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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9.22 <show me the 개념> 문제아 홀로코스트 by 오승희



우리는 늘 홀로코스트와 대면한다


어릴 때부터 국사나 사회 같은 과목들을 좋아했다. 내가 전부라고 여기며 살아온 세상이 사실은 아주 좁은 세상임을 알았을 때의 ‘놀라움’이, 나보다 훨씬 이전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엿본다는 ‘짜릿함’이, 내가 태어나기 이전에 벌어졌던 역사적 사건들이 준 ‘전율’이 아마 내가 사회 과목을 좋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들이리라.

아주 나른한 오후의 수업 시간이었다. 쏟아지는 졸음을 참아 가며 힘겹게 사회 교과서를 뒤적거리고 있을 때, 내 눈에 짧은 토막글 하나가 들어왔다. 그것은 ‘홀로코스트’에 관한 이야기였다. 사회 선생님은 제2차세계대전 당시 히틀러와 나치가 ‘열등한’ 유대인들에게 저질렀던 만행을 비판하며 열변을 토했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역사적으로 반복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 노력해야 한다는 말로 수업을 마무리했다. 그때 그 수업에서 느낀 감정들은 뭐랄까. 이전까지 국사나 사회 시간에 느꼈던 기분 좋은 놀라움이, 짜릿함이, 전율이 아니었다. 그것은 기분 나쁜 공포였고, 분노였고 소름 돋는 불쾌함이었다.

참 무서웠다. 그렇게 타인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은 그들의 ‘아무렇지 않은 듯한’, ‘당연한’ 행동이 무서웠다. 그래서 참 부끄럽게도 나는 ‘홀로코스트’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마다 늘 생각했다. 이런 일들이 나에게 일어나지 않음에 참으로 감사하다고.

솔직히 말하면, 그렇게 믿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한마디로 말해서, 난 착각하며 살아온 것일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사실 어쩌면, 우리는 순간순간마다 또 다른 홀로코스트와 대면하고 있었던 것일 수도 있다. 나치가 홀로코스트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선례를 남긴, ‘사회에 해가 되는’ 부류를 신속하게 추방하고 배제하는 방식을 가장 잘 실천하고 있는 곳은, 아마도 오늘날 대부분의 청소년들이 다니는 ‘학교’라는 공간일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나는 학교를 그만두고 아수나로라는 청소년인권단체에서 활동하며 나름대로 청소년인권운동이란 것을 한다고 헐떡대며 살아가고 있다. 하는 일 덕분인지, 다양한 고민과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청소년들을 수없이 만난다. 얼마 전 이른바 언론에서 ‘40명 퇴학’으로 시끄러웠던 경기 남양주 K고등학교 학생회 임원인 성민이도 그렇게 아수나로를 통해서 만나게 되었다.



홀로코스트 인 스쿨


지난 5월 22일, 아수나로 남양주지부 회의가 있었다. 그날 성민이는 우리를 찾아왔다. 회의 내내 조용히 듣고만 있던 성민이는 회의가 마무리되어 갈 때쯤 자기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우리에게 꺼내 놓았고, 성민이의 얘기에 나를 포함한 지부의 모든 활동가들은 “헐!”을 외칠 수밖에 없었다.

성민이의 말에 따르면, 올해 개교한 성민이네 학교는 개교한 지 한 달 만에 처음 퇴학당한 학생이 나왔고, 석 달이 된 지금까지 교칙 위반으로 무려 20여 명의 학생이 강제 자퇴나 전학으로 학교를 떠났으며, 그렇게 많은 학생들이 학교를 타의적으로 떠나게 만들었던 교칙이 제대로 개정될 기미가 안 보인다는 것이었다. 더 큰 문제는 그 교칙이 그대로 적용된다면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어 있는 20여 명의 학생들이 또다시 학교를 떠나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란다. 학생이 학교를 떠나는데 참으로 큰 ‘공’을 세운 교칙의 조항은 벌점이 70점 이상이면 자퇴나 전학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 흡연 및 담배나 인화물 소지 4회 이상 적발 시 역시 자퇴나 전학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경기도교육청에서는 각 학교에 학생인권조례안을 반영한 〈학생생활인권규정〉을 5월 27일까지 제·개정하라는 공문을 내려보낸 상태였고, 학교 측은 이를 알고 있었음에도 학생회 임원인 성민이에게 “학생회 측에서 학생, 교사, 학부모용 설문지를 만들어 결과를 가져오지 않으면 규정에 인권조례 반영은 없다”는 식으로 배짱을 부리고 있던 상태였다. 게다가 학교는 교칙을 제·개정해야 한다는 사실마저도 마감을 2주일 정도 앞두고서야 학생회 측에 알렸다. 그 사실을 안 후 1주일 정도 임원 연수에 참여해야 했던 학생회 쪽에선 사실상 교칙 제·개정을 준비할 수 있는 기간이 단 1주일밖에 없었다. 학교 측의 요구가 부당한 걸 알고 있지만 도저히 다른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성민이는 애가 탔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생회 임원으로서 성민이는 큰 부담을 느꼈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학교 측 몰래 우리를 찾아왔다고 한다.

고민이 깊어졌다. 지부의 활동가들이 머리를 모았다. 일단 시급한 문제는 수많은 학생들이 학교를 떠나도록 한 교칙을 하루 빨리 개정해 더 이상 학생들이 학교를 그만두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나와 성민이는 한 팀이 되어 일을 추진하기로 했다.

새벽 5시까지 뻑뻑한 눈을 비벼 가며 설문지를 만들었다. 쟁점이 되었던 두발과 복장, 상벌점제, 핸드폰 수거 등에 대해 학생, 교사, 학부모에게 의견을 묻는 설문지였다. 문항마다 관련이 있는 학생인권조례안 조항도 함께 집어넣었다. 그러나 학교 측은 조례 항목을 삽입한 것을 두고 “편파적”이라며 설문지 배부를 불허했다. 우리는 알 권리 침해라며 반발했다. 맥이 탁 풀렸다. 성민이와 나는 밤늦게까지 어떻게 할지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다. 결국 그 다음 날, 우리는 설문지 ‘배부’를 위한 서명운동을 진행했고, 설문지 배부는 뒤늦게 그날 오후가 되어서야 허가가 됐다(서명운동의 힘이라기보다는 그날 오후 퇴학 사태와 관련해 터진 언론 보도 때문이라는 생각이 미친 듯 솟구쳐 오르긴 했다). 우리는 오전에 전교생에게 설문지를 돌리고 오후에 수거해 밤새도록 통계를 냈다. 다음 날 바로 교칙 개정 심의위원회가 있어 당일 아침까지 통계 자료를 만들어야만 했다. 그날 오후 드디어 교칙 개정 심의위가 시작됐다. 심의위에 참가한 교사들은 어떻게든 빨리 대충대충 끝내 보려 했지만 성민이를 비롯한 학생회 임원들이 끝까지 물고 늘어지다 보니 회의 시간만 7시간을 훌쩍 넘겼다. 1주일 동안 그렇게 고생했는데 대충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회의가 끝나고 동네 벤치에 성민이와 나란히 앉아 개정된 교칙을 뜯어 봤다. 벌점으로 인한 퇴학 조항과 문제가 됐던 흡연 관련 규정이 사라졌다. 일주일 만에 처음으로 기쁨의 웃음이 나왔다. 더 이상 친구들이 학교를 떠나야 하는 것을 그저 손 놓고 보고 있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었다. 성민이는 연신 나에게 고맙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러나 기쁨도 한순간뿐이었다. 교칙 개정 결과가 아무리 잘 나오면 뭐 하나. 이미 학교를 떠난 그 많은 학생들이 다시 학교로 바로 돌아올 수 있는 건 아닐 텐데. 학교를 그만둬야 했던 학생들을 만나 얘기를 들어 보고 싶었다. 사실, 한편으로는 자신이 없었다. 누군가에게는 핑계로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힘들었다. 교칙 개정으로 이미 힘이란 힘은 다 빠진 상황이었고, 그 친구들이 학교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 하는지조차 모르는 상황이었다. 쓸데없는 고민만 하다 시간이 흘러갔다.



너를 통해 나를 보다


그러던 어느 날, K고 퇴학생이라는 태희에게서 연락이 왔다. 태희는 학교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을 전했다. 친구들도 다시 돌아가고 싶어 한단다. 만날 약속을 정했다. 그렇게 우리는 처음 만났다. 학교에서 쫓겨나다시피 했던 ‘루저’와 학교가 싫어 제 발로 뛰쳐나온 ‘루저’는 그렇게 처음 만났다.

늦은 오후 시간, 우리는 조그만 회의실에 모였다. 태희를 비롯해 2년 정도 학교를 유급한 수진이, 퉁명스러운 태도로 회의 시간 내내 나를 힘들게 했던 지훈이, 핸드폰만 바라보던 태용이까지 4명의 퇴학생들과 학생회 대표로 성민이를 비롯한 학생회 임원 4명, 그리고 나, 이렇게 9명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모인 퇴학생들이 원하는 건 올해 2학기에 바로 복학하는 것. 학교 측에선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 1년 뒤에 다시 복학을 시켜 주기로 했지만 이들은 남들보다 1년만 늦어져도 영원히 밀려 나갈 것 같은 세상에서 시간을 죽이고만 있는 것 같아 불안해했다.

제일 먼저 퇴학생들에게 학교를 나오게 된 이유와 과정에 대한 진술서를 부탁했다. 말보다는 글이 편할 것 같았다. 종이를 한 장씩 나눠 주고 기다렸다. 이런저런 얘기가 튀어나온다. “내 벌점이 얼마였지?” 하는 질문부터 “길게 써도 돼요?” 하는 질문까지. 그렇게 모인 진술서를 차례로 읽어 봤다.

태희는 사실 이번에 모인 퇴학생들 중 유일하게 교칙에서 정한 퇴학 대상이 아니었다. 벌점이 퇴학 수준까지 쌓였던 것도 아니고, 흡연도 규정에서 자퇴나 전학 대상으로 정한 4회에 미치지 않았다. 그동안 자잘한 일들로 학생부장에게 ‘찍혀 있던’ 태희는 복도를 지나가던 중 화장한 것을 학생부장 교사에게 들키고 5월 중순쯤 바로 징계위원회에 회부됐다. 그날 바로 부모님도 학교로 소환돼 함께 징계위에 참석했다. 징계위가 끝나고 수업을 받던 태희에게 담임교사는 전화를 걸어 “10일 안에 자퇴서를 내든지 퇴학을 당하든지 결정하라”고 했다. 학교 측은 이 과정에서 퇴학 조치에 이의가 있는 학생과 보호자가 조치를 받은 날로부터 15일 이내 또는 그 조치가 있음을 안 날로부터 10일 이내에 ‘시·도학생징계조정위원회’에 서면으로 재심을 청구할 수 있는 ‘퇴학조치재심청구제도’나 ‘학업중단숙려제도’가 있음을 전혀 알려 주지 않았다. “그럼 10일 동안은 학교에 등교해도 되냐”는 태희의 물음에 교사는 “안 된다”고만 단호히 대답했다.

그렇게 태희는 자퇴서를 써냈다. 당장 10일 안에 전학 갈 학교를 찾을 방법이 없어 퇴학보단 나을 것 같아 자퇴를 할 수밖에 없었다. 태희를 비롯해 참석한 학생들이 자신을 자퇴생이 아니라 ‘퇴학생’이라고 하는 이유다. 그러나 자퇴 이후 다른 학교를 찾으려고 해도 이미 소문이 났는지 학교들은 태희를 받아 주지 않았다. 태희가 원서를 낸 한 예고에선 태희 부모님께 전화를 해 “여기는 문제아들이 재기할 발판을 제공해 주는 곳이 아니다”라며 입학을 거부했다.

지훈이는 교사로부터 체벌을 받는 과정에서 욕설을 내뱉었다. 그런 식으로 쌓인 벌점이 140점을 넘어 지훈이 역시 5월 중순쯤 태희와 똑같은 방식으로 자퇴를 결정했다. 지훈이는 학생부장 선생님에게 자신이 찍힌 상태라 친구들과 함께 욕을 해도 자기만 불려 가서 혼이 났다고 말했다. 태희의 말에 따르면 학생부장 교사가 자기나 지훈이를 포함해 몇몇 요주의 인물을 찍어 두고선 그들에게 집중적으로 벌점을 부과하려 했다고 한다. 어떨 땐 주의나 반성할 시간을 전혀 주지 않고 바로 벌점부터 매긴 뒤 자신들에게 통보만 해 준 적도 있다.

수진이는 흡연 사실을 네 번 적발당해 바로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었다. 담임교사는 수진이에게 역시 퇴학보단 자퇴나 전학이 더 좋을 거라고 했단다. 수진이는 근처에 있는 미용고에 전학을 가려 했지만 입학을 거부당해 어쩔 수 없이 자퇴서를 썼다. 태용이는 지각과 결석으로 벌점이 70점을 넘었다. 자퇴나 전학 대상이었다. 교사가 어머니께 전화를 걸어 자퇴나 전학을 하지 않으면 퇴학을 시킬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단다. 그렇게 태용이도 4월 말쯤 자퇴서를 냈다. 이 학생들도 모두 태희와 마찬가지로 ‘퇴학조치재심청구제도’나 ‘학업중단숙려제도’에 대해 학교로부터 전혀 안내받지 못했다.

퇴학생들의 진술서를 꼼꼼히 모두 읽고 나니, 이건 태희와 지현이, 지훈이와 태용이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건 나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래서 더 익숙했고 그만큼 더 마음이 아팠다. 태희의 진술서를 읽으면서는 특히 학교가 참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그때 저는 많은 부분을 고친 상태였어요. 화장도 안 하려고 노력했고, 복장을 제대로 갖추기 위해 더 신경 쓰고, 학교가 원하는 대로 했는데 그렇게 고친 모습의 나를 보고도 학교는 자퇴나 퇴학만을 물었어요. 그것도 전화 한 통으로.”

이미 찍혀 버린 문제아여서일까. 모난 돌이어서일까. 학교는 학생들을 학교 밖으로 내모는 것에만 집중했다. 그렇게 그들이 학교를 나오는 과정에서 겪었을 상실감, 분노, 실망. 그건 내게 너무 익숙한 감정들이었다. 그들의 모습 속에 내가 보였다.



학교, 루저를 만들어 낼 뿐


내가 학교를 때려치우고 나온 지 벌써 1년이 넘었다. 참 싫었다. 수요일마다 강제로 참가해야 했던 예배 시간이, 노랗고 구불구불한 머리를 걸리지 않으려 새벽 일찍 등교를 하거나 아예 수업 시작하고 등교를 해야 했던 일들이, 모두 참 싫었다.

편하자고 믿지도 않는 예수님을 향해 기도를 하고 꼬박꼬박 예배에 나가기는 자존심 상하고, 벌점 받기 싫어 까만 머리, 짧은 생머리를 하기엔 그건 내 미적 기준에서 볼 때 너무 찌질한 헤어스타일이라 날 때려 죽여도 학교의 취향에 맞출 수가 없더라.

사실 강제 예배나 두발 규제보다 싫었던 것은 학교의 태도였다. 교사에게 난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고 예배 시간에 책이나 읽겠다고 말하는 순간 들었던 “그럼 너 우리 학교 왜 왔니? 다른 학교 가지”라는 대답이, 두발 검사로 벌점을 받기 싫어서 “개성을 표현할 권리도 인권입니다”라는 말을 했을 때 돌아왔던 “학생한테 인권이 어디 있어?”라는 대답이 훨씬 더 싫었다. 나의 생각들을 아무리 말해 봤자 돌아오는 것은 허무함뿐이었다. 답답했다. 차라리 벽과 이야기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태희를 비롯한 퇴학생들은 학교 측의 퇴학 결정으로 어쩔 수 없이 ‘루저’가 되었고, 난 내 스스로 ‘루저’가 된 것이 차이라면 차이랄까. 자발적이든 강제적이든 그것과 상관없이, 어쨌든 학교가 학교에서 떨어져 나갈 루저를 적극적으로 만들려 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태희의 학교처럼 아예 대놓고 쫓아내든지, 아니면 내가 다닌 학교처럼 스스로 지치게 만들어 제 발로 나가게 하든지 하는 방식의 차이만 있을 뿐, 자기들이 정한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학생들을 학교 밖으로 내몬다는 점은 똑같았다.





지금, 여기에서의 홀로코스트



예전 그 사회 수업 시간에 홀로코스트에 대해 배웠을 때 느꼈던 불쾌함을 참 오랜만에 다시 경험해야 했다. 학생들의 진술을 통해서 보았던 학교의 태도, 내가 겪었던 학교의 태도 모두 히틀러나 나치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운다.

홀로코스트는 그리스어로 ‘완전히’라는 뜻의 holos와 ‘불태우다’라는 뜻의 kauston의 조합인 Holokauston이라는 단어가 어원이다. 그렇다. 완전히 불태웠다. 그렇게 히틀러와 나치는 유대인뿐만 아니라 공산주의자, 장애인, 소련군 포로, 국내 정치범 등 참 많은 사람들을 완전히 불태웠다.

참 무서운 일이다. 히틀러와 나치가 왜 이러한 일들을 저질렀는지에 대한 역사적 이유도, 배경도, 사실 이제껏 내가 신나게 떠들어 댄 이야기에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어떻게 죄 없는 ‘유대인’과 죄 많은 ‘퇴학생’ 따위를 비교하느냐는 비난도 중요하지 않다. 즉, 나는 ‘유대인=퇴학생’이라는 공식이 아니라 ‘나치의 방식=학교의 방식’이라는 공식을 우리가 보았으면 좋겠다. 나는 다만, 그들의 폭력적인 ‘방식’에 집중하고 싶을 뿐이다.

히틀러와 나치는 그들이 불필요하다고, 열등하다고 판단된 부류들과 함께 가려 하지 않았다. 그저 정말 광고 속 대사처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배제하고 제거하기만 하는 그들의 방식은 소름 끼치도록 무섭고 잔인하다. 그것이 누군가의 삶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될 때는 더 그렇게 느껴진다.

학교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유대인들은 목숨을 잃었지만, 퇴학생들은 ‘미래’를 잃었다. 자기 학교는 문제아들의 재기를 위한 발판이 아니라며 태희의 입학을 거부한 예고처럼 학생들이 다시 설 기회를 이 사회는 쉽게 주지 않는다. 어떤 학생들은 학교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접기도 했다. ‘복학 운동’을 준비하는 퇴학생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주변에 복학을 하고 싶어 하는 학생이 더 없냐고 물었더니 태희가 답했다. “연락이 안 되는 애들도 있고 어디로 전학을 간 아이들도 있고요. 그런데 연락 되는 애들은 이제 학교에는 완전히 정이 떨어졌다고, 안 돌아갈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그보다 더 슬픈 것은 그들이 느꼈을 잔인함이다. 태희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선생님들은 특히 나를 싫어하셨어요. 특히 학생부장 선생님이요. 내가 지나가면 잡을 게 없나 스캔하는 것 같았어요. 친구들이 오죽하면 그랬겠어요. 선생님이 너 자르려고 작정한 것 같다고.” 그렇게 자신을 믿어 주고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쳤어야 할 교사라는 존재가 줬던 그 잔인한 실망. 학생들은 실망을 넘어 환멸을 느꼈을 테다.

가정 이후 아마 최초로 경험했던 공동체였을 학교가 나를 거부했을 때의 그 아득함. ‘문제’가 있는 나이기에 내쳐지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학교에 대한 불신과 실망. 그 공허함과 환멸. 왜 우리는 그토록 잔인한 방식을 먼저 배워야 하는가. 학교와 나치의 다른 점이라면, 학교는 이 사회에서 보기에 그 이유가 좀 더 논리적이고 사람들한테 잘 먹힐 핑계거리가 더 많다는 것뿐. 나에게 이런 홀로코스트가 다시 반복되어선 안 된다고 말씀하셨던 그 선생님은 지금 이 사태를 어떻게 생각하실까. 이는 다른 문제라고 말씀하실까.

K고등학교에서 이토록 많은 학생들이 떠나야 했던 이유에는 아마 이 학교가 신설 학교라는 점도 한몫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올해 초 개교한 학교이다 보니 아무래도 초반에 분위기를 좀 잡는 게 필요할 것이고, ‘명문고 이미지’를 만드는 것도 좀 필요했으리라. 그렇게 마음먹고 나니 눈에 거슬리는 학생들이 한둘이 아니었겠지. 초반에 학교 이미지 잘 만들어 놓아야 나중에 착하고, 선생님 말씀 잘 듣고,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많이 오겠지. 그러기 위해선 학교의 명예를 더럽히는, 혹은 그럴 만한 학생들은 미리 잡초 뽑듯 걸러내 버려야 했을 것이다.

거기다 ‘그런 불량 학생들은 공부 열심히 하고 선생님 말씀 잘 듣는 착한 학생들이 학교생활을 하는 데 방해만 된다.’ 혹은 ‘교칙에 퇴학이라고 명시되어 있는데도 벌점이나 모으고 담배나 피우는 학생들은 공동체 생활을 하는 데 최소한의 기본마저 지키지 않은 학생들이기에 더 이상 우리도 손을 쓸 방법이 없었다’는 핑계 한마디면 무더기 퇴학은 아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딱 좋았을 것이다. 이미 그 잔인한 학교의 방식에 익숙해진 탓일까. 학교에 남은 학생들은 퇴학이 부당하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그들이 다시 학교로 돌아오는 것에 대해선 ‘무리’라고 말한다.

이렇듯 나치와 학교 모두 진짜 목적이 무엇이든지간에, 그들 독자적으로 어떠한 기준과 잣대를 세우고, 거기에 미치지 못하는 ‘루저’들을 가차 없이 제거한다는 점에서 같다. 그러나 담배 피우고 벌점 많은, 그런 문제 학생들이 학교를 떠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는 게 일부 보수적인 교사들만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처음 이 ‘무더기 퇴학’ 사건을 들었을 때, 지역 전교조 교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분은 바로 그런 일이 있었느냐며 펄쩍펄쩍 뛰시더니 당장 해당 학교 조합원 교사를 만나 진상을 파악하겠다고 하셨다. 얼마 후, 다시 연락이 왔다. 그런데 정말 진상 파악을 ‘잘’ 하고 오셨다. 문제아들을 지도해야 하는 교사들의 고충에 대한 진상 파악. “퇴학 부당하지. 부당한 거 아는데, 교사들도 힘들어. 복도가 쉬는 시간이면 담배 연기로 뿌옇대. 교사들도 많이 혼란스러워해. 학생들과 같이 끝까지 가는 것도 중요한데 교사들로서도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감이 안 잡히는 게 사실이야. 현장은 그렇지.” 앞서 말한 학교 교칙 개정 과정에 함께할 생각이 없냐는 내용으로도 전교조에 먼저 전화를 했다. 그때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과정이 어쨌든 교칙 개정 설문조사하고 심의위원회에 학생 대표까지 참여하면 학교 측은 충분히 학생 의견 반영한 거 아니냐. 더 이상 학교 측에 우리가 뭐라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어쨌든, 이 무한경쟁 사회는, 경쟁에서 뒤떨어지는 부류들과 함께 살아가기를 거부한다. 경쟁에서 뒤떨어진 부류라면, 혹은 필요 없거나 방해된다고 판단되는 부류라면 가차 없이 내버리는 이 사회에서 그들의 기준에 맞추지 못한 루저들은 그저 서럽고 고달프다. 왜 우리는 그런 루저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을 왜 이리도 어려워하고 불가능한 일로만 여기는 걸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우리는 그렇게 소위 ‘문제 있고’, 함께 살길 ‘원치 않는’ 루저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방법을 제대로 고민해 본 적조차 없다. 우리는 그저 소외시키는 것밖에 할 줄 몰랐다. 내모는 것밖에 할 줄 몰랐다. 버리고 가는 것밖에 할 줄 몰랐다. 우리는 좀 더 근본적인 이야기를 해야 한다. 우리가 어쩌면 무심코 당연하다고 여기고 넘어갔을 수많은 이야기들, 예를 들어, ‘청소년은 왜 담배를 피우면 안 되는가’ 또는 ‘상벌점제는 과연 교육적인가’라는 질문부터 시작해 그리고 마침내 루저들을 만들어 낼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에 관한 이야기들까지. 하지만 그 얘기까지 꺼내면 이 글은 끝이 나지 못할 것이다.

그들에게 ‘문제’가 있다면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함께 고민하고 또 고민하자. 그렇게 모두가 할 수 있는 길을 찾아가고 마침내 함께 걸어가자. 함께 가자. 우리가 걸어가려 하는 길에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있을지 잘 알고 있다.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해낼 가치가 있는 일임은 어느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은 학교가, 교사가, 또 학생 모두가 지혜를 모아야 하는 일이다. 서로 소통하고 존중하며 그렇게 반성하고 마침내 문제를 해결하는 그 과정 하나하나가 곧 배움이며 희망이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 과정이 지난하더라도, 지치고 힘겨운 길이라 할지라도, 그렇기에 이제는 고민을 시작해야 할 때다.

글을 마치며 ‘문제 있는’ 학교와의 싸움을 이제 막 시작한 ‘문제아’들에게 전한다. 태희, 수진, 지훈, 태용, 그리고 내 자신에게 전한다. 그대들은 세상의 모난 돌임에, 루저임에, 문제아임에 틀림없지만 그래도, 그 존재만으로도 참 소중한 사람들이라고, 그렇게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들이라고. 

혜원

※ 이 글은 <오늘의 교육> 7·8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 이 글에 등장하는 청소년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



Posted by 오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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