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바닥에 깔린 청소녀 알바

44만원에 그치지 않는 노동현실

윤티



44만원, 청소년 비정규직 알바

나는 청소녀 알바생이다. 시사in에서 얼마 전에 나 같은 사람들에게 이름붙이길, 일명 “44만원 세대”라고 했다. 나는 여성이며, 청소년이고, 말하자면 비정규직 노동자다. 요즘 청소년노동인권 토론회나 언론 인터뷰 등에서 내가 이런 존재라는 것을 여러 번 우려먹고 있는 사실이긴 하지만 이게 뭐 비밀도 아니고 계속 말해서 닳고 닳을 얘기도 아니니까 괜찮지 않을까? ㅋㅋ 그래서 이번에도 내 경험을 가지고 한 번 청소녀 알바생들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탈학교 청소년인 나는 부모의 눈치 압박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배우고 싶은 것들을 내가 번 돈으로 배우고 싶었다. 그래서 돈이 필요했다. 그렇게 알바를 시작했고, 내가 처음 일했던 곳은 패스트푸드점이었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나는 카운터에서 계산하는 일을 하였다. 내가 하는 일은 뒤편에서 햄버거를 만드는 남자애들의 일보다 더 편한 일인 것처럼 느껴졌고, 그래서 처음에는 (어떤 기준으로 책정된 건지 잘 몰랐지만) 남녀의 시급에 차이가 있었지만 그러한 차이에 대해 별 감각이 없었다.

하지만 일을 하면 할수록 이게 그리 편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면 할수록 진이 빠진다고 해야 할까.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그냥 계산대를 두드리고 주문을 받는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여성다움’을 같이 팔고 있었다. 일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서야 알았다. 난 주문을 하러 들어오는 손님들에게 맑은 목소리를 선사해야 했고, 버거를 만드느라 지친 몸에 못지않게 스스로를 여성스럽게 가다듬고, 언제나 웃는 얼굴을 보여야 하는 ‘험한 일’을 해야 했다.



청소녀들, 돈을 벌려면 성을 이용하라구?


어쨌든 돈은 벌어야 했기에 패스트푸드점 알바를 그만두게 된 뒤에도 다른 일을 구하였다. 그런데 그 일이 참 커다란 ‘일’이었다. 사무직 일이었는데, 처음에는 일주일에 사흘 정도만 나가서 서류 정리 조금 하면 되는 일이라고 했다. 하루 4~5시간 일하고 일당은 2만원이라고 했다. 그런데 면접을 보러 갔는데 가자마자 내게 설거지와 청소를 할 수 있겠냐고 물어보더라. 자기가 혼자 일하고 있는데, 그런 일들을 못하고 있다고. 이래서 여자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그때 깨달았어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집에서도 잘 하지 않는 일이었지만 돈이 필요하니까 한다고 얘기했고, 그렇게 그 사장의 사무실(인지 집인지)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주급을 받는 날, 그 기러기 사장의 무언가를 요구하는 눈에 나는 큰 반항 한 번 못하고 ‘당해야’ 했다. 처음엔 다리를 쓰다듬더니, 나중에는 안아달라고 했다. 그 상황에서도 아직 돈을 받지 못했다는 생각에, 그냥 박차고 나와 버릴 수도 없었던 그 때를 생각하면, 더 치가 떨린다. 나는 일을 하러 갔는데, 그 사장이 원한 건 내가 생각하는 일이 아니고 다른 일이었다는 것이 무서웠다. 여성청소년이 돈을 많이 버는 일을 구하려면 일단 이런 수모는 미리 각오하고 들어가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하며 그 오피스텔을 빠져 나왔다.

사실 처음엔 이런 일을 당했어도, 혹시나 있을지 모를 사장의 해코지가 두려워서, 또는 이제 와서 하소연해봤자 뭐가 있겠나 싶은 마음에, 내 마음 속에만 꽁꽁 숨겨왔던 것 같다. 많은 청소녀 알바생들이 그러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렇게 당당하게 자신이 겪은 일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 청소년 알바를 모집하는 광고. <사진 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밑바닥 노동, 청소년 노동인권 현실


얼마 전인 11월 27일에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에서 발표한 ‘청소년 노동자의 노동인권실태’를 보면, 청소년들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88만원 세대만도 못한 44만원 세대인 청소년 알바. 그래서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는 이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할 때, '밑바닥 노동'이라는 표현을 썼다.

시급이 3770원이었을 때도 2100원, 2500원 등등 햄버거 한 개 값만도 못한 시급을 받으며 청소년 알바는 그렇게 '헐값노동' 취급을 받아 왔다. 그나마 올해부터 시급이 4000원으로 올랐다고는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시궁창이다. 임금뿐만 아니라 노동 환경 또한 청소년 노동자들에겐 가혹하다. 실태조사 결과 발표에 따르면, 일하는 도중에 휴식 시간과 휴식 공간의 여부를 묻는 질문에 대해 '휴게시간 따로 없다/휴게실 없다'고 답한 비율이 각각 62.0%, 62.8%로 꽤나 높게 나왔다. 근로기준법에도 4시간 일을 하면 30분은 꼭 쉴 수 있게 해야 한다,라고 명시되어 있지만, 청소년 노동자들에겐 쉬는 것도 사치일 뿐인 것 같다. 나도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할 때 매일 똑같은 버거만 먹으면서 좁은 곳에서 딱 30분 쉬게 해주었던 기억이 있는데, 그 30분이 너무 짧게 느껴졌으니까.

우리가 청소년이기 때문에 고용주(비청소년)들은 우리를 더 쉽게 대한다. 실제로 어떤 청소년은 일하는 시간보다 늦게 도착했다고, 손을 들고 벌을 서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청소년'노동자가 아니었다면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일일테다. 일단 '청소년'에 대해, 거기다 공부만 죽어라 열심히 해야 할 청소년이 '알바'라는 것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 딱히 칭찬해주지 않는 사회이기 때문에 그 사회의 시선으로 보면 우리는 너무나 만만한 존재다. 그래서 서비스업, 주문을 받는다거나, 전화를 건다거나 하는 업종에 있다 보면 손님들까지 우리를 막 대할 때가 있다.

▲ 최저임금위원회 앞에서 청소년 노동자들이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용모단정(?)과 밑바닥을 벗어날 날은


나도 일을 하고 싶고, 돈을 벌고 싶다. 하지만 확실히 변하지 않는 건, 여성청소년에게는 주어진 일자리조차도 별로 없다는 것이다. 힘들게 일하고 돈 많이 주는 알바는 난 할 수 없다. 하고 싶어도 못한다. 편의점 야간알바는 대부분 남자를 뽑고 오토바이배달이나 다른 배달 쪽 일도 거의 남자가 대부분이다. 청소년 알바도 성별분업이 되어 있다. 여성들은 상냥하고 예쁘고 얌전한 일, 남성들은 힘쓰고, 몸 부딪히고, 강하고, 험한 일. 우리는 그런 식의 험한 일은 여성들의 것이 아니라는 걸 계속 교육받아왔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대중매체들에서도 여성의 직업과 남성의 직업은 확연한 차이가 있다고 보여준다. 그리고 남성 직업인데 그 일에서 성공한 여성들, 소위 말하는 '여성 엘리트' 을 보여주며, 이례적인 일이라는 투로 말하곤 한다. 그러면서 다른 여성들을 향해 말한다.
"너도 네 재주껏 해봐."
남성은 능력만 있으면 된다고 하지만 여성은 능력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말이 있다. 다시 내가 알바를 구할 때는 '용모단정'이라는 조건에 맞추기 위해 시간을 써야할 것 같은 두려움이 스물스물 생겼다.

여성청소년으로 노동을 한다는 것은, 안 그래도 '밑바닥 노동'인 청소년 노동에서 그 '밑바닥'을 뚫고 한참 더 내려가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그것은 비슷한 일을 하는 것 같은데 (안 그래도 초초저임금인) 시급에 남녀차가 있는 것이기도 하고, 손님들을 대할 때 아무리 토 나올 것 같은 손님을 만나더라도 언제나 생글생글 웃어야 하는 것이기도 하고, 주급 더 올려 줄테니, 애인이 되어달라는 마초 아저씨들의 더러운 말을 시도 때도 없이 들어야하는 것이기도 하다.

여성과 청소년, 여성 청소년의 노동 현실은 언제쯤 밑바닥을 벗어날 수 있을까.

Posted by 오승희



스무살이 된 걸(girl)이 보내는 편지


엠건


작년 겨울(벌써 작년이라니 믿을 수가 없다),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를 모티브로 영상을 하나 찍으려 했었다. 나와 내 친구들을 통해 막 20대에 들어선 여자애들의 이야기를 해보겠다며 시작했던 영상은 결국 이런저런 사건사고 끝에 제목이 모든 걸 말해주는('못나서 그래') 자아성찰 다큐로 끝을 맺었다. 그래도 이 영상 찍는다고 친구들을 열심히 찾아다녔던 덕에 한 겨울을 나홀로 방콕하는 대신 친구들 그 해 살았던 얘기 들으며 보낼 수 있었다.

학교를 조용하게는 다녔지만 썩 성실하게 다니지는 않았다. 덕택에 학교친구로 핸드폰에 저장된 이름이 열을 넘지 않는다. 그나마 지금까지 만나는 학교 때 친구로는, 내 친구의 친구들로 곁다리 관계를 시작해 아직까지도 '친구가 되고 있는 중'인 대여섯 명의 여자친구들이 있다. 학교 졸업하고 부쩍 만나는 일이 줄어들면서, 이대로 멀어지는건가 멀찍이서 마음만 헛헛해하고 있던 차였다. 다큐를 찍는다는 명목으로 애들을 찾아다니면서, 이게 그리 벌어지고만 있던 거리를 좁히는 일이 되어주는 것 같아서 좋았다. 친구집에 하룻밤 모여 놀던 날엔, 한 이불 덮고 예전 고등학교 얘기, 대학교 구린 얘기, 이 얘기 저 얘기 오락가락하는 수다들을 찍으면서 빨리 이 카메라 걷어치우고 나도 같이 편하게 얘기하고 싶다 계속 생각했다.



12월의 끝자락, 홍대에서의 풍경


12월이 끝날 무렵, 홍대에서 친구들을 만났다. 살짝 비싼 스파게티도 먹고 거리에서 옷 구경도 하면서 놀기로 예전에 정한 날이었다. 내 딴엔 나름대로 고대했던 카메라 없이 맨 몸으로 애들이랑 노는 그 날이기도 했다. 좀 늦게 도착해서 만나게 된 친구들은 멀리서 보기에도 아가씨 티가 폴폴 나는 옷차림과 화장을 하고 있었다. 점심을 먹으러 유명하다는 맛집에 갔다. 슬슬 배가 불러오때 쯤, 애들이 디카를 꺼내들고 둘씩 셋씩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케이블 TV 프로 '남녀탐구생활'에서 본 게 떠올랐다. 음식을 앞에 두고 끈임 없이 사진을 찍는 내용의 '여자 편' 에피소드였다. 찰칵찰칵. 다 먹고 나선 역시 유명하다는 어딘가에 가서 달달한 케ㅇㅣㅋ을 먹었다. 케ㅇㅣㅋ도 역시 디카로 찍었다. 어쩌다보니 소개팅 얘기를 하고 있었고,옆 테이블에선 인터넷 쇼핑에서 질렀다는 부츠 얘기가 들렸다. 어느 순간 또 화장품이 보였다. 맛없는 케익을 남기고, 이번엔 바로 아래층에 있던 스티커 사진점으로 갔다. 찍는 둥 마는 둥 옆에 서있다가 애들이 사진 꾸미기를 하는 사이 가게 밖으로 잠시 나왔다. 영상을 찍는 동안 조금쯤 좁혔다고 생각했던 친구들과의 거리는 카메라 없이 애들과 홍대에서 지냈던 하루가 끝나자 무한대로 벌어져있었다.



'학생' 정체성에서의 졸업, '아가씨' 라는 정체성으로의 입학


그 날 홍대에서 내가 친구들에게 느낀 거리감은 적어도 우리가 각자 대학에 가거나 재수를 하고, 홈플러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시청에서 일하게 되는 등, 서로 다른 곳에서 다른 일을 하고 살게 되며 벌어진 '차이' 때문은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놀란 건, 그렇게 달라지고만 있는 줄 알았던 친구들이 또 다른 방식으로 너무나 비슷해지고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스무 살을 맞고 이십대 여성이 된다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지만, 친구들이 남녀탐구생활의 '여자'와도 겹쳐질 정도의 20대 여성이 되어가는 걸 보면서, 이토록 끈질기게 따라오는 '단일함의 굴레'가 참 무섭구나 싶었다. 수백 명을 '학생'이라는 단일한 존재로 만들려는 괴물 손아귀에 붙잡혀서 십 몇 년을 살았다. 같은 공간, 같은 복장, 같은 시간표, 같은 질서 같은 단일한 조건들을 서로 공유하며 살다보니 수백 명의 다른 존재가 어느 샌가 단일한 존재, '학생'이 되어 있었다. 스무 살이 되었고, 이제 우리는 서로 다른 공간 다른 옷 다른 시간표를 가지고 산다. 하지만 서로 다른 존재들을 특정 이익에 맞는 단일한 틀 안으로 우겨넣는 '같은 질서'는 활동공간을 학교에서 이 사회 전체로 확장한 채 여전히 반복된다. 학생은 학교가 무수한 청소년들에게 강요했던 단일한 정체성이었다. 그리고 그건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적어도 학교 공간 내에서 약화시킬 정도로는 절대적이었다. 여학생들이 더 이상 '학생'이 아니게 된 순간, 졸업과 동시에 또 다른 입학이 시작됐다. 이젠 '20대 여성' 혹은 '아가씨'로서의 정체성이 우리 몸에 올가미를 씌우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의 욕구는 왜 자꾸 아이러니한 결말을 맺는지


성인이 되면서 두 가지를 기억하고 가기로 했다. 19세 미만에겐 허용되지 않는 법적인 권리, 성인으로서의 사회적 권위, 뭐 그런 기득권을 좋든 싫든 갖게 되었다는 경계해야 할 사실이 하나. 또 하나는 술 취한 대학가 위로 겹쳐지는 소비자본주의 울라불라 하는 지배 질서의 음흉한 환영에 덧댄 '새로운 소비자 하나 추가요' 누군가 외치고 있는 것 같은 기분 나쁜 환청이 둘. 그 날 친구들이랑 홍대 거리를 누비고 다니며 했던 건, 함께 어울려 논다는 의미보다는 그저 소비였다. 정확히는 '홍대'라는 환상에 대한 소비였다. 그 환상을 가진 소비자들은 또 다시 홍대의 것을 비롯한 숱한 환상을 조장하는 사람들 손에 소모되고 있는 지도 몰랐다. 예쁜 여자에 대한 환상에 소모되고, 소녀시대의 환상에 소모되고, 남녀평등시대라는 환상에 소모되고. 우리가 하는 소비가 우리에 대한 소모로 돌고 돌았다. 나라고 화장을 아예 안 하는 것도 아니고, (표현이 좀 웃기지만) 어른티 나는 옷을 입어보고 싶은 욕구도 있다. 하지만 내 친구들을 비롯한 여성들이 '예쁘고 늘씬해지는 것'으로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여자라면 응당 그래야한다는 식으로 세간에 상식처럼 퍼져있는 무언의 강요들을 볼 때마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누리고 유지하려는 남성 중심적인 사회의 교묘함이 더 깊숙이 다가올 때마다, 내 욕구도 단순히 내 것이라 믿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틀 속에서 내 욕구가 정말 온전한 나의 욕구일까. 남성 중심의 사회와 그 틀에서 생겨난 욕구의 실현이 그저 내 욕구의 충족만으로 끝날 리는 없지 않느냐는 생각. 화장을 하는 것도, 사회에서 인정받는 인간이 되기 위한 투자들도, 내 욕구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하는데도 왜 자꾸만 '놈'들의 욕망을 채워주는 것으로 아이러니한 결말을 맺는지. 약자들은 왜 욕구조차 온전히 자신의 것이 아닌 건지.



사회가 요구하는 정체성이 인해 '나'를 지우기 전에


20대 여성이란 정체성은 내가 이십대 성인이고 여성이라는 단순한 사실의 조합이 아니다. 남성들에게 섹스어필할 수 있는 성인여성, 혹은 가부장의 입맛에 맞는 참한 아가씨, 이 사회가 만들어낸 '20대 여성' 이란 정체성. 이것의 정체라는 게 별 게 있겠나. 그리고 우리는 20대 여성이 되자마자 아르바이트하는 곳에서 마주치는 성희롱을 눈 감고, 대학가 남자동기들의 지극히 마초스런 발언들에 무뎌지고…살아남기 위해서였는지, 어째서였는지, 깊게 체념하고 수긍한 뒤에 속 뿌리부터 진득하게 썩어문드러지는 그런 과정을 밟고 있는 것만 같았다. 조금씩 조금씩 더 '아가씨'가 되어가는 친구들을 보면서, 그 애들을 만날 때마다 자꾸 더해가는 서글픔 때문에 이 글을 쓰게 됐다.

이십대가 된다는 게 점점 더 생각이 없어지고 얕아지는 그런 일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십대 여성이 된다는 게, 내게 향하는 폭력보다 그런 폭력이 아무렇지도 벌어지는 세상을 욕하는 것보다 시시때때로 거울보고 화장을 고치는 게 더 익숙하고 자연스러워지는 그런 일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다가는 결국 사회가 요구하는 '20대 여성'만 남고 '나'는 사라져버릴 것 같아서, 홍대에서 같이 놀던 날에도 사실은 그게 가장 두려웠던 것 같다.

그래서 내 욕구도 의심하고, 20대 여성(혹은 아가씨)으로 사회가 호명하는 내 정체성도 띠껍게 봤으면 좋겠다고, 난 이 놈의 사회를 도저히 못 믿겠으니 우리 같이 믿지 말자고, 그런 얘기들을 털어놓고 싶었는데…잘 됐는지 모르겠다. [페미니즘 인 걸]의 꼭지에 대놓고 20대가 어쩌고 하고 있는 게 잘 하는 짓인지도 다 쓰고 나니 문득 불안해진다. 그래도 마음만은 언제까지나 걸(girl)인 필자이니 이번만 너그럽게 봐주셨음 좋겠다. 아님, 페미니즘 인 걸 번외 정도로 치부해도 좋고.


Posted by 오승희


왜 소수자들은, 여성/청소년들은, 오지랖이 넓은가


난다


‘그래도...’의 반복


학교를 그만두기 전, 학교 친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때, 늘 어느 순간 벽 같은 것에 부딪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신나게 학교 욕, 선생 욕을 하다가도 누군가는 꼭 “너무 우리들 생각만 하지 말고, 선생님 생각도 좀 하자.”라고 이야기하곤 했다. 이를테면 체벌에 대해 수다를 떨 때, “어떻게 사람이 사람을 그렇게 때리냐? 진짜 그 선생 너무 심하게 때리는 것 같아.”라고 얘기하면, “에이, 그 선생님이 좀 심하게 때리긴 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체벌은 허용되고 그래야, 우리도 스스로를 통제하고 학교도 잘 굴러갈 수 있는 거 아니겠어?” 그리고 친구들의 끄덕거림이 따라온다. 늘 답답했었다. 왜 이 친구들은 자신들을 억압하고 통제하는 것들에 대해 그냥 그대로 수긍하는 거지?

비슷한 경험은 학교를 그만 두고서 인권활동이라는 걸 하면서도 자주 접했던 것 같다. 인권교육을 가서 학생들의 권리나 인권에 대해 얘기하면 청소년들은 ‘아무리 그래도’ 하면서 ‘선생님들’ 걱정을 했다. 고된 하루를 마치고 돌아온 아빠는 회사 뒷담화를 까다가 내가 발끈하자, ‘그래도’하면서 ‘사장님’을 옹호한다. ‘사장님’도 나름의 고충과 어려움이 있어서 그러는 거라고. 내가 보기엔 아빠가 훨씬 힘들어 보이는데.



구조적 무감각과 ‘착하게’ 길들여지기


사람들은 쉽게 이 사회의 기준을 받아들인다. 그래서 주류적인 기준을 흔드는 것들에 대해 불편함을 느낀다. 곧잘 ‘인권’을 이야기하고, ‘차별’을 이야기하고, ‘변화’를 이야기하지만 어떤 ‘선’을 넘어가지 않으려 한다. 그 ‘선’을 넘어가는 것은 기존 사회의 질서를 흔들고 침범하는 것이라 여긴다.

처음부터 그랬을 것 같진 않다. 청소년들이 “아직 어린 것들이”라는 말에 맞춰 “그래, 우린 아직 어리니까 좀 더 통제 받아야 해.”라고 생각하거나, 여성들이 이 사회 ‘미’의 기준에 맞춰 자신을 더욱 꾸며내고 혹독한 다이어트를 감행한다거나, 혹은 자신에게 상처를 준 남성들을 먼저 이해하고 배려하는 방식으로 상처를 치유하려고 한다.

같은 사회적 약자로 닮은꼴인 청소년과 여성, 그리고 약자들은 웃기게도 강자를 먼저 걱정한다. 그러한 여성성과 약자성(먼저 배려하고 먼저 이해하고)은 약자가 강자에게 훨씬 더 많이 잘 발휘되고 있다. 이는 성인/교사/남성-강자 중심 사회에서 그들 중심의 질서가 학생/여성 속에도 깊이 뿌리를 내려, 자신들을 둘러싼 억압마저 그들의 시선으로 보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어렸을 때부터, 아주 예전부터 ‘남성/비청소년의 이야기’가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정받는 사회를 살며 쌓아온 경험들이 우리들 마음 곳곳에 눌러 붙어 ‘내면화’되었기 때문이다.



생존하기 위해 강자 입장 내면화하기

소수자/약자들이, 권력 있는 자/강자들을 위하도록. 그래서 이 사회가 뒤틀리지 않고, 뒤집어지지 않게 고정시킬 수 있도록. 그렇게 사회는 우리들을 오랫동안 ‘착하게’ 길들여왔다.

그렇게 길들여진 ‘착한’ 사람들은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걸 받아들이고 산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착하고 착실했다. ‘야간자율학습’은 한 번도 빼먹지 않았고, 성적도 그럭저럭 유지했다. 학교의 온갖 규제가 고통스러워도, 선생님들이 우리를 때려도, 나는 그 순간순간을 흘려보냈다. 그런 것들을 그만두라고 말하고도 싶었지만, 그 순간에는 착실하게 참아냈다. 그 순간만 넘기면 되니까. 또는 그 순간에 내 목소리를 내기라도 하면, 눈앞에 징계나 탄압이 떨어질 테니까.

하지만 그런 시간을 보낼수록 선생님들이 우리를 때릴 때마다 그걸 계속 지켜보고만 있어야 한다는 게,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게 괴로웠다. 나는 왜 아무 말도 못하는 거지? 나는 왜 이렇게 힘이 없지? 이런 고민을 하다가, 그냥 거기에 그럴 만한 의미를 부여해버렸던 것 같다. 어쩔 수 없어, 라고. 선생님도 그만한 이유-학생들을 대학에 많이 보내야 할-가 있어서일 테고, 그건 선생님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니까, 라고.

먹고 사는 것, 여성들의 경우에는 사회적 인식도 그렇고, 학생들은 학교에서의 눈앞에 보이는 탄압이나 징계에 대한 문제 때문에 쉽게 바꿔내야겠다는 생각을 더 못하게 되는 것 같다. 나는 나의 생존을 위해서 이 체제에 편입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편입되는 자기를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강자의 입장을 이해해야 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을 정당화 시켜야 했다. 나한테 고통을 준 사람도 어느 정도 합당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인 것이고, 이 사람들을 이해하게 되면 나는 덜 불편할 수 있으니. 그리고 그럴 때에야 나는 이 사회의 질서를 어지럽히거나 혼란스럽게 하는 나쁜 사람이 되지 않을 수 있으니. 그래서 나도 그러한 나 자신과 학교와 체벌하는 교사에 어떤 의미를 부여했던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학창시절을 추억할 때처럼. 대학에 가고 나서, 자유시간이 많아지니, “아 그래도 고딩 땐 할 게 있었는데~”하는 생각이 드는 것처럼. 수능 보기 전에는 수능공부=쓸모 있는 짓/나머지 전부=휴식이라는 ‘공식’이 있었는데, 수능이 끝나고 이게 허물어지고 나니, 참 허무하더라는 것처럼.

너무 힘든 시절이었지만, 그렇게 힘든 시간만 있었다고 생각하기엔 내가 너무 비참하니까. 그래서 소소하고 시시콜콜한 일들을 더 크게 기억하고 추억하면서 그 때는 그래도 좋았지, 그래서 좋았지, 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 반복되고 반복되어 이 체제를 구성한다.



그래서, 그러니까

이 단단한 구조를 직시하는 것은 여성으로, 청소년으로, 약자로 살아가고 있는 나를 온전히 바라보는 것만큼 어렵고 힘든 일이다. 하지만 우리를 더욱 ‘착한 아이’로 길들이는 국가의 통제가 점점 더 검은 그림자를 펼쳐오는 이 때, ‘착한 아이’가 아니면 무차별적인 폭력으로 쫓아내버려도 된다고 생각하는 이 때, ‘국가’를 위해서는 권리를 주장하는 것도 멈춰야 한다고, ‘모두가 똑같은 손을 들어야 한다고’ 말하는 이 때. 우리 이제 더 이상 착해지지 않아도 되었으면 좋겠다. 이 커다랗고 단단한 기준을 뒤집을 만한 발칙함과 깐깐함이 우리에겐 더 많이 필요하다.
Posted by 오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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