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 시위 현장에서 두 명의 사망자가 나오고 경찰총장이 사퇴한 뒤 폭력 시위/폭력 진압을 두고 참 많은 말들이 오가고 있다. 이는 누가 먼저 폭력을 썼느냐의 문제, 즉 무석무탄(無石無彈 : 돌 안 던지면 최루탄도 안 쏜다.)과 무탄무석(無彈無石 : 최루탄 안 쏘면 돌도 안 던진다.) 사이의 문제인가. 일부 언론의 말대로 "시위 문화"의 문제인가. "시위대의 절박한 상황을 이해해달라."라는 변명만으로 정말 면죄부가 주어질 수 있는지도 논쟁거리다.

 학교 다닐 때 기억으로는, 애들 사이에 싸움이 나면 누가 먼저 주먹을 휘둘렀는지에 관계없이 싸운 애들은 다 꾸중을 듣곤 했다. 휴머니즘의 견지에서 보자면 설령 상대가 폭력을 휘두르더라도 폭력으로 응대하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정당방위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정당방위와 과잉방위의 경계선이란 모호하기 그지없다. 경찰과 시위대 중 어느 쪽이 먼저 직접적 폭력을 휘둘렀는지를 놓고 논쟁을 벌이는 것은 별 의미가 없는 일이란 소리다. 물론 다 큰 어른들이 싸움을 벌여 부상자/사망자 분들이 실려나가는 판에 초등학생 화해시키듯 할 수도 없는 노릇. 책임은 그렇다 치더라도, 시위 현장에서 자꾸 폭력이 일어나는 원인은 있을 터이다. 왜 시위대는 죽창과 짱돌을 들어야 하는지, 왜 경찰은 방패로 사람을 찍어야 하는지.

 결론은 "시위 문화"다. 단, 일부 언론에서 떠들어대는 그 "시위 문화"는 아니다. 문제가 되는 시위 문화는 시위대의 시위 문화나 시민의식이 아니라 바로 시위대를 가로막는 쪽의 "시위 문화"다. 예를 들면 저번에 삼성 본관 앞에서 삼성의 불법 정치자금 문제를 규탄하러 사람들이 시위를 열었더니만 아 글쎄 경찰이 질서유지랍시고 커다란 차로 현장을 둘러싸 시위대를 격리시킨 적이 있었다. 집회 신고를 했는데도 경찰이 차량 통제를 안 해줘서 애먹는 일 또한 없는 건 아니다. 시위대 입장에서는 분통터지지만, 그런 게 ‘진압자'들의 시위 문화다. 집회나 시위를 보호 대상으로 보지 않고 무슨 폭탄이나 애물단지 보듯 하는 것이다.

 몇몇 경우만을 두고 시위 ‘관리'하는 분들이 항상 그런다는 듯이 과장한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을 테니 좀 더 일반적인 이야기를 해보겠다.(모두가 항상 그런 식으로 집회나 시위를 대하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호의적인 분들도 있으며, 그저 업무로서 법에 정해진 대로 묵묵히 이를 대하는 경찰 분들도 있다.) 집시법 11조를 보면 국회의사당이나 대통령관저 주위 100m 안에서는 집회 및 시위를 못하게 되어 있다. 헌데 법이란 국회에서 통과되는 것이니 법을 놓고 항의할 때 시위대가 갈 곳은 응당 국회 앞이다. 경찰들은 법을 지켜야 하니 사람들이 못 오게 막고 사람들은 가려고 하니 싸움이 날 수밖에 없다. 농민 분들이 돌아가신 것 또한, 시위대는 국회 쪽으로 가려 하고 경찰들은 그걸 막으며 여의도 광장에 시위대를 가둬두려다 하니 벌어진 불상사였다. 부산 APEC 당시 반세계화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도 비슷한 도식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예를 들면, 최근 전라북도 도지사는 도청 앞 광장에서 집회·시위할 때 허가를 받게 한다는 괴악한 법을 만들려 하기도 했으니…. 아직도 사회 일각에서는 "데모"는 사회를 해하는 몹쓸 것이라 생각하는 듯하여 씁쓸하다.

 시위대 분들이건 경찰 분들이건 다치지 않았으면 한다. 그러니까 "시위 문화"부터 바꿔보자. 감정에 호소하는 방식으로 폭력을 정당화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그런 논리에 따르자면 폭력시위/폭력진압 논의가 각 사안별 중요도나 정도 이야기로 바뀌어버리기 때문이다. 집회 및 시위 그 자체를 우리 사회(또는 일부 권력자나 경찰)가 어떻게 대하는지부터 고민해보자.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자면, 집시법에서 집회 및 시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부분을 개정하는 것, 전경이니 하는 편법 제도도 없애는 것, 그리고 "자신들의 권익을 향상시키기 위해 시민생활에 불편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마지막 수단으로" 시위하라는 도덕 교과서적 헛소리를 수정하는 것 등이 시위 현장에서 폭력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을 줄일 방안일 것이다.

(익명)
Posted by 오승희
 얼마 전 시위 도중 전경들과 시위대 사이의 충돌로 시민 한 명이 사망하면서 전임 경찰청장이 사퇴하는 일이 벌어졌다. 물론 평화시위를 하던 도중에 무고한 시민들이 전경들 곤봉에 맞아 사망했다면 그건 경찰청장이 사퇴할 만한 이유가 된다. 하지만 사건의 전후가 언론을 통해 전해지면서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역시 "목소리만 크면 무조건 이기는 나라"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한 언론 매체를 통해 서울시 모 병원 병동에 전·의경들이 이십여 명 입원해 있다는 기사를 접했다. 글로 표현했지만, 다 읽고 난 후에는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끔찍했다. 쇠 파이프에 맞아 손등이 으스러져서 철심을 6개나 박은 사람, 죽창에 찔려서 다리를 못 쓰게 된 사람, 3~4층 높이의 건물에서 시위대가 던진 돌들에 맞고 떨어져 다친 사람, 죽창에 눈이 찔려 안구가 파열되어 시력 회복이 불가능한 사람들이 그 끔찍한 기사의 주인공이었다. 사실 뉴스에서 시위대가 쇠파이프를 휘두르고 전경들은 방패를 들어 그것을 막고, 혹은 방패로 시위대와 맞서는 장면은 보았지만, 그 속에 벌어지는 일들이 이런 끔찍한 결과를 낳을 줄은 상상조차 못했던 것이다. 죽창에 눈이 찔려 안구가 파열된 전경의 기사를 접하고 이건 좀 너무하다 싶었다.

 충돌이 있으면 부상자들도 속출하기 마련. 그 정도는 예상하고 있던 바이지만, 이건 아닌 것 같았다. 마치 평소 세상에 받은 스트레스들을 전경들에게 모두 풀려는 듯 독기를 품고 아주 죽어라고 때린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도 이렇게 전, 의경들을 사람구실 제대로 못 하는 반병신을 만들고서 경찰청 앞으로 찾아가 "경찰청장 사퇴하라!"를 외치는 시위대들을 도저히 이해 할 수가 없었다. 오죽했으면 얼마 전 한 경찰이 경찰의 상징인 경찰모를 대통령 앞으로 보내왔을까. 전경들과 충돌하는 시위대들의 인권 역시 소중하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을 진압하는 경찰들의 인권 역시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맞은 경찰들은 어디가서 항변하란 말인가. 맞고 반병신이 되어서도 자신을 그렇게 만든 사람조차 찾지 못하고, 단지 상부에서 떨어진 명령 때문에 안구 파열되고 뼈가 으스러진다면 누가 경찰하려 하겠는가.

 더욱 가관인 것은 이 시위문화를 반성하기는커녕 이제는 홍콩까지 날아가 원정시위를 했더라는 것이다. 홍콩 경찰만 64명이 부상을 당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요구하는 바가 이루어 지지 않으면 300명이 더 날아가서 원정시위를 한다고 하니 참 한심하기 짝이 없다. 얼마 전 여의도 시위에서만 우리나라 전, 의경 220여명이 다치고 중상을 입었다고 하는데, 민중의 지팡이가 민중에게 짓밟혀 으스러지는 꼴이 참 말이 아니다. 이제 이런 식의 시위 문화는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위대가 먼저 죽창과 쇠파이프를 휘두르고 병에 불 붙여서 안 던지면 경찰은 절대로 곤봉 안 휘두르고 최루탄 안 던진다는 것이다. 시위대는 마치 "그 동안 스트레스 많이 받았는데, 그래 너희들 잘 걸렸다." 하는 식으로 전, 의경들 마구 짓밟는 것밖에 안 된다. 그러니 경찰들한테 기름 뿌리고 거기다 불붙인 병을 던지는 살인 행위를 저지르는 것이다.

 이제 이런 시위 문화는 바뀌어야 한다. 더 이상 경찰은 때리면 죽일 놈이 되고 시위대가 경찰을 때리면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 없는 행위로 판명되는 우리들의 인식이 바뀌어야 할 것이다. 전 의경들의 인권 역시 소중하고 그들도 시위대들과 같은 인격체임을 명심해야 하지 않을까.

대구경북고등학교 이지원
Posted by 오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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