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인권 종결자
『인권, 교문을 넘다 - 학생인권 쟁점탐구』


공현



"두발자유는 머리카락의 자유인가?"

  두발규제에 맞서서 두발자유를 외치는 학생들이 아마 한 번씩은 들어봤을 법한 말. "머리카락 같은 사소한 거에 신경 쓸 시간에 공부나 해!" 그런 개념 없는 소리에 맞서기 위해 두발자유 시위 때 이런 표어도 나왔더랬다. "잘리는 건 단순히 머리카락이 아니라 인권입니다." 하지만 좀 더 발칙하게, 이렇게 질문으로 답해보면 어떨까? "그게 그렇게 사소한 거면 왜 그렇게 열심히 규제하고 단속하세요?"

  새로 나온 학생인권 책, 『인권, 교문을 넘다 - 학생인권 쟁점탐구』(한겨레에듀. 인권교육센터 들 기획. 공현, 박민진, 배경내, 오혜원, 정주연, 조영선 함께 씀.)는 바로 그런 발칙한 질문과 그 질문에 답을 찾는 과정의 결실이다. 왜 학교에서는 그렇게 학생인권을 규제하고 침해하는 데 열을 올릴까? 학생들이 이런 인권을 보장받게 되면 대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이 권리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이런 질문들을 던져나가면서 학생인권의 여러 쟁점을 탐구하는 것이 이 책의 중심 내용을 이루고 있다.

  책의 본론 격인 2부, 그 중에서도 첫 장의 소제목, "두발자유는 머리카락의 자유인가?"는 그런 책의 성격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 두발규제는 단순히 머리카락을 규제하겠다는 것이 아니요, 두발자유는 단순히 머리카락의 자유가 아니다. 독재자 박정희 대통령은 왜 장발단속을 했는지 보수적 억압적 정부가 들어선 이슬람권에서는 왜 사람들에 대한 두발복장규제가 강화되는지, 1987년 노동자 투쟁 때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의 첫 번째 요구사항은 왜 임금 인상이 아닌 두발자유였는지, 풍부한 사회적 비유와 대조를 통해 두발자유 쟁점의 의미를 탐구한다. 이 책은 두발자유의 당위성을 주장하기보다는 두발규제와 두발자유의 의미를 비교하고 탐구하는 형식을 취한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인권, 교문을 넘다 - 학생인권쟁점탐구』 2부는 두발규제, 체벌, 강제야자, 교복․복장, 휴대전화, 양심의 자유, 집회의 자유, 연애, 총 8가지 학생인권의 뜨끈뜨끈한 주제들을 꺼내서 요리한다. 그 목차는 다음과 같다.

① 두발 자유는 머리카락의 자유인가? | 한낱 머리카락에 학교가 그토록 목매는 이유
② 맞을 짓 한 자? 맞아도 되는 자! | 체벌과 폭력 사이
③ 우아한 거짓말과 구차한 양심 | 양심의 자유, 사뿐히 지르밟고 가시더이다!
④ 접속 금지, 발신 금지 | 휴대전화와 함께 추방되는 것들
⑤ 교복은 메시지다 | 복장 단속, 무엇을 단속하는가?
⑥ 도둑맞은 시간과 비어 있는 시간 | 강제 보충과 야자는 누구를 울리나?
⑦ 중립이라는 감옥, 정치적 미성숙의 감옥 | 집회의 자유는 학생의 삶을 어떻게 바꿀까?
⑧ 사랑은 아무나 하나 | '연애질', 금지된 것을 꿈꾸다



"화장실"에서부터 질문은 시작된다


  서론 격인 1부도 가볍게 읽어 넘기기에는 좀 만만치 않다. 1부는 화장실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교직원 화장실을 몰래 쓰는 재미로 학교 다니는 학생 이야기다. 그냥 시설이 좋아서 몰래 훔쳐 쓰는 게 아니다. 쓰고 나오면서 꼭 이런 것들을 붙여놓는다. "우리 학교 교사 수는 50명인데 화장실은 3개! 학생 수는 1000명이 넘는데 화장실은 몇 개일까요?" 같은 질문에서부터, "3층 남자 화장실 변기가 고장난 지 2개월째인데 수리도 안 해주고 있다!" 같은 고발까지.

  『인권, 교문을 넘다』는 어떤 화장실을 쓰느냐, "똥 쌀 권리"를 얼마나 어떻게 보장받고 있느냐, 거기에서부터 인간의 존엄성의 한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렇다. 화장실 뿐 아니라 중앙현관 학생 출입금지 같은 사소한 곳, 교무실 청소를 왜 학생들이 하느냐 하는 작은 불합리에서부터 학생들의 자기 처지에 대한 인식은 시작된다.

  이처럼 화장실로 시작한 1부에서는 동방신기 팬클럽 이야기, 무상급식과 학생인권조례 사이의 간극에 대한 이야기, 개학반대 시위 이야기 등을 거쳐서 학생인권의 봉인을 풀어나갈 질문들을 던진다. 그 질문들을 스스로 자문하다보면 어느새 학생인권에 대해 자기가 가지고 있던 '프레임'(생각 틀)들이 변화해가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학생인권이 넘어설 것들


  마지막 3부 "학생인권 논리탐구"에서는 학생인권을 이야기할 때 흔히 맞닥뜨리게 되는 여러 이야기들에 관한 논리들을 모았다. 부모 문제(친권), 미성숙, 법치주의, 보호주의, 교권 등등. 그리고 마지막에는 학교 안의 소수자와 차별 문제까지. 학생인권을 이야기할 때 우리가 넘어서야만 하는 것들, 좀 더 근본적인 관점에서 다시 이야기해야 하는 것들을 큰 틀에서 짚어주고 있다.

  긴 말 필요 없이, 다음과 같은 구절들을 직접 읽어 보자.

"미성숙은 말 그대로 성숙하지 못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사람은 달걀 프라이가 아니니 어디까지가 반숙인지 완숙인지 구분하기란 불가능하다. 겉으로 완벽해 보이는 사람도 어딘가 미숙한 구석이 있게 마련이고, 오히려 정신이 성숙하지 못한 사람들이 겉으로는 센 척, 성숙한 척하는 일도 많다. …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에서 어떤 사람을 성숙하다고 여기고 어떤 사람을 철없는 사람으로 여기느냐, 곧 성숙을 판가름하는 기준이 무엇이냐를 살펴보는 일이다."(pp.243-244.)

"보호의 반대말은 방임이 아니라 '자유'가 아닐까? 청소년이 자기 힘을 기르고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도록 하는자유 말이다. 그런데 자유는 단순히 '간섭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지원을 요구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 보호주의를 넘어서자는 말은 청소년에게 홀로서기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청소년들을 울타리 안에 꽁꽁 가둬 두는 보호주의에 묶여 있는 한, 청소년에게 정말 필요한 사회적 지원이 뭔지를 보지 못하게 된다는 이야기다."(p.260)

"교육이 전투가 될 때 교사의 전투력을 떨어뜨리는 듯 보이는 학생인권이 환영받을 수 있을까? 학생의 인권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교사의 통제력이라는 생각이 힘을 얻는 것 아닌가?"(p.264)

"학생인권을 주장하는 것은 학부모가 가진 것을 빼앗아 오자는 것도 아니고, 학부모를 학생의 삶에서 밀어내고 간섭하지 말라고 외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학부모의 위치를 제자리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는 이야기이고, 학생과 학부모가 같이 살아가기 위해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 학부모가 주인공으로 나설 무대는 자신의 삶이어야 한다. 학생인권은 이렇게 자녀의 삶에만 붙잡힌 채 자기 무대를 잃어버린 학부모도 자유를 되찾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함께 건네고 있다."(p.293)

"학교에서 인정하는 능력은 공정한 경주와 노력의 결실로 이야기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승패가 이미 예정되어 있는 경주를 공정하다고 말하고, 뒤처지거나 패배한 이들이 자기 탓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야말로 폭력이고 숨겨진 차별이 아닐까? 학교에서 인정하지 않는 능력, 돈이 되지 않는 능력을 가진 이들을 무능력하다고 얘기해도 될까?"(p.302)



학생인권 종결자


  현재 시점에서, 『인권, 교문을 넘다』는 "학생인권 종결자"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을 만한 책이다. 적어도 지금까지 학생인권에 관해 논란이 되었던 이야기들을 모두 그러모아서 이토록 넓고 깊게 파헤친 책은 이제껏 없었다. 물론 앞으로 학생인권이라는 사회의제가 더 많은 내용, 더 풍부한 이야깃거리를 가지게 되면 이 책도 부족한 부분을 많이 드러내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때까지는, 이 책이 학생인권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읽어야 할 바이블(Bible)이자 교과서 역할을 해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나 역시 책의 공저자 중 한 명으로서 더욱 그런 기대를 가지고 있다. 이 책의 내용을 뽑아내기 위해 워크샵을 하고 집필을 하는 데는 대략 1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지만, 사실 이 책에 담긴 내용은 6년, 아니 10여년의 세월 동안 학생인권을 이야기하고 발로 뛰어온 사람들이 궁리해내고 토론하면서 만들어낸 것들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교사들이나 학생들, 학부모들이 수능 문제집을 풀 시간, 취업 준비를 할 시간, 입시전형을 알아볼 시간 중 아주 조금만 할애해서 이 책을 읽는다면 학생인권 현실은 좀 더 나아질 수 있을 것이다. 또 중간중간에 제시하고 있는 더 이야기해봐야 하는 토론거리들을 가지고 같이 토론을 한다면 학생인권에 대한 더 풍부한 논의가 가능해질 것이다. 그 토론 페이지 역시 뻔하게 "두발규제가 필요할까?" 같은 게 아니라 "연애할 자유를 보장하면 여성 청소년들이 차별을 당하거나 피해를 겪는 일이 늘지 않을까?" 같은 섬세한 질문이나 "남을 모욕하는 말을 내뱉는 것은 양심의 자유 차원에서 어떻게 볼까?" 같은 어려운 질문까지, 학생인권에 대해 좀 더 앞으로 나아가고 구체화해야 할 고민지점들을 짚고 있다.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사람들은, 당연하게도 학생인권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이다. 책 디자인 자체도 학생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일러스트와 만화 등을 풍부하게 실으려고 노력했다. 학부모 분들도 읽으시면 좋다. 그렇지만 집회의 자유 보장이 빨갱이들의 음모라는 식의 무개념하고 얕은 소리가 버젓이 한국 1, 2위를 다툰다는 '정론지'에 실리는 현실에서는, 일단 그런 칼럼을 쓰는 기자들이나 교수들 먼저 이 책을 읽혀야겠다 싶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제안하자면, 학교를 졸업할 때,(재학 중에는 싸움 거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으니까) 학생들을 '잡는' 교사들에게 이 책을 졸업 선물로 선물해보는 건 어떨까? 이명박 대통령이나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그밖에 교육감들이나 장학사들, 교장들에게도 읽히고 싶다. 자기가 하는 일이 무슨 의미인지, 학생인권이 뭔지, 개념 탑재가 좀 될 수 있도록.



추신 : 책이 오탈자가 좀 많다. 급하게 편집, 디자인을 하다 보니 생긴 문제 같다. 1쇄가 다 팔리고 2쇄가 나올 땐 가능한 한 고쳐져 있길!

Posted by 오승희

  서울에서는 지난 2010년 10월 말부터 서울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운동이 진행되고 있었다. 지금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바로 그 이야기다.



폭력성 실험



  서울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서명 수가 한참 한참 모자라서, 제정운동본부의 거의 모두가 반 미친 상태로 서명을 받느라 거리를 쏘다니고, 저녁에 온 힘이 다 빠진 채로 사무실에 돌아와 서명지를 정리하던 시기가 있었다. 2월부터 5월 초까지, 3개월 동안 다들 필사적이었다. 학생인권에 대한 절박함도 있었고, 보수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떠들어대는 망발에 대한 분노도 있었지만, 모두들 ‘이렇게 개고생하고 실패할 수는 없다.’는 절박함과 오기가 점점 커졌다. 악으로 매일 아침 9시에 모여 회의를 하고, 11시부터 저녁 5시까지 거리에서 서명을 받고, 주말에도 하루도 쉬지 않고 거리서명을 받는 일정을 소화해 냈다. 도중에 차례차례로 한, 두 명씩 몸살에 쓰러졌다 돌아오고, 알바를 하고 있던 사람들은 알바를 때려 치우고 서명을 모았다. 거리에서 우리에게 고함치는 사람들, 훈계하거나 시비 거는 사람들을 상대하다 억울해서 울고, 우리가 왜 이렇게 까지 해야 되나 하고 너무 힘들어 울고… 그렇게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지면서도 누구 하나 힘들어서 그만두겠다고 말하지 않았다.

  서명기간 도중에 별의별 말이 다 나왔다. 주민발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악마한테 영혼이라도 팔겠다, 실패하면 죽어버릴 거다, 실패할 거 같으면 전교조 사무실 째로 서명지를 불태우겠다(학생인권조례 제정운동서울본부 사무실은 전교조 서울지부 사무실 일부를 빌려 쓰고 있었다.), 유리창부터 몇 장 야구배트로 박살내고 시작하자 등등… 서명지와 전단지, 가판대와 소형 앰프를 들고 낑낑대며 서명을 받으러 걸어가던 도중, 같이 가던 활동가와 “지금 차도에 뛰어들면 학생인권조례 서명 부족으로 청소년 자살… 신문에 나서 서명 많이 모이겠지?” 하는 이야기를 하던 게 생각난다.


▲ 올해 2월부터 3개월 동안, 활동가들은 서울시민들에게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서명에 참여하라고 거리에서 매일 같이 말을 걸었다.



  여기까지 우중충하고 어두운 이야기들에서 독자들에게 위화감은 없었는지? 혹자는 왜 같이 운동하던 전교조 사무실을 때려 부수지? 팀킬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을 줄 안다. 하지만 이 운동을 계속 가까지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 참여했던 사람들은 아, 그런 얘기도 나왔었지… 하며 고개를 끄덕이겠지.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운동의 역사는 전교조와 일부 교육단체들에 대한 분노의 역사이기도 했다. 학생인권조례 제정운동 서울본부를 시작할 때, 전교조 서울지부가 가장 주도적으로 주민발의를 통해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하자며, 목표 서명 숫자의 3분의 1이나 되는 서명을(최대 3만장을) 전교조 서울지부에서 모아오겠다고 했었다. 모두들 성공의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고, 주민발의를 시작했다.

  그런데 일단 주민발의가 시작되자 전교조 서울지부(앞으론 귀찮아서 그냥 전교조)는 전혀 열의를 보이지 않았다. 거리서명에 나오는 날도 손에 꼽을 만큼 적고, 그마저도 마지못해 나오거나 왕창 늦었다. 나와서는 피켓을 든 채, 피켓 고정용 청테이프 혹은 병풍 정도의 역할밖에 하지 않고 돌아가거나, 심지어는 줄담배를 피며 한두 시간 서 있다가 수고 하라는 말만 하고 돌아가서 가기 전까지 담배 피러 나온 회사원으로 오인 받은 적도 있을 정도이니 원망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는 언제나 양 손 가득 짐을 들고 낑낑거리며 전철, 버스를 타는데 언젠가 한 번 선전전에 같이 나온 전교조 조합원에게 짐을 옮겨줄 것을 부탁하자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우리가 오늘 차가 없어서요.”라는 반응을 보였다. 하루쯤 그거 들고 걸어가면 팔이 부러지기라도 하나?

  그렇다고 전교조에서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그렇게 열심히 서명을 받은 것도 아니다. 전교조에서는 큰 행사가 있을 때, 자신들이 서명을 모으는 게 아니라 학생인권 조례 제정운동본부에 통보해서 ‘와서 서명을 받아라.’ 라는 식으로 굴었다. 조합원들이 잘 동의를 하지 않는다. 그런데 강제로 서명을 하게 할 수는 없다. 아직 합의가 되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이미 옛날에 합의했어야 할 내용을 가지고, 자신들이 계속 주장해 왔던 것조차 조합원들에게 동의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들이 학생인권에 대해 정말로 열의가 있는지, 동의하기나 하는 건지, 계속 의구심을 가지게 했다. 심지어는 계속 학생인권을 까대는 ‘조중동’보다 더 미웠다. 인내심테스트, 폭력성 실험을 당하는 기분이었다.

  같이 주민발의 운동을 하는(해야 하는) 전교조 조합원의 대부분이 학생인권조례에 무관심했고, 자신이 무관심하다는 걸 정당화하기 위해 망발을 해댔다. 청소년 활동가들에게는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초면에 반말을 해대는 건 기본이고, 목표 서명을 다 모으는 건 불가능하다는 말을 너무도 쉽게 하면서 서울학생인권조례의 의원발의 일정이 언제냐고 물어보는 모욕까지. 전교조에 좀 더 적극적인 태도를 요구하자 “전교조에게 그렇게 의존하면 안 된다.” 거나, “다른 단체들에서는 서명이 얼마나 들어왔냐.” 며 자신들에게 너무 과중한 책임을 묻고 있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언뜻 학생인권과 연관성을 찾기 힘든 민주노총에서 매일 거리선전전을 뛰고 있고, 조례제정본부의 20명 남짓 하는 사람들이 매일매일 거리에 나가 서명을 받는데도 하루에 200장 모으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서울에만 조합원이 8-9000명 있는 ‘진보적(?)’교직원 노동조합에 조합원 서명을 적극적으로 받아달라는 것이 그렇게 ‘과중한 책임’인건지, 아니면 전교조가 자기 조직의 조합원도 챙기지 못하는 망해가는 단체인 건지…

  주민발의가 실패할 것 같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던 4월 중순, 회의자리에서 전교조가 “우리가 실패해도 좋은 경험이고, 하는 과정이 중요한 거니까…” 따위의 말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마치 ‘훈화말씀’이라도 하듯이. ‘전교조는 더 이상 이 운동을 할 맘이 없다.’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말이었다. 그 태도는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이하였다. 우리가 거리에서 경험하는 것들은 그저 좋은 경험과 추억으로, 과정으로 남기기에는 너무 잔인하고 혹독한 것들이었다. 결국 회의가 끝나자 전교조가 나가버린 사무실은 한바탕 울음바다가 되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평등교육을 위한 학부모회’ 회원 중 한 명이 일정이 많아서 거리 서명을 못나가겠다는 말을 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저번에도 나갔는데 또 나가요? 제가 무슨 몸이 무쇠도 아니고....”
  아연해지는 순간이었다. 매일매일 거리에서 6-7시간씩 서서 소리치는 우리들은? 무슨 몸이 다이아몬드라도 돼서 그렇게 서 있나? 우리는 몸 구조가 그들과 다른 건가? 일, 이주일에 두, 세 번씩 나와 달라는데 그렇게 뻔뻔할 수가 없었다. 조례제정운동본부의 모두가 여기저기서 너무 많은 상처를 받으며 지치고 있었다. 이런 도중에도 시간은 가고 있었고, 서명 수는 모자랐다.



너덜너덜한 성공


  대망의 5월 11일, 바로 전날 서명기간을 끝내고 우리가 모은 서명이 목표치 8만 2000명을 훨씬 넘은 8만 5000장이 된다는 걸 확실시 했을 때, 너무나 열심히 거리 서명을 받았던 모두가 울며 웃으며를 반복하며 기뻐했다. 해냈다는 기쁨과, 이제까지 했던 고생, 받았던 모욕에 대한 서러움이 교차했다. 우리가 거리에서 모은 서명 약 3만5천장. 시민 분들이 자발적으로 하나하나 보내주신 우편서명 약 7천장. 여러 단체와 종교계의 일명 ‘조직서명’ 약 3만9천장. 그 중에서, 전체의 10분의 1도 안 되는 전교조의 7천장. 그들의 목표가 처음에 '최소' 1만 5천이라는 건, 그냥 덧붙여 둔다.

  서명지를 지역별로 분류하는 작업이 한창일 때, 다들 하루 이틀씩 밤을 새며 일했다. 사무실 바깥에 나가는 건, 밥을 먹을 때 뿐. 그것도 그나마 후반에는 돈이 모자라서 도시락을 먹으며 진행했었다. 전교조에서 보인 반응은 “학생인권 조례 사무실 서명지 분류인가 뭔가 때문에 참 난리 났던데..”가 전부였다. 하루 이틀, 한 두명 정도가 도와준 적은 있지만 그래놓고 “우리는 도와줬다. 할 일 끝.” 이라는 것 같아서 짜증이 밀려왔다.

  그렇게 마지막까지 고생고생해서 겨우 서명지를 교육청에 전달하는 기자회견날, 다들 다시 한 번 울고, 거의 세상이 끝난 기분으로 집에 돌아가서 뻗었는데, 무효인 서명지가 많이 나와서 서명이 1만 1천 장이나 모자라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그리고 시작된 추가 서명기간. 다들 신경이 끝까지 예민해진 상태였고, 서명 말고는 거의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는 상태로, 전교조 외 기타 등등 에게는 그야말로 ‘서슬이 퍼런’ 얼굴을 했다. 오죽하면 ‘청소년활동가들 화 많이 났다’, ‘무섭다’ 등의 소문이 퍼졌을까. 결국 우리는 보정서명기간 5일 만에 거리에서만 5천장의 서명을 받아내는 기염을 토했고, 시민들과 여러 작은 단체들의 “조금만 더.” 라는 성원, 끝까지 너무 많이 도와준 민주노총, 종교계 등에 힘입어 목표치를 훌쩍 넘는 3만9백장의 서명을 모아 냈다. 그리고 다시 몰아친 정리기간. 이 모든 지옥을 넘어 교육청에 모든 서명지를 전달하고, 서울시 의회의 회기를 기다리는 지금도 서명기간을 다시 떠올리면 다들 울 것 같은 얼굴을 한다. 반드시 원안 그대로 의회를 통과하게 하겠다고 벼르고 있는 것은 서명기간의 하루하루를 잊을 수 없기 때문인 것 같다. 덧붙이자면, 지면상의 이유로 여기 옮기지 못한 이야기는 아직도 많다.





▲ 서울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로 거리에서 살다시피 하며 겨울볕에 탄 사람들의 팔

(※실제 13호에는 흑백 사진의 한계상, 그리고 편집 실수상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여기서 감상하시라 ^^;)



  결국 우리는 주민발의를 성공시켰고, 수많은 시민들에게 말을 걸었고, 학생인권의 봄을 열었다. 하지만 그 찬란한 봄의 뒤에는 진흙탕에 구르다시피 한 많은 활동가들의 너덜너덜해진 몸과 마음이 있었고, 서명 숫자를 위해 간도 쓸개도 다 빼준 것 같다는 자괴감이 있었다. 인간의 한계 그 너머를 엿본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주민발의’는 성공했지만 주민발의 ‘운동’은 실패한 것 같다는 씁쓸함이 남았다.

  서울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운동은 앞으로 학생인권조례가 갈 길, 학생인권이 갈 길에서 누가 함께 하고, 누가 함께 하지 않는지를 명확히 보여줬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을 던져 운동하는 사람들이 끝까지 바닥으로 추락하는, 의욕의 크기가 상처의 크기가 되는 운동을 다시는 하지 않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Posted by 오승희



봄부터 초여름까지 ‘어떤 시민들’은, 두두두 하며 발로 뛰겠다는 어느 통신사보다도 더 바쁘게 뛰어다녔다. 어느 포장마차 주인이 그들에게 “추운데 안에 들어와서 하세요” 했다는 이야기에서부터 장마전선과 태풍 ‘메아리’의 2단 콤보가 몰아치는 와중에 트위터에 “내일은 비 안 온답니다 여러분!” 외치던 이야기까지, 옷차림이 두꺼운 코트에서 얇은 면 반팔 티로 바뀌도록, 그들은 뛰고 또 뛰고, 외치고 또 외쳤다.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뜻을 함께 하겠다 한 서울시민이 자그마치 10만여 명이었다. 어떤 이는 우편으로 서명용지 한 뭉치와 편지 한 장을 보내왔다. 이 서명 받느라고 술값 밥값 많이 썼으니 꼭 제정시켜달라는, 회식자리에서 취한 김에 카드 한 장을 용기 있게 꺼내든 어느 대리의 ‘술 깬 직후’와도 같은,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감동의 도가니탕 한 그릇에 맞먹는 글귀였다. 그 ‘어떤 시민들’이 그토록 뛰어다니고 목청 높이며 하려 했던 일은, 서울특별시 소재 학교에 다니는 모든 학생들에게 인권을 되찾아주기 위한 것이었다.



‘무상급식’과 ‘체벌 금지’에 이어, ‘학생인권조례’가 교육 문제의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경기도에서는 이미 올해부터 시행되고 있으며, 서울에서는 서울시민 10만여 명이 서명에 참여해 주민 발의가 성사되었다. 서울에 이어 경상남도에서도 주민발의로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으며, 전라남북도, 강원도, 광주 등 진보적인 성향으로 알려진 교육감이 있는 지역에서도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위한 준비 작업이 한창이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반값등록금’, ‘서울대 법인화 반대’,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명동 재개발 반대’ 등 굵직굵직한 이슈들 속에서도 학생인권조례는 청소년들 사이에서 ‘관심사류 갑’의 지위를 잃지 않고 있다.



학생인권조례란 무엇인가


학생인권조례는 말 그대로 ‘학생의 인권에 관한 조례’다. 정말 그거다. ‘조례’는 ‘법’과는 달리 지방자치단체마다 다르게 제정하고 시행할 수 있기 때문에, 학생인권조례는 딱 한 가지로 정의할 수 없는 구석이 있다. 다만 현재까지 제정된, 또는 앞으로 제정될 학생인권조례들을 보면 ‘신체의 자유’, ‘사상·양심의 자유’ 등 학생으로서 꼭 누려야 할 기본적인 인권이 명시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같은 ‘신체의 자유’에 관한 내용이라 하더라도 세세한 부분에서, 혹은 시행세칙 차원에서 자치단체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학생인권조례는 ‘갑자기’ 나온 이슈는 결코 아니다. 학생들의 인권을 보장하라는 목소리는 오래 전부터 꾸준히 있어왔고, 그 노력은 ‘두발 자유화 운동’이나 ‘0교시 폐지 운동’ 등의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2006년에는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이 ‘학생인권법’이라 불리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으며, 2009년의 교육감 직접선거 이후 학생인권을 광역자치단체의 조례로서 보장하자는 목소리가 커졌다. 그리고 2011년 3월에 경기도에서 전국 최초의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되기에 이르렀다.

  ▲ 2010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 경기 인처의 교육감 후보들이 학생인권조례 정책 협약식에서 차별과 억압과 경쟁을 넘어 학생인권을 입학시키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전국 최초의 학생인권조례,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경기도 학생인권조례는 전국에서 가장 먼저 시행된 학생인권조례라는 점에서 다른 지역의 학생인권조례안에 상당한 영향을 주고 있다. 기본적으로 ‘학생인권’ 하면 꼭 들어가야 하는 ‘신체의 자유’, ‘사상·양심의 자유’, ‘교육 받을 권리’와 같은 내용들은 빠짐없이 들어가 있으며, ‘무상급식’을 인권의 영역으로 넣어 학생인권조례의 한 부분으로 만든 것이 눈에 띈다.(제23조 4항, “교육감은 직영급식과 의무교육과정에서의 무상급식을 실시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역시 먹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금강산도 식후경, 국영수도 식후독(讀)이니 ‘먹는 것’이 인권의 영역에 들어가 있는 것이 이상할 것은 없다.

경기도 학생인권조례는 모든 종류의 폭력을 금지하고 있다. 제6조 1항에 “학생은 따돌림, 집단 괴롭힘, 성폭력 등 모든 물리적 및 언어적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를 가진다.”, 2항에 “학교에서 체벌은 금지된다.”라는 문구가 있다. 즉 여기서 말하는 폭력이라는 것에는 물론 ‘빵셔틀’로 대표되는 학교 폭력 문제도 포함되지만, ‘체벌’ 역시 포함된다. ‘맞아야 말을 듣는다’라며 체벌을 정당화하던 논리에 정면으로 맞서는 부분이다. ‘교권 추락’ 논란이 있으며 또 모든 학교에서 체벌 금지 조항이 연착륙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 시행 초기이고, 또한 당연히 보호받았어야 할 학생들의 인권이 이제야 조례의 강제에 의해 지켜지기 시작했다는 측면에서 바라보면, 이러한 문제들은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되어서’가 아니라 ‘학생인권이 무시되었던 시간이 너무나 길었기 때문’이라고 봐야 옳을 것이다.

그리고 여학생들의 생리결석을 보장되어야 할 건강권으로 보고 인권조례 차원으로 보장하고 있다.(제24조 2항, “여학생은 생리로 인한 고통 때문에 결석하거나 수업에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 그로 인하여 불이익을 받지 않을 권리를 가지며, 학교는 생리 중에 있는 여학생에게 불이익이 없도록 적절한 배려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 이것으로 생리로 인해 결석이나 조퇴를 하려 해도 교사의 무지, 혹은 인권의식 결여로 인해 해당 학생에게 수치심을 주었던 일들이 사라질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학생들이 스스로 학칙을 제정하고, 정책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가 명시되어 있다. 제18조와 제19조에서 각각 “학생은 학칙 등 학교 규정의 제․개정에 참여할 권리를 가진다.”, “학생은 학교 운영 및 교육지원청의 교육정책결정과정에 참여할 권리를 가진다.”라는 문구로 학생들의 일종의 참정권을 보장하고 있다. 또한 교육감이나 학생인권옹호관에게 직접 인권조례의 개정, 학생 인권 실태 등에 대한 의견을 낼 수 있는 ‘학생참여위원회’를 설치하도록 되어 있다. 모집에 응한 학생들 중 추첨으로 100명 이내의 학생들을 위원으로 선발할 수 있고, 그 중 20명 정도는 반드시 소수자 중에서 선발하도록 되어 있어, 선거권이 없는 학생들이 교육 정책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두고 있다.

다만 두발의 자유를 명시한 부분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제11조 1항에는 “학생은 복장, 두발 등 용모에 있어서 자신의 개성을 실현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되어 있고, 2항에는 “학교는 두발의 길이를 규제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되어 있어 일견 두발자유를 보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구체적으로는 ‘길이’에 대한 규제만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종류의 두발 규제는 막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머리는 취향입니다. 존중해주시죠.

또한 조례문의 ‘교육 목적상 필요한 경우’라는 표현의 애매함도 지적되고 있다. 사생활의 자유를 명시한 제12조에서 “교직원이 교육목적으로 필요하여 불가피하게 학생의 소지품 검사를 하는 경우”, “교직원은 일기장이나 개인수첩 등 학생의 개인적인 기록물을 열람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교육목적상 필요한 경우에도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라는 표현이 있는데, ‘교육 목적’이라는 표현이 얼마든지 자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음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논쟁이 되는 휴대전화에 관련해서는 소지나 사용을 완전 금지하지는 못하되, 수업 시간 중 사용은 규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다만 이 역시 학교에서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사실상 사용을 완전 금지하는 경우도 있다.

한편, 학생 및 교사 뿐 아니라 학생의 보호자에게도 인권 교육을 실시하도록 하는 조항도 있다. 학교는 보호자에 대하여 학생의 인권에 관한 교육 또는 간담회를 연 2회 이상 추진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학생에 대한 인권 침해는 학교에서 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많이 일어나고 있으며, 특히 학부모가 학교에 요구해 더욱 인권을 침해하도록 하는 경우도 많은 만큼, 이러한 규정을 포함시키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해당 조항이 흐지부지 사문화되어버리지 않도록 매의 눈으로 감시할 필요가 있다.




시민과 전문가들이 모여 보완한 서울 주민발의안



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올해 3월부터 전면 시행됨에 따라, 경기도 소재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최소한의 인권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전국 최초로 시행되는 것인 만큼 조항 내부에 허점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안은 경기도 조례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혹은 타협 끝에 양보된 조항들을 주워 담아 수정·보완을 거쳤다. 당초 시민 8만 5천여 명의 서명을 받아 주민발의에 성공했으나, 서명지 확인 과정에서 중복·무효 서명지가 많이 나와 서명 보정 기간을 갖게 됐다.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 서울본부는 서명 보정 기간에 당초 목표로 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3만 명의 서명을 받는데 성공, 무사히 발의안을 제출하여 2011년 7월 현재 시의회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서울 주민발의안은 경기도 조례와 같은 뿌리를 갖고 있는 만큼, 전체적으로 보아서는 크게 다르지는 않다. 예를 들면, 제23조에 “교육감은 직영급식과 의무교육과정에서의 무상급식을 실시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라는 문구를 넣어둠으로써 경기도 조례와 마찬가지로 무상급식을 인권의 영역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먹는 것’의 중요성을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을진대, 서울특별시와 그 수장은 뭘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그 밖에 생리결석의 보장(제24조 2항), 학생참여위원회 설치(제37조) 등 많은 부분에서 경기도 조례와 유사한 면을 갖고 있다.

거기에, 경기도 조례의 허점을 보완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던 만큼 서울 주민발의안은 경기도 조례보다 구체적이다. 특히 ‘양심종교의 자유(제15조)’, ‘사생활의 자유(제13조)’ 등에 대해서는 인권을 침해하는 경우를, ‘자치활동의 권리(제17조)’에서는 학생 자치 조직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 조목조목 짚어주고 있어 실제 효력이 좀 더 강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조례 첫 부분의 ‘적용 대상’이 경기도 조례는 “경기도 내 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으로 되어 있는 데 비해, 서울 주민발의안은 서울시내 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은 물론, “입학, 퇴학 여부를 다투는 이” 또한 포함하도록 되어 있다. 졸업식과 입학식 사이의, 내가 중학교 3학년인지 고등학교 1학년인지 아니면 백수인지 정체성의 혼란에 빠질 수도 있는 그 애매한 기간에도 조례의 적용을 받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경기도 조례와 마찬가지로, 역시 탈학교 청소년은 해당 조례의 적용을 받을 수 없어, 이 부분을 보완할 대책을 과제로 남겨두고 있다.

서울 주민발의안은 경기도 조례와는 달리 ‘교육 목적상 필요한 경우’를 배제하고 있다. 즉 어떤 경우에라도 학생의 인권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함으로써 실질적으로 학생에게 도움이 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더해 학생에게는 “인권을 학습하고, 자신의 인권을 스스로 보호하며, 교사 등 타인의 인권을 존중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는 의무조항(제4조 3항)을 두어, 자칫 일부에게 ‘인권=방임’으로 인식될 수도 있는 경우를 차단하였다. 자신의 인권이 소중한 만큼 타인의 인권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시키고 있는 것이다. 또한 경기도 조례가 두발에 관해서는 길이를 제한하는 것만을 금지하고 있는 데 반해, 서울 주민발의안은 두발에 대한 어떤 제한도 금지하고 있다. 제12조 1항에서 “학생은 두발, 복장 등 용모에 있어서 자신의 개성을 실현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명시한 것은 경기도 조례와 같지만, 제2항에서 “학교의 장 및 교직원은 제1항의 권리를 제한할 수 없다.”라고 한 것은 경기도와는 달리 어떤 경우에도 학생의 개성표현을 막을 수 없다고 명시한 것이다. 그 밖에, 경기도 조례가 놓치고 있는 ‘집회의 자유’를 서울 주민발의안은 명확하게 짚고 간다.(제16조 3항, “학생은 학교 안팎에서 집회를 열거나 참여할 권리를 가진다.”) 경기도 조례에는 집회의 자유를 명확히 하는 부분이 없다.



전북, 강원은 ‘학교인권조례’로


타 시도에서도 학생인권조례 제정 작업이 착착 진행되고 있다. 경상남도에서는 서울에서의 주민발의와 마찬가지로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위한 서명운동이 한창이며, 이러한 상황은 충청북도에서도 유사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특히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는 교육감들이 있는 곳에서 더욱 활발한데, 강원도나 전라북도는 학생인권조례의 전 단계로 인식되고 있는 ‘체벌금지조항’을 서울, 경기도와 비슷한 시기에 내놓아 주목 받은 바 있다.

경기도와 서울시의 학생인권조례에 비해 어느 정도 후발주자라 할 수 있는 만큼, 이들 시도 교육청은 각자 공청회를 열고 각 지역 특성에 맞는, 또 앞선 학생인권조례에 더해 보완할만한 부분을 포함시키고자 하고 있다. 강원도는 ‘학교인권조례’라는 이름으로 학교 내 구성원들의 인권을 포괄적으로 다루고자 하고 있으며, 전라북도는 ‘학생인권조례’와 ‘교사인권조례’를 병립시키려 하고 있다. 여기서 ‘교사인권조례’는 교원의 권한을 분명하게 명시하고 상부의 부당한 간섭을 배제하려는 목적이다. 그러나 교사의 권한에 학생의 인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예를 들면 꿍디꿍디……가 아니라 체벌에 관한 권한 등)가 포함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다소 우려가 되는 부분도 있다.



학생인권조례, 앞으로의 과제


학생인권조례가 경기도에서는 이미 시행되고 있고 서울에서는 시의회 통과를 앞두고 있으며 전국의 많은 시도에서 제정 작업 중에 있거나 그럴 예정이다. 아직은 시행 초기라 시행착오도 있을 수 있다. 또 아주 극적인 변화가 하루아침에 일어나기를 기대하는 것도 조금 무리다. 그럼에도 광역자치단체 조례 차원의 든든한 방패막이가 있음에, 학생인권의 현실이 지금보다는 훨씬 더 나아질 거라는 믿음이 생긴다.


그러나 아직도 어떤 시도에서는 학생인권조례 제정 움직임이 기성세대의 힘에 눌려 제대로 발현되지 못하고 있으며, 보수 언론들은 학교에서 이따금씩 나타나는 일부 사고를 비약하여 “학생인권을 보장하면 학교가 무너진다”라는 식으로 시원하게 맹물을 타고 있다. 여기에, 경기도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교육청의 입김이 너무 커진다는 비판도 있다. 해당 문제의 주체인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나서 조례 제정에 나서는 것이 바람직한데, 교육청이 너무 앞서나가면서 독선적인 행정을 펴고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학생인권조례 자체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학교에 다니지 않는 청소년의 인권을 보장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 조례는 어디까지나 초중등교육법상 학교 교육을 받고 있는 이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러나 적지 않은 청소년들이 학교에서 벗어나 있고, 이들은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도 사실이다. 탈학교 청소년들의 인권도 보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곧 우리들에게 남겨진 과제라 하겠다. 그 과제, 되도록 빨리 해서 제출하면 좋겠다.



▲ 서울 학생인권조례 서명 선전전에 사용되었던 피켓들

Posted by 오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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