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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9.22 <사노라면> 허유세이 (許由洗耳) by 오승희


고등학교 3학년 때 일이다. 담임선생님이 맡은 과목 시간. 그날 진도를 다 나가고 시간이 좀 남자, 평소부터 다소 냉소적이던 선생님이 두서없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야기의 요지인즉슨 이렇다.

"내 친구 하나가 같이 사학과를 갔는데, 사귀던 애인이 조건이 안 좋다고 결국 차더라구... 그 친구 지금 교수로 있는데, 투자한 시간에 비해 재산도 적고... 역시 돈부터 왕창 벌어야 해."

나는 도대체 저게 교사가 할 말인지 모르겠다는 혐오감을 느꼈고, 내 옆 자리 친구에게 귀마개를 빌려달라고 하여 귀를 막아 버렸다. 그것을 본 선생님은 출석부로 내 머리를 툭 치면서 수업시간에 왜 귀를 막냐고 핀잔을 주었다. 출석부로 맞아본 사람들은 알 테지만 그거 꽤 불쾌하다. 선생님의 속물적 발언에 기분이 나빠 있던 차에 그렇게 싸움을 걸어오니 이거 원.

해서 "선생님 귀 좀 씻고 오게 화장실에 가도 되겠습니까?"라고 물었다. 말하자면 "지금 당신이 한 말이 너무 더러운 말이라 귀를 씻고 와야겠다."라고 비아냥거린 셈이었다. 선생님은 나를 한 번 힐끗 보더니 아무 말도 안 하고 수업을 조금 더 진행하다가 마쳤다. 수업이 끝나고 나에게 와서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니가 무슨 허유, 소부냐. 귀를 씻게."

그래서 나는 이렇게 답해주었다.

"아뇨. 설마요. 그럼 선생님은 요임금이게요."

그렇다. 애초에 학문을 열심히 하느니 돈이나 열심히 벌라고 하는 말을 요임금에 비교하는 것 자체가 개소리 아닌가!



※ 허유세이

허유(許由)는 본시 중국의 패택이라는 곳에서 살고 있던 어진 은자(隱者)였다. 그는 바르지 않은 자리에는 앉지도 않았고, 당치도 않은 음식은 입에 대지도 않았으며, 오로지 의(義)를 지키고 살았다. 이러한 소문을 들은 요(堯)임금은 천하를 그에게 물려 주고자 찾아갔다. 이 제의를 받은 허유는 거절하며 말하였다.
"이렇게 훌륭한 천하를 잘 다스리신 요임금을 어찌하여 저 같은 자가 이를 대신하여 자리에 오를 수가 있겠습니까? 더욱이 저같이 볼품없는 인간이 어찌 광대한 천하를 맡아 다스릴 수가 있겠습니까?"
그리고는 말없이 기산(箕山) 밑을 흐르는 영수(穎水) 근처로 가버렸다.
요임금이 다시 뒤를 따라가서 그렇다면 구주(九州)라도 맡아 달라고 청하자 허유(許由)는 노여운 마음마저 들어 이를 거절하고 속으로 '구질구질한 말을 들은 내 귀가 더러워졌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아무 말없이 자기의 귀를 흐르는 영수 물에 씻었다.
이때 소부(巢父)라는 사람이 조그만 망아지 한 마리를 앞세우고 어슬렁어슬렁 걸어오며 그 광경을 보고 허유(許由)에게 물었다.
"왜 갑작스레 강물에 귀를 씻으시오?"
"요임금이 찾아와 나더러 천하나 구주(九州)라도 맡아 달라고 하기에 행여나 귀가 더러워지지 않았을까 하고 씻는 중이오."
이 말을 듣자 소부(巢父)는 "하, 하, 하!" 하며 목소리를 높여 크게 웃는 것이었다. "여보, 소부(巢父)님, 왜 그리 웃으시오?" 하고 허유가 묻자 소부는 답하였다.
"평소의 허유(許由)님은 어진 사람이지만 숨어 산다는 소문을 퍼뜨렸으니 그런 산뜻하지 못한 말을 듣고 낭패를 당하게 된 것이오. 숨어 사는 은자(隱者)라는 것은 애당초부터 은자라고 하는 이름조차 밖에 알려지게 하여서는 아니 되는 법이오. 안 그렇소? 헌데 그대는 여지껏 은자라는 이름을 은근히 퍼뜨려 명성을 얻은 것이오."
그리고서는 소부는 망아지를 몰고 다시 영수(穎水)를 거슬러 오라 가더니 망아지에게 물을 먹이며 말하였다.
"그대의 귀를 씻은 구정물을 내 망아지에게 먹일 수 없어 이렇게 위로 올라와 먹이는 것이오."

윤종


Posted by 오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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