제하는 방식을 가장 잘 실천하고 있는 곳은, 아마도 오늘날 대부분의 청소년들이 다니는 ‘학교’라는 공간일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나는 학교를 그만두고 아수나로라는 청소년인권단체에서 활동하며 나름대로 청소년인권운동이란 것을 한다고 헐떡대며 살아가고 있다. 하는 일 덕분인지, 다양한 고민과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청소년들을 수없이 만난다. 얼마 전 이른바 언론에서 ‘40명 퇴학’으로 시끄러웠던 경기 남양주 K고등학교 학생회 임원인 성민이도 그렇게 아수나로를 통해서 만나게 되었다.



홀로코스트 인 스쿨


지난 5월 22일, 아수나로 남양주지부 회의가 있었다. 그날 성민이는 우리를 찾아왔다. 회의 내내 조용히 듣고만 있던 성민이는 회의가 마무리되어 갈 때쯤 자기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우리에게 꺼내 놓았고, 성민이의 얘기에 나를 포함한 지부의 모든 활동가들은 “헐!”을 외칠 수밖에 없었다.

성민이의 말에 따르면, 올해 개교한 성민이네 학교는 개교한 지 한 달 만에 처음 퇴학당한 학생이 나왔고, 석 달이 된 지금까지 교칙 위반으로 무려 20여 명의 학생이 강제 자퇴나 전학으로 학교를 떠났으며, 그렇게 많은 학생들이 학교를 타의적으로 떠나게 만들었던 교칙이 제대로 개정될 기미가 안 보인다는 것이었다. 더 큰 문제는 그 교칙이 그대로 적용된다면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어 있는 20여 명의 학생들이 또다시 학교를 떠나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란다. 학생이 학교를 떠나는데 참으로 큰 ‘공’을 세운 교칙의 조항은 벌점이 70점 이상이면 자퇴나 전학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 흡연 및 담배나 인화물 소지 4회 이상 적발 시 역시 자퇴나 전학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경기도교육청에서는 각 학교에 학생인권조례안을 반영한 〈학생생활인권규정〉을 5월 27일까지 제·개정하라는 공문을 내려보낸 상태였고, 학교 측은 이를 알고 있었음에도 학생회 임원인 성민이에게 “학생회 측에서 학생, 교사, 학부모용 설문지를 만들어 결과를 가져오지 않으면 규정에 인권조례 반영은 없다”는 식으로 배짱을 부리고 있던 상태였다. 게다가 학교는 교칙을 제·개정해야 한다는 사실마저도 마감을 2주일 정도 앞두고서야 학생회 측에 알렸다. 그 사실을 안 후 1주일 정도 임원 연수에 참여해야 했던 학생회 쪽에선 사실상 교칙 제·개정을 준비할 수 있는 기간이 단 1주일밖에 없었다. 학교 측의 요구가 부당한 걸 알고 있지만 도저히 다른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성민이는 애가 탔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생회 임원으로서 성민이는 큰 부담을 느꼈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학교 측 몰래 우리를 찾아왔다고 한다.

고민이 깊어졌다. 지부의 활동가들이 머리를 모았다. 일단 시급한 문제는 수많은 학생들이 학교를 떠나도록 한 교칙을 하루 빨리 개정해 더 이상 학생들이 학교를 그만두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나와 성민이는 한 팀이 되어 일을 추진하기로 했다.

새벽 5시까지 뻑뻑한 눈을 비벼 가며 설문지를 만들었다. 쟁점이 되었던 두발과 복장, 상벌점제, 핸드폰 수거 등에 대해 학생, 교사, 학부모에게 의견을 묻는 설문지였다. 문항마다 관련이 있는 학생인권조례안 조항도 함께 집어넣었다. 그러나 학교 측은 조례 항목을 삽입한 것을 두고 “편파적”이라며 설문지 배부를 불허했다. 우리는 알 권리 침해라며 반발했다. 맥이 탁 풀렸다. 성민이와 나는 밤늦게까지 어떻게 할지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다. 결국 그 다음 날, 우리는 설문지 ‘배부’를 위한 서명운동을 진행했고, 설문지 배부는 뒤늦게 그날 오후가 되어서야 허가가 됐다(서명운동의 힘이라기보다는 그날 오후 퇴학 사태와 관련해 터진 언론 보도 때문이라는 생각이 미친 듯 솟구쳐 오르긴 했다). 우리는 오전에 전교생에게 설문지를 돌리고 오후에 수거해 밤새도록 통계를 냈다. 다음 날 바로 교칙 개정 심의위원회가 있어 당일 아침까지 통계 자료를 만들어야만 했다. 그날 오후 드디어 교칙 개정 심의위가 시작됐다. 심의위에 참가한 교사들은 어떻게든 빨리 대충대충 끝내 보려 했지만 성민이를 비롯한 학생회 임원들이 끝까지 물고 늘어지다 보니 회의 시간만 7시간을 훌쩍 넘겼다. 1주일 동안 그렇게 고생했는데 대충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회의가 끝나고 동네 벤치에 성민이와 나란히 앉아 개정된 교칙을 뜯어 봤다. 벌점으로 인한 퇴학 조항과 문제가 됐던 흡연 관련 규정이 사라졌다. 일주일 만에 처음으로 기쁨의 웃음이 나왔다. 더 이상 친구들이 학교를 떠나야 하는 것을 그저 손 놓고 보고 있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었다. 성민이는 연신 나에게 고맙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러나 기쁨도 한순간뿐이었다. 교칙 개정 결과가 아무리 잘 나오면 뭐 하나. 이미 학교를 떠난 그 많은 학생들이 다시 학교로 바로 돌아올 수 있는 건 아닐 텐데. 학교를 그만둬야 했던 학생들을 만나 얘기를 들어 보고 싶었다. 사실, 한편으로는 자신이 없었다. 누군가에게는 핑계로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힘들었다. 교칙 개정으로 이미 힘이란 힘은 다 빠진 상황이었고, 그 친구들이 학교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 하는지조차 모르는 상황이었다. 쓸데없는 고민만 하다 시간이 흘러갔다.



너를 통해 나를 보다


그러던 어느 날, K고 퇴학생이라는 태희에게서 연락이 왔다. 태희는 학교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을 전했다. 친구들도 다시 돌아가고 싶어 한단다. 만날 약속을 정했다. 그렇게 우리는 처음 만났다. 학교에서 쫓겨나다시피 했던 ‘루저’와 학교가 싫어 제 발로 뛰쳐나온 ‘루저’는 그렇게 처음 만났다.

늦은 오후 시간, 우리는 조그만 회의실에 모였다. 태희를 비롯해 2년 정도 학교를 유급한 수진이, 퉁명스러운 태도로 회의 시간 내내 나를 힘들게 했던 지훈이, 핸드폰만 바라보던 태용이까지 4명의 퇴학생들과 학생회 대표로 성민이를 비롯한 학생회 임원 4명, 그리고 나, 이렇게 9명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모인 퇴학생들이 원하는 건 올해 2학기에 바로 복학하는 것. 학교 측에선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 1년 뒤에 다시 복학을 시켜 주기로 했지만 이들은 남들보다 1년만 늦어져도 영원히 밀려 나갈 것 같은 세상에서 시간을 죽이고만 있는 것 같아 불안해했다.

제일 먼저 퇴학생들에게 학교를 나오게 된 이유와 과정에 대한 진술서를 부탁했다. 말보다는 글이 편할 것 같았다. 종이를 한 장씩 나눠 주고 기다렸다. 이런저런 얘기가 튀어나온다. “내 벌점이 얼마였지?” 하는 질문부터 “길게 써도 돼요?” 하는 질문까지. 그렇게 모인 진술서를 차례로 읽어 봤다.

태희는 사실 이번에 모인 퇴학생들 중 유일하게 교칙에서 정한 퇴학 대상이 아니었다. 벌점이 퇴학 수준까지 쌓였던 것도 아니고, 흡연도 규정에서 자퇴나 전학 대상으로 정한 4회에 미치지 않았다. 그동안 자잘한 일들로 학생부장에게 ‘찍혀 있던’ 태희는 복도를 지나가던 중 화장한 것을 학생부장 교사에게 들키고 5월 중순쯤 바로 징계위원회에 회부됐다. 그날 바로 부모님도 학교로 소환돼 함께 징계위에 참석했다. 징계위가 끝나고 수업을 받던 태희에게 담임교사는 전화를 걸어 “10일 안에 자퇴서를 내든지 퇴학을 당하든지 결정하라”고 했다. 학교 측은 이 과정에서 퇴학 조치에 이의가 있는 학생과 보호자가 조치를 받은 날로부터 15일 이내 또는 그 조치가 있음을 안 날로부터 10일 이내에 ‘시·도학생징계조정위원회’에 서면으로 재심을 청구할 수 있는 ‘퇴학조치재심청구제도’나 ‘학업중단숙려제도’가 있음을 전혀 알려 주지 않았다. “그럼 10일 동안은 학교에 등교해도 되냐”는 태희의 물음에 교사는 “안 된다”고만 단호히 대답했다.

그렇게 태희는 자퇴서를 써냈다. 당장 10일 안에 전학 갈 학교를 찾을 방법이 없어 퇴학보단 나을 것 같아 자퇴를 할 수밖에 없었다. 태희를 비롯해 참석한 학생들이 자신을 자퇴생이 아니라 ‘퇴학생’이라고 하는 이유다. 그러나 자퇴 이후 다른 학교를 찾으려고 해도 이미 소문이 났는지 학교들은 태희를 받아 주지 않았다. 태희가 원서를 낸 한 예고에선 태희 부모님께 전화를 해 “여기는 문제아들이 재기할 발판을 제공해 주는 곳이 아니다”라며 입학을 거부했다.

지훈이는 교사로부터 체벌을 받는 과정에서 욕설을 내뱉었다. 그런 식으로 쌓인 벌점이 140점을 넘어 지훈이 역시 5월 중순쯤 태희와 똑같은 방식으로 자퇴를 결정했다. 지훈이는 학생부장 선생님에게 자신이 찍힌 상태라 친구들과 함께 욕을 해도 자기만 불려 가서 혼이 났다고 말했다. 태희의 말에 따르면 학생부장 교사가 자기나 지훈이를 포함해 몇몇 요주의 인물을 찍어 두고선 그들에게 집중적으로 벌점을 부과하려 했다고 한다. 어떨 땐 주의나 반성할 시간을 전혀 주지 않고 바로 벌점부터 매긴 뒤 자신들에게 통보만 해 준 적도 있다.

수진이는 흡연 사실을 네 번 적발당해 바로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었다. 담임교사는 수진이에게 역시 퇴학보단 자퇴나 전학이 더 좋을 거라고 했단다. 수진이는 근처에 있는 미용고에 전학을 가려 했지만 입학을 거부당해 어쩔 수 없이 자퇴서를 썼다. 태용이는 지각과 결석으로 벌점이 70점을 넘었다. 자퇴나 전학 대상이었다. 교사가 어머니께 전화를 걸어 자퇴나 전학을 하지 않으면 퇴학을 시킬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단다. 그렇게 태용이도 4월 말쯤 자퇴서를 냈다. 이 학생들도 모두 태희와 마찬가지로 ‘퇴학조치재심청구제도’나 ‘학업중단숙려제도’에 대해 학교로부터 전혀 안내받지 못했다.

퇴학생들의 진술서를 꼼꼼히 모두 읽고 나니, 이건 태희와 지현이, 지훈이와 태용이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건 나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래서 더 익숙했고 그만큼 더 마음이 아팠다. 태희의 진술서를 읽으면서는 특히 학교가 참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그때 저는 많은 부분을 고친 상태였어요. 화장도 안 하려고 노력했고, 복장을 제대로 갖추기 위해 더 신경 쓰고, 학교가 원하는 대로 했는데 그렇게 고친 모습의 나를 보고도 학교는 자퇴나 퇴학만을 물었어요. 그것도 전화 한 통으로.”

이미 찍혀 버린 문제아여서일까. 모난 돌이어서일까. 학교는 학생들을 학교 밖으로 내모는 것에만 집중했다. 그렇게 그들이 학교를 나오는 과정에서 겪었을 상실감, 분노, 실망. 그건 내게 너무 익숙한 감정들이었다. 그들의 모습 속에 내가 보였다.



학교, 루저를 만들어 낼 뿐


내가 학교를 때려치우고 나온 지 벌써 1년이 넘었다. 참 싫었다. 수요일마다 강제로 참가해야 했던 예배 시간이, 노랗고 구불구불한 머리를 걸리지 않으려 새벽 일찍 등교를 하거나 아예 수업 시작하고 등교를 해야 했던 일들이, 모두 참 싫었다.

편하자고 믿지도 않는 예수님을 향해 기도를 하고 꼬박꼬박 예배에 나가기는 자존심 상하고, 벌점 받기 싫어 까만 머리, 짧은 생머리를 하기엔 그건 내 미적 기준에서 볼 때 너무 찌질한 헤어스타일이라 날 때려 죽여도 학교의 취향에 맞출 수가 없더라.

사실 강제 예배나 두발 규제보다 싫었던 것은 학교의 태도였다. 교사에게 난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고 예배 시간에 책이나 읽겠다고 말하는 순간 들었던 “그럼 너 우리 학교 왜 왔니? 다른 학교 가지”라는 대답이, 두발 검사로 벌점을 받기 싫어서 “개성을 표현할 권리도 인권입니다”라는 말을 했을 때 돌아왔던 “학생한테 인권이 어디 있어?”라는 대답이 훨씬 더 싫었다. 나의 생각들을 아무리 말해 봤자 돌아오는 것은 허무함뿐이었다. 답답했다. 차라리 벽과 이야기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태희를 비롯한 퇴학생들은 학교 측의 퇴학 결정으로 어쩔 수 없이 ‘루저’가 되었고, 난 내 스스로 ‘루저’가 된 것이 차이라면 차이랄까. 자발적이든 강제적이든 그것과 상관없이, 어쨌든 학교가 학교에서 떨어져 나갈 루저를 적극적으로 만들려 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태희의 학교처럼 아예 대놓고 쫓아내든지, 아니면 내가 다닌 학교처럼 스스로 지치게 만들어 제 발로 나가게 하든지 하는 방식의 차이만 있을 뿐, 자기들이 정한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학생들을 학교 밖으로 내몬다는 점은 똑같았다.





지금, 여기에서의 홀로코스트



예전 그 사회 수업 시간에 홀로코스트에 대해 배웠을 때 느꼈던 불쾌함을 참 오랜만에 다시 경험해야 했다. 학생들의 진술을 통해서 보았던 학교의 태도, 내가 겪었던 학교의 태도 모두 히틀러나 나치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운다.

홀로코스트는 그리스어로 ‘완전히’라는 뜻의 holos와 ‘불태우다’라는 뜻의 kauston의 조합인 Holokauston이라는 단어가 어원이다. 그렇다. 완전히 불태웠다. 그렇게 히틀러와 나치는 유대인뿐만 아니라 공산주의자, 장애인, 소련군 포로, 국내 정치범 등 참 많은 사람들을 완전히 불태웠다.

참 무서운 일이다. 히틀러와 나치가 왜 이러한 일들을 저질렀는지에 대한 역사적 이유도, 배경도, 사실 이제껏 내가 신나게 떠들어 댄 이야기에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어떻게 죄 없는 ‘유대인’과 죄 많은 ‘퇴학생’ 따위를 비교하느냐는 비난도 중요하지 않다. 즉, 나는 ‘유대인=퇴학생’이라는 공식이 아니라 ‘나치의 방식=학교의 방식’이라는 공식을 우리가 보았으면 좋겠다. 나는 다만, 그들의 폭력적인 ‘방식’에 집중하고 싶을 뿐이다.

히틀러와 나치는 그들이 불필요하다고, 열등하다고 판단된 부류들과 함께 가려 하지 않았다. 그저 정말 광고 속 대사처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배제하고 제거하기만 하는 그들의 방식은 소름 끼치도록 무섭고 잔인하다. 그것이 누군가의 삶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될 때는 더 그렇게 느껴진다.

학교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유대인들은 목숨을 잃었지만, 퇴학생들은 ‘미래’를 잃었다. 자기 학교는 문제아들의 재기를 위한 발판이 아니라며 태희의 입학을 거부한 예고처럼 학생들이 다시 설 기회를 이 사회는 쉽게 주지 않는다. 어떤 학생들은 학교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접기도 했다. ‘복학 운동’을 준비하는 퇴학생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주변에 복학을 하고 싶어 하는 학생이 더 없냐고 물었더니 태희가 답했다. “연락이 안 되는 애들도 있고 어디로 전학을 간 아이들도 있고요. 그런데 연락 되는 애들은 이제 학교에는 완전히 정이 떨어졌다고, 안 돌아갈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그보다 더 슬픈 것은 그들이 느꼈을 잔인함이다. 태희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선생님들은 특히 나를 싫어하셨어요. 특히 학생부장 선생님이요. 내가 지나가면 잡을 게 없나 스캔하는 것 같았어요. 친구들이 오죽하면 그랬겠어요. 선생님이 너 자르려고 작정한 것 같다고.” 그렇게 자신을 믿어 주고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쳤어야 할 교사라는 존재가 줬던 그 잔인한 실망. 학생들은 실망을 넘어 환멸을 느꼈을 테다.

가정 이후 아마 최초로 경험했던 공동체였을 학교가 나를 거부했을 때의 그 아득함. ‘문제’가 있는 나이기에 내쳐지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학교에 대한 불신과 실망. 그 공허함과 환멸. 왜 우리는 그토록 잔인한 방식을 먼저 배워야 하는가. 학교와 나치의 다른 점이라면, 학교는 이 사회에서 보기에 그 이유가 좀 더 논리적이고 사람들한테 잘 먹힐 핑계거리가 더 많다는 것뿐. 나에게 이런 홀로코스트가 다시 반복되어선 안 된다고 말씀하셨던 그 선생님은 지금 이 사태를 어떻게 생각하실까. 이는 다른 문제라고 말씀하실까.

K고등학교에서 이토록 많은 학생들이 떠나야 했던 이유에는 아마 이 학교가 신설 학교라는 점도 한몫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올해 초 개교한 학교이다 보니 아무래도 초반에 분위기를 좀 잡는 게 필요할 것이고, ‘명문고 이미지’를 만드는 것도 좀 필요했으리라. 그렇게 마음먹고 나니 눈에 거슬리는 학생들이 한둘이 아니었겠지. 초반에 학교 이미지 잘 만들어 놓아야 나중에 착하고, 선생님 말씀 잘 듣고,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많이 오겠지. 그러기 위해선 학교의 명예를 더럽히는, 혹은 그럴 만한 학생들은 미리 잡초 뽑듯 걸러내 버려야 했을 것이다.

거기다 ‘그런 불량 학생들은 공부 열심히 하고 선생님 말씀 잘 듣는 착한 학생들이 학교생활을 하는 데 방해만 된다.’ 혹은 ‘교칙에 퇴학이라고 명시되어 있는데도 벌점이나 모으고 담배나 피우는 학생들은 공동체 생활을 하는 데 최소한의 기본마저 지키지 않은 학생들이기에 더 이상 우리도 손을 쓸 방법이 없었다’는 핑계 한마디면 무더기 퇴학은 아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딱 좋았을 것이다. 이미 그 잔인한 학교의 방식에 익숙해진 탓일까. 학교에 남은 학생들은 퇴학이 부당하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그들이 다시 학교로 돌아오는 것에 대해선 ‘무리’라고 말한다.

이렇듯 나치와 학교 모두 진짜 목적이 무엇이든지간에, 그들 독자적으로 어떠한 기준과 잣대를 세우고, 거기에 미치지 못하는 ‘루저’들을 가차 없이 제거한다는 점에서 같다. 그러나 담배 피우고 벌점 많은, 그런 문제 학생들이 학교를 떠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는 게 일부 보수적인 교사들만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처음 이 ‘무더기 퇴학’ 사건을 들었을 때, 지역 전교조 교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분은 바로 그런 일이 있었느냐며 펄쩍펄쩍 뛰시더니 당장 해당 학교 조합원 교사를 만나 진상을 파악하겠다고 하셨다. 얼마 후, 다시 연락이 왔다. 그런데 정말 진상 파악을 ‘잘’ 하고 오셨다. 문제아들을 지도해야 하는 교사들의 고충에 대한 진상 파악. “퇴학 부당하지. 부당한 거 아는데, 교사들도 힘들어. 복도가 쉬는 시간이면 담배 연기로 뿌옇대. 교사들도 많이 혼란스러워해. 학생들과 같이 끝까지 가는 것도 중요한데 교사들로서도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감이 안 잡히는 게 사실이야. 현장은 그렇지.” 앞서 말한 학교 교칙 개정 과정에 함께할 생각이 없냐는 내용으로도 전교조에 먼저 전화를 했다. 그때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과정이 어쨌든 교칙 개정 설문조사하고 심의위원회에 학생 대표까지 참여하면 학교 측은 충분히 학생 의견 반영한 거 아니냐. 더 이상 학교 측에 우리가 뭐라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어쨌든, 이 무한경쟁 사회는, 경쟁에서 뒤떨어지는 부류들과 함께 살아가기를 거부한다. 경쟁에서 뒤떨어진 부류라면, 혹은 필요 없거나 방해된다고 판단되는 부류라면 가차 없이 내버리는 이 사회에서 그들의 기준에 맞추지 못한 루저들은 그저 서럽고 고달프다. 왜 우리는 그런 루저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을 왜 이리도 어려워하고 불가능한 일로만 여기는 걸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우리는 그렇게 소위 ‘문제 있고’, 함께 살길 ‘원치 않는’ 루저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방법을 제대로 고민해 본 적조차 없다. 우리는 그저 소외시키는 것밖에 할 줄 몰랐다. 내모는 것밖에 할 줄 몰랐다. 버리고 가는 것밖에 할 줄 몰랐다. 우리는 좀 더 근본적인 이야기를 해야 한다. 우리가 어쩌면 무심코 당연하다고 여기고 넘어갔을 수많은 이야기들, 예를 들어, ‘청소년은 왜 담배를 피우면 안 되는가’ 또는 ‘상벌점제는 과연 교육적인가’라는 질문부터 시작해 그리고 마침내 루저들을 만들어 낼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에 관한 이야기들까지. 하지만 그 얘기까지 꺼내면 이 글은 끝이 나지 못할 것이다.

그들에게 ‘문제’가 있다면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함께 고민하고 또 고민하자. 그렇게 모두가 할 수 있는 길을 찾아가고 마침내 함께 걸어가자. 함께 가자. 우리가 걸어가려 하는 길에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있을지 잘 알고 있다.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해낼 가치가 있는 일임은 어느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은 학교가, 교사가, 또 학생 모두가 지혜를 모아야 하는 일이다. 서로 소통하고 존중하며 그렇게 반성하고 마침내 문제를 해결하는 그 과정 하나하나가 곧 배움이며 희망이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 과정이 지난하더라도, 지치고 힘겨운 길이라 할지라도, 그렇기에 이제는 고민을 시작해야 할 때다.

글을 마치며 ‘문제 있는’ 학교와의 싸움을 이제 막 시작한 ‘문제아’들에게 전한다. 태희, 수진, 지훈, 태용, 그리고 내 자신에게 전한다. 그대들은 세상의 모난 돌임에, 루저임에, 문제아임에 틀림없지만 그래도, 그 존재만으로도 참 소중한 사람들이라고, 그렇게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들이라고. 

혜원

※ 이 글은 <오늘의 교육> 7·8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 이 글에 등장하는 청소년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



Posted by 오승희



국회도서관은 청소년을 두려워 해?




전자책의 등장으로 종이책의 수요가 줄어들었지만- 국회 옆에 있는 국회도서관은 개관 60년을 바라보고 있는 중입니다. 60년 동안, 장소, 장서 수, 시스템 들이 개편됐지만, 아직 바뀌지 않은 것들이 많습니다. 그 중 하나가 제가 이번에 이야기할 주제입니다. 바뀌지 않은것들은 많지만- 제가 이야기 할 주제는, “청소년의 출입 제한” 문제입니다.

이 문제는, 국회도서관 운영 규칙(2010. 2. 24일 전부개정)에도 나와있습니다,

(가장 근접한 쪽으로 인용했습니다.)

제4조(대상자) 법 제2조제3항에 따른 도서관봉사를 받을 수 있는 대상은 대학생 또는 18세 이상인 자, 그 밖에 도서관자료가 필요하다고 도서관장이 인정하는 자로 한다.
                    (출처: 국회법률지식정보시스템)


국회도서관 홈페이지에도 잘 나와있습니다.

국회도서관 홈페이지- 자주 물어보는 질문
Q.고등학생인데 도서관을 이용하려고 하는데 가능합니까?
A. 국회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자료는 입법정책지원을 위한 전문서적 등으로 중·고등학생이 이용하기에는 부적합하므로 공공도서관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국회도서관의 열람대상은 다음과 같습니다.
- 전·현직 국회의원 및 국회소속공무원
- 18세 이상인 자(신분증 지참)
- 대학생(학생증 지참)
- 기타 도서관 소장자료가 필요하다고 관장이 인정한 자



이렇게 청소년이 입장 및 사용이 안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국립중앙도서관 역시 16살 미만의 청소년들은 이용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자, 이제 국회도서관이 주장하는 논리에 반박해본다면-

국회도서관 측에서는 청소년이 이용하기에는 어려운 전문서적들이 많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청소년 뿐만 아니라 어떤 사람에게도 일정한 잣대를 대서 당신이 어떤 책을 읽을 수 있나 없나 수준을 판별하긴 어려운 일입니다. 나이를 기준으로 하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또, 그게 도서관 이용을 금지하는 이유가 되는 것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또한 국회도서관은 출간하는 모든 서적을 의무적으로 납본해야하는 납본도서관입니다. 한국에서 나온 모든 책들이 다 있다는 겁니다.)

청소년이 들어간다면 청소년들이 시끄럽게 할 거라는 이유를 내세우기도 하는데요, 청소년들은 더 시끄럽게 굴 거라는 편견만으로 모든 청소년들의 권리를 막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도저히 도서관 이용을 할 수 없을 만큼 방해를 하는 사람들의 경우는 그 사람들이 도서관을 이용 못하게 하면 될 것입니다.

국회도서관을 18세 미만에게도 개방할 경우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는 논리를 대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무리 착각은 자유라지만, 진심으로 국회도서관이 그렇게 청소년들에게 인기가 많은 곳인 줄 아는 걸까요? 국회도서관에서 공부하면 서울대 간다는 소문이 나서 청소년들 수백명이 한꺼번에 찾아가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국회도서관은 청소년들에 대해 참 이상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18세 미만의 청소년들이 국회도서관을 이용하느냐 마느냐. 16세 미만의 청소년들이 국립중앙도서관을 이용하느냐 마느냐. 중요한 문제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국회도서관은 18세 미만은 이용할 수가 없는 거, 국립중앙도서관은 16세 미만은 이용할 수가 없는 거, 그게 그냥 불합리하고 억울한 겁니다.

국회도서관이 아까도 말했듯이, 60주년이 가까워지는 만큼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더욱 좋은 지식을 (지식에 질이 따로 있는건 아니지만) 차별 없이 제공할 수 있다면, 그것만큼 국회도서관의 의미가 강조될 수 있다면 정말 좋은 역할을 수행할 수 있지 않을까요?


Posted by 오승희



▲ 서울에서 셧다운제 반대 1인시위를 하는 청소년


▲ 전주에서 셧다운제 반대 1인시위를 하는 청소년



▲ 근로(학습)시간과 게임시간과의 상관관계를 표현한 그래프.

이것을 통해 과중한 노동과 학습이 게임 몰입에 기여함을 알 수 있다.



▲ 나이와 평일·주말 평균 게임 시간을 비교한 표


(그래프와 표는 2008년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자료에서 참조)





만16세미만 청소년들에게 반영되는 온라인게임 셧다운제가 국회를 통과했다. 올해 11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더군다나 모든 청소년들이 게임 사이트에 가입할 때 부모 동의와 본인 인증을 해야 하는 강력한 게임 규제도 도입되고 있다. 게임 과몰입에 대한 합리적인 또는 근본적인 대책 없이, 게임하는 걸 금지하려 달려드는 모습을 보니 이런 말이 절로 나온다. “이 얼마나 미성숙한 어른들인가!”


Posted by 오승희


  Intro

  쟝은 주변이 온통 하얀 세계에 서있었습니다.
쟝 "여긴 어디지?"
  쟝이 어리둥절한 목소리로 말을 꺼내자 갑자기 뒤에서 뭔가 기척이 났다.
??? “이봐.”
 쟝은 뒤를 돌아봤습니다. 거기에는 웬 괴상한 남자애가 있었습니다.
쟝 “!!!!! 넌?! 오승희 남자 버전? 그럼 여긴…”
오승희(학생인권조례) “그래 흔하디흔한, 어디에나 널린, "이건 꿈이다"라는 설정인 거지. 그리고 사실 나는 오승희(남)에 깃든 학생인권조례야.”
쟝 “학생인권조례?!”

▲ 오승희 남자 버전. 특히 팬시용으로 만든 특별판이다.

학생인권조례에 빙의당하여 특별출연.







 < 학생인권조례 >
많은 사람들이 학생인권조례가 여럿 있는 줄 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직 학생인권조례는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뿐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다른 모든 지역에는, 아직, 학생인권조례가 없다. 이제 곧 현직에 취임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지는 지역으로 서울, 강원, 전북 등이 꼽히고 있을 따름이다.
경기도 학생인권조례는 2010년 10월 5일 전국 최초의 학생인권조례로 취임했다.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시행의 주 책임을 갖고 있는 기관은 경기도교육청, 그리고 교육청 산하의 여러 기구들이다.(지역의 교육지원청 등등). 학생인권조례의 취임에 따라 새롭게 생겨난 직업으로 학생인권조례 담당 장학사라거나 인권옹호관, 학생인권심의위원, 학생참여위원 등이 있다.
취임한 지 10개월을 넘기고 있는 경기도 학생인권조례와 인터뷰를 시도해보았다. 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지고 취임하기까지의 과정, 쟁점이 되는 조항들에 대한 설명, 언론에서 제기되는 논란 등에 대한 뜨거운 이야기를 전한다.



쟝 “이봐, 아무리 기상천외한 직업들을 다룰 수 있다고 해도, 학생인권조례는 직업이 아니라고. 이건 조례, 법이잖아! 조례를 직업으로 다룰 순 없어!”

학생인권조례 “음 그렇긴 한데 오승희 편집진들이 "학생인권조례를 인터뷰하면 재밌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버렸거든. 넌 오승희 등장인물 중 유일한 인터뷰 전문직이잖아.”

쟝 “이상한 데 전문직이란 말 붙이지 마…. 이래도 되는 건가? 학생인권조례는 사람이 아니란 말야. 아아 이건 어쩐지 넘어선 안 되는 선을 넘는 느낌이 들어.”

학생인권조례 “다음 차례에는 표준적이면서도 신선한 직업 탐방 코너로 돌아갈 거라고 하니까, 이번만 좀 봐줘. 내가 이렇게 몸소 오승희에 빙의해서 만나러 니 꿈으로 행차해주기까지 했는데.”

쟝 “빙의는 또 뭐야, 빙의는.”

학생인권조례 “뭐 어떠냐. 공중파 TV에서 하는 드라마에서도 버젓이 빙의해서 눈에서 레이져를 쏘아대는 판에.”
(최근 방송이 종료된 임성한 작가의 괴작 <신기생뎐>을 의미.)

쟝 “Merde… 파업할까보다… 편집진 따위”
(Merde는 프랑스어로 "똥"이라는 뜻으로 영어의 Shit과 같은 욕이라고 보면 된다. 의역하자면 "젠장할", "썩을", "씨발" 같은 느낌이랄까.)

학생인권조례 “(애써 무시하고) 먼저 자기소개를 하지. 나는 유일한 현역 학생인권조례, 경기도 학생인권조례다.”

쟝 “네네, 그러시군요… 난 그냥 제 이상한 노동환경을 받아들이기로 한 쟝이라고 해. 프랑스에서 왔지. 그런데 당신은 어쩌다가 유일한 현역이 된 거야? 다른 지역은 어떻게 됐어?”

학생인권조례 “일단 한 마디 하자면, 사실 학생인권조례의 원조는 경기도가 아니야.”

쟝 “어? 그래?”

학생인권조례 “그래. 학생인권조례를 처음 제정하려고 했던 곳은 광주였어. 벌써 6년도 더 된 일이지. 그 다음에는 경남에서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하려고 했었고. 경기도는 시도했던 걸로는 세 번째야.”

쟝 “광주에서 처음 학생인권조례를 만들려고 한 건 왜 그런데?”

학생인권조례 “그게, 2000년대 들어서 학생들이 두발자유를 요구하고 종교자유를 요구하고 강제야자에 문제제기하는 등 많은 투쟁을 했거든. 학내시위도 여러 번 일어났고. 그런 모습을 보면서 학생들의 인권 내놓으라는 요구를 제도로 만들어보자는 이야기가 나오게 된 거지. 즉 나나 내 선배 격인 광주 학생인권조례(아직 현직은 아니지만…)도 학생들의 그런 활동의 결과물인 거지. 그리고 2010년, 여러 가지 상황의 작용으로 경기도가 학생인권조례가 가장 먼저 제정됐어. 그래서 내가 최초의 현직 학생인권조례가 된 거야. ㅋ 뭐, 경기도에서는 최초로 학생인권조례를 공약으로 걸었던 김상곤 교육감이 주민직선제로 당선이 됐던 탓이 컸지. 교육청에서 주도해서 안을 만들고 발의했으니까….”

쟝 “나도 학생인권조례 이야기하면 김상곤 교육감 어쩌구 하는 걸 신문에서 몇 번 봤던 거 같아. 그런데 학생인권조례 뭐 이런 걸 만들어야 할 정도로 경기도 학교에 학생인권 침해가 많나?”

학생인권조례 “그래. 가장 대표적인 예가 두발규제겠지? 그래서 처음에 경기도에서 이게 제정되었을 땐 학생들 사이에 <두발자유조례>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던데. 나에 대해 자세한 내용을 알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기도 하지만, 그만큼 학생들의 두발자유에 대한 뜨거운 마음을 알게 해주지. 그밖에도 강제야자나 체벌, 소지품 검사, 각종 차별, 학교 시설 문제 기타 등등. 하지만 경기도가 특별히 더 심했던 건 아니야. 사실 언론들이나 단체들이 눈을 반짝이고 있는 서울을 제외하면 다른 곳들은 다 비슷비슷한 편인 거 같던데? 아 뭐 그래봤자 서울도 오십보백보 수준이긴 하지만.”

쟝 “그럼 당신은 학교가 두발규제를 못하게 금지하는 일을 하는 건가?”

학생인권조례 “정확히는 학생은 두발 복장 등에서 개성을 실현할 자유를 가진다고 하고 있고, 그 다음에 학교는 학생의 두발 길이를 제한할 수 없다고 못 박고 있지.”

(제11조(개성을 실현할 권리) ① 학생은 복장, 두발 등 용모에 있어서 자신의 개성을 실현할 권리를 가진다.
② 학교는 두발의 길이를 규제하여서는 아니 된다.
③ 학교는 정당한 사유와 제18조의 절차를 따르지 아니하고는 학교의 규정으로써 제1항의 권리를 제한할 수 없다.
제18조(학칙 등 학교 규정의 제․개정에 참여할 권리) ① 학생은 학칙 등 학교 규정의 제․개정에 참여할 권리를 가진다.
② 학교는 학생의 인권을 존중하여 학칙 등 학교 규정을 제․개정하고, 이를 학교 홈페이지에 게시하여야 한다.
③ 학교는 학칙 등 학교 규정의 제․개정 과정에서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여야 하며, 학생회 등 학생자치기구의 의견제출권을 보장해야 한다.)



쟝 “뭐야, 그럼 길이만 제한할 수 없는 거야?”

학생인권조례 “아니 이 조항은 원칙적으로 두발자유를 보장하고 있다고 봐야 해. 길이 제한을 특별히 더 못한다고 하고 있는 거고. 근데 어떤 학교들은 “그럼 길이만 자유화”한다거나, 아니면 길이를 제한할 수 없다는 걸 괴악하게 해석해서 두발을 몇 cm 하는 식으로는 규제할 수 없지만 “눈썹에 닿지 않게”, “어깨에 닿지 않게” 하는 식으로는 해도 된다고 하는 곳도 봤어. 원칙은 자유고, 특별히 필요한 경우에만 제한을 해야 하는 건데 말야.”

쟝 “그러게. 프랑스에서는 여러 머리색과 피부색의 학생들이 같이 학교에 다니고 같이 수업을 받지만 아무 문제없는데. 그렇게 따지면 교복도 그래. 난 거의 모든 중고등학교들이 교복을 입는 이런 나라는 영국, 일본, 한국밖에 못 들어본 거 같아. 프랑스 같은 경우는 일부 사립학교들만 교복 입는 걸 강제하는데. 그럼 당신은 복장자유, 그러니까 교복을 입지 않을 자유도 포함하고 있는 건가?”

학생인권조례 “원칙적으로는 복장자유라고 하면 당연히 교복을 안 입을 자유나 입을 자유도 포함되겠지. 하지만 대부분 학교에서는 아예 복장자유가 “교복을 입지 않을 자유”라고는 생각도 안 하는 것 같더군. 그냥 교복을 줄이거나 할 자유 정도로 생각하지. 상상력의 빈곤이야 쯧쯧….”

쟝 “그런데 내가 보기에도 두발규제 조항 같은 경우는 좀 애매하게 해석할 소지가 많은 것 같은데…. 어쩌다가 그런 식으로 한 거야?”

학생인권조례 “말도 마.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초안을 마련하는 자문위원회가 꾸려지고 초안이 나오기까지 3개월이 넘는 시간이 걸렸어. 3개월, 그거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사실 광주랑 경남에서 이미 나온 안들이 있었고 일본의 가와사키 아동권리조례나 유엔아동권리협약 등등 참고할 만한 건 잔뜩 있었으니까, 꽤 오랫동안 논의를 하고 준비를 한 셈이지. 자문위원회 안에는 인권 전문가, 법 전문가, 교사, 교장, 사회복지 전문가 등등 여러 사람들이 있었고 그 사람들이 다 합의하는 안을 만들려고 낑낑댔거든. 그런 과정에서 애매하게 된 면이 있지.”

쟝 “만드는 과정에 아쉬움이 많나 보네.”

학생인권조례 “그래, 무엇보다 학생들이 정작 자문위원으로 참여를 하지 못한 건 정말 큰 문제야! 학생참여기획단을 꾸려서 의견을 받는 절차를 거치긴 했지만 실질적으로 학생들 의견이 막 반영된 건 아니었어. 그 학생참여기획단도 사전 교육과정이나 논의 과정도 별로 거치지 못했고. 다만 쟁점이 되는 사안에 대해서 자문위원회 회의할 때 학생참여기획단 학생들의 의견을 많이 가져다가 근거로 삼고 참고했다고 해. 그래도 역시 아쉽긴 하지. 학생들 참여가 무엇보다 중요한데.
  학생참여기획단 이야기하니까 학생참여위원회도 생각나네. 아놔…. 학생참여위원회를 내 힘에 따라 만들게 됐는데, 교육청에서 공지도 시험기간에 완전 짧게 하고, 거기다가 학교장이랑 보호자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한 거야. 학생인권에 학생들이 관심을 가지도록 홍보를 하고 스스로 숙고하고 준비할 시간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해야 하는데… 무슨 학교장 승인이야? 교육청 관료주의도 내가 일하는 데 완전 문제라니까. 투덜투덜. 내가 인사권이 있었으면 그런 장학사들은 다 징계해버렸을 거야.”

쟝 “흠, 그럼 당신은 당신 스스로의 일이 불만이야? 불완전하다고 느껴?”

학생인권조례 “꼭 그렇진 않아. 심지어 학생인권조례에서 학생들의 권리가 무엇인지 명시하는 부분은 빼고, 그러니까 그냥 헌법과 국제조약에 있는 권리를 보장한다는 식으로 쓰고, 개선 방안만 담자고 하는 안도 있었는걸. 그렇게 만들었으면 내가 일하는 의미가 별로 없었을걸?? 나는 ‘이게 바로 학생인권이다!’라고 딱 못을 박고 명확히 하는 힘이 있으니까. 꽤나 잘 만들어진 편이라고 생각해.”

쟝 “난 좀 불만스러울 거 같은데. 예를 들어 서울에서 이번에 학생인권조례를 주민발의한다고 한 건 경기도 안이 불만스러워서 좀 더 보완하려고 하는 것 아닌가?”

학생인권조례 “서울 주민발의안! 윽. 솔직히 좀 부럽긴 하지 ㅡㅡ;; 사례나 예시도 풍부하게 들어가있고… 하지만 서울 주민발의안도 바로 나, 현직 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있었으니까 나올 수 있었던 것 아닐까? 너무 자기 위안이려나? ㅎㄷㄷ
  뭐, 근데 사실 나도 교육청에서 일부 언론들 눈치 보느라 집회의 자유 조항이 중간에 빠진 건 많이 아쉽긴 해. 한국이 비준한 유엔아동권리협약에도 보장한 권리인데 괜스레 호들갑 떨긴. 하지만, 비록 조항에서 빠졌더라도, 나는 학생들의 정당한 표현의 자유로써 집회의 자유가 침해당할 때 나서서 최대한 도울 거라구!!”

(2010년 2월 10일,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자문위원회는 집회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 등을 명시한 A안과 이를 빼거나 표현을 바꾼 B안을 김상곤 교육감에게 제시했다. 김상곤 교육감은 그 중 B안을 택하여 발의했다.)




쟝 “그것 참 의욕 넘쳐서 좋구만; 근데 실제로 당신이 그만큼 힘이 있나?”

학생인권조례 “님 아까부터 자꾸 아픈 데를 찌르네 -_-;; 학생인권조례가 힘이 좀 없긴 하지. 대놓고 위반한 학교 교장을 막 바로 감옥에 처넣거나 벌금을 줄 수도 없고. 하지만 내 부하직원들인 학생인권심의위원, 학생인권옹호관, 학생참여위원 등등이 힘을 합치면 없는 것보단 나을 거야. 뭣보다 학교가 눈치를 보게 만들 순 있으니까. 특히 인권옹호관은 직접 나서서 조사를 하고 개선 조치를 취하라고 권고할 수 있어. 그리고 학생인권에 대한 조사를 정기적으로 하고 교육청 차원에서 그 학생인권 신장 계획을 세워서 집행하니까, 교육청이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강제력을 가질 수 있겠지. 실제로 내 힘으로 경기도 지역 학교 중에는 두발이 많이 완화되거나 자유화된 곳도 많고, 복장규제나 강제야자도 많이 줄었어.
  뭣보다 학생들이 직접 자기 인권을 주장하고 학교 안에서 목소리를 낼 때 힘이 되어줄 수 있으면 그것만으로 큰 역할 아니겠어? 부천 소사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학칙개정심의위원회에 참관하고 학생 의견 반영할 것을 요구하면서 시위를 한 거라거나.”

▲ 부천 소사고등학교 학생들이 운동장에서 '근조 인권', '근조 정의'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
(2010년 12월, 부천 소사고등학교 학생들을 규정개정심의위원회에 참여한 학생 대표들이 학생들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으며, 학생들이 학칙 개정 과정에 참관할 것을 보장하라고 요구하는 시위를 여러 차례 벌였다. 그 결과 규정개정심의위원회에서는 학생들의 의견이 더 많이 반영된 안이 통과되었다.)



쟝 “그거 뭔가 좀 정말 편한 대로 해석하는 것 같다만;; 근데 당신 요즘 여기저기서 많이 까이던데 생명의 위협 같은 걸 느끼지 않아?”

학생인권조례 “생명의 위협까지는 아니고…. 좀 자리의 위협을 느끼고 있긴 하지. 그리고 나 말고 다른 동료 학생인권조례들의 취임에 걸림돌이 되고 있고. 특히 문화일보 등등의 언론들은 완전 개념이 없다니까, 와.”

쟝 “조선일보에서 휴대전화로 교실이 무너진다고 보도한 건 나도 얼핏 봤어.”

학생인권조례 “그게 참, 나는 휴대전화를 학교가 완전 금지할 수 없고, 수업 중 이용에 관해서는 민주적으로 규정을 만들어서 규제할 수 있다고 하고 있거든?? 이것도 대표적인 타협 조항 중 하나지. 수업 중에 휴대전화 이용에 관해서는 학교에서, 그리고 사회적으로 합리적인 규정을 만들고 문화를 만들 문제인데 마치 내가 휴대전화 이용을 전혀 규제하거나 손댈 수 없다고 하는 것처럼 거짓말을 치더라니까.”

(제12조(사생활의 자유) ④ 학교는 학생의 휴대폰 소지 자체를 금지하여서는 아니 된다. 다만, 학교는 수업시간 등 정당한 사유와 제18조의 절차에 따라 학생의 휴대폰 사용 및 소지를 규제할 수 있다.)



쟝 “프랑스나 독일 같은 경우도 휴대전화를 학교에 못 가지고 오게 하는 경우가 대다수야. 뭐, 애초에 거기는 한국만큼 학생들이 휴대전화를 많이 가지고 있는 건 아니지만.”

학생인권조례 “그밖에도, 학생들의 인권을 존중해서 교육이 무너진다는 건 그냥 개소리란 생각밖에 안 들어. 그게 진짜라면 그 사람들이 말하는 ‘교육’이란 건 대체 뭐야? 사람을 사람으로 존중하지 않는 교육이 교육인가? 나는 학생들에게 엄청 대단한 특권이나 권력을 주는 것도 아니거든. 최소한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하자는 거지. 학생들이 수업을 제대로 안 듣고 교사를 존경하지 않는 건 학교들이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그만큼 믿음도 재미도 주지 못해서 아닌가? 학교 졸업해도 먹고 살 길 막막하고 학교 공부하는 의미도 알 수가 없는데 학교에 8시간 12시간씩 처박혀 있어야 하니까 짜증이 쌓일 만하지. 나 덕분에 학생들 학교 다니는 게 좀 더 즐거워진다면 오히려 그런 문제가 더 줄어들걸.”

쟝 “그렇겠군. 프랑스의 경우에도 한 100년 전, 50년 전에는 한국 교육이랑 비슷하게 두발복장규제도 있고 학생들을 줄맞춰 세웠다고 해. 하지만 1968년에 학생들이 들고 일어나서 시위를 하고 하면서 많은 게 바뀌었지. 지금 프랑스 교실처럼 두발복장도 완전 자유롭고 학생들이 떠들고 참여하며 교육하는 모습을 보면 한국 사람들 눈엔 개판처럼 보이겠네. 프랑스에서는 교사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라고 하면 완전 권위주의 돋는다고 생각할 거야. 그냥 이름을 부르거나 경어 정도만 쓰거든. 교사도 학생한테 존칭을 쓰고.”

학생인권조례 “유럽에서는 다 두발복장자유화 해도 되고 초등학생 때부터 학교 운영에 참여하는데 한국 학생들은 미성숙해서 안 된다? 인종주의냐 무슨. 물론, 난 인종 차별을 막기 위한 차별금지 조항도 담고 있지. ㅋㅋ”

쟝 “ㅋㅋㅋ”





학생인권조례와 같이 웃던 쟝은 잠에서 깼습니다. 밖에는 폭우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오세이돈 서울시장의 ‘무상급수’ 정책으로 오세이돈 당선에 큰 역할을 했던 강남구 서초구 등이 대량의 물 세례를 받았다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쟝은 오세이돈과 오승희 편집진들에게 바가지로 욕을 퍼부었습니다.

쟝은 50년 전 68혁명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한국에서도 68혁명처럼 학생들의 활동을 통해 학교와 교육이 조금씩 바뀌어가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68혁명은 학교 문화를 바꾼 것뿐 아니라 대학입시나 정치 참여까지도 바꿨지요. 쟝은 한국 교육도 사회도 아직 많은 과제를 남겨 놓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프랑스의 교육도 마찬가지지만요. 그나저나 쟝은 어서 돈을 벌 직업을 찾아야 할 겁니다. 학생인권조례라는 직업은, 돈을 벌지는 못하거든요.  (인권옹호관은 벌겠지만 인권옹호관이 되려면 뭔가 좀 훌륭한 사람이어야 한다더군요!)






Posted by 오승희

  서울에서는 지난 2010년 10월 말부터 서울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운동이 진행되고 있었다. 지금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바로 그 이야기다.



폭력성 실험



  서울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서명 수가 한참 한참 모자라서, 제정운동본부의 거의 모두가 반 미친 상태로 서명을 받느라 거리를 쏘다니고, 저녁에 온 힘이 다 빠진 채로 사무실에 돌아와 서명지를 정리하던 시기가 있었다. 2월부터 5월 초까지, 3개월 동안 다들 필사적이었다. 학생인권에 대한 절박함도 있었고, 보수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떠들어대는 망발에 대한 분노도 있었지만, 모두들 ‘이렇게 개고생하고 실패할 수는 없다.’는 절박함과 오기가 점점 커졌다. 악으로 매일 아침 9시에 모여 회의를 하고, 11시부터 저녁 5시까지 거리에서 서명을 받고, 주말에도 하루도 쉬지 않고 거리서명을 받는 일정을 소화해 냈다. 도중에 차례차례로 한, 두 명씩 몸살에 쓰러졌다 돌아오고, 알바를 하고 있던 사람들은 알바를 때려 치우고 서명을 모았다. 거리에서 우리에게 고함치는 사람들, 훈계하거나 시비 거는 사람들을 상대하다 억울해서 울고, 우리가 왜 이렇게 까지 해야 되나 하고 너무 힘들어 울고… 그렇게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지면서도 누구 하나 힘들어서 그만두겠다고 말하지 않았다.

  서명기간 도중에 별의별 말이 다 나왔다. 주민발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악마한테 영혼이라도 팔겠다, 실패하면 죽어버릴 거다, 실패할 거 같으면 전교조 사무실 째로 서명지를 불태우겠다(학생인권조례 제정운동서울본부 사무실은 전교조 서울지부 사무실 일부를 빌려 쓰고 있었다.), 유리창부터 몇 장 야구배트로 박살내고 시작하자 등등… 서명지와 전단지, 가판대와 소형 앰프를 들고 낑낑대며 서명을 받으러 걸어가던 도중, 같이 가던 활동가와 “지금 차도에 뛰어들면 학생인권조례 서명 부족으로 청소년 자살… 신문에 나서 서명 많이 모이겠지?” 하는 이야기를 하던 게 생각난다.


▲ 올해 2월부터 3개월 동안, 활동가들은 서울시민들에게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서명에 참여하라고 거리에서 매일 같이 말을 걸었다.



  여기까지 우중충하고 어두운 이야기들에서 독자들에게 위화감은 없었는지? 혹자는 왜 같이 운동하던 전교조 사무실을 때려 부수지? 팀킬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을 줄 안다. 하지만 이 운동을 계속 가까지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 참여했던 사람들은 아, 그런 얘기도 나왔었지… 하며 고개를 끄덕이겠지.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운동의 역사는 전교조와 일부 교육단체들에 대한 분노의 역사이기도 했다. 학생인권조례 제정운동 서울본부를 시작할 때, 전교조 서울지부가 가장 주도적으로 주민발의를 통해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하자며, 목표 서명 숫자의 3분의 1이나 되는 서명을(최대 3만장을) 전교조 서울지부에서 모아오겠다고 했었다. 모두들 성공의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고, 주민발의를 시작했다.

  그런데 일단 주민발의가 시작되자 전교조 서울지부(앞으론 귀찮아서 그냥 전교조)는 전혀 열의를 보이지 않았다. 거리서명에 나오는 날도 손에 꼽을 만큼 적고, 그마저도 마지못해 나오거나 왕창 늦었다. 나와서는 피켓을 든 채, 피켓 고정용 청테이프 혹은 병풍 정도의 역할밖에 하지 않고 돌아가거나, 심지어는 줄담배를 피며 한두 시간 서 있다가 수고 하라는 말만 하고 돌아가서 가기 전까지 담배 피러 나온 회사원으로 오인 받은 적도 있을 정도이니 원망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는 언제나 양 손 가득 짐을 들고 낑낑거리며 전철, 버스를 타는데 언젠가 한 번 선전전에 같이 나온 전교조 조합원에게 짐을 옮겨줄 것을 부탁하자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우리가 오늘 차가 없어서요.”라는 반응을 보였다. 하루쯤 그거 들고 걸어가면 팔이 부러지기라도 하나?

  그렇다고 전교조에서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그렇게 열심히 서명을 받은 것도 아니다. 전교조에서는 큰 행사가 있을 때, 자신들이 서명을 모으는 게 아니라 학생인권 조례 제정운동본부에 통보해서 ‘와서 서명을 받아라.’ 라는 식으로 굴었다. 조합원들이 잘 동의를 하지 않는다. 그런데 강제로 서명을 하게 할 수는 없다. 아직 합의가 되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이미 옛날에 합의했어야 할 내용을 가지고, 자신들이 계속 주장해 왔던 것조차 조합원들에게 동의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들이 학생인권에 대해 정말로 열의가 있는지, 동의하기나 하는 건지, 계속 의구심을 가지게 했다. 심지어는 계속 학생인권을 까대는 ‘조중동’보다 더 미웠다. 인내심테스트, 폭력성 실험을 당하는 기분이었다.

  같이 주민발의 운동을 하는(해야 하는) 전교조 조합원의 대부분이 학생인권조례에 무관심했고, 자신이 무관심하다는 걸 정당화하기 위해 망발을 해댔다. 청소년 활동가들에게는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초면에 반말을 해대는 건 기본이고, 목표 서명을 다 모으는 건 불가능하다는 말을 너무도 쉽게 하면서 서울학생인권조례의 의원발의 일정이 언제냐고 물어보는 모욕까지. 전교조에 좀 더 적극적인 태도를 요구하자 “전교조에게 그렇게 의존하면 안 된다.” 거나, “다른 단체들에서는 서명이 얼마나 들어왔냐.” 며 자신들에게 너무 과중한 책임을 묻고 있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언뜻 학생인권과 연관성을 찾기 힘든 민주노총에서 매일 거리선전전을 뛰고 있고, 조례제정본부의 20명 남짓 하는 사람들이 매일매일 거리에 나가 서명을 받는데도 하루에 200장 모으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서울에만 조합원이 8-9000명 있는 ‘진보적(?)’교직원 노동조합에 조합원 서명을 적극적으로 받아달라는 것이 그렇게 ‘과중한 책임’인건지, 아니면 전교조가 자기 조직의 조합원도 챙기지 못하는 망해가는 단체인 건지…

  주민발의가 실패할 것 같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던 4월 중순, 회의자리에서 전교조가 “우리가 실패해도 좋은 경험이고, 하는 과정이 중요한 거니까…” 따위의 말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마치 ‘훈화말씀’이라도 하듯이. ‘전교조는 더 이상 이 운동을 할 맘이 없다.’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말이었다. 그 태도는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이하였다. 우리가 거리에서 경험하는 것들은 그저 좋은 경험과 추억으로, 과정으로 남기기에는 너무 잔인하고 혹독한 것들이었다. 결국 회의가 끝나자 전교조가 나가버린 사무실은 한바탕 울음바다가 되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평등교육을 위한 학부모회’ 회원 중 한 명이 일정이 많아서 거리 서명을 못나가겠다는 말을 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저번에도 나갔는데 또 나가요? 제가 무슨 몸이 무쇠도 아니고....”
  아연해지는 순간이었다. 매일매일 거리에서 6-7시간씩 서서 소리치는 우리들은? 무슨 몸이 다이아몬드라도 돼서 그렇게 서 있나? 우리는 몸 구조가 그들과 다른 건가? 일, 이주일에 두, 세 번씩 나와 달라는데 그렇게 뻔뻔할 수가 없었다. 조례제정운동본부의 모두가 여기저기서 너무 많은 상처를 받으며 지치고 있었다. 이런 도중에도 시간은 가고 있었고, 서명 수는 모자랐다.



너덜너덜한 성공


  대망의 5월 11일, 바로 전날 서명기간을 끝내고 우리가 모은 서명이 목표치 8만 2000명을 훨씬 넘은 8만 5000장이 된다는 걸 확실시 했을 때, 너무나 열심히 거리 서명을 받았던 모두가 울며 웃으며를 반복하며 기뻐했다. 해냈다는 기쁨과, 이제까지 했던 고생, 받았던 모욕에 대한 서러움이 교차했다. 우리가 거리에서 모은 서명 약 3만5천장. 시민 분들이 자발적으로 하나하나 보내주신 우편서명 약 7천장. 여러 단체와 종교계의 일명 ‘조직서명’ 약 3만9천장. 그 중에서, 전체의 10분의 1도 안 되는 전교조의 7천장. 그들의 목표가 처음에 '최소' 1만 5천이라는 건, 그냥 덧붙여 둔다.

  서명지를 지역별로 분류하는 작업이 한창일 때, 다들 하루 이틀씩 밤을 새며 일했다. 사무실 바깥에 나가는 건, 밥을 먹을 때 뿐. 그것도 그나마 후반에는 돈이 모자라서 도시락을 먹으며 진행했었다. 전교조에서 보인 반응은 “학생인권 조례 사무실 서명지 분류인가 뭔가 때문에 참 난리 났던데..”가 전부였다. 하루 이틀, 한 두명 정도가 도와준 적은 있지만 그래놓고 “우리는 도와줬다. 할 일 끝.” 이라는 것 같아서 짜증이 밀려왔다.

  그렇게 마지막까지 고생고생해서 겨우 서명지를 교육청에 전달하는 기자회견날, 다들 다시 한 번 울고, 거의 세상이 끝난 기분으로 집에 돌아가서 뻗었는데, 무효인 서명지가 많이 나와서 서명이 1만 1천 장이나 모자라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그리고 시작된 추가 서명기간. 다들 신경이 끝까지 예민해진 상태였고, 서명 말고는 거의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는 상태로, 전교조 외 기타 등등 에게는 그야말로 ‘서슬이 퍼런’ 얼굴을 했다. 오죽하면 ‘청소년활동가들 화 많이 났다’, ‘무섭다’ 등의 소문이 퍼졌을까. 결국 우리는 보정서명기간 5일 만에 거리에서만 5천장의 서명을 받아내는 기염을 토했고, 시민들과 여러 작은 단체들의 “조금만 더.” 라는 성원, 끝까지 너무 많이 도와준 민주노총, 종교계 등에 힘입어 목표치를 훌쩍 넘는 3만9백장의 서명을 모아 냈다. 그리고 다시 몰아친 정리기간. 이 모든 지옥을 넘어 교육청에 모든 서명지를 전달하고, 서울시 의회의 회기를 기다리는 지금도 서명기간을 다시 떠올리면 다들 울 것 같은 얼굴을 한다. 반드시 원안 그대로 의회를 통과하게 하겠다고 벼르고 있는 것은 서명기간의 하루하루를 잊을 수 없기 때문인 것 같다. 덧붙이자면, 지면상의 이유로 여기 옮기지 못한 이야기는 아직도 많다.





▲ 서울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로 거리에서 살다시피 하며 겨울볕에 탄 사람들의 팔

(※실제 13호에는 흑백 사진의 한계상, 그리고 편집 실수상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여기서 감상하시라 ^^;)



  결국 우리는 주민발의를 성공시켰고, 수많은 시민들에게 말을 걸었고, 학생인권의 봄을 열었다. 하지만 그 찬란한 봄의 뒤에는 진흙탕에 구르다시피 한 많은 활동가들의 너덜너덜해진 몸과 마음이 있었고, 서명 숫자를 위해 간도 쓸개도 다 빼준 것 같다는 자괴감이 있었다. 인간의 한계 그 너머를 엿본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주민발의’는 성공했지만 주민발의 ‘운동’은 실패한 것 같다는 씁쓸함이 남았다.

  서울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운동은 앞으로 학생인권조례가 갈 길, 학생인권이 갈 길에서 누가 함께 하고, 누가 함께 하지 않는지를 명확히 보여줬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을 던져 운동하는 사람들이 끝까지 바닥으로 추락하는, 의욕의 크기가 상처의 크기가 되는 운동을 다시는 하지 않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Posted by 오승희



봄부터 초여름까지 ‘어떤 시민들’은, 두두두 하며 발로 뛰겠다는 어느 통신사보다도 더 바쁘게 뛰어다녔다. 어느 포장마차 주인이 그들에게 “추운데 안에 들어와서 하세요” 했다는 이야기에서부터 장마전선과 태풍 ‘메아리’의 2단 콤보가 몰아치는 와중에 트위터에 “내일은 비 안 온답니다 여러분!” 외치던 이야기까지, 옷차림이 두꺼운 코트에서 얇은 면 반팔 티로 바뀌도록, 그들은 뛰고 또 뛰고, 외치고 또 외쳤다.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뜻을 함께 하겠다 한 서울시민이 자그마치 10만여 명이었다. 어떤 이는 우편으로 서명용지 한 뭉치와 편지 한 장을 보내왔다. 이 서명 받느라고 술값 밥값 많이 썼으니 꼭 제정시켜달라는, 회식자리에서 취한 김에 카드 한 장을 용기 있게 꺼내든 어느 대리의 ‘술 깬 직후’와도 같은,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감동의 도가니탕 한 그릇에 맞먹는 글귀였다. 그 ‘어떤 시민들’이 그토록 뛰어다니고 목청 높이며 하려 했던 일은, 서울특별시 소재 학교에 다니는 모든 학생들에게 인권을 되찾아주기 위한 것이었다.



‘무상급식’과 ‘체벌 금지’에 이어, ‘학생인권조례’가 교육 문제의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경기도에서는 이미 올해부터 시행되고 있으며, 서울에서는 서울시민 10만여 명이 서명에 참여해 주민 발의가 성사되었다. 서울에 이어 경상남도에서도 주민발의로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으며, 전라남북도, 강원도, 광주 등 진보적인 성향으로 알려진 교육감이 있는 지역에서도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위한 준비 작업이 한창이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반값등록금’, ‘서울대 법인화 반대’,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명동 재개발 반대’ 등 굵직굵직한 이슈들 속에서도 학생인권조례는 청소년들 사이에서 ‘관심사류 갑’의 지위를 잃지 않고 있다.



학생인권조례란 무엇인가


학생인권조례는 말 그대로 ‘학생의 인권에 관한 조례’다. 정말 그거다. ‘조례’는 ‘법’과는 달리 지방자치단체마다 다르게 제정하고 시행할 수 있기 때문에, 학생인권조례는 딱 한 가지로 정의할 수 없는 구석이 있다. 다만 현재까지 제정된, 또는 앞으로 제정될 학생인권조례들을 보면 ‘신체의 자유’, ‘사상·양심의 자유’ 등 학생으로서 꼭 누려야 할 기본적인 인권이 명시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같은 ‘신체의 자유’에 관한 내용이라 하더라도 세세한 부분에서, 혹은 시행세칙 차원에서 자치단체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학생인권조례는 ‘갑자기’ 나온 이슈는 결코 아니다. 학생들의 인권을 보장하라는 목소리는 오래 전부터 꾸준히 있어왔고, 그 노력은 ‘두발 자유화 운동’이나 ‘0교시 폐지 운동’ 등의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2006년에는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이 ‘학생인권법’이라 불리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으며, 2009년의 교육감 직접선거 이후 학생인권을 광역자치단체의 조례로서 보장하자는 목소리가 커졌다. 그리고 2011년 3월에 경기도에서 전국 최초의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되기에 이르렀다.

  ▲ 2010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 경기 인처의 교육감 후보들이 학생인권조례 정책 협약식에서 차별과 억압과 경쟁을 넘어 학생인권을 입학시키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전국 최초의 학생인권조례,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경기도 학생인권조례는 전국에서 가장 먼저 시행된 학생인권조례라는 점에서 다른 지역의 학생인권조례안에 상당한 영향을 주고 있다. 기본적으로 ‘학생인권’ 하면 꼭 들어가야 하는 ‘신체의 자유’, ‘사상·양심의 자유’, ‘교육 받을 권리’와 같은 내용들은 빠짐없이 들어가 있으며, ‘무상급식’을 인권의 영역으로 넣어 학생인권조례의 한 부분으로 만든 것이 눈에 띈다.(제23조 4항, “교육감은 직영급식과 의무교육과정에서의 무상급식을 실시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역시 먹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금강산도 식후경, 국영수도 식후독(讀)이니 ‘먹는 것’이 인권의 영역에 들어가 있는 것이 이상할 것은 없다.

경기도 학생인권조례는 모든 종류의 폭력을 금지하고 있다. 제6조 1항에 “학생은 따돌림, 집단 괴롭힘, 성폭력 등 모든 물리적 및 언어적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를 가진다.”, 2항에 “학교에서 체벌은 금지된다.”라는 문구가 있다. 즉 여기서 말하는 폭력이라는 것에는 물론 ‘빵셔틀’로 대표되는 학교 폭력 문제도 포함되지만, ‘체벌’ 역시 포함된다. ‘맞아야 말을 듣는다’라며 체벌을 정당화하던 논리에 정면으로 맞서는 부분이다. ‘교권 추락’ 논란이 있으며 또 모든 학교에서 체벌 금지 조항이 연착륙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 시행 초기이고, 또한 당연히 보호받았어야 할 학생들의 인권이 이제야 조례의 강제에 의해 지켜지기 시작했다는 측면에서 바라보면, 이러한 문제들은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되어서’가 아니라 ‘학생인권이 무시되었던 시간이 너무나 길었기 때문’이라고 봐야 옳을 것이다.

그리고 여학생들의 생리결석을 보장되어야 할 건강권으로 보고 인권조례 차원으로 보장하고 있다.(제24조 2항, “여학생은 생리로 인한 고통 때문에 결석하거나 수업에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 그로 인하여 불이익을 받지 않을 권리를 가지며, 학교는 생리 중에 있는 여학생에게 불이익이 없도록 적절한 배려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 이것으로 생리로 인해 결석이나 조퇴를 하려 해도 교사의 무지, 혹은 인권의식 결여로 인해 해당 학생에게 수치심을 주었던 일들이 사라질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학생들이 스스로 학칙을 제정하고, 정책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가 명시되어 있다. 제18조와 제19조에서 각각 “학생은 학칙 등 학교 규정의 제․개정에 참여할 권리를 가진다.”, “학생은 학교 운영 및 교육지원청의 교육정책결정과정에 참여할 권리를 가진다.”라는 문구로 학생들의 일종의 참정권을 보장하고 있다. 또한 교육감이나 학생인권옹호관에게 직접 인권조례의 개정, 학생 인권 실태 등에 대한 의견을 낼 수 있는 ‘학생참여위원회’를 설치하도록 되어 있다. 모집에 응한 학생들 중 추첨으로 100명 이내의 학생들을 위원으로 선발할 수 있고, 그 중 20명 정도는 반드시 소수자 중에서 선발하도록 되어 있어, 선거권이 없는 학생들이 교육 정책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두고 있다.

다만 두발의 자유를 명시한 부분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제11조 1항에는 “학생은 복장, 두발 등 용모에 있어서 자신의 개성을 실현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되어 있고, 2항에는 “학교는 두발의 길이를 규제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되어 있어 일견 두발자유를 보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구체적으로는 ‘길이’에 대한 규제만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종류의 두발 규제는 막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머리는 취향입니다. 존중해주시죠.

또한 조례문의 ‘교육 목적상 필요한 경우’라는 표현의 애매함도 지적되고 있다. 사생활의 자유를 명시한 제12조에서 “교직원이 교육목적으로 필요하여 불가피하게 학생의 소지품 검사를 하는 경우”, “교직원은 일기장이나 개인수첩 등 학생의 개인적인 기록물을 열람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교육목적상 필요한 경우에도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라는 표현이 있는데, ‘교육 목적’이라는 표현이 얼마든지 자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음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논쟁이 되는 휴대전화에 관련해서는 소지나 사용을 완전 금지하지는 못하되, 수업 시간 중 사용은 규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다만 이 역시 학교에서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사실상 사용을 완전 금지하는 경우도 있다.

한편, 학생 및 교사 뿐 아니라 학생의 보호자에게도 인권 교육을 실시하도록 하는 조항도 있다. 학교는 보호자에 대하여 학생의 인권에 관한 교육 또는 간담회를 연 2회 이상 추진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학생에 대한 인권 침해는 학교에서 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많이 일어나고 있으며, 특히 학부모가 학교에 요구해 더욱 인권을 침해하도록 하는 경우도 많은 만큼, 이러한 규정을 포함시키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해당 조항이 흐지부지 사문화되어버리지 않도록 매의 눈으로 감시할 필요가 있다.




시민과 전문가들이 모여 보완한 서울 주민발의안



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올해 3월부터 전면 시행됨에 따라, 경기도 소재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최소한의 인권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전국 최초로 시행되는 것인 만큼 조항 내부에 허점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안은 경기도 조례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혹은 타협 끝에 양보된 조항들을 주워 담아 수정·보완을 거쳤다. 당초 시민 8만 5천여 명의 서명을 받아 주민발의에 성공했으나, 서명지 확인 과정에서 중복·무효 서명지가 많이 나와 서명 보정 기간을 갖게 됐다.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 서울본부는 서명 보정 기간에 당초 목표로 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3만 명의 서명을 받는데 성공, 무사히 발의안을 제출하여 2011년 7월 현재 시의회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서울 주민발의안은 경기도 조례와 같은 뿌리를 갖고 있는 만큼, 전체적으로 보아서는 크게 다르지는 않다. 예를 들면, 제23조에 “교육감은 직영급식과 의무교육과정에서의 무상급식을 실시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라는 문구를 넣어둠으로써 경기도 조례와 마찬가지로 무상급식을 인권의 영역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먹는 것’의 중요성을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을진대, 서울특별시와 그 수장은 뭘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그 밖에 생리결석의 보장(제24조 2항), 학생참여위원회 설치(제37조) 등 많은 부분에서 경기도 조례와 유사한 면을 갖고 있다.

거기에, 경기도 조례의 허점을 보완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던 만큼 서울 주민발의안은 경기도 조례보다 구체적이다. 특히 ‘양심종교의 자유(제15조)’, ‘사생활의 자유(제13조)’ 등에 대해서는 인권을 침해하는 경우를, ‘자치활동의 권리(제17조)’에서는 학생 자치 조직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 조목조목 짚어주고 있어 실제 효력이 좀 더 강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조례 첫 부분의 ‘적용 대상’이 경기도 조례는 “경기도 내 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으로 되어 있는 데 비해, 서울 주민발의안은 서울시내 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은 물론, “입학, 퇴학 여부를 다투는 이” 또한 포함하도록 되어 있다. 졸업식과 입학식 사이의, 내가 중학교 3학년인지 고등학교 1학년인지 아니면 백수인지 정체성의 혼란에 빠질 수도 있는 그 애매한 기간에도 조례의 적용을 받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경기도 조례와 마찬가지로, 역시 탈학교 청소년은 해당 조례의 적용을 받을 수 없어, 이 부분을 보완할 대책을 과제로 남겨두고 있다.

서울 주민발의안은 경기도 조례와는 달리 ‘교육 목적상 필요한 경우’를 배제하고 있다. 즉 어떤 경우에라도 학생의 인권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함으로써 실질적으로 학생에게 도움이 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더해 학생에게는 “인권을 학습하고, 자신의 인권을 스스로 보호하며, 교사 등 타인의 인권을 존중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는 의무조항(제4조 3항)을 두어, 자칫 일부에게 ‘인권=방임’으로 인식될 수도 있는 경우를 차단하였다. 자신의 인권이 소중한 만큼 타인의 인권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시키고 있는 것이다. 또한 경기도 조례가 두발에 관해서는 길이를 제한하는 것만을 금지하고 있는 데 반해, 서울 주민발의안은 두발에 대한 어떤 제한도 금지하고 있다. 제12조 1항에서 “학생은 두발, 복장 등 용모에 있어서 자신의 개성을 실현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명시한 것은 경기도 조례와 같지만, 제2항에서 “학교의 장 및 교직원은 제1항의 권리를 제한할 수 없다.”라고 한 것은 경기도와는 달리 어떤 경우에도 학생의 개성표현을 막을 수 없다고 명시한 것이다. 그 밖에, 경기도 조례가 놓치고 있는 ‘집회의 자유’를 서울 주민발의안은 명확하게 짚고 간다.(제16조 3항, “학생은 학교 안팎에서 집회를 열거나 참여할 권리를 가진다.”) 경기도 조례에는 집회의 자유를 명확히 하는 부분이 없다.



전북, 강원은 ‘학교인권조례’로


타 시도에서도 학생인권조례 제정 작업이 착착 진행되고 있다. 경상남도에서는 서울에서의 주민발의와 마찬가지로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위한 서명운동이 한창이며, 이러한 상황은 충청북도에서도 유사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특히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는 교육감들이 있는 곳에서 더욱 활발한데, 강원도나 전라북도는 학생인권조례의 전 단계로 인식되고 있는 ‘체벌금지조항’을 서울, 경기도와 비슷한 시기에 내놓아 주목 받은 바 있다.

경기도와 서울시의 학생인권조례에 비해 어느 정도 후발주자라 할 수 있는 만큼, 이들 시도 교육청은 각자 공청회를 열고 각 지역 특성에 맞는, 또 앞선 학생인권조례에 더해 보완할만한 부분을 포함시키고자 하고 있다. 강원도는 ‘학교인권조례’라는 이름으로 학교 내 구성원들의 인권을 포괄적으로 다루고자 하고 있으며, 전라북도는 ‘학생인권조례’와 ‘교사인권조례’를 병립시키려 하고 있다. 여기서 ‘교사인권조례’는 교원의 권한을 분명하게 명시하고 상부의 부당한 간섭을 배제하려는 목적이다. 그러나 교사의 권한에 학생의 인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예를 들면 꿍디꿍디……가 아니라 체벌에 관한 권한 등)가 포함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다소 우려가 되는 부분도 있다.



학생인권조례, 앞으로의 과제


학생인권조례가 경기도에서는 이미 시행되고 있고 서울에서는 시의회 통과를 앞두고 있으며 전국의 많은 시도에서 제정 작업 중에 있거나 그럴 예정이다. 아직은 시행 초기라 시행착오도 있을 수 있다. 또 아주 극적인 변화가 하루아침에 일어나기를 기대하는 것도 조금 무리다. 그럼에도 광역자치단체 조례 차원의 든든한 방패막이가 있음에, 학생인권의 현실이 지금보다는 훨씬 더 나아질 거라는 믿음이 생긴다.


그러나 아직도 어떤 시도에서는 학생인권조례 제정 움직임이 기성세대의 힘에 눌려 제대로 발현되지 못하고 있으며, 보수 언론들은 학교에서 이따금씩 나타나는 일부 사고를 비약하여 “학생인권을 보장하면 학교가 무너진다”라는 식으로 시원하게 맹물을 타고 있다. 여기에, 경기도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교육청의 입김이 너무 커진다는 비판도 있다. 해당 문제의 주체인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나서 조례 제정에 나서는 것이 바람직한데, 교육청이 너무 앞서나가면서 독선적인 행정을 펴고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학생인권조례 자체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학교에 다니지 않는 청소년의 인권을 보장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 조례는 어디까지나 초중등교육법상 학교 교육을 받고 있는 이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러나 적지 않은 청소년들이 학교에서 벗어나 있고, 이들은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도 사실이다. 탈학교 청소년들의 인권도 보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곧 우리들에게 남겨진 과제라 하겠다. 그 과제, 되도록 빨리 해서 제출하면 좋겠다.



▲ 서울 학생인권조례 서명 선전전에 사용되었던 피켓들

Posted by 오승희


학생인권조례 없는 세상을 원한다.




  경기학생인권조례가 막 시행됐을 무렵 학교에서 좀 ‘논다’는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떨었던 적이 있다. 이 친구와 내가 정말 싫어했던 영어교사가 있었는데 단어시험에서 틀린 개수만큼 학생들을 때리는 걸 삶의 낙으로 삼은 교사였다. 때리는 부위도 짜증나게 변태마냥 ‘발바닥’만을 고집했다. 단어시험 망한 날은 걸어 다니기가 어려워 대걸레에 서로를 태우고 교실이며, 화장실까지 끌어서 태워다주고 택시비 내놓으라던 생각이 난다. 웃기엔… 너무… 슬퍼! 그 친구에게 ‘인권조례 통과 되서 체벌금지니까 다시 대걸레 탈일은 없겠다?‘라고 물었다. 그러자 친구가 던진 한마디 ‘철수는 교육감이 영어단어 틀려도 때릴껄? 철수 존나 쎄잖아’ 그래 맞아. 내가 좀 잊고 있었다. 그 영어교사는 수업시간에 대놓고 인권조례 때문에 영어단어 틀리는 대역죄인을 처벌할 수 없게 되었다며 무척 아쉬워(?)했단다. 장난하냐!

  근데 솔직히 좀 억울하다. 영어교사가 아쉬워하지 않아도 학교현장에서는 인권조례가 잘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니까 말이다. 교칙개정 과정에서 학생들의 목소리를 사뿐하게 무시해준 부천의 소사고도, 개교 석달 만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20명의 학생을 강제적으로 학교 밖으로 내몰았던 남양주의 가운고등학교도 잘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이제는 인권조례 자체에 대한 찬반논의를 넘어서 인권조례의 정착화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 왔음에도 우리 미성숙하고 적응력 약한 꼰대들은 아직도 인권조례가 ‘되네’ ‘안되네’나 따지고 있으니 성숙한 내가 보기엔 좀 울화통이 터진다.

  저 영어 교사처럼 일부 보수 언론과 교사, 학부모들은 학생인권조례를 두팔 벌려 환영하지는 못할망정 인권조례에 대한 비난과 우려를 쏟아내며 ‘인권조례 무력화’를 외친다. 어떤 사람들은 ‘아직 미성숙한 학생들을 ‘선동’하고 ‘빨갱이’로 키우려는 조례‘라고 비난한다. (앗. 근데 이글을 읽은 그 '어떤 사람'들이 가스통 들고 날 쫓아올것 만 같은 건 기분 탓인가?)

  또 어떤 이들은 ‘교실붕괴’와 ‘교권추락’같은 문제에 우려를 표하며 인권조례 이후의 학교를 걱정한다. 사실 내가 학교를 ‘다녀봐서 아는데’ 교실은 늘~개판이었다. 인권조례 제정 이후든 이전이든 교실은 이미 오래전부터 붕괴하고 있었다. 교사들 교권 추락하는 것도 어디 어제오늘 일이었나? 새삼스럽게 왜들 이러시나? 학교 안다녀본 사람처럼. 교실붕괴와 교권추락 문제에 대해 학생인권조례가 유일한 원인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뭐랄까 좀 게을러 보인다. 생각과 고민을 좀 더 해보셔야 할 텐데 말이다.

  이유야 어쨌든 많은 사람들이 ‘학생인권조례 없는 세상’을 원한다. 경기학생인권조례가 지난해 9월 도의회를 통과해 공식적으로 제정된 지 어느 덧 1주년이 다 되어간다. 그사이 서울에서는 주민발의 형식을 통해 시민들이 직접 ‘학생인권조례안’을 발의했고 곧 제정을 앞두고 있으며, 충북과 강원도, 광주와 전북 등 지역 곳곳에서 인권조례 제정을 위한 움직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소식들이 들려온다. ‘인권조례’가 시대의 요구사항이 되어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 많은 곳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는 것이다. 참 기쁜 소식이다.

  사실, ‘학생인권조례’ 만큼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열악한 인권현실을 잘 보여주는 것도 없는 듯하다. 인권조례는 학교 안에서는 ‘인간’이 될 수 없는 ‘학생’들의 처지를 적나라하게 나타내는, 있는 그대로의 반증이 된다는 얘기다. 그래서 나는 인권조례가 수치스럽다. 아니 그러니까 내말은 이거다. 내 머리는 내 마음대로 기르는 것, 아프면 쉬는 것, 질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과 같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생각되는 것들이 왜 이 빌어먹을 나라에선 ‘법’으로써 강제하지 않으면 지켜지지 않는 ‘논외’혹은 ‘금기’의 것들이 되냐는 말이다.

  머리길이의 자유와 같은 정말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사회에서 허용할 수 있는 수준에서의 ‘최대한’의 도구가 되어버린 듯한 학생인권조례를 보며 답답함을 느낀다. 이제 학생인권조례는 최대한의 권리를 보장하는 최소한의 도구가 되어야만 하지 않을까? 청소년들의 인권을 얘기하는데 있어, 대안을 만드는데 있어, 방법을 고민하는데 있어 학생인권조례는 첫 걸음이자 최소한의 가이드라인. 딱 그 정도이길 원한다. 학생인권조례가 학생의 인권도 보장되는 사회를 위한 ‘마지막 보루’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학생인권조례는 미성숙하다는 유보되어 왔던 학생인권, 사회적으로 논의되는 것 조차 ‘금기’ 였던 학생인권, 오랜 시간동안 ‘없는 것, 보이지 않는 것, 가질 수 없는 것’으로 숨겨져 왔던 학생인권의 봉인을 푸는 주문이다. ‘학생’과 ‘인간’이라는 단어 사이의 멀고 먼 거리를 조금씩 줄여나가는 주문이다.

  그러다 마침내 ‘법’으로써 강제하지 않아도 학생들의 인권이 보장되는 학교를 간절히 원한다. 학생인권조례 없이도 ‘학생’ 역시 존엄한 삶을 살아갈 권리가 있는 인간이라는, 너무나도 당연하고 보편적인 인식이 널리 퍼지는 성숙한 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원한다. 그렇기에 나는 이제 학생인권조례 없는 세상을 원한다. 너무나도 간절히 원한다.

Posted by 오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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